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48
“난 평생 수많은 경험을 했다. 그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에 연관되어 있지. 이한제, 모르겠느냐? 넌 평생 수련하고 하늘마저 놀라게 했으며, 봉계 지존이 되었는데도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세 개의 도과를 삼키고 몽도술을 이용해 2천 년 전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네 생각과 도과의 혼잡한 도념, 몽도의 힘과 네 기억을 이용해 이 세상을 만들었지!”
비틀거리며 옆의 바위에 걸터앉은 한제의 머리카락이 점점 산발이 되었다.
“네가 이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사실과 그간 내가 해왔던 이 모든 것이 네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말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한제의 목소리는 한층 더 거칠어졌다.
“넌 모든 것을 생생하게 만들었다. 아주 잘해냈어. 심지어 유금표의 기만책까지 흉내 내 너 스스로를 속이고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게 했다. 하지만 넌 나를 얕잡아봤다. 너 스스로를 얕잡아봤어! 너는 이한제이며 봉계의 지존이다. 아직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 않았음에도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를 좌절시킬 수 있지. 또한 엄청난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살아나온 너는 공의 문 안으로 들어가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되려고 하고 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 역시 이한제다! 난 수련의 길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깨달았다. 귀신 따위 두렵지 않아. 너라고 해도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넌 스스로를 속이고 네가 만들어낸 이 세상에 스스로 침잠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원인과 결과의 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그 사실을 어찌 알아채지 못하겠느냐!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싶은 너는 스스로에게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해줄 대학자 소도영을 만들어냈고 류미와의 원인과 결과를 끊어버렸다. 류미가 단 두 번 만났을 뿐인 내게 단약을 준 것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
한제의 목소리에서는 떨림이 사라졌고 힘이 실려 갔다.
“몽도를 발휘하기 직전 홍접에 대해 들었던 너는 그녀의 문제까지 이 꿈속으로 끌어들여 또 하나의 원인과 결과를 완성했다. 너는 또한 염천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연혼종의 인과 역시 완성했지.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분명 처음에는 몰랐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광인을 만난 순간, 모닥불이 꺼진 순간, 그리고 광인의 오른손 손목에 찍힌 낙인을 본 순간 알아차렸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포효에 가까웠다.
“난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50년이 넘는 세월을 스스로를 속여 온 나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다! 넌 이것이 원인과 결과라고 생각하겠지만 틀렸다! 완전히 틀렸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모완과의 인과를 끊으려는 이 상황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분노가 담긴 그의 목소리가 하늘로 퍼져 나갔다.
“이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녀가 더 이상 고통받지않고 완전한 삶을 살게 해주는 길이라고 여기느냐?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네가 날조해낸 거짓에 불과하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넌 나보다도 모른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아직도? 넌 네가 이 인연을 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한제의 노쇠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는 번개가 내리쳤다. 마치 하늘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하늘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 나타났다.
콰쾅!
세상을 갈라버릴 것처럼 회전하는 회오리 너머로 칠흑같은 세상이 언뜻 보였다. 그 검은 세상에는 한 줄기 붉은 빛이 있었고 그 빛 안에는 눈을 감은 두 구의 시체가 있었다. 하나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것이었는데 감겨 있는 두 눈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한제가 내지르는 포효에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았다.
“넌 절대로 끊지 못한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회오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못 끊겠다면 방해하지 마라! 네가 말하는 원인과 결과는 내가 보기에는 어린애들 장난과 다를 바가 없다!”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거대한 회오리가 콰쾅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점점 작아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져 하얀 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하얀색 점은 한 마리 새가 되어 한참이나 상공을 선회하다가 먼 곳으로 날아갔다.
한제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진실과 결과란 무엇인가? 난 이 세 개의 질문을 위해 살아왔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보다 이 질문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제부터는 도과도 기억도 허상의 세계도 내게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던 한제는 이내 시선을 거둬 죽은화산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렇게 한참 뒤에야 돌아선 그는 노쇠한 몸뚱이를 이끌고 걸었다.
