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2
움켜쥔 손에 힘을 주자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불씨는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빛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빛이 퍼져 나감에 따라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혼들은 하나둘 흩어지며 소멸되었다.
잠시 후 불씨가 무너져 내린 곳에서 고리 형태의 문이 하나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문은 대량의 문양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빽빽한 문양은 한꺼번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의 손을 통해 덧새겨진 듯했다.
문양들은 복잡하지만 기이하게 하나로 융합되어 강력한 봉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봉인은 외부인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작용도 막고 있었다. 정확히 어느 쪽을 막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인지도…
한제는 살짝 긴장감을 높였다. 봉인을 보니 당시 주작 성황의 분신이 왜 열아홉 번째 층에는 들어가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봉인의 힘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이 봉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정도였다.
‘주작성에 이런 봉인이 있었다니⋯⋯.’
한제는 그 문양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금빛이 번득이는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문양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단 하나의 문양만 남게 됐다.
마지막 문양은 하나의 획으로만 이루어진 원이었다. 허나 보기에는 단순할지 몰라도 한제는 이 마지막 문양으로부터 기이한 힘을 느꼈다. 이 봉인은 문 안쪽의 어떤 기운을 단단히 봉쇄하고 있었다.
이 원 문양에서는 한 줄기의 어렴풋한 금빛도 있었다. 아주 깊은 곳에 숨겨진 그것은 선력이었다.
‘이 문양⋯⋯ 부문족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한제의 긴장감이 한층 드높아졌다. 문양에서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지만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위압감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선인 혈맥의 위압감이야!’
한제가 뒤로 물러나 두 눈을 번득였다. 그러더니 이내 체내 선력을 가동하면서 금빛이 번득이는 오른손으로 마지막 문양을 가리켰다. 그러자 원 문양이 금빛을 번득였고 뒤이어 한제에게 익숙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한데 뻗었던 손을 거두려던 순간 한제의 표정이 급변했다. 손을 거두는 것마저 잊은 듯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도고… 도고의 힘도 포함되어 있어!’
그에게 익숙한 이 기운은 바로 도고 엽막의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피어오른 순간 한제는 스스로도 믿기 힘든 추측을 했다.
‘도고 엽막은 이광의 화살에 왼쪽 눈을 잃었다. 그리고 그 눈은 우주 속으로 사라졌어. 여기에서 느껴지는 도고의 기운⋯⋯ 부문족이 열아홉 번째 층에 봉인해둔 것은 도고 엽막의 왼쪽 눈인가!’
한제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틀림없어! 세상에 선인 혈맥의 힘과 도고 엽막의 기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건 화살에 맞아 뽑혀나간 도고 엽막의 왼쪽 눈뿐이다. 도고 엽막의 왼쪽 눈을 꿰뚫은 화살에는 이광의 선인 혈맥의 기운이 맺혀 있을 테니까. 허나 둘은 융합하지 못하고 내 체내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저항력을 야기했겠지. 부문족이 어떻게 그 저항력으로 봉인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세상사람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던 도고 엽막의 왼쪽 눈을 여태 이곳에 숨겨둘 수 있었던 거야.’
한제의 심장이 쿵쾅댔다. 자신의 추측에 스스로도 놀란 그는 마지막 문양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문양 너머 선인의 힘과 도고의 기운은 융합하면서 강력한 저항력을 생성해냈지만 이 저항력은 원 문양 덕분에 폭발하는 대신 그 자체로 봉인을 이룬 듯했다.
이 교묘함과 기이함에 한제는 충격을 받았다.
‘이 문양은… 내 체내의 저항력을 흩어 없애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한데 이런 금제를 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을 거야. 나처럼 선력과 도고의 힘을 융합하지 않은 이상 누구도 열 수 없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층층이 중첩되어 있는 윤회의 고리에 갇힌 것만 같았다. 만약 그가 주작성을 떠났을 때 요령의 땅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균열을 통해 나천성역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천성역에 이르지 못했더라면 지하마수의 체내로 들어가지 못했을 터. 그랬다면 운해성역에서의 첫 번째 전투에서 지하마수의 체내로 들어가지도 광인을 만나지도 선인의 혈맥을 얻지도 저항력을 갖게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주작성으로 첫 번째 단계 수련자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 원점에서 그는 이전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일 중 하나라도 빠져 있었더라면 부문족의 열아홉 번째 층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 세상에서 이 봉인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다. 그 사실에 감개무량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한제는 한참 뒤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더는 감상에 젖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두 눈을 번득였고 오른손을 들어 올려 혈맥의 선력도 도고의 힘도 가동하지 않고 체내의 저항력만을 검지로 보냈다.
