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1
“나 저기서 놀고 싶은데⋯⋯.”
한제는 다시 한번 수련성을 훑어보았다. 저 7급 수련성에는 수많은 일반인이 백여 개의 나라를 이루어 살고 있었고 수련자도 적지 않았다. 허나 그의 시선이 훑고 지나가도 그 사실을 인지하거나 느낀 자는 없었다. 대부분은 첫 번째 단계 수련자였고 세 번째 단계 수련자는 없었다.
수련성 중앙의 지하 동굴에는 바깥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폐관수련만을 하는 듯한 네 명의 수련자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수준이 높은 자는 세 번째 천쇠를 겪은 상태였다. 나머지 셋 중 둘은 첫 번째 천쇠를 겪은 상태였고 마지막 한 사람은 쇄열기였다. 이들이 이 수련성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었고 실제로 외부 활동을 하는 자들 중에는 정열기 수련자가 그나마 강자였다.
네 명의 수련자가 폐관수련을 하는 동굴에는 얼음과 화염의 힘이 교차해 있었는데 이 기운을 이용해 천쇠의 영향을 억누르며 그 시기를 견뎌내는 듯했다.
“나는 할 일이 있어서 같이 놀아주지는 못한다.”
광인을 해할 수 있는 자가 없음을 확인한 한제는 수련성에서 시선을 거뒀다.
“괜찮다. 난 혼자서도 잘 놀아. 너랑 같이 있으면 오히려 더 불편하지. 네가 쫓아오겠다고 고집을 피워도 내가 거절했을 걸?”
광인이 코웃음을 치자 한제는 잠시 따스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꼭 여기에서 놀아야겠어? 나를 따라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이 끝나는 대로 놀아줄게.”
광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눈앞의 수련성을 바라보더니 잔뜩 흥분해 중얼거렸다.
“사람이 아주 많아서 놀기 좋겠어. 아가씨도 많고 수련자도 많잖아. 하하! 내가 항상 가기를 원했던 바로 그런 곳이야!”
한제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광인의 정신연령은 어린아이 수준이라 아무리 강력한 수련자라 해도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갈 것만 같았다.
자신도 이 광인을 속이긴 했지만 다른 자가 속이는 것까지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한제 자신은 은원을 확실히 하지만 다른 자들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더구나 광인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입지 않게 돌봐주는 것이 그에게 은혜를 갚는 방법이기도 했다.
“안 돼!”
한제는 갑자기 한 줄기 금빛을 쏘아 보내 광인을 감싸더니 그를 데리고 먼 곳으로 향했다.
광인은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신통술을 발휘해 자신을 감싼 금빛에서 튀어나오더니 잔뜩 화가 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대체 왜 놀지 못하게 하는 거냐! 내 형님조차 신경 쓰지 않는데! 난 원하는 곳에서 놀 거야! 네가 스승이라고 해도 소용없어! 내게 스승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한번 세어 볼까? 하나, 셋, 여덟⋯⋯ 여덟… 일곱… 아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그보다 훨씬 많아! 그런데 그중 하나에 불과한 네가 감히 나를 끌고 가려 해? 난 저기서 놀 거야!”
광인은 짐짓 위협적인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한제는 그런 광인을 냉랭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손을 앞으로 뻗더니 꽉 움켜쥐었다. 순간 저물공간에서 두 갈래 빛이 빠져나왔다.
첫 번째 갈래의 빛에서는 흥분한 기색이 어린 고함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돌아가지 않을 거야! 매번 필요할 때만 꺼내 썼다가 일이 끝나면 그대로 내던졌지! 나는 검령이지만 네놈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 내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 빛의 주인은 허이국이었다. 그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외처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가 광인을 발견했다.
광인 역시 멍한 눈으로 허이국을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두 번째 빛에서는 유금표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는 조심스레 광인을 관찰하다가 마른기침을 하며 이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 둘은 저자를 보필하면서 저 수련성에서 날 기다려라. 누구도 저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둬서는 안 돼!”
한제는 저항의 여지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광인을 마지막으로 훑어본 한제는 이내 돌아서서 먼 곳으로 나아갔다.
‘허이국은 수준이 높고 교활하다. 유금표는 아첨에 능하고 세상사를 잘 알지. 저들과 함께한다면 괜찮겠지.’
