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5
좀 전까지 여유가 넘치던 노인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력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열세 마리의 검은 용들에 뒤덮인 회색 용이 꿈틀거리며 내지르는 포효가 온 세상에 진동했다.
한제 역시 수십 척을 밀려났다. 허나 그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몸을 홱 돌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향한 곳은 노인이나 회색 용이 아닌 한제 자신의 후방이었다.
콰쾅!
한제의 주먹은 막 나타난 파문에서 걸어 나온 흐릿한 상태의 노파가 뻗은 손가락과 충돌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한제의 등을 노리던 차였다.
주먹과 손가락이 충돌한 순간 한제는 몸을 격렬하게 떨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고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노파 역시 움찔했고 오른손 검지 끝이 조각나 버렸다.
“꽤 강한 녀석이구나!”
노파는 서늘한 눈빛으로 한제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낸 한제는 자신이 이 재난을 무사히 넘기기 힘들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배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누구도 내 운명을 좌우할 수는 없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재난이라도 마찬가지!’
한제는 뒤로 물러나며 오른손을 쳐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파란 빛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금빛이 나타나 사방으로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거대한 손바닥이 생겨나려 했다.
“또 금빛!”
회색 옷의 노인이 외쳤고 흑의의 노파도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 손바닥이 응집되려던 순간 한제의 뒤쪽으로 한 줄기 검기가 달려들었다. 짙은 한기를 품은 그 검기는 얼음송곳으로 변했는데 쩌적 소리를 내며 돌진하는 얼음송곳 앞에는 파란 단검 한 자루가 있었다.
그 순간, 한제의 주위로 무궁무진한 빛이 나타났다. 그 빛은 거대한 빛 덩어리가 되어 얼음 검과 충돌했다.
허나 한기를 품은 검은 광영순을 관통한 뒤 살기를 풍기며 달려들었다.
“큭!”
역령인을 소환하려다 방해를 받은 한제는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내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얼음송곳이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안색이 어두워진 한제는 손을 휘둘러 붉은 빛을 번득인 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를 쫓던 검과 붉은 검이 대치하게 됐다.
콰쾅!
눈 깜짝할 사이 두 검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바들바들 진동하던 얼음 검은 펑 하고 두 동강이 나 나가떨어졌다. 붉은 검 역시 진동하다가 붉은 빛이 흩어지며 밀려났다.
물러나던 한제는 재빨리 붉은 검을 움켜쥔 뒤 전방을 응시했다.
두 동강이 난 얼음 검 옆에서는 백의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서늘하고도 무정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끝내지!”
눈빛만큼이나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은 사내는 곧장 달려들었고 회색 옷의 노인과 흑의의 노파 역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돌진했다.
한제는 재빨리 물러났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수준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령기 중기에 달해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상황에서 한제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까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역령인이 콰쾅 소리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동시에 한제의 두 눈이 금빛으로 번득이며 광기 어린 전의가 드러났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싸워주지!”
한제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는 본래 큰 위기를 맞을수록 광기는 짙어지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냉철해졌다. 이것은 2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싸워오면서 길러진 습관이었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손바닥이 강한 금빛을 발산하며 하강했다. 그 손바닥이 가까이 이르기도 전에 막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또한 이 진정한 역령인에는 교차된 산맥 같은 장문(掌紋)이 또렷했다.
‘이 금빛은 대체 뭐지? 정말 놀라운 기운이야!’
회색 옷의 노인은 역령인에서 발산되는 금빛을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금빛 손바닥 문양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이어서 파문을 일으키며 눈 깜짝할 사이 그 손바닥 위에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금빛 피를 뿜어냈다. 이 피는 장문에 녹아들어 역령인의 금빛을 배가시켰다.
“날 죽이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싸늘하게 고함을 내지른 한제는 콰쾅 소리와 함께 하강하는 역령인에 올라탄 채 오른손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잔잔한 수면 같던 대지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역령인이 강림한 순간 회색 옷의 노인은 손을 휘둘러 둥근 병을 소환했다. 투명한 병 안에는 황색 모래가 가득했는데 노인이 손에 힘을 주어 병을 으스러뜨리자 모래가 그대로 튀어나왔다.
모래는 노인의 손짓을 따라 노란 빛을 발산하며 점점 더 많아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폭이 10만 척에 달할 정도로 모여들었다.
“대지의 본원이여, 영혼을 매장하라!”
노인이 외치자 이 많은 모래가 휘몰아치면서 금빛 역령인을 향해 돌진했다.
한편, 흑의의 노파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바깥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손톱 중 아홉 개가 길게 늘어나다가 끊어져 아홉 개의 검은 빛이 되어 달려들었다.
검은 빛 안의 손톱에서는 거대한 귀신의 허상이 소리 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비검과 같은 손톱 위의 아홉 귀신은 회색 옷의 노인이 일으킨 모래를 따라 돌진했다.
얼음처럼 냉랭한 백의의 사내는 손가락을 깨물어 낸 피로 전방에 문양을 하나 그렸다. 그 문양은 완성되자마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얼음으로 얼어붙더니 사내의 손짓에 따라 날아갔다.
하늘과 땅이 요란하게 진동하며 이 어마어마한 신통술에 저항했다. 금빛을 번득이던 한제의 역령인은 곧 강력한 기세로 달려든 모래와 충돌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모래가 역령인을 완전히 뒤덮은 순간 흑의의 노파가 쏘아 보낸 아홉 개의 귀신 허상이 파고들었다. 뒤이어 백의의 사내가 피로 그려낸 문양도 그 위에 떨어졌다. 이 문양은 역령인과 충돌하는 순간 무너져 내리며 한 줄기 서늘한 기운으로 변해 사방을 휩쓸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기세였다.
