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31
곤허성역의 시음종에서는 막대한 힘을 가진 한 벌의 진기(陣旗)를 제련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던 남운자가 돌연 고개를 쳐들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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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성역, 아득한 우주.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던 청수가 표정이 급변하더니 퍼뜩 고개를 돌려 곤허성역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사제!”
계내로 퍼져 나가는 어렴풋한 기운을 느낀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곤허성역으로 향했다.
뇌의 선계에서는 전가 노인 또한 어마어마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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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성역. 이전에 한제의 천벌 아래 도망쳤던 청년은 아직도 목적지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가부좌를 튼 채 고민하던 이 청년도 돌연 두 눈으로 금빛을 번득이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어서 벌떡 일어나 한 걸음 내딛더니 파문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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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어느새 하늘의 구멍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장존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는 생각지 못한 변고가 일어난 상황에서도 계획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남몽! 우리의 약속을 잊지 마라! 네 처의 육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마!”
장존은 침착한 목소리로 외치며 비쩍 마른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제가 하늘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한 줄기 파란색 빛이 거대한 장막을 형성해 앞을 막아섰다. 심지어 그 빛의 장막은 파란 빛을 번득이면서 한제를 봉인 안으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한제에게 공격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와 한제 사이의 연은 이렇게 끊어져버린 셈이다.
한제가 복잡한 얼굴로 봉인 안쪽으로 튕겨나간 순간,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장존이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한 줄기 붉은 빛을 소환했다. 이어서 색색의 빛이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일곱 색채의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무궁무진한 이 빛은 찰나의 순간 한데 교차하면서 거대한 일곱 빛깔의 창으로 변했다.
장존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비쩍 마른 손으로 힘껏 창을 내던졌다.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한 기운을 발산하며 날아드는 그것은 죽음의 창이었다.
“칠채창(七彩槍)!”
광인도 이 신통술을 발휘한 적이 있다. 한제 역시 그 신통술의 구결과 결인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깨닫지 못한 터라 직접 발휘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칠채창은 분계고산과 마찬가지로 이 계에 속하지 않는, 최강의 신통술로 소환된 존재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눈앞의 모든 풍경이 흩어져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무궁무진한 일곱 색채의 빛뿐이었다.
한제는 죽음의 기운이 자신에게 드리우는 것을 느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숨을 수도 도망갈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음을 알았다. 칠채창이야말로 그에게 닥친 진정한 재난이었다.
예전에 산봉우리 위에서 보았던 시커먼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듯했다. 퍼붓듯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힘겹게 날갯짓을 하던 하얀 새도 떠올랐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오른 그 새 역시 절망적인 눈빛으로 몸부림쳤지만 결국 검은 구름에 그대로 삼켜지고 말았다.
‘그 새는 이 재난의 전조(前兆)였던가?’
하늘이 일곱 색채의 빛에 뒤덮였고 칠채창이 쉭 소리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한제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이 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삶과 죽음
‘아버지, 어머니. 이제는 너무 지칩니다. 저도 그리 가도 되겠습니까?’
한제의 눈에 어렸던 절망의 빛이 흩어져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해탈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너무도 지쳐 있었다. 쉬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생사의 위기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는, 운명과의 투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일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으면 했다. 주작성에 수련자가 있다는 사실도 조나라 밖에 수많은 수련국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리고 이 주작성은 연맹성역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주작성 너머 수많은 수련성이 있다는 사실도 주작성에 속한 우주는 곤허성역이라는 일개 성역에 불과하고 그 너머로 세 개의 성역이 있다는 사실도 심지어 네 개의 성역은 계내에 불과하고 그 외부에 태고 성신이라고 불리는 계외가 있다는 사실도…
이제 한제는 심지어 계외 너머로도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너머에도 그 너머의 너머에도⋯⋯.
‘이제 다 끝났다. 난 자유야. 모완아, 미안하구나. 난 결국 너를 되살리지 못했어. 평아, 미안하다. 허나 이 아비는 최선을 다했다.’
칠채창이 달려드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한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그의 옷섶은 무너지듯 소멸되어 버렸고 가슴팍은 움푹 파였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이어서 얼굴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칠채창이 수백 척 앞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뜰 안, 곰방대를 한쪽에 내려놓고 연기를 내뿜은 아버지는 정신을 집중해 나무로 작은 말을 조각하고 있었다. 아들의 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이었다.
그런 아버지 옆에서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앉은 한제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아버지는 못할 것이 없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어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키우는 닭과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이따금 고개를 돌려 남편과 아들을 바라보았다.
