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0
“천한 것, 어찌 네 언니는 오지 않았느냐!”
적의의 선비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언니도 곧 올 거다. 조금만 기다려라.”
선비와 막상막하로 팽팽하게 맞붙으며 남장 여인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한편, 중년의 부인과 노부자도 홍삼자를 돕기 위해 달려들었다. 덕분에 홍삼자는 한숨을 돌린 반면 얼음 동자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나천성역과 소하성역 수련자들의 지원으로 계외 수련자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소하성역 수련자들은 특히 속도가 매우 빨라 번개를 타고 질주하며 막강한 기세를 보여주었다.
나천성역 수련자들은 9백 개가 넘는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 아래 하나하나의 허상을 소환해 공격했다.
독해(毒海)는 성난 듯 파도치며 계외 수련자들의 육신을 그대로 녹여버렸고 흡혈마수 무리가 지나친 자리에는 피와 원신까지 쪽 빨려 목내이처럼 비쩍 마른 시체가 흩날렸다.
순식간에 1만 명에 가까운 계외 수련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그들로서는 더 싸우기란 불가능했다.
이들은 봉계의 진을 뚫고 계내에 들어올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계내의 수련자는 한 무리 미물에 불과했다.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토록 우습게봤던 계내 수련자들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화작족 선조와 남조상인의 죽음으로 자신감과 용기를 잃은 상태에서 운락 대사의 죽음은 모든 결심마저 무너뜨렸다. 이제 하늘을 찌를 듯했던 자신감은 짙은 두려움으로 바뀐 상태였다.
계외 수련자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봉계의 진으로 돌진했다.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독해(毒海)와 흡혈마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운해성역 수련자들과 거칠게 달려드는 나천성역의 수련자 그리고 번개를 타고 빠르게 돌진하는 소하성역 수련자들이 거대한 살육의 그물을 형성했다.
한제가 개천부를 휘두를 때마다 계외 수련자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그의 주위로는 어느덧 반경 10만 척이 피 안개로 뒤덮였고 돌진하는 동안 이 안개에 휩싸인 계외 수련자들의 힘을 빨아들였다.
10만 명이 넘던 계외 수련자 대군은 어느새 8만 명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한데 그때, 태고 성신에서 온 세 번째 대군 5만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봉계의 진 너머에 이른 그들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달려들려 했다. 그들을 이끄는 것은 공열기 중기에 이른 두 명의 수련자였다.
적들이 진 안으로 들어선다면 거의 무너진 계외 수련자들의 전의가 되살아날 것이 분명했다. 벌써 도주를 멈춘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쉼 없이 학살을 저지르던 한제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 걸음 나서더니 회오리가 되어 그대로 봉계의 진에 난 거대한 균열로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균열 앞에 이른 그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이 이한제가 있는 한 살아서 계내에 발을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펑, 펑 소리와 함께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7성급 고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계외의 세 번째 대군은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탐욕과 광기가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마치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었다.
한제는 가만히 선 채 진 안으로 들어서려는 계외의 수련자들을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그중 특히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세 번째 대군에 섞여 덤덤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였다.
오른손을 비스듬히 들어 올린 한제는 계외의 수련자들이 진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우렁차게 외쳤다.
“죽어라!”
그 포효에 한제의 왼쪽 눈에서는 허상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뿜어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하늘을 뒤덮으며 강하게 일어난 화염에 수천 명의 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한 줌 재로 스러져 버렸다.
“죽어라!”
두 번째 포효에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 번개 문양이 번득였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 무수한 천둥번개가 튀어나왔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파도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이 파도에 휩쓸린 적들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두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곧장 한제에게 돌진해왔다.
“죽어라!”
한제의 입에서 세 번째 포효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개천부를 두 손으로 모아 쥐더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리쳤다. 미간에서는 일곱 개의 반점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고신의 힘을 폭발시켰다.
그 순간, 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계외 수련자들의 마지막 전의마저 지워져 버렸다. 그리고 개천부가 한제의 손에서 벗어나 아래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개천부는 한제의 손을 떠나며 천 배로 불어났고 그 위력에 우주에는 거대한 균열 하나가 나타났다.
이 균열은 봉계의 진 위에 난 틈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막 균열로 들어서려던 두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는 굳은 얼굴로 곧장 양쪽으로 갈라섰다.
허나 개천부를 피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콰쾅!
개천부와 충돌하면서 두 수련자의 피가 튀었다. 그중 한 명은 팔 하나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창백하게 질린 두 사람은 다급히 물러나더니 저 멀리 도망쳤다.
허나 중상을 입는 데 그친 그들과 달리 뒤에서 달려들고 있던 수련자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심지어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소멸해버린 대군들 사이로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텅 빈 균열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계외는 고요했다. 세 번째 대군은 멍하니 거대한 도끼가 낸 균열을 바라보며 바르르 떨었다. 동시에 계내에 들어와 있던 계외 수련자들의 눈에는 절망감이 드러났다.
“계내에 발을 들이는 자에게는 죽음뿐이다!”
한제는 봉계의 진 너머로 모여 있는 수련자들을 향해 서늘하게 외쳤다.
그때, 태고 성신 안에서 다급한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세 번째 대군은 그제야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듯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묵묵히 태고 성신 안으로 물러나더니 이내 사라졌다.
