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8
한제는 비웃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 불손한 기색에 광인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맹렬히 가슴팍을 두드리고 고함을 내질렀다. 사실 좀 전에 검은 원숭이가 했던 이 동작이 어딘가 패기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망할 놈! 나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기다려라!”
광인은 분노한 얼굴로 하늘을 가리키며 고함을 연거푸 내질렀다. 순간 허공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그의 손짓에 따라 떨어져 내리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지를 강타했다.
허나 지면에 옅은 흔적이 남는 데 그치자 광인은 흠칫 놀라더니 자신이 남긴 흔적과 한제가 남긴 깊은 구멍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더욱 광기 어린 얼굴로 격렬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또 한 번 역령인을 발휘했다.
그때 한제는 온 정신을 집중해 광인이 발휘하는 역령인의 세세한 부분을 하나하나 기억에 새겨두었다. 이런 행운은 다시없을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반 시진 뒤, 광인은 수십 번이나 반복해 소환한 역령인을 같은 곳에 떨어트려 옅었던 흔적을 조금씩 깊게 만들었다. 그러다 그 무렵에는 이미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신통술을 발휘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한제의 얼굴에 비웃음이 드러난 것을 보고는 오히려 더욱 분노했다.
‘제길! 여기서 멈출 수 없지!’
그는 이를 악물고는 낮게 고함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역령인을 소환했다.
어느덧 세 시진이 지났다. 그럼에도 한제의 얼굴에 드러난 점점 짙어지는 비웃음에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한편, 한제는 광인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하면서 등 뒤로 숨긴 오른손으로는 방금 깨달은 것들을 연습했다.
무려 여섯 시진이 지났을 때 광인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혀를 빼어 문 상태였다.
“망할, 너무 피곤해! 더는 안 되겠다! 잠이나 좀 자야겠어!”
막 포기하고 드러누우려던 광인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한제의 얼굴에 어린 충격의 기색을 보고는 우뚝 멈췄다. 그러더니 다시 일어나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마구 두드렸다. 만약 한제가 여전히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당장 포기하려 했으나 막상 놀란 표정을 보자 잃어가던 자신감을 되찾게 된 것이다.
“우하하! 드디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게냐? 좋아, 그럼 특별히 나의 힘을 좀 더 보여주마!”
광인은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역령인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한 손바닥 하나가 한제의 두 눈과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다시 세 시진이 더 지났다. 광인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두 눈은 시뻘겠다. 그리고 그 순간, 대지에는 마지막 역령인이 떨어지며 깊은 구멍이 나타났다. 한제의 역령인과 거의 비슷한 구멍이었다.
드디어 목표를 달성한 광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극도로 피곤해 보였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고는 거칠게 외쳤다.
“어때! 놀랐느냐?”
한제는 짐짓 놀란 척 대꾸했다.
“흠, 내가 직접 살펴봐야겠군.”
“흥! 얼마든지!”
광인은 불쾌하다는 듯한 콧방귀를 뀌면서도 의기양양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한제의 놀란 듯한 눈빛이 퍽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충격
한제는 광인의 역령인이 만든 구멍으로 다가가 한참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동안 광인은 휴식을 취하는 척 하면서도 계속해서 한제를 힐끔거렸다. 한제가 더욱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인은 조금씩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한제의 표정에서 처음의 충격이 사라지고 다시 비웃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잔뜩 화가 난 광인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허! 고작 이런 신통술을 가지고 몰래 수작을 부리다니.”
한제는 차게 비웃더니 자리로 돌아가 가부좌를 튼 채 광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반응에 광인은 잠시 멍해 있다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수작을 부리다니!”
“지난 몇 시진 동안 처음과 다른 신통술을 발휘하지 않았느냐!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그딴 헛소리로 나를 모함하다니! 난 분명 같은 신통술을 썼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다급해진 광인은 심지어 분하고 억울한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외쳤다. 몇 시진 동안 고생해 겨우 목표를 달성했건만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이다.
“이미 다 살펴봤다. 이 흔적은 하나의 신통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한제는 싸늘하고 단호하게 외쳤다. 허나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안타까움도 배어 있었다. 광인이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마치 어린아이를 속여 장난감을 빼앗은 삼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됐어.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 지하마수의 체내 세상에서 알게 된 이 자에게 피와 행운, 신통술을 얻었으니 언젠가 이에 대한 보상을 하는 날이 오겠지. 난 여태 은원을 분명히 해왔다. 그러니 앞으로 이자에게 생기는 일을 나 자신의 일로 여기겠다.’
광인을 바라보는 한제의 눈 깊은 곳에는 부드러운 빛이 숨겨져 있었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분명 같은 신통술을 발휘했단 말이야. 엉엉. 이 역령인은 형님이 쌍둥이 선존에게서 앗아 와 내게 전수해준 거란 말이다. 흑흑.”
오랫동안 씻지 않은 광인의 뺨에는 눈물이 흐른 자국이 남았다. 그는 눈물을 훔쳐내고는 억울해 죽겠다는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외쳤다.
“믿지 못하겠다면 구결을 알려주마! 난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형님이 거짓말을 하면 때릴 거라고 하셨단 말이다!”
어찌나 억울했는지 광인은 진짜로 역령인의 구결을 알려주었다.
“봐라! 이게 구결이다. 네 스스로 익히고 발휘해보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겠지. 감히 나를 의심하다니! 이제 너랑은 안 놀아!”
잔뜩 화가 난 광인은 팽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옆으로 돌아앉았다.
