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1
계내와 계외의 첫 번째 전투로 인해 양쪽은 참혹한 대가를 치렀고 이 전투는 분계고산이 펼쳐지면서 이렇게 끝을 맺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태고 성신으로부터 질주해온 강력한 살기가 한제의 심신을 뒤흔들었고 그의 미간에 떨어져 그곳을 봉인했다.
한제는 고개를 돌려 완전히 봉합되기까지 1천 척도 남지 않은 진 위의 틈을 바라보았다.
그 틈 너머로 백의를 입은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사내는 한 손에 활을 들고는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제는 그 활을 본 적이 있었다.
“장존의 수제자 풍예!”
도억(道亿) 이광이 도고의 왼쪽 눈을 쏘았던 바로 그 활이었다.
또한 도고의 신통술을 관통했을 뿐만 아니라 왼쪽 눈을 꿰뚫어 고향에 대한 도고의 그리움과 기억의 절반을 앗아가기까지 한, 극강의 무기였다.
그 무시무시한 위력을 한제는 오래된 무덤의 의자에 앉았을 때 생생히 경험한 바 있었다. 한제는 저 화살이라면 봉계의 진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활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라 도고의 고향에서 온 보물이었다. 천역주와 타락의 땅에서 보았던 나침반의 바늘에 이어 한제가 본 가장 강한 보물이기도 했다.
그런 보물 앞에 서자 한제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심지어 형용할 수 없는 한기에 몸을 떨었고 미간에서는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력한 위기감에 온몸의 털도 바짝 솟았다.
‘저 활은 천도를 배양하던 일곱 빛깔의 도인이 가져갔는데 어찌 저자의 손에 있단 말인가! 장존이 일곱 빛깔의 도인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백의의 청년을 응시했다. 모든 힘을 활에 주입함에 따라 청년의 얼굴은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활이 억지로 그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 세상에서 그 활의 내력과 위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탓에 다른 수련자들은 그저 혼란스러워할 뿐 크게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 저 청년은 공열기 초기 수준에 불과하고 저 활도 매우 평범해 보일 터였다.
한제는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와 시위가 당겨지고 있는 활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이라면 활에 화살은 없다는 점이었다. 화살이 없는 활은 제아무리 강력한 무기라 해도 본래의 위력을 모두 보이지는 못할 터였다.
유일한 화살은 도고의 왼쪽 눈을 꿰뚫고 그 눈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화살만 찾아낸다면 도고의 왼쪽 눈도 함께 찾아낼 수 있을지도…’
허나 이미 누군가가 그 어마어마한 무기를 찾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시 천역주를 두고 벌어진 것만큼이나 큰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제는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는 청년의 손에 들린 활의 시위가 당겨지면서 보름달처럼 둥글게 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미간의 통증이 커졌다. 마치 거대한 송곳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제의 온몸에 식은땀이 비처럼 흘렀다. 그가 고개를 돌려 백의의 청년을 바라본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의 모습은 곧장 흐릿해져 세상에 녹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두 손을 빠르게 들어 올리며 미간의 반점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번득이는 일곱 개의 반점은 그의 앞에 떠오른 채 회전하면서 강력한 고신의 기운을 발산했다. 이에 따라 도고의 머리가 허상으로 나타났다.
이 빠른 반응에 백의의 청년은 흠칫 놀랐다.
‘설마… 이 활을 알아본 것인가!’
청년은 시위를 당기고 있던 왼손을 놓았다.
퉁!
활의 시위가 진동했다. 그러자 시위가 튕기는 작은 소리에 이어 강력한 한 줄기 빛이 활에 응집되어 번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청년의 왼손에 이어 왼팔, 다시 왼쪽 몸 절반이 해골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상태라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청년의 생기를 머금은 강한 빛이 허상의 화살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른 허상의 화살은 이제 5백 척도 채 되지 않는 진의 틈으로 달려들었다. 그 무렵,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온 우주를 진동시켰다.
“큭!”
“크악!”
그 소리에 봉계의 진 안에 있는 수련자들은 일제히 심신이 진동했다. 칠규로 피를 철철 흘리는 수련자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그전에 중상을 입은 상태였던 수련자들은 원신까지 소멸해 버리기도 했다.
홍삼자와 남운자 등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도 놀란 모습이었다. 특히 선비와 소하성역의 자몽은 그 활을 본 순간 두려움에 떨었다.
“저 활은!”
“어찌 저 활이 저자의 손에!”
허상의 화살이 막 봉합되고 있던 진의 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봉계의 진이 강하게 진동했다. 그 충격이 어찌나 강한지 계내를 에워싼 봉계의 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진령조차 나타나지 않았고 맞물려가던 진의 틈은 5백 척 정도에서 그대로 멎어버렸다.
한제의 눈에는 오직 유백색의 화살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화살을 응시하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미간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살을 헤집고 들어와 미간을 뜯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봉계의 진 안으로 들어온 허상의 화살은 이제 한제로부터 1천 척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쾅!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고의 머리가 격렬하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에 압박받고 있는 듯했다.
찰나의 순간 달려든 화살은 도고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도고의 머리는 더 버티지 못하고 미간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그 무렵 허공에 녹아들고 있던 한제는 코앞에 다가온 화살에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는 이를 악물고 두 팔로 전방을 후려쳤다.