그 순간, 한제는 온몸을 휩쓰는 고통을 느꼈다. 한 자루 검이 체내를 헤집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오른쪽 팔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은 피와 살, 경맥을 부수고 심지어 뼈까지 진동시키면서 저항력이 응집되어 있는 검지로 몰려들었다.
원점
“크으으…”
한제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검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아냈고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곧이어 한제는 오른손 검지로 열아홉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의 원 문양을 가리켰다. 손가락과 문양이 가볍게 맞닿은 순간, 체내의 저항력은 요란하게 폭발하면서 마치 친구를 만난 듯 포효하기 시작했다.
“음…”
한제는 창백해진 와중에도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그는 체내의 저항력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검지를 움직이며 원 문양을 따라 그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그는 금제를 열 수 있었다.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체내의 저항력이 커졌다. 한제는 원 문양의 저항력이 손가락 끝을 따라 끊임없이 체내로 주입되는 것을 느꼈다. 그 끔찍한 고통에 옷은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고 입가로는 피가 흐르기도 했다. 오장육부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마구 진동했다.
선체와 육신이 찢어질 듯한, 혼마저 뽑혀나갈 듯한 이 어마어마한 고통은 말 그대로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 반각이 흘렀다. 석실에는 한제의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졌고 어느덧 그의 손가락은 원 문양의 절반을 그린 상태였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됐고 오른팔에는 핏줄이 잔뜩 불거진 채 꿈틀거렸다. 오른팔뿐만 아니라 얼굴과 온몸에 솟은 푸른 핏줄도 체내로 주입되는 강한 저항력에 저항하듯 꿈틀거렸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손가락을 끊임없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손가락 끝이 원 문양을 따라 그리면 그릴수록 체내의 저항력은 더욱 요란하게 날뛰었고 종국에는 펑 하고 폭발하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석실을 울렸다.
“조금만 더⋯⋯.”
한제의 오른손은 거의 마비되어 있었다. 원 문양의 저항력을 흡수하는 것은 세 번째 단계 수련자와의 전투만큼이나 힘들고 고됐다. 심지어 그보다도 더 힘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양을 열 유일한 방법이었다. 선력만으로도 도고의 기운만으로도 안 된다. 두 가지를 겸비하지 못했다면 주작성을 파괴한다 해도 이 문양은 열 수 없을 터였다.
시간이 흘렀다. 한제의 오른손 검지가 원 문양을 완벽하게 따라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온 그 순간, 문양에서는 막대한 힘이 뿜어져 나와 그의 오른손으로 밀려들었다.
콰쾅!
한제는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났다. 그는 곧장 체내에서 밝은 빛을 발산했다. 하지만 광영순은 소환된 순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쿨럭!”
한제는 피를 한 움큼 토해냈고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을 번득여 천황로를 소환해냈다.
천황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타났지만 강력한 원 문양에서 뿜어져 나온 힘을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튕겨나가 어스름한 빛이 되더니 한제의 미간으로 되돌아왔다.
광영순과 천황로가 막아선 덕에 한제의 몸에 떨어진 원 문양의 힘은 다소 약해진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한제는 또다시 피를 토했다. 이어서 1백 척을 밀려나 석실의 벽에 충돌했고 벽은 순식간에 갈라져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콰르릉!
열아홉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의 원 문양은 한 줄기 강한 빛을 내뿜었다. 석실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강한 빛 아래 그 문은 서서히 열렸다. 열린 돌문 안쪽에서는 한 줄기 오래된 기운이 흘러나와 사방을 휩쓸었다.
입가의 피를 훔쳐낸 한제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돌문을 살폈다.
돌문 너머는 다른 세상과 연결된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부문족의 가장 큰 비밀이 숨겨져 있는 열아홉 번째 층이었다.
한편, 한제는 돌문이 열리면서 발산된 오래된 기운에서 한 줄기 도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그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이 처박힌 벽을 양손으로 힘껏 후려쳐 그 반동으로 돌진해 번개처럼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그는 봉인된 뒤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았던 열아홉 번째 층으로 진입했다.