한제는 쾌재를 부르며 광인이 알려준 구결을 기억에 새겼고 이전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부분을 완벽하게 깨달았다. 뒤이어 그가 하늘로 손을 뻗자 역령인이 나타났는데 그저 허공에 떠 있을 뿐인데도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 역령인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다. 그는 이것이 진정한 역령인임을 신통술이 아니라 일종의 도술임을 그것도 온 세상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도술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역령인에는 세 갈래의 기운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운을 모두 발산하고 여기에 한제 자신의 힘까지 더한다면 세 개의 손바닥을 동시에 낙하시켜 육체와 원신, 혼백을 동시에 말살시킬 수 있을 터였다. 수도자가 발휘했던 역령인은 육체만 소멸시킬 수 있었던 것과는 달랐다.
한제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광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광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거대한 보물 창고와도 같았다.
“알았어. 울지 마. 내가 오해했어.”
한제는 미안한 마음에 부드러운 눈으로 광인에게 포권을 했다.
그러나 광인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한제는 쓰게 웃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저물공간에서 단약을 몇 개 꺼냈다. 대부분은 향이 진한 것들이라 꺼내자마자 짙은 향이 풍겼다.
순간 코를 벌름거리며 무의식적으로 몇 번 킁킁거리던 광인은 입술을 핥으면서도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는 않고 한제를 몰래 힐끔거렸다.
“흥, 그깟 단약이 뭐라고. 내가 소홍에게 먹였던 가장 허접한 단약도 그것보다는 나았다.”
한제는 슬며시 웃으며 단약 한 알을 움켜쥐어 으스러뜨렸다. 그러자 퍽 소리와 단약이 뭉개지며 한층 짙은 향이 풍겼다.
광인은 끓어오르는 충동을 애써 참았지만 꼬르륵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단약을 맛본 지 너무나 오래된 그로서는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과의 의미로 이 단약을 줄까 하는데 어때?”
한제가 슬쩍 손을 휘두르자 단약들이 광인 앞으로 둥둥 떠갔다.
광인은 침을 꼴깍 삼키며 몸을 돌려 단약들을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이깟 단약 따위. 뭐, 그래도 네가 잘못을 알았다니까 받아주도록 하지.”
말은 그렇게 했으나 손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단약들을 집어든 상태였고 어느새 입에 넣고 대충 씹어 삼켜버렸다.
한제는 부드럽게 웃으며 지나가듯이 툭 말을 던졌다.
“정말 강한 신통술이군. 헌데 신통술을 이것 하나만 아는 건 아니겠지?”
광인은 의기양양해 있다가 갑자기 경계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에도 누가 그 질문을 했는데 누구였더라? 소홍, 그게 누구였지? 아, 잊어버렸군. 어쨌든 그 말을 왜 했는지는 알고 있다! 나를 속여 내 신통술을 알아낼 생각이겠지? 흥! 나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런 속 보이는 수작에 넘어갈 것 같은가? 꿈도 꾸지 마라!”
고개를 뻣뻣하게 쳐든 채 코웃음을 치던 광인은 돌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많은 도술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야. 뭐, 어쩔 수 없군. 나처럼 뛰어난 사람이 은혜를 베푸는 수밖에. 보여주긴 하겠지만 가르쳐주지는 않을 거다!”
말을 마친 광인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펼치더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불바다가 일어나더니 거대한 우산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 아래 모여든 무궁무진한 불바다는 거대한 우산대가 됐다.
그 순간,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한 화염 줄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아홉 개의 우산 모양 불씨를 형성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씨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술법은 분계고산과 매우 비슷했으나 분명 달랐다. 한제가 익힌 분계고산은 접힌 상태로 나타난 반면 광인의 술법으로 나타난 우산은 이미 펼쳐져 있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어떠냐! 대단하지? 이 우산을 접으면 그 위력은 더욱 대단해진다!”
광인이 손을 휘두르자 우산은 조용히 흩어져 사라졌다.
“흥! 하지만 가르쳐주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구경이나 해라!”
더욱 의기양양해진 광인은 두 손을 들어 올려 결인을 그리면서 활을 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만약 정말 활이 들려 있다면 고신의 무덤 안 의자에서 보았던 이광과 똑같아 보일 듯했다.
숨 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강력한 화살의 기운이 광인의 두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뒤로 당긴 손을 놓으면 세상은 그 기운 아래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이 외에도 아는 것이 차고 넘치지!”
광인은 신이 나 보였다.
한제의 진지한 표정에 더욱 의기양양해진 그는 다시 한 번 포효하며 두 손을 놓았다.
응집됐던 화살의 기운이 흩어져 사라지던 그때,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이 진동하더니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채의 빛이 허상으로 응집되며 일곱 빛깔의 창이 됐다.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 창의 끝이 움직일 때마다 하늘이 진동했다.
창끝에서 발산되는 눈부신 일곱 색채의 빛에 한제는 모골이 송연했다.
그 빛들에는 감정의 힘이 담겨 있어 보는 모든 이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허상의 화염과 비슷한 위력이었지만 저 빛에 담긴 힘이 훨씬 더 강력했다.
광인은 크게 웃으며 결인을 그렸던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하늘이 원상태로 돌아왔고 그는 어째서인지 설레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어때? 대단하지? 배우고 싶지? 그렇지? 내게 신통술을 배우고 싶어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훗! 하지만 누구도 나를 속이지는 못한다. 나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신통술을 가르쳐줄 수는 없어! 네가 배우고 싶어 하니 안타깝긴 하다만⋯⋯.”
광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좀 전보다 더 의기양양해 보였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내게 배울 마음이 없다고 짐짓 냉담한 척을 했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됐을 것 같으냐? 으하하! 우스워 죽겠구나! 하하하!”
광인은 배를 움켜쥐고 껄껄 웃었다.
“네가 뭐라고 하든 소용없다!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광인은 또 다시 나불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그런 광인을 바라보던 한제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