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
이미 목적은 달성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제의 눈빛은 그 고리 형태의 검은 빛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검은 빛은 그의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검은 빛
“저게 대체 뭐지?”
검은 빛을 보고 머리가 저릿해진 육욕마군은 두 말 않고 청년을 잡아채더니 소용돌이 통로로 향했다.
콰쾅쾅!
하지만 그 순간, 사방에 가득한 금제에 영향을 받은 통로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육욕마군은 붕괴한 통로를 멍하니 바라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뒤쪽을 돌아보았다. 서늘하게 번득이는 그의 눈빛은 한제가 있는 곳을 향했으나, 그곳은 한 층의 안개로 뒤덮여 있어 또렷하게 그 모습을 살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저물대에서 다섯 개의 돌을 꺼냈다. 그 돌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섯 개의 빛의 장막으로 변해 그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훌쩍 날아오른 그는 산꼭대기 방향으로 향했다.
고왕 역시 그 끔찍한 검은 빛을 본 뒤 원래 가지고 있던 네 개의 깃발에 다시 네 개의 깃발을 더했다. 총 여덟 개의 깃발이 그의 곁에서 회전하며 하얀색 빛을 번쩍였다.
이 금제 안의 공격들은 회전하는 깃발에 의해 모두 제거됐다. 그와 동시에 그 역시 육욕마군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산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육욕마군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빛의 장막 다섯 개는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몇몇 공격은 그대로 관통됐고 이에 그는 몇 백 척 밖으로 밀려났다.
고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덟 개의 깃발이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구겨져갔다.
이때 그의 뒤쪽으로 다가온 검은색 빛이 점점 가까워졌고 하늘의 시커먼 구름도 점점 가까워지며 그 안에서 보라색 번개가 번쩍거렸다.
우르릉.
보라색 번개로 이루어진 머리통 크기만 한 공이 천천히 시커먼 구름 속에서 나타나더니 빛을 번쩍이며 내리쳤다.
하늘을 뒤흔들 듯한 거대한 소리가 울리고 그 보라색 번개 공이 육욕마군에게 내리꽂혔다. 그 순간, 육욕마군의 겉을 둘러싸고 있던 다섯 겹 빛의 장막은 곧장 찢어져 버렸다.
“으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육욕마군은 낮게 신음소리를 내며 한손으로 청년을 붙잡고 위쪽으로 내던졌다. 번개 공이 몸에 닿은 순간, 청년은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에서는 조금의 생기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입을 쩍 벌리고 그 번개 공을 그대로 삼켰다.
콰쾅!
이어 그 청년의 몸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청년의 피부에 균열이 생겼다.
육욕마군은 희색을 띄었다. 청년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번개 공의 위력을 막아 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말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청년의 시체를 바라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육욕마군의 모습을 보니 그도 분명 그 번개 공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청년이 그것을 완벽하게 막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다시 그 검은 빛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연속적으로 열 개가 넘는 잔영의 원을 만들어 검은 빛을 공격했다.
고왕은 번개 공을 삼킨 청년을 힐긋 보고 깜짝 놀라며 육욕마군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동시에 그의 눈에 탐욕의 빛이 언뜻 스쳐갔다. 지금 그는 산꼭대기와 겨우 5백 척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가 두 손을 연이어 몇 번 두드리자 여덟 개의 작은 깃발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검은색 통로를 만들었다.
통로 안으로 들어간 고왕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미 산꼭대기에 이른 다음이었다. 그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막 두 번째 관문을 빠져나가는 소용돌이에 이르렀을 때 육욕마군도 꼭대기에 도착했다.
1천 척 이내의 금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한 덕이기도 하지만 법보 덕도 컸다. 그 청년의 육체는 차치하더라도 고왕이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깃발은 금제로 유명한 5성 수련국의 한 종파의 법보였다.
이 여덟 개의 깃발 조합으로 무수히 많은 금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고왕이 금산을 오르는 속도가 한제나 육욕마군보다 훨씬 빨랐던 것 역시 그 여덟 개의 깃발 때문이었다.
이 물건을 꺼내 쓰는 데에도 고왕은 많은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1천 년 전이었다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이 물건은 이렇게 많은 상처를 입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1천 척 이내에 있는 금제의 위력은 엄청났다. 두 사람이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한 순간 모든 공격이 집중됐고 하늘의 시커먼 구름은 연속적으로 몇 차례나 보라색 번개를 내리쳤다.
검은 빛은 전보다 배는 빨라진 속도로 몰아쳤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번득였다. 원래는 3천 척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아주 얻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탁탁.
한제는 두 손을 연이어 두드렸다. 순간 잔영의 원 수십 개가 날아올라 그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한제는 곧장 자리에 멈춰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잔영의 원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억지로 자신의 발을 이곳에 묶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저 번개의 공격에 한 번이라도 맞는다면 온몸이 부서져 버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육욕마군과 고왕 두 사람은 모두 화신기 수준이었다. 지금 저곳으로 냅다 달려든다면 아무리 절호의 기회라고 해도 자신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는 두 사람은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더구나 검은 빛이 흩어지지 않는 한 그곳을 뚫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한제는 천천히 평정심을 되찾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절대 그 뒤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육욕마군이 소용돌이 안으로 진입한 순간, 열 갈래가 넘는 번개가 내리쳤다. 그는 가지고 있던 청년의 시체로 최대한 그것을 막아보려 했으나 엄청난 여파에 몇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으윽.”
