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99
‘이자는 지하마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전에 기겁을 하고 두려워했지.’
지하마수의 기억에서 분명 광인은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한편, 광인은 한제의 미소에 은근히 불안해졌다. 아까도 저자가 저렇게 웃은 뒤로 자신이 몇 시진이나 쉬지 않고 역령인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그때, 갑자기 수련성이 강하게 진동했다. 동시에 금방 폭풍이 일어날 듯 회색으로 변한 하늘에는 거대한 고래와 같은 허상이 나타났다. 머리 부분에서 뻗어 나간 두 갈래 수염이 끊임없이 꿈틀댔다. 한제의 소환을 받고 체내 세상에 허상으로 나타난 지하마수였다.
그 순간, 광인의 의기양양했던 표정은 씻은 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 두려움이 들었다.
“아악! 여⋯⋯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젠장,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단 말이냐? 난 맛이 없다! 맛이 없단 말이다!”
광인의 비명에 한제가 소환한 지하마수 역시 화들짝 놀라더니 멍하니 광인을 응시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상대가 그때 그자임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지하마수는 요란하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물론 겁을 먹고 잔뜩 놀란 탓이었다.
허나 광인은 그 소리에 더 겁을 먹고는 창백한 얼굴로 다급히 물러났다.
만약 한제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지하마수는 곧장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한제의 존재 덕분에 녀석은 두려움을 잊었고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하며 광인에게 달려들었다.
“끄악! 오, 오지 마!”
광인은 날카롭게 외치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하마수는 더욱 거칠게 달려들었고 둘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지하마수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평생을 다른 존재에게 놀라고 겁먹기만 했을 뿐, 다른 존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지하마수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결국 지하마수의 수염 중 하나에 두들겨 맞은 광인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크악! 소, 소홍! 얼른 날 구해라! 저 녀석이 날 잡아먹기 전에 네가 먹혀버리란 말이다!”
기어서 도망치는 모습과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통해 광인이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한데 사실 지하마수도 수염이 광인에게 닿은 순간 움찔 놀라며 물러서서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절망에 빠진 광인을 지켜보던 한제가 그와 지하마수 사이에 섰다. 그 순간, 광인에게는 한제가 자신을 구하러 온 위대한 존재로 보였다.
“너구나! 네가 최고다. 넌 우리 형님보다도 내게 잘해주는구나. 얼른 저 흉수를 막아라! 저 녀석이 나를 먹으려고 해! 상을 주겠다. 소홍을 주마. 은도도 칠채 낭자도 4만 명의 아름다운 후궁들도 모두 주마!”
한제는 말없이 손을 뻗어 한 줄기 신식을 내보냈다. 그러자 지능이 떨어져 한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지하마수는 잠시 멍하니 고민에 잠겼다.
생각 끝에 녀석은 한제가 손을 뻗은 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려는 것이라 판단하고는 기쁜 마음에 잽싸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광인에게는 한제와 자신을 공격하려고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제자로 받아들여라
“크윽!”
지하마수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한제가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내더니 몇 걸음 밀려났고 광인을 옆구리에 끼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에 지하마수는 또다시 멍한 상태가 됐다. 그로서는 주인이 왜 도망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님은 심지어 자신을 쓰다듬어주기는커녕 머리에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녀석은 한제가 신식으로 내린 명령을 따라야 했고 아마도 주인님이 자신과 놀고 싶어 저러는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신이 나서 포효하며 뒤쫓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그 거대한 포효와 맹렬한 돌진에 광인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아악! 또 온다! 어떻게든 날 잡아먹을 셈이야!”
한제는 광인에게 더욱 미안해졌으나 결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자네가 나를 구해주는군. 형님께 너를 왕에 봉해달라고 부탁해야겠어. 그러니 제발 저 무시무시한 흉수에게서 날 지켜다오. 저 흉수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좋아하지. 녀석의 입에 들어가면 녹아내릴 거야! 나처럼 강력한 육신을 가진 자는 끔찍하게도 끊임없이 으깨어지고 녹아내리다가 한참 후에야 죽겠지!”
한제는 대꾸하지 않고 하마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도망치는 척했다. 그 거리가 꽤 가까워 지하마수의 꿈틀거리는 수염이 바로 지척이었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저 녀석이 너를 먹으면 배가 불러서 나를 쫓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광인은 덜덜 떨면서 중얼거렸다. 어찌나 겁을 먹었는지 급기야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한제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고는 광인을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
“저 녀석 몸집을 봐. 나 하나 잡아먹는다고 간에 기별이나 가겠어?”
그 말에 광인은 멍한 얼굴로 거대한 지하마수를 뜯어보다가 기겁을 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어렸을 때부터 흉수를 무서워했단 말야. 저렇게 큰 흉수는 더더욱!”
“아까 네가 보여준 신통술들이면 저 흉수를 쫓아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깝게도 난 알지 못하니…”
한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바로 그때, 흉수의 수염이 우연히 광인의 눈앞을 스쳐 갔다. 그러자 훅 끼쳐온 광풍에 광인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 으악! 제길! 좋아, 이렇게 하자! 네가 얼른 내 신통술을 배워 저 흉수 녀석을 쫓아버리는 거야!”
