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3
한제는 하늘에 꽂힌 화살을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 장면들은 그의 기억과 하나로 연결되면서 완전해졌다.
화면 속에 나타난 것은 오래된 무덤이었다. 손을 휘둘러 신통술을 발휘해 거대한 도고의 몸을 소환한 도고 엽막이 전방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던 그때, 이광은 화살을 쏴 상대의 왼쪽 눈을 맞혔다. 그리고 그의 왼쪽 눈알을 꿰뚫은 화살은 오래된 무덤 밖으로 튀어나와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화살은 촉에 박힌 도고의 왼쪽 눈 덕분에 전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산하게 되었고 우주에서 그것을 가로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당시는 아직 봉계의 진이 구축되지 않은 때였다. 화살은 휙 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거대한 수련성을 관통해 무너뜨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 화살에 꽂혀 있던 도고의 왼쪽 눈은 계외인지 계내인지 모를 곳에서 떨어져 종적을 감춰버렸다.
한편 많은 힘을 잃은 상태로 계내에 이른 화살은 우주를 가르며 누군가가 분리해놓은 우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분리된 우주는 바로 지금 한제가 보고 있는 이곳이었다.
어쩌면 그전까지 이곳은 수많은 흉수나 수련자로 혹은 생기로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날아든 화살은 하늘에 거대한 구멍을 내며 뚫고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모든 힘을 소진해 그대로 멈춰 버렸다.
거대한 화살이 하늘을 뚫고 들어온 순간 그 안에 남아 있던 살기가 남김없이 분출됐고 그 힘은 화살촉 끝에 묻어 있던 도고의 피와 융합해 어마어마한 저항력을 이루었다. 이 저항력은 화살촉 끝에 응집되었다가 그 둥근 봉인에 흡수되면서 하나하나의 고리를 형성했고 고리는 화살촉 끝을 통해 대지로 쏘아져 나갔다.
처음에만 해도 그 화살촉과 같은 수만 척 크기였을 고리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대지에 닿았을 때는 만 척 정도로 줄어들었다.
또한 그 고리에서 발산된 파문은 강력한 폭풍이 되어 이 세상을 휩쓸었고 이에 산맥과 강은 재로 흩어져 버리거나 말라서 자취를 감추었다.
바다는 솟구쳐 올라 증발해버렸고 그렇게 드러난 분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평평하게 다져졌다.
이곳에 살았던 수많은 생령은 그 끔찍한 위력 아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죽어갔다.
지금 한제가 보고 있는 평탄한 대지와 그 위를 가득 채운 죽음의 기운은 그렇게 형성됐다.
이곳은 숨겨진 곳이었다. 아마 화살에 담긴 선력과 그 선력의 특수성으로 누구도 이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봉계의 진이 세워지고 계내와 계외가 수차례의 피 비린내 나는 대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계외의 누군가가 그 화살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곳을 찾지 못했다.
부문족은 그렇게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역외
장존의 딸은 정말 청림을 암해할 목적으로 들어온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단지 이 화살을 찾기 위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다.
부문족은 수많은 파란 후 가까스로 화살의 위치를 알아냈지만 끝끝내 그 저항력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 화살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통제할 수 없자 그들은 이곳을 봉인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봉멸족의 도움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결국 한제가 방금 전 들어온 돌문을 만들었고 그 문에 화살에서 쏘아져 나온 뒤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주먹만 해진 고리를 융합함으로써 첫 번째 봉인을 생성했다. 그리고 계외의 장존이 직접 나타나 화살을 취할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오랜 기다림 속에서 격변이 있었다. 청림이 장존의 딸을 요령의 땅에 봉인했고 부문족은 4대 선계에 의해 학살당하면서 붕괴하고 분리된 것이다.
그렇게 분리된 부문족 일부는 선인의 노예가 되어 선유족이 되었지만 또 다른 일부는 그곳을 떠나 주작성에 이르러 화살을 봉인한 문을 숨겼다. 그리고 그 문의 진실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점차 사라졌고 대신 부문족의 열아홉 번째 층에는 선조의 잔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전설만 남았다.
어쩌면 장존은 이곳에 왔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계내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봉계의 지존을 죽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화살을 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계내에서 울려 퍼진 고함소리의 힘은 그런 장존의 계획을 망쳤고 그 고함소리에 잔뜩 겁을 먹은 장존은 중상을 입은 채 계내에서 도망쳤다.
이 화살은 아주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었지만 그 진상에 대해서는 운작자도 알지 못했다.