그의 손에 들린 시체의 한쪽 팔은 번개에 적중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육욕마군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이를 악물고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고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청년의 떨어져나간 팔은 검은 빛 안으로 떨어졌고 기이한 금색 빛을 번쩍거리며 푸른 연기를 피워 올리더니 밖으로 튀어나갔다. 살은 이미 없어지고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뼈만 남은 상태에서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조각나 있었다.
고왕 역시 열 갈래가 넘는 번개의 공격을 받아 여덟 개의 깃발이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그는 결국 네 개의 깃발을 희생시킨 끝에 번개에서 빠져나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보라색 번개 공 하나가 그를 끈질기게 따라가 고왕이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한 순간 그의 몸을 때렸다.
청년에게서 떨어져 나온 팔을 본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생물이 들어 있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휘휘.
순간 바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작은 마수들이 튀어나와 30척 높이에 이르는 작은 회오리바람을 이루었다.
한제가 오른손으로 한곳을 가리키자 그 회오리바람은 안개를 뚫고 나가 전방으로 향했다. 곧장 검은 빛 근처에 이른 그것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그러더니 청년의 시체에서 떨어져 나온 팔의 뼈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때 보라색 번개 공에 적중당한 회오리바람은 곧장 무너져 내리더니 흩어져 사라졌고 남은 팔의 뼈만 그 자리에 떨어졌다.
육욕마군과 고왕이 산꼭대기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이 소용돌이에 진입했을 때까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짧은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소용돌이에 진입하면서 사방은 천천히 안정을 되찾아갔고 하늘의 시커먼 구름도 점점 흩어졌다.
하지만 검은 빛은 산꼭대기에 응집된 후 빠르게 아래쪽으로 확산됐다. 그것이 지나친 곳에 자리한 모든 금제들은 원래 상태를 회복했지만 영력의 파동으로 볼 때 이전보다는 훨씬 약해진 상태였다.
한제는 떨어진 팔의 뼈를 주시했다. 그 뼈는 검은 빛의 두 번째 침식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하늘에서 흩어지고 있는 검은 구름을 보던 한제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검은 빛이 스치려던 그 순간 손을 뻗어 팔의 뼈를 쥐고 그 자리에서 곧장 뒤로 물러났다.
고리 모양의 검은 빛은 꼭대기로부터 3천 척쯤 되는 위치까지 계속 확산됐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한제는 식은땀을 흘리며 3천 척 안에 있는 금제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이전과 달라진 점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한제는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가부좌를 틀었다. 손에 쥔 그 팔의 뼈에서 금색 빛이 반짝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첫 번째 관문의 거대한 회오리바람 속에 있던 마수의 머리에 황금색 손가락뼈가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팔뼈를 한참 바라보다가 오른손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뼈는 방금 그 번개의 공격과 검은 빛의 침식까지 당한 터라 이미 상당히 약해져 있었는지, 살짝 눌렀는데도 그대로 자국이 남았다가 천천히 부서져 내리더니 결국에는 쌀알만 한 크기의 금색 여덟 조각만 남았다.
그것에서는 조금의 영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제는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고민했다.
금인 것 같기도 하고 뼈인 것 같기도 한 물건이었다. 한제는 두 손가락 사이에 그 금빛 조각 하나를 끼워 신식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강력한 저항력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힘은 곧장 한제의 신식을 피하고 신식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꾹 눌러보았다. 금빛 조각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단단하지 않아서 바로 납작해졌다.
하지만 어떻게 힘을 주건 계속해서 납작하게 눌리기만 할 뿐 결코 가루로 변하지는 않았다. 한제가 그 조각들을 하나로 뭉치자 손톱만 한 크기의 금빛 구슬이 만들어졌다. 허나 보면 볼수록 첫 번째 관문의 마수 이마에 붙어 있던 손가락뼈와 똑같은 색이었다. 만약 정말 같은 재질이라면 이 금빛 구슬은 어느 생물의 뼈일 터였다.
“설마 고대 신의 뼈인가?”
하지만 이내 한제는 그 생각을 접었다. 이전에 단목극 등의 말대로라면 그 고대 신의 몸집은 굉장히 크다. 그렇다면 손가락뼈라 해도 커야 맞다. 첫 번째 관문의 마수 이마에 붙어 있던 그 손가락뼈와는 크기가 맞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금빛 구슬을 챙겨 넣고 옷을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높인 금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몸을 훌쩍 날려 단숨에 그 앞으로 다가갔다.
꼭대기로부터 5천 척에서 3천 척 사이의 구간에 있는 금제를 한제는 이미 꿰뚫어본 상태였다. 게다가 고왕이 미리 길을 찾아놓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상으로부터 3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이동했다. 실수로 금제를 건드려 보라색 번개에 공격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시간은 또 다시 천천히 흘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3년이 흘렀다. 그 3년 동안 앞에 놓인 금제들을 하나씩 파괴하며 정상까지 3천 척을 이동했다.
