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30
게다가 기이하게도 수면에 비친 장존 역시 한제를 향해 걸어오고 있어 마치 두 명의 장존이 동시에 걸어오는 것 같았다. 이에 한제가 느끼는 압박 또한 두 배가 됐다.
한제는 마치 정신술에 고정되기라도 한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두 눈은 냉랭하게 빛났다.
“말하지 않겠다? 상관없지. 내가 직접 알아내면 되니까.”
장존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비쩍 마른 손으로 한제를 가리켰다.
그 손짓에 하늘을 채웠던 파란색 빛은 사라지고 그 대신 반짝이는 금빛이 나타났다. 갑작스레 떠오른 거대한 태양으로부터 발산된 햇빛이었다.
태양에서는 태초의 본원의 기운이 사방으로 풍겼다. 그 빛은 너무도 눈부셨고 역광 때문에 장존의 모습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제에게 다가오는 그의 검은 도포 주위로 빛무리가 나타날 정도였다.
“세상이 처음 열렸을 때 그곳에는 빛이 있었고 이 빛은 바로 내가 깨달은 본원 중 하나지. 태초의 규칙의 본원. 이 태초의 힘 아래 네가 가진 고신으로서의 정체와 선인으로서의 정체는 분리될 것이다!”
장존은 거칠게 외치며 한제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세상을 뒤덮은 햇빛이 빛기둥으로 응집되어 한제의 몸을 감쌌다.
이 절대적인 힘에 한제는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빛기둥이 온몸을 감싼 순간, 한제의 체내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빛기둥 안의 햇빛이 작열하면서 유혼을 포함해 체내의 모든 것을 불살랐다.
태초의 힘은 유혼에게 매우 치명적이었기에 유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유혼을 잃은 한제는 체내의 저항력과 빛기둥의 햇빛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가 무너져 내린 순간 태초의 힘이 그 무너진 육신으로 파고들어 고신으로서의 정체성과 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리했다. 이제 무너졌다가 다시 응집된 한제의 몸에서 금빛이 튀어나오려 하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강제적인 분리로 인한 고통은 처음 융합될 때 느꼈던 고통보다 몇 배는 컸다.
허나 한제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도 신음이나 비명은 흘리지 않았다. 그저 장존을 죽일 듯 노려보며 지금의 이 고통과 치욕을 기억에 깊이 새길 뿐이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또는 오늘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오늘의 고통과 치욕을 수백, 수천 배, 수만 배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었다. 그 필살기는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가장 적합한 시기를 상대와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질 때를 그래서 필살기가 조금이라도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순간을…
장존은 오른손을 활짝 편 채 한제를 향해 뻗으며 여유작작하게 다가왔다.
“정중로월!”
장존이 공격을 가해온 순간, 수면에 비친 장존 역시 한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건져내려고 하는 것은 한제의 체내에서 억지로 분리한 선인의 혈맥이었다.
한제의 체내에서는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참아내며 한제는 푸른 핏줄이 잔뜩 돋아난 얼굴을 똑바로 장존에게 향했다.
‘조금만 더⋯⋯.’
대량의 금빛이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되었고 금빛 피도 전신의 모공을 통해 퍼져 나갔다. 피를 만들어내는 곳이자 혈맥의 힘에서 가장 중요한 골수 또한 뼈에 생겨났던 수많은 균열을 통해 흘러나왔다.
의절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피와 골수가 모조리 빠져나갔다. 광인에게서 얻은 행운을 모조리 잃은 셈이다.
한제의 몸에서 흘러나온 금빛 액체는 한데 응집되어 하나의 인영을 이루었는데 한제와 똑같은 모습이라 마치 혼 같았다.
한제의 체내로부터 분리된 금빛 인영은 7척 정도 위로 떠올랐다. 한제와 이 인영은 얇은 금빛 실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 실은 점차 줄어들었다.
금빛 인영이 멀어질수록 한제 미간의 반점은 금빛을 잃어갔다. 오른쪽 눈동자에 나타난 고마의 반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존이 뻗었던 손을 확 잡아채자 한제와 금빛 인영을 연결하고 있던 금색 실이 모조리 끊어지면서 한제와 선인의 혈맥은 완전히 분리됐다.
분리된 금빛 인영은 꾸물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한 방울의 금색 핏방울로 응집되었다.
그 안에는 반쯤 완성된 선인의 불멸체 문양이 들어 있었다. 광인이 한제에게 준 모든 행운을 응집시킨 결과물인 셈이다.
선인의 혈맥을 잃고 체내 저항력이 사라지자 한제는 광인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펑, 펑 소리와 함께 고신의 육체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선인의 불멸체로군. 다시 한 번 묻겠다. 어디에서 얻었지?”
장존은 감격 어린 눈으로 허공에서 번득이는 금빛 핏방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한편으로는 짙은 두려움도 느껴졌다.
장존은 한 걸음 더 다가와 금빛 핏방울을 움켜쥐기 위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한제의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이 강력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는 혀끝을 깨물어 도고의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피는 한 자루의 붉은 칼이 된 듯 저물공간을 열더니 거대한 검은색 누각을 꺼냈다.
누각이 나타나자 세상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한제가 내뱉은 도고의 피는 누각 위에 흩뿌려져 누각에 달린 세 개의 창 중 하나를 완전히 붉게 물들였다.
“도고 이한제의 이름으로 네 봉인을 해제하고 자유를 주겠다. 나를 도와 나의 적을 죽여라!”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는 하나의 창문만 열 수 있었다. 엽막이 봉인한 강력한 혼 중 하나를 방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검은 누각의 창문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엽막! 감히 이 적혼자를 그 오랜 시간 가둬놓다니!”