한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릿속을 정리한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하늘에 꽂힌 채 절반 정도만 드러난 화살 앞에 이르렀다. 그는 화살에 비하면 너무나 작아 마치 거대한 산 앞에 선 사람 같았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몸을 훌쩍 날려 거대한 화살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이어서 화살촉에 말라붙은 도고의 핏자국에 손을 얹은 그는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러자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도고의 핏자국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도고의 왼쪽 눈에서 흐른 이 피를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 피 깊은 곳에는 한 줄기 요기가 숨겨져 있는데 이는 한제에게 매우 유용했다.
한제는 곧장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저물공간에서 고요의 조각상이 나타났고 한제는 그 위에 왼손을 얹었다.
화살촉에 남아 있던 도고의 피는 많지 않았던 데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말라버려 대부분의 위력이 흩어진 상태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9성급 고요의 기운이 응집된 도고의 왼쪽 눈에서 흐른 피는 한제에게는 보물과도 같았다.
그 피로 제련된 고요의 힘은 오른손을 타고 체내를 한 번 돌아 왼쪽 손에 닿아 있는 고요의 조각상으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고요의 조각상은 기이한 붉은 빛을 발산하면서 마치 깨어난 듯 끊임없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열흘이 흘렀다.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도고의 피가 거의 사라짐에 따라 고요의 조각상 왼쪽 눈에는 고요의 반점이 무려 다섯 개나 나타나 있었다. 이제 조각상에서 번득이던 붉은 빛은 온 세상을 다 밝힐 듯 강해졌다.
열하루 째 되던 날,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도고의 굳은 피가 조각조각 흩날렸다.
한제는 재빨리 오른쪽 소매를 휘둘러 이 피 조각들을 손바닥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손바닥이 점차 암적색으로 물들었다.
한제는 몸을 홱 돌려 암적색 손바닥으로 고요의 조각상을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그의 손에 묻어 있던 암적색 피 조각들이 고요의 조각상으로 녹아들면서 강력한 요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조각상의 왼쪽 눈에 드러났던 다섯 개의 반점이 급속도로 번득이면서 여섯 번째 반점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응집되던 여섯 번째 반점은 곧이어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고요를 갖게 되었군.”
한제는 저물공간을 열어 혈신자의 몸에서 얻어낸, 봉인되어 잠들어 있는 고요를 꺼내더니 세차게 후려쳤다. 그러자 고요의 왼쪽 눈에 있던 반점들이 무너져 내려 강력한 고요의 힘이 되더니 한제의 통제에 따라 조각상으로 흘러들었다.
조각상은 피처럼 붉은 빛을 뿜어냈고 또한 그 왼쪽 눈에서는 일곱 번째 반점이 흐릿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내 일곱 번째 반점을 성공적으로 응집시켰다.
당시 약속했던 대로 한제는 혈신자의 체내에 있던 고요를 죽이지 않고 혼을 남겨둔 채 다시 봉인해 저물공간에 넣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간 뒤 풀어줄 생각이었다.
‘도고의 왼쪽 눈을 찾을 수 없다면 내 스스로 길러내야지!’
이어서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핏빛 조각상도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작업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올라 앉아 있는 거대한 화살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드러났다.
“이 화살은 이제 내 것이다. 이광의 활과 함께 사용한다면 얼마나 강력할지 궁금하군.”
한제는 오른손으로 화살을 쓰다듬으며 체내의 저항력을 억누른 채 혈맥 속 선력을 가동했다. 그러자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면서 금빛을 발산했고 체내에서 한 자루의 활이 드러났다.
활은 마치 한제의 근육처럼 그의 체내에서 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이 순간, 한제는 곧 활이었다.
그 순간, 한제가 올라 앉아 있는 거대한 화살은 바르르 진동하더니 마치 활의 존재를 느낀 듯 강력한 기운을 한제에게 쏘아 보냈다. 동시에 한제는 아주 오래된 듯한 혼을 하나 감지했다.
화살의 혼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듯한 이 혼은 한제의 체내로 돌진해 그의 체내에서 나타난 활과 접촉했다.
이어서 거대한 화살은 경련을 일으키듯 떨더니 순식간에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들었고 이내 하늘의 구멍을 완전히 빠져나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한제는 그전에 재빨리 몸을 물렸다.
콰콰쾅!
곧이어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화살은 땅속 깊은 곳까지 박혔다. 화살대가 바르르 떨렸다.
