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37
새 역시 한제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꽈르릉!
새와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순간, 천둥번개가 한층 격렬해졌다. 한제는 멍하니 서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나타난 생각들은 결국 하나의 흐릿한 목소리가 되었다.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창문 앞에 선 한제는 비바람을 맞으며 내리치는 천둥번개를 마주했다. 지금 그의 시야에서는 세상 모든 것이 흩어져 사라졌고 유일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하얀 새만 남아 있었다.
새는 천둥번개 아래 한 줄기 빛이 되어 한제에게로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코앞에 이른 새는 창문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고는 묵묵히 한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한제 역시 그 새를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한테 말을 한 게 너야?”
한제가 중얼거렸다.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한제의 두 눈이 혼란에 잠겼다. 새는 한제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훌쩍 날아올라 상공을 몇 바퀴 선회한 뒤 구름을 향해 돌진하며 사라져 버렸다.
새는 떠났지만 천둥번개는 계속됐다. 그 격렬한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한제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 순간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는 한 줄기 번개 문양이 번쩍 나타났고 동시에 하늘에서 내리치던 천둥번개는 우뚝 멈추었다. 비바람 역시 한제의 손짓 한 번에 밀려났다.
이 순간 멈춘 것은 이 현도에 내리던 비뿐만이 아니었다. 조나라 전체에 내리던 비가 그쳤고 천둥번개는 사라졌으며, 구름은 흩어졌다.
★ ★ ★
조나라의 비 내리는 하늘을 날고 있던 이산과 서희, 주예 등 대산파 수련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보다 앞서 날아가던 한 노인도 충격을 받은 눈빛으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이 기운은⋯⋯ 세상에 이게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란 말인가!”
한편 조나라의 다른 지역. 검은 구름이 무너져 내리듯 사라지고 두 갈래의 긴 빛이 흩어지면서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그중 여인, 류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곁에 있는 사내도 표정이 급변해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조나라의 또 다른 지역, 등가성. 원영기 수준에 이른 등가의 선조 등화원은 좌선을 하고 있다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은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고 심장은 빠르게 쿵쾅댔다.
대산 꼭대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노란 도포의 노인, 황룡진인도 미간을 팩 구겼다.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꼽던 오른손이 바르르 떨리더니 손톱 사이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 ★ ★
같은 시각, 멀리 떨어진 주작국의 강력한 종파. 5성 수련국을 휩쓸기에 충분할 만큼 막강한 이 종파는 온통 혼과 그 혼들의 곡성으로 가득 뒤덮였다. 멀리서 보면 꼭 거대한 깃발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수많은 혼들로 뒤덮인 하늘에는 한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바로 둔천의 사형이었다.
“찾을 수가 없어. 벌써 서른일곱 번이나 예측을 해보았는데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연혼종에는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인가⋯⋯?”
“우리 연혼종이 다시 굴기할 날은 오지 않는 것인가! 더는 명맥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없단 말인가!”
중년 사내는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허!”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무언가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 대량의 수명과 생기를 소모해가며 연달아 아홉 번이나 예측을 했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믿을 수 없는, 심지어 황당할 정도의 결론이었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나이법을 이용해 조나라로 향했다.
★ ★ ★
조나라의 어느 현도. 고요한 이 도시의 작은 객잔 2층 방 창문 앞에 선 한제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인과 결과…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그는 책상 앞으로 돌아와 꺼진 촛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 목소리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창문 밖에는 비도 바람도 없었다. 밤이 지나 아침 해가 떠오르자 일찍 일어난 사람들은 지난 보름 내내 어두웠던 하늘이 맑게 갰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쏟아져 내려 사람들에게 활기를 더했다. 마치 여름이 일찍 찾아오고 우기가 일찍 물러난 것 같았다.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일어난 대복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한제에게 소리쳤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내가 손짓을 한 번 하니 천둥번개가 물러났지! 하하! 역시 난 대단해! 보아하니 난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구나!”
