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11
시야가 다시 또렷해졌을 때, 한제는 곤허성역에 떠 있었다. 저 앞에서는 칠채계의 균열이 수축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칠채계에서의 일을 통해 명확해진 것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혼란스러워진 부분이 더 많았다.
‘그자는 뭘 원하는 거지? 그자가 말했던 전씨 수련자가 전가 노인이라면 그 전가 노인에게는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났던 걸까? 과연 그 변화가 일곱 빛깔 인영이 원하는 것을 찾게 해줄 것인가?’
한제는 점차 흩어져 사라지는 칠채계의 균열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청수 사형의 삶을 마음대로 주무른 게 그저 청수 사형이 놀잇감이었기 때문이라니⋯⋯.’
고통으로 점철된 삶
한제는 청수를 안은 채 연맹성역 본부 가장자리의 어느 황량한 수련성의 깊은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이 수련성에는 수련자도 영기도 없이 그저 흉수들의 존재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오히려 청수의 남은 봉인을 풀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는 혼수상태에 빠진 청수를 내려놓고 호흡을 골랐다. 체내의 저항력을 제압하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저 극심했던 고통을 조금 완화했을 뿐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제의 체내에는 수많은 가시가 남아 있었다. 이 가시들 때문에 한제는 호흡을 할 때마다 고통에 시달렸다.
청수를 구하기 위해 치른 대가는 적지 않았으나 한제는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청수를 구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더 힘을 키워 세 번째 단계에 이르렀다면 청수를 구하기는 더욱 쉬웠겠지만 그때까지 청수가 살아 있을 거라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산하거나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대신 위험한 길을 걸어야만 할 때가 있다. 만약 둘의 상황이 바뀌었다면 청수 역시 자신을 위해 똑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을 한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홉 번째 가시는 청수의 척추에 박혀 있었다. 그러나 앞의 여덟 개와는 달리 밖으로 드러난 부분도 심지어 뚫고 들어간 흔적도 없이 척추에 완전히 박힌 상태였다.
혼수상태에 빠진 청수의 표정은 여전히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한 듯했고 심지어 기뻐 보이기도 했다. 자신을 구하러 온 사제 덕분에 모처럼 밝은 기분이 된 모양이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청수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의 번득이는 눈이 청수의 등으로 향했다.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비쩍 마른 모습이 애처로웠다.
한참 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뭔가를 찾듯 검지로 청수의 척추를 눌렀다. 매우 신중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아직 사형의 척추뼈와 완벽하게 융합하지는 않았어. 허나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군. 완전히 융합한 후로는 가시를 뽑아낼 수 없었을 터.’
이 가시는 청수의 육신만이 아니라 원신까지 봉인한 터라 만약 완전히 융합된 후라면 육신을 바꾼다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잠시 후, 한제는 돌연 검지를 청수의 첫 번째 척추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청수는 몸을 바르르 떨며 두 눈을 번쩍 떴다.
“사형, 이번 고통은 이전의 가시를 뽑았을 때보다 훨씬 클 겁니다.”
한제가 다짐을 받아내듯 말했다.
“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고통을 참아내는 게 일상인 삶이었지.”
청수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한제는 그런 청수를 비통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이어서 그는 손을 청수의 등으로 조금 더 집어넣었다. 곧 두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가 잡혔다. 아주 얇은 가시였다.
청수는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통을 참아냈다.
한제는 신중한 얼굴로 서서히 가시를 뽑아냈다. 가시가 조금씩 뽑혀 나올수록 청수는 격하게 몸을 떨었고 꽉 쥔 두 주먹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한제는 온 정신을 두 손가락에 집중시켰다. 이 가늘고 유약한 가시는 이미 청수의 척추뼈에 절반 정도 녹아든 상태라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런 상태로 1각이 지났을 때, 한제는 아홉 번째 가시를 절반 정도 뽑아냈다.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흘렀지만 한제는 집중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시커먼 가시를 타고 피가 흘러 맺히다가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단번에 뽑아!”
청수가 이를 악다문 상태로 말했다.
한제는 말없이 손에 힘을 줬고 청수의 척추에 박혀 있던 가시는 단숨에 쑥 뽑혀 나왔다. 청수의 등을 타고 검은 피가 흘렀다.
“쿨럭!”
청수는 참아왔던 피를 토해냈다. 비쩍 마른 등 위로 불거져 나온 척추뼈가 기이하게 꿈틀거리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청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떨리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좌선을 시작했다.
한제 또한 가시를 휙 내던지고는 눈을 감고 좌선했다. 방금 가시를 뽑아내는 동안 마치 자신의 골수를 뽑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청수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한제가 느낀 고통도 작지 않았다.
반 시진 뒤, 한제가 두 눈을 떴다.
“사형,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청수는 깊은 숨을 토해내고는 돌아서 한제를 마주보았다. 말없이 자신의 사제를 바라보는 청수의 눈빛은 더없이 부드러웠다.
“많이 컸구나.”
청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사제는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연약한 수련자가 아니었다. 온 세상을 뒤흔들 강자였다.
한제 역시 미소를 지으며 사형을 마주보았다.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기쁨이 묻어났다.
“혹시 술이 있느냐?”