그렇게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그는 이곳의 금제가 이전의 폭발 때문에 신묘함은 그대로더라도 영력의 공급이 없어졌으며, 촉발되더라도 활성화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수준으로 이 산의 정상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50척 이내의 구역에 이르자 하늘에는 시커먼 구름이 천천히 모여들었고 그 안에서는 번개가 번쩍거렸다. 한제는 침착한 눈빛으로 그것을 한 번 살핀 뒤 소용돌이 안으로 향했다.
고대 신 ‘서사’
한제의 이동 속도는 느릿했다. 한 걸음씩 천천히, 대신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3년 전 한제는 그 검은 구름을 보았을 때부터 줄곧 상공의 금제는 무엇에 의해 촉발되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그가 회오리바람을 통제해 산 정상으로 보냈을 때에는 어떤 공격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공격은 그 회오리바람이 청년의 잘린 팔을 몰고 되돌아올 때 이루어졌다.
한 차례 연구를 진행한 뒤 잔영의 원으로 시험해본 결과 마침내 상공의 금제를 촉발시키는 원리가 속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속도가 일정 수준을 넘거나, 갑자기 빨라지거나 혹은 갑자기 느려지면 그 금제가 촉발됐고 이는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졌다.
이런 결론을 내린 한제는 시커먼 구름이 몰려드는 것을 봤으면서도 속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50척 정도를 이동한 그는 마침내 소용돌이 안에 진입했다.
두 번째 관문에서 한제는 총 13년의 세월을 들였다. 긴 시간이었지만 그가 얻은 수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까지 하나하나의 금제를 학습하고 그것을 관통해 일정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한제는 이런 좋은 기회라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이 두 번째 관문은 들어오는 사람의 발을 붙잡기 위한 곳이 아니라 수련자에게 금제를 학습시켜주는 곳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산자락에서도 산정상과 같은 강력한 금제를 깔아 이곳에 아무도 오를 수 없게 만들었을 터였다. 이 부분에 의문이 들었으나, 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제가 막 소용돌이에 진입한 순간,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소용돌이 안에서 번쩍이던 보라색 번개가 서로 한데 모여들더니 거대한 번개 공을 이루었다.
이 번개 공은 상공의 금제와는 달랐다. 색도 더 진했고 풍기는 힘도 훨씬 강했다. 이 보라색 번개 공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이 금제의 산이 갑자기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붕-
산자락에서부터 정상까지, 온 산 안에 자리하고 있던 이 산 고유의 금제가 하나하나 빛이 되어 떠올랐다. 각각의 금제는 하나의 빛이 됐는데 빽빽하게 모여든 이 수많은 빛은 점점 높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것들이 빠르게 하늘로 솟아올랐는데도 상공의 금제는 촉발되지 않았다.
그 빛들은 일정 높이까지 솟아오른 뒤 갑자기 빠른 속도로 한곳에 모여들어 거대한 빛의 공을 이루었다. 빛들이 끊임없이 이 공으로 스며들면서 공은 점점 커졌고 점차 보라색 번개 공과 같은 크기가 됐다.
이내 금제로 이루어진 빛들은 전부 사라졌고 산에는 단 하나의 금제도 남지 않았다. 한제는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보라색 번개 공이 나타난 순간 보이지 않는 무궁한 힘에 붙잡힌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 번개 공과 빛의 공이 서로를 향해 천천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서로에 닿은 순간, 거대한 인간 모양의 환영이 두 개의 거대한 공 사이에 나타났다. 이 환영은 굉장히 커서 위로는 하늘 끝에서, 아래로는 땅 끝에 닿을 듯했다.
이 무렵, 두 개의 공은 한제의 발아래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더니 결국 그 거대한 환영의 눈이 있을 법한 위치에서 멈추었다. 멀리서 보면 그 두 개의 공은 거인의 두 눈이 된 것 같았다.
그 순간, 거인의 몸은 환영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산의 네 번째 돈오자(頓悟者)여, 나의 이름은 서사다. 이 몸이 잠들기 전, 원고 시대에 했던 약속대로 이 금산의 요구에 부합한 네게 돈오자라는 이름과 금번(禁幡) 제작 옥패를 주겠다. 신식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면 돈오자의 신분으로 금제의 기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을 뒤흔드는 듯한 소리가 거인의 몸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뒤이어 보라색 빛을 번쩍이는 옥패 하나가 거인의 몸에서 나와 천천히 한제에게로 향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거인의 말투로 볼 때 분명 고대 신인 듯했다.
역시나 고대 신은 강력했다. 그저 분신을 드러냈을 뿐인데도 한제는 그 위압감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만약 고대 신의 본체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한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옥패는 어느덧 한제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눈빛을 번득이며 손을 뻗어 그것을 쥐었다. 순간 한 줄기의 전류가 그의 온몸을 타고 흐르다가 다시 그 옥패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