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3
회오리 안으로 들어선 한제는 오른발을 힘차게 굴렀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우주가 진동하면서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한제의 발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뻗어 나가면서 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우주의 붕괴였다.
이어서 한제는 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 폭풍이 일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가 한제를 중심으로 주위를 휩쓸었다.
“크아아악!”
“컥!”
수천 명의 계외 수련자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저 너머로 거대한 수련성이 드러났다. 봉쇄된 수련자 연맹 본부였다.
수많은 작은 수련성이 주위를 맴돌았고 그 아래로는 핏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이 핏빛은 수련성 아래의 한줄기 균열에서 나오고 있었다.
염뇌자는 한이 서린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지존, 저곳이 바로 수련자 연맹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배신자 중현자도 저곳에 있습니다!”
그때, 거친 고함과 함께 사방의 작은 수련성에서 계외 수련자들이 쏟아져 나와 눈 깜짝할 사이 주위를 둘러쌌다. 그러나 이들은 한제를 알아본 순간 표정이 급변했다.
수만 명에게 둘러싸인 염뇌자는 심장이 세차게 뛰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한 한제의 얼굴을 본 순간 마음이 놓였다.
“봉계의 지존? 하하!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왔구나!”
차가운 웃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수련성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나타났다. 연기로 이루어진 기둥과 같은 그 안개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자 계외 수련자들은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저자가 천조상인입니다!”
염뇌자가 얼른 한제에게 알렸다.
한제의 서늘한 눈빛이 천조상인에게로 향했다 싶은 순간, 그는 한 걸음 내딛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천조상인이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무궁무진한 향불의 힘을 발휘했다.
“봉계의 지존이 무슨 대수라고! 내가 저자를 죽여 태고 성신 순위표의 1등을 차지할 테니 잘들 보거라. 하하하하!”
천조상인은 통쾌하게 웃으며 한 걸음 내딛는 동시에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향불의 힘이 곧장 응집해 길이가 수십만 척에 달하는 검은 용 세 마리로 변했다. 온몸이 예리한 가시로 뒤덮인데다가 머리에는 뿔까지 하나 달린 이 용들은 포효를 내지르며 마치 채찍처럼 달려들었다.
공령기 수준 수련자 특유의 영력이 뿜어져 나오면서 기이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고 검은 용의 쩍 벌린 입안에서는 향불의 세계와 수많은 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이 바치는 향불의 힘으로 검은 용들은 향불의 용으로 변했다.
이것이 천조상인의 필살기였다. 태고 성신에서도 혁혁하게 이름이 난 신통술로 이 용들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천조상인이 목숨을 걸고 기이한 장소까지 찾아가 사로잡은 진짜 용이었다. 여기에 무려 만 년의 제련을 거쳐 마침내 세 마리의 검은 용을 길들여 향불의 혼수로 만들어낸 것이다.
천조상인은 오만하게 외쳤지만 사실은 매우 신중한 상태였다. 상대를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봉계의 지존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화작족 선조와 남조상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충격이었다. 화작족 선조야 공열기 초기 수준으로 자신보다 한참 아래였으니 그럴 수 있다지만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남조상인의 죽음은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한데 오늘, 드디어 그 소문의 주인공인 봉계의 지존을 마주하게 됐으니 머리가 저릿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기색을 보인다면 주위의 모든 계외 수련자들 역시 전의를 상실할 테니까.
‘저자가 저 회오리를 멈추고 찢을 수 있었던 것은 금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덕일 것이고 첫 전투에서 그토록 강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봉계의 진에서 힘을 빌렸기 때문이겠지. 순수한 실력만으로는 절대 남조상인을 당해내지 못했을 터. 그러니 개천부가 없는 지금은 내게 대적할 수 없다!’
천조상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섰다.
용반자
모든 계외 수련자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한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수십 년 전 느꼈던 두려움이 다시 떠올랐다.
그 사이 세 마리 향불의 용은 포효하며 각기 다른 쪽에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이 미처 다가오기도 전에 불어 닥친 광풍에 한제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마구 휘날리고 주위에 공간의 균열이 생겨날 정도로 강력한 기세였다. 그야말로 우주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염뇌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 기운 중 한 줄기라도 자신에게 떨어진다면 육신과 원신은 곧바로 와해될 터였다. 심지어 노부자라 해도 저 광풍 앞에서는 다급히 도망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그 광풍이 아니라 한제였다. 한제는 저 광풍이 마치 여름의 초입에서 불어오는 훈풍이라도 되는 듯 덤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향불의 용 세 마리⋯⋯.’
한제는 거칠게 포효하며 달려드는 용들을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체내의 저항력을 건드리지 않는 상태에서 발휘할 수 있는 2할의 힘만으로도 공열기 수준의 수련자를 꺾을 수는 있지만 죽이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오늘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청수를 구하고 도과를 찾아야 했다.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항력에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전력을 다해야 해!’
결단을 내렸지만 한제는 어떠한 신통술도 발휘하지 않았다. 세 마리의 검은 용이 달려든 순간 그저 두 눈으로 금색 빛을 번득였을 뿐이다.
그 순간, 금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한제의 모습은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온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 금빛을 따라 발산됐다.
곧 어마어마한 힘을 품은 금빛이 사방을 휩쓸었다.
“캬아아악!”
검은 용들은 동시에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고 금빛에 휩쓸려 격렬하게 경련하더니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금빛에 용들은 수십 척 물러난 뒤로는 더 이상 물러나지도 못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덜덜 떨다가 곧장 작아졌다.
그들은 이 금빛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태곳적 자신들의 부모들조차 저런 금빛을 다루던 이들에게는 저항하지 못했음을 똑똑히 기억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저항한다면 그 종족은 멸족할 터였다.