조나라를 떠난 지 19년 하고도 6개월이 되던 때였다. 길가 객잔에서 두 잔의 술에 인사불성이 된 이후로 57년째 되는 해이기도 했다.
지금의 한제는 거의 80살이 되어 있었다.
화분국을 제외하면 이 대륙에서 한제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나라가 없었다. 화분국은 한제가 마지막으로 찾아갈 곳이었다.
★ ★ ★
모완이 몸담은 종파가 자리한 산에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주인 없이 비워져 있었던 것 같은 집이었다.
한제는 그곳에 머물렀다. 이 집에서는 저 멀리 모완의 종파를 볼 수 있었고 그러면 모완이 보이지는 않아도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생각하지도 고민하지도 말자.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비와 눈이 내리는 것을 계절이 교차하는 것을 바라보자.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신경 쓰지 말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여생을 보내자.”
해가 뜰 때도 질 때도 한제는 바위에 걸터앉아 저 멀리 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상 모든 원인과 결과는, 그것을 원인이라고 부르면 원인이 되고 결과라 부르면 결과가 된다. 집착할 필요도 이유를 궁리할 필요도 없는 법.”
한제는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먹을 음식도 없었다. 배고픔을 비롯한 모든 것을 그는 이미 잊은 상태였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그저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저 멀리 종파 안에서 수많은 수련자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중에는 이모완도 있었다.
“이 세상, 이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하나의 인연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것을 연기(緣起)라고 한다⋯⋯.”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 7년이 지나갔다. 이 7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은 한제는 여전히 바위 위에 앉은 채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편, 그러는 동안 모완의 종파에서도 한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이에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하나둘 다가와 한제를 살폈고 그의 혼잣말에 놀라곤 했다.
그렇게 한제의 바위 주변으로는 점점 많은 수련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구든 이곳에 발을 들인 수련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둘러앉아 한제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지나자 심지어 화분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수련자들도 찾아왔다. 개중에는 아직 축기기에 이르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영변기에 이른 사람도 있었으며, 이미 문정기에 이른 자도 있었다. 그러나 수준과 무관하게 한제의 눈에는 그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수준과 무관하게 그들은 그저 묵묵히 앉아 일 년에 한두 번 입을 열어 중얼거리는 한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한제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조용히 좌선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게 하는 것 같았다.
“인연이 한데 모이면 최종적으로 결과가 된다. 이것이 바로 원인과 결과 인과다. 난 수십 년의 탐구와 깨달음 끝에 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또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연(緣)이다. 연이 없으면 인과도 없는 법이다.”
한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산 아래까지 가부좌를 튼 수련자들로 빈틈없이 꽉 차버렸다. 한제가 자리한 산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리는 가부좌를 튼 수련자로 가득 찬 상태였다. 이 수련자들은 마치 한제를 숭배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몰려든 수련자 중에는 연혼종의 염천과 둔천을 비롯해 다른 제자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설역국 수련자들도 일전에 정자 앞에서 한제와 만난 바 있던 냉랭한 여인의 지휘하에 몰려들었다. 여인의 품에는 영원히 갓난아이 상태로 남아 있게 될 여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주무태를 비롯해 한제에게 익숙한 얼굴들도 빠지지 않았다. 운작자도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저 멀리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심지어 등화원과 황룡진인, 서희, 주예 그리고 이산을 비롯한 이들 역시 모여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작자가 나타났다. 그는 한제 상공에서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다가 빈자리에 앉았다.
“나와 류미가 만나고 인과를 맺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연기 때문이고⋯⋯ 나와 연혼종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연기 때문이며⋯⋯ 홍접과 그 외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한바탕 꿈에 불과한 이 세상도 전부 다 연, 연, 연… 연 때문이다. 연이란 외부의 힘이다. 이로 인한 변화는 원인이 되며, 그 둘이 결합하면 결과가 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자와 여자는 원인이며, 그들이 연이닿아 낳게 되는 아이가 바로 결과다.”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는 저 산 위의 종파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얀 옷과 어깨 위로 늘어뜨린 긴 머리… 당시와 똑같은 모습이지만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진 모완이었다.