청수는 너무 오랜 시간 못 박혀 있어 생경하게까지 느껴지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물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물공간에서 술을 한 병 꺼냈다.
청수는 거침없이 술병을 기울였다. 온몸으로 퍼지는 알싸한 향을 음미하던 그는 긴 숨을 뱉어내며 한제에게 술병을 건넸다.
한제는 술병을 받아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화끈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크큭. 크하하핫!”
“하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진정한 기쁨에서 우러나는 웃음이었다. 청수도 한제도 평생 이런 웃음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이 가시를 제거하면 난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살육의 본원은⋯⋯.”
말을 잇던 청수의 눈빛이 비통함으로 물드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한제의 손에 들린 술병을 뺏어 들더니 다시 한번 들이켰다.
“자 이제 마지막 가시를 뽑아다오!”
청수가 두 눈을 번득였다. 마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마지막 가시는 사형의 온몸에 퍼진 혈관에 박혀 있습니다. 아마 가장 긴 가시일 겁니다.”
한제는 청수의 온몸에 불룩 솟은 혈관과 그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부터 시작해라. 내 기억으로는 이 가시가 여기를 통해 들어왔지.”
청수는 자신의 심장을 찌르며 말했다. 가슴팍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고 상처 너머로 푸른 혈관이 보였다.
청수는 곧장 그 혈관을 잡아당겼다. 그의 모습은 덤덤했지만 바짝 졸아든 두 눈동자를 통해 그가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는 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가 손을 뻗어 청수가 끌어낸 혈관을 끊어버리자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혈관의 한쪽 끝을 봉인한 후 두 손가락을 봉인되지 않은 쪽 혈관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손가락에 무언가가 잡힌 순간 한제는 힘껏 당겼다. 청수의 몸이 급격하게 떨렸고 이제 막 회복되려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이더니 혈관에서 뽑혀 나오고 있는 보라색 가시를 응시했다.
마치 가느다란 뱀 같은 가시는 잘린 상태로도 꿈틀거렸다.
청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술병을 들어 올리더니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제는 손을 힘껏 당겼다. 날카로운 가시가 꿈틀거리며 7척가량 뽑혀 나왔다.
청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두 입술은 달달 떨렸다. 그는 낮은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하늘을 향한 두 눈에서는 분노의 화염이 이글거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술병이 깨지며 사방으로 술이 튀었다.
“한제야, 더 독한 술도 있느냐?”
한제는 말없이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푸른 술병을 소환했다. 그 안에 든 것은 술이 아니라 주작이 준 염룡의 피로 술보다 독했다.
청수는 술병을 황급히 기울어더니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호탕하게 웃었다.
“비린내가 나기는 하지만 퍽 달구나. 이건 술이 아니라 피야.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알싸해! 사제, 이제 그 가시를 전부 뽑아내라!”
한제는 신중한 눈으로 청수를 살피다가 이내 오른손을 확 잡아당겼다. 청수가 낮게 신음하는 사이 온몸의 핏줄에서 꿈틀거리던 무언가가 순식간에 그의 가슴으로 몰려들었다.
청수의 체내에 고정되어 있던 수준이 조금 느슨해지면서 강력한 살기를 발산했다.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었고 살육의 기운은 극에 달할 정도로 짙어졌다. 이내 까만 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했다.
“사제는 좀 쉬게.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청수는 차게 웃으며 벌떡 일어나더니 술을 벌컥 들이켰고 왼손으로 보라색 가시를 잡아당겼다.
펑!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온몸에서 꿈틀거리던 푸른 핏줄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보라색 가시도 대부분 뽑혀 나왔다.
“이제 그만 나와라!”
청수의 서늘한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힘껏 잡아당긴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시는 부러지고 말았다.
아직 혈관에 남아 있던 부분은 다시 숨어들려는 듯 곧장 수축했다. 청수는 손에 쥔, 부러진 가시를 내던지더니 살육의 기운으로 뒤덮은 두 손가락을 가슴팍의 혈관에 쑤셔 넣었다.
“나오지 않겠다면 체내에서 죽여주마!”
하늘에서 내리던 검은 눈이 빠르게 쏟아졌다. 잠시 후 한제조차 놀랄 정도로 짙은 살육의 본원이 청수의 두 손가락을 따라 혈관을 파고들었다.
펑! 펑!
요란한 소리가 청수의 체내에서 연달아 울려 퍼졌다.
“끼야아아!”
끔찍한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던 핏줄은 얌전해졌고 살육의 본원에 그대로 소멸했다.
청수는 몸을 한 번 바르르 떨고는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허나 비쩍 말라 있던 그의 몸은 부풀어 올라 점차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의 체내로 밀려들었던 살육의 본원이 폭발하듯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하늘은 눈 깜짝할 사이 어두워졌고 검은 눈이 흩날리던 하늘 끄트머리에서는 허상의 문이 하나 나타났다.
공의 문이었다.
‘살육의 본원으로 도를 증명하여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되면 향불의 도움은 필요치 않아. 그 일곱 빛깔 인영은 청수 사형의 체내에 살육의 본원을 심었지만 거두지는 못했지. 그래서 청수 사형은 봉인을 푼 순간 공의 문을 소환할 수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