비록 어린 시절 천조상인에게 붙잡혀 천천히 제련되면서 혼수가 되었지만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유산과 영혼에 새겨진, 저 금빛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었다.
“크오오오!”
한 마리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구슬프게 울부짖더니 이내 경련을 일으켰고 온몸을 뒤덮은 비늘 사이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캬오오!”
“크르르.”
나머지 두 마리 역시 울부짖으며 피를 흘렸다. 녀석들은 떨리는 몸을 애써 웅크려 한제에게 고개 숙여 절했다.
그 무렵, 계외 수련자들 중에서도 금빛에 휩쓸린 이들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영혼마저 떨게 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봉계의 지존 앞에서 마치 선인을 마주한 일반인 같은 무기력과 절망을 느꼈다.
금빛이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는 가운데 수련자들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고 이내 하나둘 피를 토해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더 버티다가는 그대로 심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마치 한제의 몸에 고귀한 피가 흐르기라도 하는 듯, 그래서 그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련자라면 영혼에서 기인하는 경외심에 저항할 수가 없게 마련이다. 이들은 이미 계내와 계외의 구분을 잊은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금빛과 황제처럼 숭고한 한제뿐이었다.
수만 명의 수련자가 무릎을 꿇고 검은 용들이 절을 하고 있는 대상인 한제는 마치 하늘에 대고 묻는 듯했다. 생사를 관장하는 자가 누구냐고.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천조상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끄아악!”
천조상인 또한 금빛을 본 순간 두려움에 떨었고 억지로 버텨냈지만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그 금빛에서 뭔가를 떠올린 것처럼 그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급변한 얼굴로 물러났다.
이 순간, 계내와 계외의 전쟁도 명예나 치욕도 장존회의 명령도 그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이, 이건⋯⋯ 이 금빛은⋯⋯?”
여유로운 얼굴로 막강한 기세를 뿜어내던 한제는 단숨에 천조상인으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더니 맹렬히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 바람이 확산되더니 거대한 금색 주먹이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천조상인에게 떨어졌다.
콰쾅!
수련자들조차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소리와 함께 천조상인은 피를 뿜어냈고 바르르 떨리던 육신은 곧 산산조각 나 밀려났다.
파편이 되어버린 육신에서는 대량의 향불이 흘러나와 새로운 육신을 응집하려는 듯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한제의 오른쪽 눈이 번득이더니 금색 번개 문양이 나타났다. 그 순간 금색 번개가 내리치며 요란한 천둥소리가 향불에 휩싸인 천조상인의 원신을 공격했다.
펑!
“캬아악!”
폭발음에 이어 향불의 혼들이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선뢰! 이건 선뢰다!”
천조상인은 원신의 정기를 한 움큼 토해내고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너는 선인이로구나!”
천조상인은 혼비백산하여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옛날 검은 용들을 얻는 과정에서 이런 금빛과 선인을 마주했던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고 그 선인과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10년을 혼수상태에 빠졌진 바 있다.
한편, 한제는 체내에서 은은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저항력이 점점 폭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제는 신경 쓰지 않고 왼손을 들어 도망치는 천조상인을 가리켰다.
그의 왼쪽 눈에서 나타난 금빛 화염이 쏘아져 나와 금빛 불바다를 형성하더니 순식간에 천조상인을 휩쓸었다.
화염이 지나간 후에는 천황로의 허상이 나타나 모든 것을 연기처럼 흩어버리고 천조상인의 원신을 거두었다.
덜덜 떨며 무릎을 꿇은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 앞에 선 채, 한제는 거대한 수련성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덤덤했고 오른쪽 눈동자 안에 자리한 고마의 반점은 반짝였다.
애써 체내의 저항력을 억누르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수련성에는 회오리에 이은 두 번째 관문인 금제가 걸려 있었다. 수십 개의 작은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을 기반으로 하는 매우 교묘한 금제였다. 거대한 진은 이 수련성이 마치 수련자처럼 수련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흥미로운 수련성이로군. 염뇌자 수련자 연맹 장로였을 때 이 수련성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그제야 벗어난 충격에서 염뇌자는 더없이 공손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답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수련자 연맹이 수많은 수련성을 제련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저 위에서 수련하면 절반의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본다 하였지요. 또한 당시 용반자가 발휘한, 알 수 없는 신통술 아래 수련자 연맹의 두 번째 진이 됐다고 합니다. 그 위력은 첫 번째 장벽인 회오리보다도 훨씬 강력하다더군요. 허나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 저 역시 진의 위력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말을 마친 염뇌자는 뭔가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용반자는 당시 수련자 연맹의 태상장로였습니다. 중현자의 스승으로 저와는 일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요. 허나 숨을 거둔 지 오래입니다.”
“글쎄⋯⋯.”
한제는 전광 같은 눈빛으로 거대한 수련성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는 총 네 갈래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중 세 갈래는 긴장한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반면 마지막 한 갈래의 기운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한제는 거대한 수련성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며 체내의 저항력을 억누르고는 검은 용들을 향해 손을 뻗더니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은 용들은 바르르 떨면서 끌려왔고 뒤이어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그중 한 마리의 목이 한제의 손에 붙들렸다.
용은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마치 뱀처럼 몸을 꿈틀거렸고 한제는 금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용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의 눈은 검은 용의 체내에서 향불의 세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수천 개에 이르는 향불의 혼은 계내 수련자들의 것으로 보였는데 그중에는 한제에게 낯익은 이들도 있었다.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한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붙들렸던 용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마구 뒤틀었다. 이때 한 줄기 금빛이 한제의 손을 통해 용의 체내로 녹아들었고 이어서 용이 삼켰던 계내 수련자들의 혼이 연기처럼 흩어져 윤회의 고리로 돌아갔다.
한제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용을 염뇌자에게로 내던지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