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16
광인의 포효
마음이 급해진 광인과 두 사람은 길거리 끝의 어느 건물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유금표였다. 뒤이어 광인과 허이국이 함께 들어서자 유금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소환한 몇 개의 문양으로 문을 잘 봉인하고는 얼른 뒤를 따랐다.
“왜 이렇게 절차가 복잡해!”
그러나 그가 두 사람 근처에 이르기도 전, 저 안에서 광인의 포효가 들려왔다.
건물의 뒤뜰에는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조악한 전송진이 하나 있었다. 광인은 그 진 근처에 서서 허이국에게 호통을 쳤다.
허이국은 헤실헤실 웃으며 두 손을 비볐다.
“임금님, 좋은 일에는 힘든 과정이 따르는 법입니다. 이번에 제가 임금님을 위해 찾아놓은 것은 수련자입니다. 양의의 수준에 이른 수련자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제가 힘겹게 구슬려 겨우 동의를 받아냈지요. 하지만 신분이 원체 고귀한 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해대는 통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인은 짜증이 난 듯 입술을 비죽이며 투덜댔다.
“여기 도착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한 번도 성공 못하지 않았느냐! 흥!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난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재미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해놓고 제대로 놀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니!”
허이국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저희가 한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한데 이 진을 활성화하기에는 제가 영석이 부족해서…”
그러자 광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깨물어 허이국에게 핏방울을 건네면서 불만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몸의 피는 아주 귀중한 것이다. 그 당시 내가⋯⋯.”
광인은 한참이나 더 말을 이어갔으나 허이국은 전혀 듣지 않고 얼른 핏방울을 거두더니 몰래 유금표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유금표는 광인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조심스레 전송진을 활성화했고 번득이는 빛과 함께 이내 세 사람은 사라졌다.
다음 순간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느 산골짜기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광인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왜 또 전송진이 나오는 게냐! 이⋯⋯ 이 몸은 그만두겠다!”
그러나 허이국이 갖은 말로 구워삶은 덕에 광인은 결국 넘어갔고 다시 전송진에서 번득이는 빛과 함께 산골짜기는 조용해졌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광인의 포효는 산봉우리와 평원, 분지, 섬 등 수많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대체 전송진을 몇 개나 더 거쳐야 하는 게냐! 이제 안 해! 그만두겠다!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너무한 거 아니냐? 사부님께 다 이를 것이다!”
마지막 말에 허이국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유금표 역시 심장이 덜컥해 다급하게 허이국에게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은 지난 며칠간 이 광인이 한제를 스승으로 모시게 됐음을 파악한 상태였다.
허이국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지막 하나입니다. 진짜 마지막 하나! 영석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게 곧 그 계집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수련성 너머 우주에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수련성을 훑어보던 한제의 표정이 이내 싸늘하게 변했다.
“헛소리!”
★ ★ ★
수련성 서북쪽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는 영기로 가득한 곳.
울창한 숲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빽빽한 나뭇잎들에 가려 진흙과 늪지뿐이었다.
숲 깊은 곳에는 홀로 솟은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높지는 않았지만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 봉우리는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 오색찬란한 빛이 돌연 이 봉우리에 나타났다. 전송진에서 발산된 듯한 이 빛은 산봉우리를 둘러싼 안개까지 뚫고 나가며 번득였고 이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산봉우리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어둑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굴이었다.
전송진은 그 동굴 안에 있었는데 빛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세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광인과 허이국, 유금표였다.
광인은 눈을 깜빡거리며 동굴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혼란스럽구나. 젠장, 대체 여기가 어디냐?”
허이국이 얼른 따라 나서며 손바닥을 비볐다.
“임금님, 도착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그 계집이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광인은 계집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하하! 좋다, 네 말대로 나를 만족시킬 만한 계집이라면 아낌없이 상을 주마!”
유금표 역시 따라 나오더니 소매를 휘둘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돌의자를 끌어당겼다. 유금표는 아첨하듯 웃으며 광인을 부축해 의자에 앉히더니 얼른 어깨를 주물렀다.
기분이 풀린 광인은 눈까지 감은 채 유금표의 안마를 즐겼다.
잠시 후, 유금표는 광인 곁으로 비켜서더니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쥔 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광인은 의아하다는 눈으로 유금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끝이냐? 이렇게 빨리?”
“임금님, 상을 주십시오!”
