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10
선물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한제는 심장에 가해지던 고통이 천천히 사라지자 일곱 빛깔 인영을 힐끔 보고는 다시 손을 뻗었다. 그가 이번에 움켜쥔 것은 청수의 목을 꿰뚫은 두 번째 가시였다.
“두 번째 가시는 그의 근육을 봉인하는 것이다!”
한제는 두 눈을 미미하게 번득이며 물었다.
“도고 엽막의 피 3천 방울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일곱 빛깔 인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세 번째 가시까지 뽑으면 도고 엽막의 비밀을 알려주마.”
한제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상대는 청수가 태어나 일반인으로 살았던 시간을 지나 수련자가 된 후까지 슬픔과 절망 속에 살도록 통제한, 나아가 청수의 인생을 제멋대로 바꾼 장본인이었다. 청수를 이 진의 중심으로 삼아 살육의 본원을 활용하려는 목적일 터였다.
한데 그렇게까지 해놓고 어째서 한제가 청수를 구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단 말인가? 그 알 수 없는 모습에 한제는 자신의 추측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연극을 하는 건 아닌 듯한데 대체 무슨 꿍꿍이지?’
한제는 말없이 두 번째 가시를 잡아당겼다. 그 순간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활을 당겼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고통이었지만 견딜 만했다.
한제의 팔에 힘이 들어갔고 이내 두 번째 가시도 완전히 뽑혀 나왔다.
청수는 여전히 이를 악문 채 견뎌냈으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고 일그러진 표정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며 청수의 왼팔에 박힌 세 번째 가시를 쥐었다.
“세 번째 가시와 오른팔에 박힌 네 번째 가시는 그의 신식을 봉인하는 것이다!”
일곱 빛깔 인영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한제는 낮게 기합을 넣으며 세 번째 가시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세 번째 가시에서 흘러나온 한 줄기 강력한 힘에 한제는 신식에 타격을 입었다.
“쿨럭!”
한제는 피를 왈칵 토해내고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단숨에 세 번째 가시를 뽑았고 곧장 청수의 오른팔에 박힌 네 번째 가시를 잡았다.
이번에도 신식은 강력한 타격을 입었고 심신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으며, 한제는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체내의 저항력이 활개를 치는 통에 몸이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네 번째 가시까지 뽑히자 청수의 두 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허나 그는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슬픔과 안심, 감격의 빛이 가득했다.
입가의 피를 훔쳐내며 청수를 향해 미소를 지으려던 한제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청수의 눈동자에는 일곱 빛깔 인영이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자는 나를 보지 못한다 .이곳에서 날 볼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지. 너는 정말로 흥미로운 수련자다. 언젠가 나를 놀라게 했던 전씨 성의 수련자처럼. 이곳의 별종인 셈이지. 만약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나는 조화라는 것이 이토록 미묘한 것임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일곱 빛깔 인영이 한탄하듯 말했다.
‘나와 자신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그리고 전씨 성의 수련자라는 건 누굴까? 전공열? 아니면⋯⋯ 전가 노인?’
허나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었기에 한제는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눈을 번득이며 다시 물었다.
“이제 답해줄 차례로군 도고의 피 3천 방울이라니, 무슨 뜻이지?”
일곱 빛깔 인영은 씩 미소를 짓더니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맨 처음 이곳에는 고국의 수련자도 도고 엽막도 없었다. 허나 그는 이곳으로 왔고 죽기 전에 3천 방울의 피를 뿌렸지. 1천 방울은 고신이, 1천 방울은 고마가 나머지 1천 방울은 고요가 됐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그 피가 더러는 융합했고 더러는 희석됐지. 이게 너희 고족이 이곳으로 오게 된 유래다.”
한제의 심신이 진동했다.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요령의 땅에서 고요의 잔혼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 매우 비슷했다.
고요 배이라는 맨 처음으로 하늘을 거역한 수련자가 하늘과 맞서 싸우다 죽은 후 고족이 고신과 고요, 고마로 갈라졌다고 했다. 셋으로 갈라진 고족이 하늘을 거역한 2대 수련자가 됐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둘을 잘 결합하자 진상이 드러났다.
‘도고 엽막은 선존 또는 저 일곱 빛깔 인영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 들어왔다. 그렇게 일어난 전쟁이 배이라가 말한 하늘과의 싸움이었던 거야! 3천 방울의 피가 3대 고족으로 나뉘었고 그중 융합된 피는 왕족이 되었겠지. 과연 이 이야기가 사실일까?’
한제는 생각을 정리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머지 여섯 개의 가시도 마저 뽑아봐라.”
일곱 빛깔 인영이 말했다.
한제는 의혹을 억누르며 이번에는 청수의 복부에 박힌 다섯 번째 가시를 움켜쥐었다. 가시는 단전을 관통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가시는 그의 원신을 봉인하는 것이다!”
일곱 빛깔 인영의 어렴풋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다섯 번째 가시를 움켜쥔 순간, 한제의 체내에서는 선력과 도고의 힘이 동시에 가동됐다. 이 두 종류의 힘은 융합되면서 오른팔로 몰려들었다. 그 힘을 이용해 한제는 힘껏 가시를 잡아당겼다.
