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27
여인은 부드럽고 가벼운 목소리로 내뱉으며 새끼손가락을 구부렸다.
그 순간, 한제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한 줄기 기이한 힘이 강림하면서 체내의 신장들에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느껴진 것이다.
“큭!”
피를 왈칵 토해낸 그는 무의식적으로 물러났다. 만약 그의 몸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신장 두 개가 빠른 속도로 말라 시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고신의 회복력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말라붙던 신장은 결국 핏물이 되어 체내로 흩어져 사라졌고 한제는 극심한 고통에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두 눈에 깃든 살기는 오히려 고통을 양분으로 삼아 절정에 이르렀다.
“두 번째! 폐!”
여인이 한제를 가리키며 외치는 한편 약지를 구부렸다.
“세 번째! 비장!”
약지에 뒤이어 중지 역시 굽혀지며 손바닥에 닿았다.
“네 번째! 간!”
이번에는 검지였다.
“쿨럭!”
연이어 피를 토해낸 한제는 뒤로 튕겨나갔다. 몸속에서는 폐가 쪼그라들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폐가 사라져 숨을 쉴 수 없게 된 한제는 극심한 고통에 먹먹한 비명을 내질렀다.
폐 다음으로는 비장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고 대량의 피가 온몸으로 녹아들었다. 한제의 몸 구석구석 붉은 반점들이 나타났다.
이어서 간 역시 녹아내렸다.
오장 중 네 개가 사라지면서 한제의 생기가 끊어졌고 분계고산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다섯 번째! 심장!”
여인은 끊임없이 밀려나는 한제를 덤덤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엄지를 굽혔다. 그녀는 모든 손가락이 접힌 주먹을 저 멀리 떨어진 한제를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크아악!”
심장이 돌로 변해가면서 엄습한 끔찍한 고통에 한제조차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와중에 날아든 여인의 주먹이 떨어지면서 한제의 가슴은 움푹 파였다. 한제는 힘없이 떠밀리다가 어느새 녹아버린 수면으로 떨어졌다.
‘선비!’
한제는 가라앉기 전에 애써 고통을 참으며 오른손으로 수면을 후려쳐 그 반동을 이용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급해진 한제는 운해성역의 균열로 들어가기 위해 신비로운 여인이 준 옥패를 사용해보려 했지만 옥패는 작동하지 않았다. 지하마수를 소환하려고도 했지만 그 역시 소용없었다. 이 봉인된 세상을 파괴하는 것도 이곳을 뚫고 지하마수와 소통하는 것도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너는 결코 도망칠 수 없다! 허나 네가 항복하고 무릎을 꿇는다면 한 번쯤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르지.”
여인은 다정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말하며 백의의 사내가 둘러준 얼음층에서 나와 한제를 향해 걸음걸음 다가왔다.
음월유청(陰月有晴)
!
한제는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몇 걸음 더 물러났다.
“나 이한제는 하늘에도 무릎 꿇은 적이 없거늘 너 따위에게 무릎을 꿇겠느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치욕을 수백수천 배로 갚아줄 것이다!”
말을 마친 한제는 고통을 참기 위해 호흡까지 멈춘 채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호풍, 환우, 살두성병!”
그의 온몸에서 금빛이 발산되더니 곧장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미 한제가 발산한 금빛을 본 적이 있음에도 여인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의혹은 더욱 커져갔다. 허나 그녀는 다른 말은 없이 조금 속도를 높여 한제에게 다가오며 오른손을 뻗었다.
콰르릉!
그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열세 마리의 흑룡이 금빛을 번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은 동시에 금빛 빗방울을 사방으로 퍼뜨렸는데 빗방울에는 한제의 손에 죽은 혼이 응집되어 있었다.
호풍과 환우가 풍우계(風雨界)를 이루었다. 이전에 절반 이상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혼들이 서로 뒤얽혀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공격의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던 한제는 두 눈으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다시 한 번 하늘을 가리켰다.
“산붕, 지열!”
한제는 아직 지열술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금 그의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모방할 수는 있었다. 그의 손짓에 거대한 화산들의 허상이 나타났다. 한제의 금빛 선력이 녹아든 덕분에 백범의 신통술은 진정한 선술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선비에게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제 역시 이 정도로 상대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백범의 마지막 신통술이었다.
음월유청(陰月有晴)!
한제로서도 단 한 번 보았을 뿐인 음월유청은 청수가 소하성역의 칠채계에서 발휘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제는 청수와 마찬가지로 백범의 여섯 가지 신통술을 배웠다.
비록 청수만큼 능숙하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신통술을 모두 이용함으로써 어렴풋하게나마 음월유청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콰쾅!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풍우가 몰아치는 사이에도 선비는 여전히 침착했다. 사실 풍우계는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허나 그녀가 풍우계를 가르고 나타난 순간, 한제가 하늘을 향해 낮게 외쳤다.