유금표는 고개도 들지 않고 좀 전의 자세를 유지한 채 말했다.
이에 멍한 표정을 드러낸 광인이 중얼거렸다.
“어깨 몇 번 주물러놓고 상을 달라? 싫다! 내 피는 매우 귀중한 것이야. 내 피 한 방울 얻겠다고 얼마나 많은…”
그러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금표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제게 상을 주십시오!”
이에 벌컥 화가 난 광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싫다! 안 줘!”
광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유금표는 침착한 얼굴로 답했다.
“임금님께서 이 수련성에 도착하신 뒤 먹고 노는 등등에 사용하신 모든 비용을 제가 냈습니다. 적지 않은 영석까지 썼습니다.”
“못 준다니까!”
광인은 여전히 고함을 쳤지만 그 소리는 전보다 훨씬 작아진 상태였다.
“또한 일반인들의 도시에서 쓰셨던 은 같은 것도 모두 제가 얻어온 겁니다. 저는 모든 비용을 똑똑히 계산해두었습니다.”
“흥, 얼마 되지도 않을 거 아니냐! 게다가 그건 너희들이 나를 데리고 다니며 쓰게 만든 것이고⋯⋯.”
유금표의 차분한 목소리에 반해 광인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임금님께서는 이곳에 와서 지내신 13일 동안 영석 73만 개와 은 985만 개를 쓰였습니다. 원하신다면 상세한 내역을 상세히 읊어보겠습니다.”
유금표는 광인을 바라보며 상세한 내역을 하나하나 보고했다.
이에 광인의 눈은 커다래졌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터라 열흘 남짓 별로 쓴 게 없다고 생각했으나 내역을 하나하나 듣고 나자 식은땀이 흘렀다.
“임금님의 분부를 따르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임금님이 화통한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다만 영석과 보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소홍에게 맡겨두신 것뿐이겠지요.”
유금표가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 소홍을 찾아가서 달라고 하거라. 내가 어디 이런 것으로 쩨쩨하게 굴 사람이더냐. 허허! 소홍을 찾아가라.”
광인은 무의식적으로 땀을 훔쳐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물론 임금님처럼 관대한 분이 설마 제가 수천 년간 모아 온 영석과 은을 쓰시고 나 몰라라 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임금님께 드리는 거라면 아깝지 않지요. 소홍을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유금표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한쪽으로 비켜섰다. 허나 어딘가 풀죽은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광인은 그런 유금표의 모습에 어찌나 미안한지 코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결국 혀끝을 깨물어 피 한 방울을 건넸다.
“넌 좋은 사람이다. 허이국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이야. 또한 나는 쩨쩨한 사람이 아니다. 매우 관대하고 호탕한 사람이지. 그러니 어찌 네게 빚을 지겠느냐!”
광인은 씁쓸함을 숨기며 근엄하게 말했다.
피를 받아 든 유금표는 가슴이 벅차올랐으나 애써 억누르고는 여전히 침울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럴수록 점점 미안해진 광인은 끝내 한숨을 내쉬며 일고여덟 방울의 피를 유금표에게 내밀었다.
이쯤 되자 유금표도 더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바르르 떨더니 얼른 피를 챙긴 뒤 광인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그때, 허이국이 동굴에서 걸어 나오더니 광인 곁으로 다가왔다.
“임금님, 계집의 준비가 다 끝났답니다. 저희는 밖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광인은 방금 전까지의 씁쓸함은 완전히 잊은 듯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이국은 음흉한 웃음을 감추며 유금표와 함께 광인을 이끌고 동굴 안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방이 하나 있었다. 입구에는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져 있어 너머의 광경은 흐릿한 윤곽만 보였으나 그 안에는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임금님, 계집은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들어가 보세요. 저희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방 앞에 이른 허이국이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광인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더니 막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잘생긴 얼굴의 청년 수련자였다.
“하하, 계집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을 알려주면 내 상을 주마!”
“가난한 수련자 법화자입니다.”
청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며 냉랭하게 말했다. 한데 남자임이 분명한 법화자라는 이 수련자는 상대가 자신을 계집이라 부르는데도 그 부분을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한편, 방 앞에서는 허이국이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유금표에게 말했다.
“유금표, 네 기만책은 훌륭하구나! 적지 않은 피를 모았으니 약속대로 7대 3으로 나누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