“토붕(土崩)!”
“혼살(魂殺)!”
“빙동(氷動)!”
세 수련자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역령인은 무너져 내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산봉우리 같은 다섯 손가락이 떨어져 내렸고 거대한 충격이 사방을 휩쓸었다.
“크윽!”
한제는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그의 몸에는 아홉 개의 손톱이 박혀 있었는데 손톱이 박힌 부위마다 모래로 변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또한 그의 체내에는 온몸을 얼려 버릴 듯 지독한 한기가 맴돌았다.
전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중상을 입은 상태로 한제는 다급히 후퇴했다. 허나 그 와중에도 그는 싸늘하게 웃었고 두 눈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가 어렸다.
한제가 저물공간에서 단약을 꺼내 삼키려는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몸을 날려 돌진해왔다.
한편, 회색 옷의 노인은 무언가 꺼림칙했다. 한제가 발산한 금빛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왼편에 이른 노인은 노란 빛이 번득이는 오른손 검지로 한제의 미간을 가리켰다. 그러자 무궁무진한 향불의 혼이 그 손가락 끝에서 쉭 하고 빠져나왔다.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이 혼들은 하나하나의 모래알이 되어 노인의 손짓을 따라 한제를 포위하려 했다. 역령인을 파괴했듯 한제도 파괴하려는 모양이었다.
때를 같이해 한제의 오른편에 나타난 흑의의 노파는 두 눈을 어스름하게 번득이며 한제의 가슴팍을 짓누르려는 듯 오른손을 뻗었다. 그녀의 다섯 손가락에서 거친 허상으로 나타난 향불의 혼들은 마치 저승을 소환한 듯한 살기를 풍기며 달려들었다.
한제의 전방에는 백의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무정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려 한기를 퍼뜨리면서 한제의 정수리를 후려치려 했다.
“이걸로 끝이다!”
세 사람의 공격이 동시에 한제를 향해 다가왔다.
이 위기의 순간, 한제의 미간에서는 고신의 반점이 빠른 속도로 번득이며 천황로를 소환했다.
천황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세 수련자의 공격에 바르르 진동하며 무너져 내려 빛으로 변하더니 한제의 미간으로 되돌아갔다. 그 틈에 한제는 온몸으로 빛을 번득이며 광영순을 다시 한 번 소환했다. 하지만 광영순 역시 순식간에 부서졌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한제는 수차례의 생명의 위기를 맞았다. 다른 신통술을 발휘하거나 법보를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도 신식으로 사방을 관찰해야 했다. 적이 이 세 사람만은 아닐 테니까.
원고 선비는 물론 장존도 기다리고 있을 터. 한제 평생에 가장 큰 위기였다.
무너져 내린 광영순의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던 그때, 한제의 오른팔은 빛을 번득이며 고신의 팔뚝 보호대를 드러냈다.
‘시간이 필요하다. 더 많은 신통술을 발휘하고 법보를 꺼낼 시간이…’
적들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세 사람의 공격이 한제의 미간과 가슴, 정수리를 향해 오는 순간, 그의 오른팔에 나타난 팔뚝 보호대에서 짙은 고신의 힘이 폭발했다.
꽈릉!
하늘을 뒤흔들 듯 강력한 고신의 힘은 그를 몇 번이나 보호해주었던 거대한 고신의 허상이 되었다. 이 고신의 온몸에는 상흔이 가득했지만 한제는 여전히 그에게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의 공격은 거대한 고신의 허상에 떨어졌다. 고신의 허상은 바르르 떨면서 자신의 몸으로 한제를 보호하려는 듯 잔뜩 웅크렸다. 이윽고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린 순간, 허상으로 나타난 고신의 미간에서 모든 반점이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동시에 고신의 힘 한 줄기가 어마어마한 충격이 되어 세 사람을 뒤로 밀어냈다.
“헉!”
“크흑!”
세 사람은 피를 토해내며 밀려났다.
거대한 고신은 빠른 속도로 흩어져 사라졌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몸통까지 순식간에 흩어져 마지막으로 오른손만 남았는데 그 손에 쥔 한제를 곧장 아래의 수면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이내 그 손마저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슬픔에 목이 메었다. 동시에 고신의 기운에 휩싸인 채 그는 수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잔잔했던 수면에는 대량의 파문이 일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무렵, 세 사람은 수면을 응시하며 숨을 고른 후 한제를 추격했다.
한편, 한제의 오른팔에서는 팔뚝 보호대가 산산조각이 나 떨어져 나갔다. 한제의 눈에 슬픔이 차올랐으나 이는 분노가 담긴 광기로 변해갔다. 그를 추격해온 세 사람이 수면 근처에 이른 그 순간이었다.
잔잔하고 평온했던 수면에 돌연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기세의 회오리가 일었다. 뒤이어 그 안에서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이 쑥 빠져나오더니 한제를 뒤쫓던 백의의 사내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헛!”
백의의 사내는 화들짝 놀라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가면서 얼어붙었던 주먹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제가 낮은 포효를 내지르며 물속에서 튀어나와 주먹을 휘둘렀다.
체내에서 요동치는 저항력을 내버려둔 채 날린 그 주먹에는 도고의 힘이 배어 있었고 한제의 뒤로는 도고의 머리 허상도 나타나 있었다.
분계고산
주먹에 가격당한 백의의 청년은 피를 토하며 수천 척이나 밀려났다.
한제 또한 몸에서 금빛 피가 튀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돌아서 회색 옷의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한편 오른쪽 눈에서 금빛 번개를 번득였다.
순간 파랗고 맑았던 하늘이 무궁무진한 천둥번개로 뒤덮였고 한제의 손짓 아래 그 천둥번개는 엄청난 속도로 회색 옷의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우르릉! 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