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09
경악할 만한 변화였지만 타고나기를 기민한 데다가 평생을 살육 속에서 살아온 한제는 이미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핏빛이 번쩍 하고 나타나 하늘을 뒤덮었다.
하늘에서 소환된 붉은 검은 핏빛을 번득이면서 허공을 대기마저 갈라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들더니 곧장 현무 성황의 목을 노렸다.
뎅겅!
붉은 검이 지나가자 현무 성황의 머리는 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몸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의 육신을 관통해 정수리 위로 3촌 정도 드러나 있던 예리한 가시 역시 함께 베인 상태였다.
그 순간 현무 성황의 체내로 녹아들었던 회색 연기가 목의 절단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렴풋한 포효가 애처로운 울부짖음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회색 연기가 분출됨에 따라 그 포효는 점차 약해졌다.
가시를 뽑다
현무 성황의 육신은 덜덜 떨리다가 비쩍 말라 결국 무너져 내렸다.
그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칼이 울부짖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한제는 홱 돌아서더니 광기 어린 눈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꽝!
충돌의 충격으로 한제는 수십 척을 밀려났고 거대한 칼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비명과 함께 수천 개의 영혼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거대했던 칼은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한제는 힘껏 몸을 날리며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꽝! 꽝! 꽝!
주먹이 꽂힐 때마다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칼은 점점 격하게 떨었으며, 크기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칼은 완전히 부서져 흩어지면서 피와 살점 또한 재로 변해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사실 한제의 주먹에는 그가 가진 모든 힘이 담겨 있었다. 때문에 체내의 저항력은 한계에 달해 있었고 극심한 고통에 한제의 전신 모공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칼을 부순 순간 몸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아래쪽으로 돌진했다.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그의 목표는 균열이 일어난 현무의 등껍질이었다.
“부서져라! 부서지란 말이다!”
콰쾅!
다시 한제의 두 주먹이 현무의 등껍질에 꽂힌 순간, 돌이 된 거대한 현무는 바르르 진동했다. 등껍질의 균열은 순식간에 벌어져 일부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한제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현무를 부수어 청수의 혼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번의 주먹질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그는 다시 한번, 이어서 또다시, 그렇게 쉴 새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한제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균열은 점점 더 많아졌고 또 커졌다.
이제 그의 주먹에서는 금빛이 번득이면서 화염과 번개가 교차돼 파괴력을 배가시켰다.
눈 깜짝할 사이 수백 번의 주먹을 날린 한제의 몸에서는 피 안개가 분출됐고 체내의 저항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고통에 한제는 정신을 잃을 듯했지만 청수를 구해야 한다는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한제가 이렇게 모든 것을 걸고 구해야 할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청수는 그중 한 명이었다.
현무의 등이 절반 정도 무너졌을 때, 한제는 푸른 핏줄이 돋은 얼굴로 수만 척이나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역령인!”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금색 손바닥이 나타났다. 이 손바닥은 사방으로 파문을 퍼뜨리면서 한제의 손짓에 따라 그의 몸을 관통해 현무의 등으로 내리 떨어졌다.
한제 자신도 손바닥의 뒤를 따라 내려가면서 오른손을 쫙 펼쳤다. 온몸이 금빛으로 번득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선인 같았다.
“부서지란 말이다!”
콰르릉!
거대한 역령인이 떨어진 순간, 현무는 격렬하게 진동했다. 등껍질은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꺼졌고 가장자리는 균열로 뒤덮였다.
그 순간 한제의 손바닥이 현무의 등에 떨어졌다. 그러자 구석구석까지 균열이 일어난 현무의 등껍질은 쾅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현무가 파괴된 순간, 현무의 혼이 무너진 육신에서 흘러나와 청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또한 그 등에 박혀 있던 10만 개의 산과 같은 가시 중 청수가 있는 산을 제외하고는 일제히 한제에게 돌진해왔다.
한제로서는 미처 피할 틈도 없었고 그중 하나가 한제의 가슴을 꿰뚫었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는 한제에게 뒤이어 더 많은 가시들이 닥쳐왔다. 한제는 순식간에 10만여 개의 가시에 휩싸여 버렸다. 까마득히 먼 곳에서 본다면 마치 밤송이처럼 보일 터였다.
이어서 칠채계는 적막에 잠겼다. 10만 개의 산이 사라지고 오로지 청수가 앉은 산만이 일곱 색채의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산 너머로 가시로 가득 뒤덮인 공이 있었다.
현무의 부서진 등껍질에서는 회색 연기가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등 내부 깊은 곳에는 부서진 회색 결정이 어스름하게 반짝였다.
1각쯤 지났을까? 가시로 휩싸인 채 허공에 떠 있던 거대한 공이 바르르 진동하는가 싶더니 내부에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칠채계의 적막을 깨뜨렸다. 그리고 잠시 후…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시 공의 한 부분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 금빛으로 번득이는 주먹이 쑥 빠져나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수많은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크아아!”
거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먹이 쑥 빠져나왔다. 이 주먹 역시 피범벅이 된 채 경련했다.
두 주먹은 천천히 펼쳐져 가시 공 구멍의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더니 힘껏 벌리기 시작했다.
쩌적!
거대한 가시 공에 긴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머리카락까지 피로 붉게 물든 한제가 나타났다. 온몸 구석구석이 가시에 꿰뚫린 상태였고 심지어 두 눈에도 여러 개의 가시가 꽂혀 있었다.
한제의 거친 숨결이 하얀 연기가 되어 흘러나왔다.