고함과 함께 창문에서 튀어나온 것은 붉은 인영이었다. 이 인영이 나타나자 강력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한제와 매우 가까운 곳에 이르러 있던 장존은 붉은 인영이 나타나자마자 그 기세에 수백 척이나 밀려났다. 덕분에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검은 도포가 뒤로 훌렁 넘어가면서 내내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그때 붉은 인영이 장존과 한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선비를 향해 달려들더니 휘감았다. 선비는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녹아내렸고 순식간에 붉은 인영에게 삼켜졌다.
“크하하하!”
선비를 삼킨 붉은 인영은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내 하늘에서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색 빛이 번득이는가 싶더니 그 붉은 인영과 부딪친 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고 붉은 인영은 그 구멍으로 튀어 나갔다.
★ ★ ★
계내의 주작성, 어느 일반인 도시. 광인은 손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 닭다리를 하나 들고 거지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부러운 듯한 거지들의 시선을 충분히 즐긴 광인은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물더니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젠장할, 그 녀석은 나를 버려두곤 가버렸군. 녀석을 찾아야겠어. 날 이렇게 그냥 내버려 둘 리⋯⋯ 응?”
★ ★ ★
붉은 인영이 광기 어린 웃음을 토해내며 정중로월로 응축해놓은 봉인을 뚫고 나간 그때, 봉인에는 하나의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동시에 이 드넓은 세상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구멍을 중심으로 균열이 하늘 가득 줄기줄기 퍼져 나가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늘에 균열이 일어난 순간 아래쪽의 수면에도 수많은 균열이 일어났다. 온 세상이 격렬한 진동 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네 몸에 도고의 기운이 흐르고 있구나, 꼬마야! 너를 죽여 복수를 하고 싶지만 네가 나를 풀어줬으니 용서해주마! 드디어 자유로구나, 하하하!”
적혼자는 광기 가득한 웃음을 터뜨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갔으나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장존도 진중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적혼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허나 상대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한제는 실망하지 않았다. 장존이 금빛 핏방울을 거두어들이는 것만큼은 잠시나마 면할 수 있었고 적혼자가 봉인을 부숨으로써 강력한 압박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한제에게는 다행이었다.
한제는 얼른 오른손을 들어 머리 위에 떠 있던 핏방울을 움켜쥐었다. 그 핏방울은 선인으로서의 불멸체와 혈맥을 응축시켜놓은 것으로 매우 순수한 것이라 저물공간에는 넣을 수가 없었다. 이에 한제는 핏방울을 손에 쥔 채 몸을 훌쩍 날려 하늘에 난 구멍으로 향했다.
‘저 구멍을 통해 기운이 흘러나갔을 테니 계내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도 이곳의 존재를 느꼈을 거야!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살 수 있다!’
한제는 모든 힘을 발휘해 하늘의 구멍으로 돌진했다.
장존은 정중로월을 통해 한제를 고신과 선인으로 갈라놓은 상태였다. 그의 목적은 선체를 응축시킨 금빛 핏방울이었다. 허나 지금 그는 적혼자의 등장으로 그저 수백 척을 밀려난 것만이 아니라 태고 성신의 대전에 가부좌를 튼 본체가 피를 토해내고 있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까 화살을 움켜쥐어 흩어버릴 때 제법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 더욱 치명적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한제에게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이전까지 체내에서 도고의 힘과 선인의 힘이 완벽히 융합하지 않아 생겨난 저항력과 육신이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허나 고신으로서의 정체성과 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리된 지금 저항력은 사라져 버렸다.
세상일이란 이처럼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한제는 선체를 잃고 선인의 혈맥을 잃었지만 그 대신 다시 고신의 육신을 얻었고 저항력도 제거되었다. 고신의 육체가 가진 놀라운 회복력은 곧장 그의 온몸에 퍼져 잃어버렸던 오장을 조금씩 재생시켰고 곳곳의 크고 작은 부상도 순식간에 아물게 했다. 원신은 매우 기운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고통은 사라진 후였다.
더구나 선체를 응축시킨 금빛 핏방울도 챙긴 상태였다. 만약 이 위기를 잘 넘긴다면 억지로 그것을 융합시키려 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고신과 선인은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융합하려 해봐야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터였다. 그러니 억지로 융합하기보다는 하나의 법보처럼 제련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이후 법보를 체내에 융합한다면 저항력을 피할 수 있으리라.
‘나를 죽음의 위기에 빠뜨렸던 장존이 오히려 또 다른 위험을 제거해줬으니 이는 곧 재난이 행운으로 작용한 셈이로군.’
한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빠르게 날렸다.
한편, 하늘에 생겨난 구멍을 통해 이 세계를 채운 기운이 흘러나갔고 계내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이를 감지해냈다.
★ ★ ★
운해성역. 홍삼자는 소하성역의 칠채계에서 얻은 계외의 수준 높은 수련자를 제련하고 있었다. 이때 그 혼에서 기이한 것을 발견해 자세히 관찰하고 있던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런!”
그는 제련하고 있던 혼을 거두더니 곧장 발아래에서 나타난 파문과 함께 사라졌다.
같은 시각, 중현자의 스승 역시 눈을 번쩍 뜨더니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 ★ ★
곤허성역, 우의 선계.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안개로 휩싸인 밀실에서 폐관수련을 통해 부상을 치료하던 청림이 어느 순간 두 눈을 번쩍 떴다.
“장존!”
그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찢더니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