펑!
굉음과 함께 가시는 곧장 뽑혀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덜덜 떨리던 한제의 오른팔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튀었다.
“큭!”
몇 걸음이나 밀려난 한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한 걸음 내딛어 청수에게 돌아갔다. 청수의 얼굴 또한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입에서는 먹먹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제는 한꺼번에 두 손을 뻗어 청수의 두 다리에 하나씩 꽂혀 있는 가시들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곱 빛깔 인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를 악물고는 두 눈을 금빛으로 번득이며 두 가시를 힘껏 잡아당겼다.
청수가 느낄 고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을 것이 분명했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쾅!
짧은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가시가 동시에 뽑혀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한제는 피를 토했다. 체내의 저항력은 이미 절정에 이른 상태였다.
“좋다. 앞으로 세 개가 남았구나. 하지만 마지막 세 개의 봉인은 더 어려울 것이다. 만약 네가 끝까지 성공한다면 선물을 하나 주마.”
일곱 빛깔 인영은 평온한 얼굴로 말하며 한 손을 들어 일곱 빛깔 안개를 움켜쥐었다. 순간 일곱 빛깔 안개가 꾸물거리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노란색 열매가 하나 나타났다.
열매에는 가지가 하나 달려 있었는데 일곱 빛깔 인영이 검지로 가볍게 건드리자 가지는 사라졌고 열매만 남아 떨어져 내렸다.
“이게 내가 준비한 선물이다.”
도과를 바라보던 한제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일곱 빛깔 인영에게서는 어째서인지 천운자와 같은 느낌이 났다.
저자는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청수를 구하는데도 그저 보고만 있는 것인지, 도고 엽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준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것도 아닌 도과를 주려 하는 이유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아무런 이유 없이 하는 행동은 아닐 터였다.
한제는 도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는 청수의 정수리 위로 솟은 여덟 번째 가시를 지켜보았다. 나머지 두 개도 쉽지 않아 보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신중한 모습으로 청수의 정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수리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여덟 번째 가시는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를 열어놓는 것이다!”
일곱 빛깔 인영은 한제의 손이 여덟 번째 가시로 다가가는 것을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제는 가시로부터 1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손을 우뚝 멈춰 세웠다. 이 가시는 앞선 일곱 개와는 달랐다. 이전의 가시들은 청수의 체내에 박혀 있기는 했어도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더 많았는데 이 가시만은 오히려 박혀 있는 부분이 더 많아 정수리 위로는 고작 2촌 밖에 솟아 있지 않았다.
한제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가시를 뽑았을 때 청수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무척 위험할 것만 같았다.
청수는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었지만 두 눈은 전보다 훨씬 맑아져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한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제는 이를 악물더니 결심한 듯 그 가시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청수의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먹먹한 신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제 역시 그 가시에 손을 댄 순간 하나하나의 왜곡된 기억이 밀려들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깨진 조각과 같은 기억들이 몰려들자 한제의 머리는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기억들을 마음속에 새길 틈도 없이 있는 힘껏 잡아당겨 여덟 번째 가시를 4촌가량 뽑아냈다.
청수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으나 미약한 신음이 흐르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두어 번 호흡할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한제와 청수 모두에게는 억겁처럼 느껴졌다.
가시를 서서히 뽑아낼수록 한제의 머릿속에는 더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밀려들었다. 한제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지만 가까스로 이겨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청수의 정수리에 박힌 가시를 뽑아냈다.
결국 그 가시가 완전히 뽑혀 나온 순간, 청수는 피를 토하며 산봉우리에서 떨어져 나와 그대로 한제의 품으로 쓰러졌다. 청수는 아주 가벼워진 상태로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청수의 미약한 목소리가 한제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고맙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청수는 정신을 잃었다.
“사형⋯⋯.”
한제는 손에 들린 가시를 내던지고는 재빨리 청수를 부축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대단하구나. 이제 마지막 두 개가 남았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들 터. 허나… 좋다, 이만 그자를 데리고 떠나라.”
일곱 빛깔 인영은 손을 휘둘러 도과를 건넸다.
“약속했던 선물이다. 가지고 가라.”
한제는 청수를 부축한 상태로 도과를 손에 쥐고는 일곱 빛깔 인영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가 이내 도과를 거두어 넣고는 청수를 업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허나 아무래도 일곱 빛깔 인영이 꺼림칙했던 한제는 칠채계를 빠져나가기 직전 천천히 몸을 돌려 저 멀리 떨어진 상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지?”
한제의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자는 그저 나의 놀잇감이었을 뿐이야. 데려가도 좋아. 그래도 왜냐고 묻겠다면 일전의 그 전씨 성을 쓰던 자처럼 네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보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그 변화를 이용해 그자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
“뭘 원하는 거냐!”
한제는 미간을 팩 찌푸렸다. 상대의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알게 될 거다.”
일곱 빛깔 인영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한제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쭉 밀려났다.
“넌 선존이냐?”
칠채계에서 빠져나가기 직전, 한제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렴풋한 목소리가 흘러드는 사이 한제의 눈앞이 이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