광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곧장 분계고산의 구결을 줄줄 읊었다.
한제는 심장이 쿵쾅댔지만 애써 덤덤한 척하며 상대가 읊어준 구결을 빠짐없이 외우고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확인했다. 그럴수록 그는 이 구결이 매우 정확함을 확신했다. 당시의 주작도 몰래 훔치듯 배웠던,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익히지 못했던 이 도술의 진정한 구결이었다.
다만 당장 배워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몇 년은 폐관수련을 통해 익혀야만 할 터였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왼손을 휘둘러 주작으로부터 배운, 완전치 않은 분계고산을 소환했다. 그러자 지하마수는 멈춰 서더니 두려움에 떨었다. 도대체 왜 주인님이 자신에게 신통술을 발휘한단 말인가!
그러나 우산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너져 내렸고 한제는 다급히 물러나며 말했다.
“이 신통술은 안 돼!”
“뭐라고? 제길! 그럼 이가의 쇄천일궁도(碎天一弓道)를 전수해주마. 그러니 얼른 저 흉수를 어떻게 좀 해봐!”
광인은 바들바들 떨며 다른 구결을 읊어주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이번에는 한제가 요구하기도 전에 외쳤다.
“칠채술도 알려주마! 그 이상은 안 돼! 저 녀석에게 잡아먹히더라도 더는 안 된단 말이다!”
한제는 광인의 절박한 목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하지만 동시에 언젠가 응당한 값을 반드시 치르리라고 다짐했다.
한제는 일단 결단을 내린 일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았다. 광인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빠짐없이 마음에 새겼다. 앞으로 이 광인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그를 도울 것이다. 그는 은원을 명확히 하는 사람이었다.
일곱 빛깔의 창을 소환하는 방법과 이가의 궁술까지 받아낸 한제는 곧장 멈춰 서더니 지하마수에게 한 손을 뻗었다.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제는 손에 쥐고 있던 광인을 대지로 내던졌다.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러 짙은 안개를 피워올렸다. 짙은 안개 때문에 광인은 한제와 지하마수를 그 둘을 볼 수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광인은 덜덜 떨면서 감격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는 나의 은인이었구나! 형님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하셨다. 걱정 마라. 네가 죽더라도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저 거대한 흉수를 막아다오!”
광인은 얼른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하늘에서는 점점 격렬한 소리가 울렸지만 오래지 않아 그쳤고 안개도 차차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저 멀리 도망치는 광인을 힐끗 보고는 재빨리 뒤를 쫓았다. 지하마수가 그 뒤를 바짝 추격해왔다.
그 무렵, 한참을 도망치던 광인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한제 너머의 지하마수를 발견하고는 거품을 물었다.
“크아악! 끝났다! 끝났어! 이번에는 틀림없이 잡아먹히게 생겼구나.”
그러더니 이내 자포자기한 듯 두 눈을 꼭 감고 목을 쭉 뺀 채 소리쳤다.
“그래, 먹어라! 먹어! 어서 먹으란 말이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광인은 실눈을 떠 상황을 살폈고 이내 경악했다. 저 끔찍한 흉수가 매우 순한 표정으로 한제에게 볼을 마구 비비고 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한제는 그런 녀석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녀석을 길들인 거냐? 너⋯⋯ 녀석을 길들였구나!”
겨우 정신을 차린 광인은 넋을 놓고 한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형님께서는 온 세상을 통틀어 고수라 칭할 만한 존재가 적지 않다고 하셨지. 너 역시 그중 한 명이로구나. 아마 내 형님이라도 저 흉수는 길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너! 나를 제자로 받아들여라!”
★ ★ ★
지하마수의 체내 세상, 곳곳이 무너져 내린 수련성.
“스승, 이 제자의 절을 받으시게!”
광인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연거푸 찧었다. 다소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광인의 표정은 진지했다.
“선족 선조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이 연도비, 너를 스승으로 받들어 평생 배신하지 않겠다!”
광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 줄기 기이한 힘이 발산되어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한제는 그답지 않게 당황해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 광인을 놀라게 해 신통술과 도술의 구결을 알아낼 생각이었건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스승, 얼른 저 흉수를 길들인 방법을 알려다오. 반드시 그 방법을 배워서 앞으로 저런 녀석을 마주치면 나도 겁먹지 말고 길들여야겠어!”
그는 흥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후후, 역시 난 똑똑해. 형님을 위해 고수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신통술까지 배우게 됐잖아. 그야말로 남는 장사지. 형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분명 나를 칭찬하겠지?’
한제는 멍한 얼굴로 지하마수를 흩어버렸다. 다시 둘만 남게 된 수련성은 적막에 휩싸였다.
잠시 후, 한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이 흉수를 길들이는 신통술은 굉장히 현묘해서 당장은 알려줄 수가 없다. 그보다는 네가 알고 있는 나머지 신통술에 대해 알고 싶군.”
한제가 말했다.
광인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눈을 깜빡였다.
“더 이상 아는 거 없는데? 다 잊어버렸어.”
“말하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
한제는 웃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혹시 여기에서 나가고 싶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