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8
“크아아아!”
회색 기운에 꿰뚫린 청수의 눈에 다시 광기 어린 살육의 빛이 들어찼고 입에서는 또다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머리를 세차가 흔드는 그의 표정에는 고통이 어려 있었고 두 눈에서는 매우 짙은 붉은 빛이 발산됐다.
뒤로 물러나던 한제는 청수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릴 때 정수리에 박힌 날카로운 가시를 보았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의 몸을 고정하고 있는 열 번째 가시였다.
‘열 개의 가시! 아홉 개가 아니라 열 개였어! 알겠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10만 개의 산을 내려다보았다.
‘10만 개의 산이 열 개의 가시가 되어 청수 사형의 육신을 봉인하고 있는 거야! 각 산의 꼭대기에 있는 수련자들은 피로 현무를 자양하고 그들의 살기로 청수 사형을 자극하고 있어. 이 현무는 죽은 게 아니라 진짜 현무의 육신이야. 현무의 육신으로 청수 사형의 혼을 제압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은 청수가 가진 살육의 본원을 끌어내기 위함일 터였다. 즉, 청수는 지금 살육의 본원을 위한 일종의 단로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알겠다. 현무 성황이 당시 사성종을 배반한 건 수련자 연맹이 어디선가 이 현무의 육신을 찾았기 때문이야. 이 현무는 선존 휘하의 4대 장군일 가능성이 크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육신에는 현무족의 기운이 들어 있지. 현무 성황은 후대 자손으로서 그 조상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종족을 배반할 수밖에 없었던 게야.’
청수가 이곳에 온 건 자신에게 광증이 나타난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그 이유를 알아냈고 그로 인해 다시 광증이 재발했을 터였다. 저 일곱 빛깔의 검지가 이 모든 것의 근원으로 그것이 흡수하고 있는 붉은 기운이 바로 살육의 본인일 것이다.
기이한 눈빛
진상을 파악한 한제는 심신이 떨려왔다.
그때, 10만 명의 수련자가 토해낸 피 안개가 청수의 주위로 응집했다. 이 붉은 안개가 꿈틀거리면서 하나하나의 붉은 화면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멸망한 일반인 국가가 나타났다. 어린 왕자가 비통한 표정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화면 속 하늘에는 일곱 색채의 빛이 한 줄기 떠 있었고 그 안에는 흐릿한 그림자가 들어 있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수련자 종파에 입문한 소년이 갖은 치욕을 받는 모습이었다.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울음을 터뜨린 소년은 온 세상을 모든 사람을 증오했다.
그 순간, 극의 경계가 탄생했다.
이때도 하늘에는 일곱 색채의 빛이 있었고 그 빛 속의 그림자는 수시로 그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피 안개 속의 화면들을 보며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다. 섬뇌족의 7백만 천지를 알아냈을 때에 버금가는 충격을 느끼던 그의 머릿속으로 두려운 추측이 떠올랐다.
‘도의 양육?’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장성한 소년은 멸망한 고국으로 돌아왔다. 붉은 달이 뜬 7일 동안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피는 강을 이루어 흘렀다. 이 화면 속에서도 일곱 가지 색채의 빛은 그대로였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강을 이룬 피가 수많은 수련자를 죽였다.
모든 생명을 멸한 푸른 옷의 사내는 슬픈 표정으로 떠났다.
하나씩 변해가는 화면을 보던 한제의 심신이 진동했다. 그는 청수의 과거를 보았고 청수가 선계에 진입하는 것을 보았다.
화면 속 청수의 얼굴에서 일렁였던 살기는 곧 사라지고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옆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절세 미인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척 아름다운 그녀는 기품이 흐르는 눈으로 청수를 가만히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청수와 여인 앞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백범이었다. 애정이 가득한 자애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백범은 무언가를 말하는 중이었다.
한데 그 화면에서도 일곱 가지 색채의 빛은 하늘에 어렴풋이 드러나 있었다.