그르릉!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등 뒤에서 돌문이 닫혔다.
기이한 통로 끄트머리에 열아홉 번째 층이 보였다. 통로는 갈수록 커지는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간격을 둔 채 떨어져 있는 고리들은 앞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였다.
한데 각 고리들은 방금 전 입구에 새겨져 있던 문양과 하나하나의 형태가 똑같았고 모두 융합된 선력과 도고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문과 연결된 고리들이 문 밖에도 고리 문양으로 어렴풋이 드러났던 것이다.
‘여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곳이지?’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기이한 곳들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드물었다.
여러 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통로는 갈수록 넓어졌고 또 그 안에서 발산되는 저항력도 더욱 강력해졌다. 심지어 그 안에는 한 줄기 날카로운 기운도 어려 있어 한제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온몸이 예리한 검으로 찔리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 고리들을 제외한 주위는 신식으로도 살필 수 없는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제의 두 눈동자는 뭔가를 감지한 듯 바짝 졸아들었다.
‘이 고리로 이루어진 통로 밖에는 흙이 있다.’
한제는 혼란스러웠다. 주작성 지하 깊은 곳이니 흙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돌문 안으로 들어왔을 당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던 터라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들어온 이상 이곳이 어떤 곳인지 봐야만 했다.
한제는 곧장 돌진해 고리로 이루어진 통로의 끝으로 향했다.
끝에 가까워지자 수천 척에 이를 듯 거대한 고리에서 강력한 도고의 기운과 선력은 물론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도 느껴졌다.
마지막, 크기가 수만 척에 달하는 고리를 앞둔 채 한제는 뒤를 돌아보았다. 입구였던 돌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로 점점 작아지는 고리들뿐이었다.
한제는 마지막 고리에 발을 딛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마지막 고리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었다. 잔잔한 하늘에는 구름도 바람도 없었다. 마치 푸른 천을 걸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왼편 한쪽에는 거대한 구멍이 하나 있었다. 폭이 수만 척에 달하는 구멍으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게다가 그 구멍은 마치 종이에 뚫어놓은 것처럼 가장자리가 불규칙하고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한제는 굵기가 수만 척에 달하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의 길이만 해도 수십만 척에 달하는 화살을 보았다. 하늘을 꿰뚫은 화살은 그 구멍에 끼어 있었다.
한편 하늘 아래에는 드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산이나 강 하나 없이 온통 텅 빈 평원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충격에 휩싸인 채 대지에 서서 하늘에 꽂힌 화살을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화살에서 발산되어 한제의 미간으로 달려들었다.
“큭!”
미처 피할 틈도 없었던 한제는 온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왼쪽 눈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도고의 유산과 한 장면 한 장면의 깨진 기억들이 떠올라 폭풍처럼 머릿속을 헤집었고. 이에 한제의 왼쪽 눈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이광은 내 반평생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왼쪽 눈을 쏘았지.”
한제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도고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결국 우렁찬 포효가 되었다.
“내 눈을 내놔라!”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는 한제의 눈에서는 갈등과 혼란의 빛이 떠올랐다. 기억 속 장면 하나하나를 그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었다. 그 장면 속 이광은 왼손으로 활을 쥔 채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겼고 그 시위에 매겨져 있던 화살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날아들었다.
하늘과 도고의 신통술을 가른 화살은 곧장 도고의 왼쪽 눈을 파고들어 눈알을 꿰뚫은 채 뒤통수로 빠져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쿨럭!”
한참 뒤, 한제는 피를 토해내며 휘청휘청 뒤로 물러났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탁한 숨을 길게 내뱉은 한제는 그제야 눈을 떠 복잡한 눈빛으로 하늘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도고의 왼쪽 눈은 없어. 저 화살만 있을 뿐⋯⋯.”
화살을 바라보던 한제는 자신의 추측이 절반만 맞았음을 깨달았다.
한제는 화살촉 끝에 말라붙은 검은 혈흔을 바라보았다. 도고의 기운은 바로 그 혈흔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도고의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피.
잠시 후 한제는 그 화살촉이 가시처럼 날카로운 게 아니라 고리처럼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치 하나의 봉인처럼.
‘귀중한 물건은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야 하는 법이지. 특히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보물이라면 더더욱 신중하게 숨겨 놓아야 해. 그런 의미에서 부문족은 이 화살을 아주 잘 숨겨놓은 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