한제는 화살 꼬리에 달린 아홉 개의 깃털 위에 서 있었다. 이 깃털들은 매우 부드러워 그 위에 선 한제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상당히 축소되었음에도 화살의 길이는 여전히 수십만 척에 달해 마치 거대한 기둥 같았다.
깃털 위에 선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차 있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구멍은 한제가 보는 와중에도 가장자리가 조금씩 꾸물거리며 메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기이한 곳이군.”
한제는 시선을 돌려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화살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대한 화살은 다시 한번 바르르 진동하며 빛을 번득였고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머지않아 보통의 화살만큼 줄어든 이 화살은 한제의 오른손으로 끌려왔다.
자세히 보니 화살에는 네 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화살 전체를 둘러싼 문양에서는 미약하고 어스름한 빛이 발산됐다.
‘이 네 개의 문양은 혼과 관련이 있다. 분명 화살의 위력을 증폭키는 방법이겠지. 이광은 단 하나의 화살로 도고의 왼쪽 눈을 꿰뚫었다. 어떤 혼을 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왼손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그러자 고신의 반점에서 천황로가 튀어나와 곧장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그 단로 안에서 두 개의 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조상인과 천조상인의 혼이었다.
“이들의 혼으로 화살을 강화해야겠군!”
냉랭한 표정의 한제는 왼손으로 천황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바르르 진동하던 천황로의 뚜껑이 열리면서 남조상인과 천조상인의 혼이 튀어나왔다. 이들의 혼은 곧장 도망치려 했으나 한제에게 붙잡혀 울부짖으며 화살로 던져졌다.
“끄아아!”
그 순간, 화살대에 새겨진 문양의 어스름한 빛이 눈부시게 밝아졌고 남조상인과 천조상인의 혼은 울부짖음을 뚝 멈추었다. 이윽고 그들은 네 개의 문양 중 두 개에 녹아들었고 그러자 화살은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강력한 기운에 한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두 개의 문양이 남아 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저물공간에서 거대한 누각을 꺼냈다. 고신의 땅에서 찾아낸 도고 엽막의 지부(地府)였다.
이 누각에는 여러 개의 창문이 달려 있었다. 한제는 당시 이곳에서 세 개의 강력한 혼을 본 적이 있다.
허나 잠시 혼들을 바라보던 한제는 고개를 젓더니 지부를 다시 거두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내보내서는 안 될 혼들이었다.
“이 혼들은 너무 강력하다. 당시 도고가 자신의 고향에서 봉인한 적들이라고 했지. 지금의 나로서는 이들을 방출했다가 오히려 당할 수도 있어.”
이후 한제는 고민에 빠진 채 화살촉 끝을 몇 시진이나 바라보았다. 둥근 고리 같은 화살촉은 융합된 도고의 힘과 선력이 생성한 저항력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그 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었기에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살은 금빛을 번득이며 흩어지는가 싶더니 일곱 갈래의 금빛으로 나뉘어 그의 칠규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화살을 거둔 한제는 주위를 다시 돌아보더니 오른발을 내딛어 세상에 녹아들었다. 그리고는 하나하나의 고리를 통과해 다시 돌문으로 향했다.
이내 돌문에 도착한 그가 손을 휙 휘두르자 돌문이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열여덟 번째 층으로 돌아온 한제는 고개를 돌려 돌문을 바라보다가 소매를 휘둘렀다. 돌문은 다시 닫혔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여러 개의 봉인을 남겼다.
‘도과를 제련해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세 개의 본원을 완성할 때다.’
한데 다시 돌아서서 막 떠나려던 한제가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두 눈은 돌문의 봉인을 파하다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힘에 떠밀려 처박혔던 돌벽에 닿아 있었다. 수많은 균열과 떨어져나간 돌조각 너머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열아홉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돌문에만 모든 정신이 쏠려 있었던 터라 그 벽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으나 뭔가 이상했다.
한제의 시선은 벽의 균열을 따라 그 너머로 향했다. 칠흑처럼 어둡고 텅 빈 그곳에서 벽에 난 틈을 통해 흘러나온 기운은 매우 익숙했다.
“역외 전장!”
한제가 중얼거렸다.
“열여덟 번째 층은 주작성 지하 깊은 곳이 아니라 역외 전장에 세워진 곳이었군!”
한제는 오른손으로 벽을 힘껏 밀었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더 많은 균열이 드러나더니 벽은 결국 펑 하고 무너져 내리며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 너머로 드러난 것은 분명 역외 전장이었다. 그것도 한없이 거대해 끝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