그 빛 속의 그림자는 기이한 기운이 깃든 눈으로 차갑게 청수를 응시했다.
어째서인지 한제는 그 눈빛을 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피 안개가 일렁였고 화면이 바뀌었을 때, 한제는 마음이 무거워졌고 슬픔이 차올랐다.
화면의 청수는 어느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 걸려 있던 일곱 가지 색채의 빛 속 그림자가 오른손을 쭉 뻗었고 청수는 바르르 진동했다.
번쩍 뜨인 그의 두 눈에는 이전의 지적인 눈빛이 아니라 피와 살육의 빛이 가득했다.
“크아아아!”
화면 속의 청수가 내지른 포효가 하늘과 땅을 뒤덮고 선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먼 곳에서 백범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백범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청수가 미쳤다는 것을…
청수가 아주 오랫동안 묻어놓았던 살육의 기운이 선계에 강림했다.
한제는 뇌의 선계 수련자들이 청수의 손에 끝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청수는 마치 피에 목마른 악마처럼 죽이면 죽일수록 더욱 심한 광기를 내뿜었다.
그런 청수 앞에 여인이 나타났다. 청수를 바라보는 그녀의 비통한 눈빛 한쪽에는 여전히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이내 청수의 손에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그녀는 고통을 애써 참으며 따뜻한 눈길로 청수를 바라보았고 그 얼굴을 쓰다듬으려는 듯 고운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끝끝내 그 손은 청수의 얼굴에 닿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고 두 눈을 감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는 듯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청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안 돼-!”
비통한 절규와 함께 화면은 무너져 내렸고 피 안개는 다시 꾸물거리더니 처음 보였던 화면부터 반복됐다.
어떤 기운인가가 잔혹하게도 청수에게 당시의 기억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살육과 광기와 비통함에 빠져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아마도 그런 방식으로 청수를 자극해 살육의 본원을 키우고 점점 단단해지도록 하는 것이리라.
한제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청수의 과거를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목격하고 나니 한없는 슬픔이 가슴을 찔렀다.
‘사형, 이 사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형을 구해내겠습니다!’
한제는 굳은 결의가 담긴 표정으로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청수의 혼을 제압하고 있는 현무에게 돌진했다.
칠채계 전역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현무는 이미 돌처럼 변한 상태였지만 매우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 현무가 잠시 잠을 자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청수 사형을 구하려면 일단 그 혼부터 풀어줘야 한다!’
금제에 대한 조예가 깊은 한제는 이미 그 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특히 돌로 변한 현무가 이 진을 깨는 관건이었다.
청수의 혼을 제압하고 있는 현무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청수의 몸에 박혀 있는 열 개의 날카로운 가시를 제거할 방법이 없을 터였다.
한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동시에 도고의 힘을 응집시켜 허상의 주먹을 형성한 그는 곧장 현무를 향해 돌진했다.
콰쾅!
도고의 주먹이 광풍과 함께 거대한 소리를 내며 현무의 등 위에 떨어졌다. 허나 현무의 몸은 잠시 떨리기만 했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반동이 한제를 덮쳤다.
“큭!”
한제는 뒤로 수백 척이나 나가떨어졌으나 곧바로 두 눈에 불을 켜고 다시 돌진했고 이번에는 연달아 열 번의 주먹을 날렸다. 7성급 고신의 힘이 담긴 주먹은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폭풍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현무는 좀 전보다 크게 진동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력한 반동이 되돌아왔다.
쩌적!
오른팔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고 한제는 1천 척이나 튕겨나갔다. 그는 쉴 새 없이 피를 토해냈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때였다.
콰쾅!