거대한 고신의 두 팔이 곧장 도고의 머리 안으로 녹아들어 허상의 화살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엄청난 기운이 팔을 타고 체내로 밀려들었다. 7성급 고신의 육신으로도 저항해내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에 몸이 달달 떨려왔고 입에서는 왈칵 피가 쏟아졌다. 그 강력한 힘에 휩쓸리면서 허공에 반쯤 녹아들었던 몸은 도로 튀어나와 하염없이 밀려났다. 한 걸음 물러날 때마다 쿵 하고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무려 1만 척이나 밀려나는 동안 한제는 일곱 번이나 피를 토했다. 체내는 거의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 무렵 한제는 계외 수련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고식엽으로 봉인해둔 곳에 이르렀다.
활은 여기에 있다
한제는 곧장 고식엽에서 검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줄기줄기의 안개는 마치 촉수처럼 급속도로 뻗어 나가 계외 수련자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비쩍 마른 시체로 만들었고 그렇게 흡수한 생기를 그대로 한제에게 전달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봉계의 진 너머에서 이를 지켜본 백의의 사내가 다시 한번 시위를 당겼다.
“끝내주마!”
순간 사내의 얼굴이 빠르게 노쇠해졌다. 청년에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그가 당겼던 시위를 놓자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허상의 화살이 튀어나왔다.
이번 화살 역시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봉계의 진에 난 틈을 통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하나의 화살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기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허나 고민할 틈이 없었다. 그의 왼쪽 눈에서 회전하는 화염이, 오른쪽 눈에서 번득이는 번개 문양이 체내로부터 본원의 힘을 발산시켰다.
콰쾅!
우렁찬 소리가 우주 전역에 울려 퍼진 그때, 운해성역 저 멀리서 한 줄기 광기 어린 기운이 다가와 눈 깜짝할 사이 한제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기운에서는 맨발의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봉계 지존에 의해 봉인되었던 강력한 흉수, 태아라였다.
“크아아아!”
태아라는 곧장 온 세상을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두 팔로 결인을 그리는 한편 두 번째 화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에게 귀중한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세밀한 비늘의 허상이 촘촘하게 태아라의 온몸을 뒤덮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단 셋을 셀 시간뿐이다!”
태아라는 다급히 내뱉으며 두 손을 뻗어 두 번째 화살과 충돌했다. 그 순간 체내로 밀려든 강력한 힘에 그는 온몸을 격하게 떨면서 피를 토해냈고 두 팔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왜곡되기 시작했다.
하나!
포효를 내지르며 덜덜 떨고 있는 태아라의 온몸을 뒤덮은 비늘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더니 방패를 형성했다. 그 중앙에는 기이하게도 금빛 비늘이 세 개 있었다.
둘!
그 순간 태아라의 두 팔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의 육신을 뚫고 나간 두 번째 화살은 방패와 충돌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방패는 바르르 진동했고 가장자리의 비늘들이 떨어져 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중앙의 금빛 비늘 세 개만 남게 됐다.
셋!
세 개의 금빛 비늘 역시 가루로 부서지더니 쓴웃음을 짓고 있는 태아라를 감싼 채 한쪽으로 물러났다. 두 번째 화살은 한제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무사할 수 있었다.
태아라 덕분에 귀한 시간을 얻게 된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피 안개를 내뿜었다. 이어서 분계고산이 발산한 파멸적인 화염을 끌어들였다. 동시에 피 안개와 화염을 융합시킨 힘으로 두 손에 진 첫 번째 화살에 저항했다. 마지막으로 검은 안개를 확산시켜 그 뒤에 있는 모든 계외 수련자를 감쌌다.
첫 번째 화살은 한제가 뿜어낸 고신의 피와 분계고산의 화염이 융합해 형성한 강력한 힘에 무너지며 소멸했다. 허나 그것에서 발산된 기세는 여전히 만만치 않아 2할 정도의 힘은 결국 한제의 두 손을 뚫고 돌진했다.
그러는 동안 그 위력은 한 번 더 꺾여 한제의 미간과 충돌할 때는 1할 정도의 위력만 남긴 상태였다.
콰쾅!
“크아아악!”
폭발음에 이어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허나 이는 한제의 비명이 아니라 검은 안개에 휩싸여 말라 죽어가는 계외 수련자들의 것이었다.
화살이 펑 하고 완전히 소멸된 순간, 한제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두 번째 화살이 달려들었다.
돌진해오는 화살을 보며 한제는 광기 어린 표정으로 이를 갈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가 들어 올린 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자 분계고산이 순식간에 축소되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우산을 쥔 한제는 온몸의 생기를 우산에 불어넣었다. 고신의 육신에 담긴 생기는 충만했으나 이 순간 말라갈 조짐을 보였다.
1할 정도 펼쳐져 있던 분계고산이 그 순간 2할 정도 펼쳐졌다. 동시에 그 안에서는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 한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에게 다다른 두 번째 화살은 분계고산이 발산한 화염과 충돌하자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경련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어마어마해 불바다를 뚫고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한제는 이미 말라가기 시작한 고신의 육신에서 다시 한번 생기를 끌어모아 분계고산에 밀어 넣었다. 이제 그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늙은 고신 같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생기를 얻게 된 분계고산은 거의 3할에 가깝게 펼쳐졌다. 이에 우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의 위력이 급증했고 한제의 미간에서 10척정도 떨어진 앞에 이른 두 번째 화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힘이 튀어나와 불바다를 가르고는 한제의 가슴을 가격했다.
콰쾅!
“크윽!”
한제는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밀물처럼 밀려드는 고통에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