한제는 이내 우주 저 멀리 사라져 수련자 연맹 본부로 향했다.
“청수 사형, 제가 갑니다!”
한제가 떠나고 남은 세 사람은 어색하게 서로를 살피다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계집아, 말해 보거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넌 뭐야?”
허이국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다가 어처구니없다는 피식 웃더니 다시 분노를 가득 담아 광인을 노려보았다.
“누가 계집이야? 난 남자라고!”
“네가? 네가 남자라고? 하하하! 아하하하! 아이고! 소홍, 저 봐라. 저 검령이 계집이 아니란다. 으하하! 우스워 죽겠구나. 어? 비가 오나? 소홍, 비가 온다! 얼른 우산을 가져와라!”
광인은 이보다 웃긴 일은 없었다는 듯 허이국을 가리키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급기야 벌러덩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며 웃어대다가 어느 순간 멍한 눈으로 웃음을 거두고는 허이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광인의 시선에 허이국은 눈을 끔뻑이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유금표를 바라보았다.
유금표는 진지한 얼굴로 몇 걸음 나서더니 광인을 아래위로 수차례 훑어보았다. 특히 상대의 얼굴을 몇 번이나 살피던 그는 허이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웠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소름 끼쳤다.
“미친 건가?”
“맞아. 광인이야. 틀림없어!”
눈을 마주친 허이국과 유금표는 동시에 광인을 향해 돌아서며 씩 웃었다.
내가 돌아왔다
한제는 홀로 우주를 질주했다. 강력한 육신 덕분에 종종 마주치는 공간의 균열을 피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그와 부딪힌 공간의 균열이 무너져 버렸다.
점차 그의 몸에서는 옅은 금빛이 번득였고 어마어마한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혼자 이동하다 보니 속도가 절정에 달했다. 수련자 연맹 본부까지는 꽤 멀었지만 단 세 걸음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첫 걸음에 그는 수련성들이 빽빽하게 밀집된 곳에 이르렀다. 곤허성역의 수많은 수련자가 진을 배치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한제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곤허성역에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적어 상고 시대의 진법을 아는 이가 드물었기에 홍삼자의 부탁으로 노부자가 와 있었는데 그 역시 한제의 존재를 감지하지는 못했다. 눈앞이 살짝 이지러지는 것을 통해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을 뿐.
‘누군가가 지나쳐간 것 같은 느낌이야. 꽤 익숙한 기운인데⋯⋯.’
노부자는 한참이나 파문이 지나쳐간 곳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한제의 기운과 매우 비슷하긴 하지만 그는 10년 전 떠난 이후 소식이 없었지. 휴, 어쩌면 그냥 내가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군.’
물론 한제는 노부자를 보았다. 하지만 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곧장 걸음을 내딛어 곤허성역 중심지에 이르렀다.
그곳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수많은 공간의 균열이 상처처럼 줄기줄기 퍼져 있었다. 크고 격렬한, 우주를 거의 무너뜨릴 만한 전투가 일어났던 것이 분명했다. 수많은 균열에 공간 자체가 곤허성역에서 거의 분리된 상태였다. 게다가 어렴풋한 파문까지 맴돌고 있어 신식으로 뭔가를 탐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군. 끔찍한 참상이 일어났음이 분명해.’
나천성역과 연맹성역 사이에 전쟁 때도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지하마수의 체내 세계에 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많은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군. 칠채계 중 몇 개는 파괴됐기를 바라는 수밖에⋯⋯.’
한제는 입을 다문 채 한 걸음을 더 내딛으려 했다. 하지만 미처 걸음을 딛기도 전에 그는 고개를 홱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세 갈래의 빛이 질주하고 있었다. 계내의 한 노인이 끊임없이 피를 토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중이었고 그 뒤를 미간에 낙인이 새겨진 두 명의 계외 수련자가 쫓고 있었다. 사람은 화작족, 다른 한 사람은 봉천랑족이었다.
두 사람은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중 화작족 수련자가 한 손을 앞으로 뻗더니 미간에서 한 줄기 화염을 쏘아냈다. 화염은 불바다처럼 강력한 기세로 계내의 노인에게 쏘아져 나갔다.
“염뇌자! 이곳이 계내의 땅이라 생각하는 게냐? 벌써 몇 차례나 그냥 보내줬지만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노인은 다름 아닌 염뇌자였다.