커다란 소리가 칠채계에 울려 퍼지면서 현무의 체내에서 오직 심신으로만 들을 수 있는 쉭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현무의 등에 가시처럼 솟은 10만 개의 산 위에서 10만 명의 수련자가 일제히 고함을 내질렀다. 마치 자유를 되찾은 듯 그들의 온몸을 꿰뚫고 있던 가시들이 뽑혀 나왔고 붉은 피를 철철 흘리던 상처는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아물었다. 옷만 곳곳이 찢겨 있을 뿐 어떤 상처도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이 수련자들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사방에서 한제에게 달려들었고 동시에 신통술을 발휘했다. 이 신통술들은 각기 다른 색을 번득이며 칠채계를 뒤덮었다.
“얼마든지 와라.”
한제는 두 눈 가득 살기를 번득이며 뇌까렸다. 그의 손짓에 따라 왼쪽 눈동자에서 금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색은 변했지만 이것은 여전히 허상의 화염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 10만 명의 수련자를 뒤덮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체내에서는 허상의 화염이 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들이 근본적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미 죽은 이들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종의 힘에 통제되고 있을 뿐이었다.
허상의 화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는 해도 이미 선화(仙火)가 되어 전보다 몇 배는 강력해진 금빛 화염이 휩쓴 순간, 10만 명의 수련자는 모두 자폭했다.
퍼펑!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퍼진 수련자들의 피와 살점은 곧장 한데 모여 꿈틀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칼이 되었다. 이 칼 위로는 수많은 얼굴들과 잘린 팔다리가 비쳤고 그 안에서는 수련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치솟은 칼이 허공을 가르며 한제에게로 뻗어왔다.
한제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가 여기서 피해버리고 칠채계를 떠난다면 청수를 구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저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에서 일곱 개의 금빛 반점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한제의 몸은 급속도로 부풀어 눈 깜짝할 사이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고신이 됐다.
콰르릉!
피와 살점으로 만들어진 칼과 한제의 오른손이 충돌한 순간, 수련성 하나를 그대로 무너뜨릴 듯한 소리가 울렸다.
한제는 바르르 떨었다. 그는 원한과 살기를 품은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체내로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무려 10만 명의 수련자가 하나로 응집한 데다가 기이한 신통술로 몇 배나 강화한 이 힘은 7성급 고신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허나 한제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강력한 충격을 체내에 붙들어둔 채 그는 이를 악물고는 손을 크게 휘둘러 칼을 수천 척이나 튕겨냈다.
“이게 다냐? 다시 덤벼봐라!”
한제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뒤로 튕겨났던 칼이 쉭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시 달려들었다.
콰쾅! 쾅! 펑!
피와 살로 이루어진 칼이 전보다 더 격렬해진 기세로 수백 번을 연달아 공격해옴에 따라 격렬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발산된 힘은 하나로 합쳐져 한제를 두 동강 낼 기세로 떨어졌다.
그 순간, 한제는 모든 저항력을 놓아버리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발산했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선인과 고신이 융합함으로써 발생한 힘은 공령기 초기 수련자라도 단숨에 죽일 수 있을 정도였다. 천조상인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크아아!”
한제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려는 피를 억지로 삼키더니 자신에게 휘둘러진 칼의 위력을 아래쪽의 현무에게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몸을 홱 틀어 생애 처음으로 고신의 힘을 폭발시켜 두 주먹으로 현무의 등껍질을 후려쳤다.
“부서져라!”
꽈르릉!
칠채계 전역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대지가 흔들렸고 하늘도 무너지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단단한 현무의 등껍질에서 쩌적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의 두 주먹이 꽂힌 현무의 등에는 다섯 갈래의 균열이 일어난 상태였다. 균열은 쩌적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갔다.
한데 그때, 균열에서 회색 연기 한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한 이 연기는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휘감으려 했다. 허나 한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나 연기에서 벗어났다.
그 와중에 회색 연기는 둘로 갈라져 한 갈래가 현무의 머리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현무 성황에게로 날아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체내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현무 성황은 되살아난 것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뒤이어 그의 몸에서는 극강의 기운이 흐릿하게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