한제는 생각을 정리한 채 빙긋 웃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저 미간이 약간 부은 것처럼 아플 뿐이었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대복을 바라보았다. 대복이 밝아진 모습에 한제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대단하군. 네 꿈속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천둥번개와 비가 다 사라졌어. 그렇지?”
한제의 말에 대복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 ★ ★
현도에서의 시험을 닷새 앞둔 때부터 한제는 시험장을 배치받으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객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지금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탈락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또 몇 년을 묵묵히 기다리며 다음 시험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콧대만 높은 친척들에게 부모님까지 무시당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서 기다리기 심심했던 대복은 한제가 공부하는 동안 도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그는 몇몇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기도 했고 더욱 인색해지기도 했다.
엿새째 되는 날,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봇짐을 멘 대복과 함께 객잔을 나섰다.
그가 시험을 볼 곳은 현도 서쪽의 3번 시험장이었다. 길은 매우 붐볐고 길 양옆으로 적지 않은 좌판이 벌어져 있었다. 시험을 보러 가는 서생들에게 먹을 것들을 팔기 위한 좌판이었다.
눈 닿는 곳마다 시험을 보러 온 수많은 서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잔뜩 긴장한 그들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부랴부랴 시험장으로 향했다.
만두를 몇 개 먹은 한제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 후 대복과 함께 시험장에 도착했다. 시험장에는 사람들이 빽빽했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그간 공부한 것들을 복기하고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두 명의 관원이 냉랭한 얼굴로 서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존재가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묵직하고 엄숙하게 만들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뒤에서는 대복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급격히 우울해졌다. 다른 서생들의 시동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지 않아 그의 존재는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눈에 띄었다.
뭔가 투덜거리던 대복은 만두를 꺼내 덥석 물었다.
연혼종의 과(果)
댕-! 댕-! 댕-!
시험 시간이 되었다. 현도 전체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분위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종소리가 울린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서생들은 하나둘 눈을 떴다. 서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시험장 입실! 뭔가를 적어둔 쪽지가 있다면 알아서 내놓도록! 공연히 나중에 들켰다가는 영원히 시험 자격을 박탈할 것이다!”
비단옷의 관원 중 한 명이 외쳤다.
곧이어 하나둘 시험장으로 들어간 서생들은 답안을 베껴 쓰기 위한 쪽지가 없음을 확인받고 나서야 자리를 배치받았다.
대복은 시험장 밖에서 한제를 향해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이 미간을 팩 찌푸리며 노려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대복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자리로 향했다.
이윽고 입실을 마친 서생들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종이를 펼쳤다.
감독관이 봉랍되어 있는 시험지를 펼치자 주위는 곧 붓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이 남았다.
한제는 침착하게 먹을 갈며 앞에 놓인 종이를 한참이나 바라볼 뿐, 오래도록 붓을 들지는 않았다. 시험 시간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로 꽤 넉넉한 편이었다. 생각하고 글로 옮길 시간은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제처럼 생각에만 잠겨 있던 서생들도 하나둘 붓을 들었다. 아직도 붓을 들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은 한제뿐이었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하나의 그림이었다. 무척 단순한 그림 속에는 산과 그 위에 꼿꼿이 선 큰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는 듯 나뭇잎은 한쪽으로 쏠린 상태였다.
산 아래에는 그 산을 지키는 사람이 사는 것으로 보이는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림의 의미는 명확했다. 나라나 한 가정의 중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곳의 모든 서생은 이를 알아차리고 글을 짓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그 그림을 본 순간 5일 전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목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원인과 결과⋯⋯.’
시간은 착실히 흘러 눈 깜짝할 사이 정오가 되었다. 벌써 답안 작성을 마친 사람도 있었다. 채 마르지 않은 먹물을 말리기 위해 종이를 후후 불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드러났다가도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제는 여전히 그림만 바라볼 뿐 붓도 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일은 흔치 않았기에 몇몇 감독관들도 한제를 힐끔거렸다.
답안지를 제출한 서생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또는 풀이 죽은 기색으로 시험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