“음월유청!”
동시에 그는 오른손으로 여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여인의 얼굴에 밝은 달 하나가 떠올랐고 그 순간 선비는 처음으로 표정이 급변하더니 멈칫하기까지 했다.
“음월종(陰月宗), 제일식⋯⋯ 그래, 그 늙은이에게 거두어지기 전 백범은 음월종의 배신자였지.”
여인의 얼굴에 나타난 흐릿했던 달은 빠르게 실체화되었다. 심지어 여인의 얼굴에 줄기줄기 균열까지 일으켰는데 그 흉한 균열에서는 피가 흘렀다.
“흥! 만약 네가 제이식 음월무우(陰月無雨)와 제삼식 음월한풍(陰月寒風)을 발휘했다면 모를까, 이 정도는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너를 죽여 버리면 그만이지!”
여인은 극심한 고통을 참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면서도 차게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는 음월종의 신통술을 잘 알고 있었다. 매우 악독한 그 신통술은 사람을 곧장 죽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상해를 입히는데 오랫동안 유지될수록 점점 제거하기 힘들어진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곁에 이른 여인은 손톱을 잔뜩 세운 손을 뻗었다.
한제 역시 음월유청에 이어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도고의 힘이 깃든 이 주먹에는 2대 주작으로부터 배운 현무의 가장 강력한 술법의 위력도 배어 있었다.
한제의 주먹으로부터 강력한 힘이 파문이 되어 퍼져 나갔다. 멀리서 보면 한제와 여인 사이에 물결치는 수면이 있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두 사람의 손톱과 주먹은 수면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한제는 충돌의 순간 받게 된 모든 반동까지 응집해 상대의 손으로 밀어 넣었다.
끔찍한 고통에 육신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온몸에서는 피가 안개처럼 터져 나와 옷을 붉게 물들였다.
이어서 오른팔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관절이 갈라지며 어깨가 뒤로 밀려났다.
한제는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는 체내의 저항력을 가까스로 억눌러야 했다.
여인 역시 피를 토해내며 수백 척이나 밀려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많은 균열이 퍼졌고 점점 커진 달은 어느새 목까지 뒤덮은 상태였다.
달이 커지고 균열이 확산됨에 따라 음월종의 잔인한 위력이 계속해서 상해를 입혔다.
여인은 갈수록 커지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고 얼굴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수백 척을 밀려난 선비가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험악한 얼굴로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을 휘둘러 허상의 칠현금을 소환했다.
그녀의 두 손이 칠현금 위에 올라간 순간 둥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흘러나온 곡조는 한 줄기 서늘한 살기가 되었다. 심지어 곡조는 점점 빨라지면서 한제의 심신에 내리 떨어졌다.
“큭!”
수천 척이나 뒤로 밀려난 한제의 칠규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내 칠현금 연주는 오직 선존께서만 들으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아라. 내 너를 위해 장황천(葬黃泉)을 연주해주마.”
냉랭한 목소리로 내뱉은 여인의 두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칠현금 소리가 마념처럼 한제의 머릿속을 맴돌며 비명을 질러댔다. 마치 그의 심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것만 같았다.
“좋은 곡이로군! 어디 더 해보아라! 하하하!”
한제는 피를 울컥 토해낸 한제는 돌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몸을 홱 틀더니 붉은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평소보다 조금 어두워진 붉은 검이 나타나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검이 날아간 방향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다. 허나 그녀도 한제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알아채지 못했다면 봉계의 지존이라는 이름이 아까웠으리라.
붉은 검이 관통했지만 여인은 마치 한제의 눈에만 보이는 허상일 뿐인 듯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은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듯 아름다웠다.
“언니의 칠현금 소리를 들은 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이렇게 듣게 되는구나. 네 덕분이다. 호호호.”
붉은 검은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 채 되돌아와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사이 한제는 뒤로 물러나 있던 상태였다.
살기를 품은 칠현금의 소리가 빠른 속도로 온 세상을 채워나갔다.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지만⋯⋯.”
허상의 여인은 한제를 보며 고운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신점을 보니, 넌 셋을 세는 사이에 죽게 되겠구나. 내 점술 결과는 내 혼을 촉매로 삼아 실현될 것이다.”
여인은 한제를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여인이 발휘한 점술은 천운자의 예측과 매우 비슷했지만 술법은 천운자의 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녀의 말이 흘러나온 순간 주먹만 한 검은색 원들이 한제의 몸에 나타나더니 그 부분들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네 육신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여인의 냉소를 들으며 고통에 바들바들 떨던 한제는 죽음이 코앞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썩어 들어간 부분들은 이제 뼈가 다 보일 정도였는데 심지어 뼈도 검게 물들어 흩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