그는 낮은 기합과 함께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뒤로 뻗었다. 순간 열 개가 넘는 대륙의 조각 허상이 나타나 장벽을 이루었다.
퍼펑!
화염과 장벽이 충돌하자 거대한 소리와 함께 충격이 사방으로 확산됐고 염뇌자는 또다시 피를 토하며 한참을 밀려나갔다. 그가 소환한 대륙 조각 중 세 개는 무너져 내렸고 나머지는 염뇌자와 같이 튕겨나갔다.
“우리 장존회의 천조상인께서 잠깐의 휴전을 약조하지 않으셨다면 곤허성역은 이미 우리 태고 성신의 소유가 됐을 것이다!”
봉천랑족 수련자가 경멸 어린 눈빛으로 염뇌자를 뒤쫓다가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푸른 늑대의 허상이 나타나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수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몸을 날려 염뇌자에게 달려들었다.
두 명의 태고 성신 수련자는 모두 염뇌자와 같은 쇄열기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니 염뇌자로서는 두 사람의 협공을 견뎌내기 버거웠다.
푸른 늑대가 덮쳐들려는 순간 몸을 홱 튼 염뇌자는 혀끝을 깨물어 남은 대륙 조각들에 피를 뿜었다.
“폭발!”
펑! 퍼펑!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대륙 조각들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강력한 기운을 형성해 푸른 늑대에게 돌진했다.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푸른 늑대는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큭!”
염뇌자 역시 무사하지 못해 격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한참을 밀려났다.
“계외의 잔챙이 주제에 말이 많구나! 만약 홍삼자님이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또는 남운자님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신다면 그리고 계내 봉계의 지존이 실종되지 않았다면 네까짓 놈들이 이리 멋대로 굴 수 있었겠느냐!”
염뇌자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두 눈에는 광기가 어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 지역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상대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신식을 펼칠 수 없는 이곳만 벗어나면 곧장 축지성촌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기에 염뇌자는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두 계외 수련자는 대륙 조각들이 폭발하면서 일으킨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염뇌자를 바짝 뒤쫓았다.
“아직도 봉계의 지존이 죽은 게 아니라 실종이라고 우길 참이냐?”
싸늘하게 외치는 화작족 수련자의 눈에는 분노가 맺혀 있었다. 동시에 그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검은 불새를 소환했다.
“그자가 살아 있다면 어째서 그 뒤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냐? 홍삼자가 붙잡혔을 때도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지. 봉계의 지존? 그 칭호조차 아까운 존재다!”
봉천랑족 수련자 역시 비웃으며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팔에 푸른 털이 빽빽하게 자라났다.
염뇌자는 어두운 얼굴로 도망치는 와중에도 껄껄대며 웃었다.
“허! 우스운 소리로군. 봉계의 지존께서는 화작족 선조와 너희 계외 수련자를 10만 명 이상 죽였다! 너희 선조가 죽어가면서 내지른 비참한 비명을 듣지 못했느냐? 계집애처럼 징징대던 그 소리를 말이다! 크하하!”
이 도발에 화작족 수련자의 눈에 담긴 분노가 살기로 바뀌었다. 염뇌자는 화작족의 가장 큰 치욕을 건드린 것이다.
“그리고 너! 봉천랑족의 선조는 봉계 지존의 노예가 됐다지? 지금은 도망쳤다만 매일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더냐!”
봉천랑족 수련자의 표정도 급변했다. 오른팔에서 자라난 푸른 털이 더욱 길게 자라나 상반신을 뒤덮은 순간, 그의 팔은 거대한 늑대의 머리로 변했다.
“봉계 지존이 그리 좋거든 저승에 가서 만나게 해주마!”
봉천랑족 수련자는 살기 어린 목소리로 외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늑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몸에서 떨어져 나온 봉천랑족 사내의 오른팔은 한 마리 거대한 늑대가 되어 염뇌자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화작족 수련자 역시 낮게 외치며 검은 불새를 날려 보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불바다는 검은 불새를 휘감은 채 거대한 늑대와 함께 돌진했다.
염뇌자는 쓰게 웃었다. 이미 도망치기는 틀렸다는 생각에 오히려 두 눈에 담긴 광기는 몇 배나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