한편, 계내까지 전해진 뿔 나팔 소리에 전장에 남아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곧장 진 위의 틈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 앞에는 한제가 서 있었다. 그는 세 번째 대군이 계내로 진입하는 것만 막아선 게 아니라 계내를 떠나려 하는 자들도 막아선 상태였다.
“운해성역 수련자들을 죽인 주제에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나천성역과 소하성역, 운해성역의 수련자들과 독해(毒海), 수많은 흡혈마수들도 적들을 압박하려는 듯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광의 활
이어지는 공격에 또다시 많은 수의 계외 수련자가 죽거나 다쳤다. 그들은 절망감에 휩싸인 채 최후의 수단으로 한제가 막고 있는 진의 틈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태고 성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수만 명의 적들을 계내 수련자들이 바짝 쫓았다. 양측 20만 명에 가까운 수련자가 모두 한제를 향해 돌진하는 모양새였다.
그 순간 한제를 중심으로 허상의 화염이 퍼져 나가 반경 1만 척을 감쌌고 그 범위 안에 든 계외 수련자들의 체내에서는 화염이 일어났다.
그때 봉계의 진을 고치고 있던 남운자의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진 위로 벌어진 틈이 꿈틀거리며 점차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태고 성신의 수련자들은 더욱 광분했다.
“비켜!”
“우리를 보내줘!”
그들은 계속해서 돌진했으나 허상의 화염 때문에 한제에게 5천 척 이내로 다가서지 못했다.
한제는 마치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심지어 얼음 동자와 선비를 비롯해 계외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은 홍삼자를 비롯한 강자들에 막혀 있는 탓에 나설 수 없었다.
사실 한제에게도 이렇게까지 참혹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이 한 번의 전투로 죽어나갔다는 사실에 살육과 함께한 삶을 살아온 한제마저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열 개가 넘는 고식엽이 나타나 열 겹 이상의 봉인이 되더니 계외 수련자들을 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계내의 수련자들은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 또한 피해가 심각했다. 만약 한제가 없었다면 그 피해는 훨씬 컸을 터였다.
“난 네놈들을 모두⋯⋯ 죽이고 말 것이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차게 내뱉은 한제는 고식엽 뒤에서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며 무궁무진한 금제를 소환했다.
한데 그의 손이 그려낸 금제가 완전히 모습을 갖추려는 찰나, 작은 한숨 소리가 태고 성신에서 어렴풋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봉계의 진 밖에 남색 빛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제는 그 한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씁쓸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맞물리고 있는 봉계의 진 위에 벌어진 틈으로 상대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돌려보내주게.”
중년 사내가 착잡한 목소리로 한제에게 말했다.
“남몽도존!”
진을 고치는 데 몰두하던 남운자의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이미 공현기 절정에 이른 남몽도존에게 남운자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얼음 동자와 싸우고 있던 홍삼자 역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만큼 남몽도존이 갖는 이름의 의미는 컸다.
공현기 절정에 이른 수련자의 힘은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같은 태고 5존이라 해도 구천마존과 묘음도존 또한 남몽도존의 상대가 아니었다.
장존의 계획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남몽도존이라면 가능했다.
한제는 움직이던 손을 멈춘 채 묵묵히 중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네. 내가 일전에 베푼 호의에 대한 보답인 셈치고 그들을 돌려보내주게. 이번 전투는 우리의 패배일세. 그러니 이제 그만⋯⋯.”
남몽도존의 목소리는 덤덤했으나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살육의 소리는 차차 잦아들고 있었다. 홍삼자 등은 여전히 대치중이었지만 나머지 수련자들은 모두 한제와 남몽도존에게 집중한 상태였다.
한제는 이번 전투로 철저히 계내 수련자 편에 선 상태였다. 또한 봉계의 지존이라는 신분 덕분에 다른 수련자들로부터 숭배를 받기까지 했다. 홍삼자에 비견할 만큼 높은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었지만 계내 수련자들에게 그는 틀림없는 봉계의 지존이었다.
한제는 말없이 중년 사내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두 눈에서는 어떤 결단이 느껴졌다.
이내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백만 개의 금제를 소환해냈고 그 순간 백만 개의 금제가 응집되어 이루어진 거대한 우산의 살이 하나 나타났다.
우산살이 나타나자 그 위로 천이 덧씌워지면서 분계고산이 완성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남몽도존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내 딸을 위해 네게 신통술을 알려주고 선비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이 첫 번째였지. 두 번째는 장존의 정중로월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다. 허나 네 번째는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다음에는 나도 손을 쓸 터이니.”
시선을 거둔 남몽도존은 돌아서더니 남색 빛과 함께 사라졌다.
남몽도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던 한제의 눈앞에 한 여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한제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소를 드러내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수백 년 전 그녀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모든 것을 잊었구나.”
한제 체내의 생기가 분계고산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생기가 빠져나감에 따라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허상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분계고산이 1할 정도 펼쳐졌다.
그 순간, 그 안에서 흘러나온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화염 한 줄기가 우주를 뒤덮으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바다를 형성했다. 불바다 안에서 수많은 계외 수련자들이 고통스런 얼굴로 몸부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