지친 듯 잠시 멈추었던 한제는 잠시 후 다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눈에 꽂힌 가시들을 뽑아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 잠시 휴식을 취한 그는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크아아아!”
한제의 고함이 터져 나온 순간, 가시 공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이어서 그가 튀어나오자 몸통에 박혀 있던 가시들이 쑥 뽑혀 나오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여전히 뽑힌 것보다 부러진 채 박혀 있는 가시가 훨씬 많았다.
“청수 사형, 제가 사형을 구하러 왔습니다.”
한제가 미약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내 한 걸음을 옮겼지만 그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들었다. 수만 개의 가시가 여전히 몸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시들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수만 척에 달했던 한제의 몸은 점점 줄어들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는 동안 몸에 박혀 있던 가시 대부분은 무너져 내리고 흩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가시들은 마치 그의 몸에서 자라난 것처럼 뽑아낼 수가 없었다.
“사형, 제가 왔습니다.”
일곱 색깔의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제는 눈앞이 흐릿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뒤덮여 경련하고 있는 청수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청수로부터 7척 앞에 이른 한제는 청수의 가슴에 박혀 있는 첫 번째 가시를 쥐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그 가시를 힘껏 잡아당겼다.
청수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의 가슴에서는 흡입력이 발산되어 좀 전까지 박혀 있던 가시가 뽑히지 않도록 끌어당겼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당기자 한 줄기 기이한 기운이 가시에서 흘러나와 한제의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한제의 심장은 빠르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박동이 갈수록 빨라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 하나가 되었고 그 순간 한제는 심장이 꿰뚫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첫 번째 가시는 이자의 심장을 봉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 뒤에서 갑자기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제는 우뚝 멈추더니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다가오는 느낌조차 없었기에 그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청수가 가부좌를 틀고 있던 산봉우리는 허공에 떠오른 채 일곱 색깔로 반짝이던 검지와 분리됐다. 청수의 혼이 현무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그 일곱 빛깔 검지는 칠채계 안에서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한제의 시선이 꽂힌 순간, 일곱 빛깔 검지는 다시 나타났다. 번득이는 일곱 색깔의 빛은 희미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그 손가락은 흩어져 사라지는 대신 다시 모이더니 흐릿한 인영을 이루었다.
인영은 또렷하고 밝은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말없이 미간의 반점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오른쪽 눈에서 고마의 반점이 함께 회전하는 동안 왼손으로 결인을 그린 그는 가시를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살짝 풀었다.
“긴장할 것 없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그자를 구해라.”
인영이 그 외형만큼이나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제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일곱 빛깔 인영의 눈빛이 피 안개로 이루어진 화면에 내내 떠 있던 일곱 색채의 빛 속 그림자임을 대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칠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칠채 도인의 조각상도 있고 칠채 도인이 제련한 도령을 본 적도 있다. 심지어 오래된 무덤의 허상에서도 칠채 도인을 보았다.
저 흐릿한 일곱 빛깔 인영이 칠채 도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의 체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조금도 일렁임도 없이 평온한 상태였다.
“도고의 유산⋯⋯ 선족의 불멸체⋯⋯ 다섯 갈래의 본원⋯⋯. 놀랍구나.”
일곱 빛깔 인영은 여전히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누구냐?”
한제는 떨리는 심신을 억누르며 물었다. 만약 상대가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라면 일견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비밀을 알아낸 것도 전혀 놀라울 게 아니었다.
“너의 그 모든 비밀들을 보통은 큰 행운이라 여겼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소용도…⋯.”
일곱 빛깔 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청수를 가리키더니 말을 이었다.
“네게 한 번의 기회를 주려 한다. 그자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면 데리고 나가라. 허나 성공하지 못한다면 홀로 떠나라. 그게 내가 베푸는 마지막 자비일 것이다.”
한제는 말없이 결인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청수의 가슴에 박혀 있던 가시를 움켜쥐었다. 좀 전에 심장으로 들이닥쳤던 기운이 다시 느껴졌고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허나 한제는 고통을 참아내며 가시를 잡아당겼다.
‘크으으…’
가시가 뽑혀 나올수록 심장에 가해지는 고통은 커졌지만 그는 비명조차 속으로 삼켰다. 다행히 회복력이 엄청난 고신의 육신 덕분에 고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회복되고 있었다.
“도고의 계승을 받은 몸은 확실히 훌륭하구나! 당시 엽막은 3천 방울의 피를 뿌려 계승의 씨앗으로 남겼지. 헛된 짓이 아니었어.”
일곱 빛깔 인영은 한제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심장의 고통이 극에 달한 순간, 한제의 두 눈이 금빛으로 번득였다. 동시에 한제는 오른손을 확 끌어당겼다. 그러자 첫 번째 가시가 청수의 가슴에서 완전히 뽑혀 나왔다. 청수는 이를 악문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만이 고통으로 일그러질 뿐이었다.
가시가 박혀 있던 곳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한제가 빠르게 결인을 하고 청수의 가슴을 두드려 상처를 봉인하자 피는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한제의 체내에서는 저항력이 마구 날뛰었다. 선력과 도고의 힘은 서로 뒤얽혀 한제의 체내에서 계속해서 우렁찬 소리를 냈고 그 저항력 아래 한제의 몸에 박혀 있던 가시들도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이미 깊이 박혀버린 가시들은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듯 버텨냈다.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었던 가시에 가려진 탓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10만 개의 가시에 관통당하던 순간 한제는 광영순과 고신의 비호를 발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고 그저 충격을 조금 완화시키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