기억은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수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어 새로운 화면을 구성했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초록이 우거진 깊은 산골짜기였다. 그 산골짜기에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그 앞에 앉은 모완은 부인처럼 머리를 틀어 올린 상태였다. 그녀는 행복이 가득한 부드러운 눈길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기다림을 마침내 끝낸 터라 그저 묵묵히 상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듯했다.
그녀는 칠현금을 연주했다. 부드럽고 경쾌한 곡조가 울려 퍼졌다.
한제는 연주를 들으며 부드러운 눈으로 모완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조각했다.
눈을 맞춘 두 사람 사이에 피어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산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이 화면 역시 조각조각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광풍이 몰아치는 높은 산 꼭대기였다. 말없이 앞을 보고 서 있는 한제에게서 짙은 고독과 슬픔이 느껴졌다.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고 그의 뒤에 서 있던 소년도 그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은 거친 천으로 짠 옷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의 뒤에 서 있으면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그에게는 부드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거대한 산이자 하늘과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무엇도 두려울 게 없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할래요.”
소년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마지막 장면이 깨져 흩어졌을 때, 한제의 육신도 함께 찢겨나갔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칠채창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파란색 빛으로 뒤덮여 있던 하늘의 구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
너무나 갑작스러운 목소리의 등장에 파란 빛도 미처 가로막지 못했고 목소리는 구멍 안까지 또렷하게 흘러들었다.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장존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두 눈에는 평생을 통틀어 몇 번 나타난 적 없는 충격의 빛이 어려 있었다. 심지어 적혼자의 출현에도 이 정도로 놀라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친 그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무엇인지 점점 명확해졌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장존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격하게 떨고 있다!
“하하하, 드디어 찾았다! 젠장할, 나를 내버려 두고 뭘 하고 있었던 게냐?”
파란 빛의 장막에서 나타난 것은 손에 반쯤 먹다 남은 닭다리를 든 광인이었다. 그는 몸에서 한 줄기의 짙은 금빛을 발산하며 의기양양하게 장막 안으로 들어섰다.
“주⋯⋯ 주⋯⋯.”
장존은 말조차 끝맺지 못했다.
광인은 그런 장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있는 한제와 그에게 돌진하는 칠채창을 발견했다. 이내 칠채창은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를 일곱 색채의 빛으로 감쌌다.
잠시 멍하니 이를 지켜보던 광인은 하늘이 뒤흔들릴 듯 요란한 고함을 내지르더니 한제가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넌 죽으면 안 된다! 아직 나랑 제대로 놀지도 못하지 않았더냐! 나를 재미있는 곳에 데리고 가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
광인은 소리를 내지르며 일곱 색채의 빛으로 뛰어들어 막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한제를 끌어안았다.
칠채창에 깃든 파멸적인 힘이 폭발했다. 칠채창이 무시무시한 것은 총 일곱 번의 폭발을 진행할 때마다 그 위력이 증폭한다는 점이었다.
펑! 퍼펑!
폭발음 역시 폭발을 거듭할 때마다 커졌다.
마침내 일곱 번째 폭발음까지 모두 울렸을 때 온 세상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하늘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래쪽의 수면 역시 갈라지면서 이 봉인된 세상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찢기고 부서진 세상의 조각들은 마치 폭풍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폭풍이 이 세상을 우주를 모든 존재를 갈라버리면서 검은 회오리가 나타났다.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회오리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완전한 불멸체를 가진 광인은 연거푸 몇 차례나 와해되었다가 응집되기를 반복하면서도 끝끝내 혼수상태에 빠진 한제를 끌어안았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은 검은 회오리로 빨려 들어갔고 이내 회오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때, 폭풍 아래 산산조각 나고 있는 세상에서는 장존의 모습도 점차 흐려졌다. 그는 검은 회오리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로 미쳤군. 미쳤어. 이한제에게 선인의 불멸체를 넘긴 것도 그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당시의 그였다면 절대 누군가를 구하려 했을 리가 없어. 그는⋯⋯ 정말로 미쳤다.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지.”
장존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고 점점 흐려져 갔다.
한데 그가 막 흩어져 사라지려 한 순간, 바로 곁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전가 노인이었다. 태고 성신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곳이라 구멍을 통해 흘러나온 기운을 느꼈음에도 여기까지 이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노인은 곧장 오른손을 들어 흐릿해진 장존을 가리켰다.
장존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심적인 충격이 너무 커 집중력을 잃은 상태였던 그는 공격에 적중당했고 신음을 흘리며 무너지듯 사라졌다.
전가 노인은 미간을 팩 찌푸린 채 검은 회오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