“이리 와.”
한제의 모습은 전보다 한층 늙어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지난 몇 년 동안 깨달음을 얻는 사이 그 스스로 하늘이 되고 땅이 된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고향
오른손을 뻗어 모완을 소환한 한제의 눈빛은 따뜻했고 그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어려 있었다.
모완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어렸지만 그와 동시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마치 영혼과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듯한 익숙함, 수천수만 번의 윤회를 거듭한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봉인과 같은 한 줄기 흔적이 그녀의 마음에 남아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한편 한제와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한제 곁으로 다가온 모완은 그의 손에 이끌려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한제와 함께 반경 수백 리를 채운 수많은 수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연으로부터 시작된 원인과 결과는 결국 세상 속에서 사라지니 이를 성공(性空)이라 한다. 그것이 사라지는 이유는 존재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없고 사라지지 않으면 공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내가 하나의 원인과 결과를 완성함으로써 깨달은 것이기도 하지. 그러나 완성을 하건 못 하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그것은 끝이 아니라 공이 되는 것이다.”
한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왼손으로 모완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의 손에는 아무런 힘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 손끝이 미간에 닿은 순간 모완의 생각과 기억을 막고 있던 봉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몸을 바르르 떤 모완은 한제가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처음으로 기억을 되찾은 사람이 되었다.
“한제⋯⋯.”
모완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행복과 온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한제의 늙은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손을 들어 가만히 쓰다듬었고 이내 꼭 끌어안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렇다. ‘사라진다’는 표현을 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표현에는 진실과 거짓이, 삶과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은 사실 전부 연기성공(緣起性空)… 그다음 구절이 있지만 내가 그 구절을 읊고 나면 이 꿈은 끝나고 만다.”
한제는 모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긴 꿈이었다. 조나라 객잔에서 만취했을 때부터 여태까지 벌써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있었다.
바위 주위와 산봉우리 아래, 그리고 산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리에는 수많은 수련자가 들어찼다. 꿈속에서 한제와 한 번이라도 마주쳤던 적이 있는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들은 얌전히 제자리에 앉아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제는 모완을 끌어안은 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원인과 결과는 절대 끊어질 수 없다. 그것은 본이 공(空)이기 때문이지. 원인과 결과는 그저 원인과 결과일 뿐. 연(緣)에서 시작해, 공(空)으로 흩어지는 것이야.”
한제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며 수많은 버드나무 씨앗으로 변했다. 이 버드나무 씨앗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들은 허공을 떠돌며 아래쪽으로 퍼져 나가는 한편 각자의 주인을 찾듯 수천 리를 채우고 있는 수련자들을 스쳐갔다.
그중 두 개의 씨앗이 서로 찰싹 달라붙은 채 한제와 모완의 앞을 지나갔다. 마치 두 손을 꼭 잡은 채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날, 오라버니는 내가 눈을 감는 것을 바라보았지. 오라버니의 슬퍼하는 모습이, 눈을 감는 순간 내 마음에 그대로 새겨졌어. 이 꿈에서, 난 오라버니와 함께하면서 오라버니가 떠나는 모습을 그리고 오라버니가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볼게요. 그리고… 이 꿈속에서 영원히 기다릴 거야.”
모완은 부드러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주름이 잔뜩 진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모완의 목소리는 깊은 바다처럼 잔잔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한제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세월의 흐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모완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제는 또한 모완이 자신에게 해준 말을 뼛속 깊이 새겼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꿈속 세상에는 현실 세상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산골짜기에 모완과 함께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꽃들이 가득 피었다가 시간의 흐르면서 떨어져 버렸다. 영원해 보이는 것은 한제와 모완 두 사람뿐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칠현금 소리까지 더해져 한제는 이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그 산골짜기에서 한제는 모완의 예쁜 얼굴이 시들고 긴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 잔인하고 잔혹한 광경은 그의 심신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를 슬픔에 잠식시킨 바 있었다.
또한 그는 모완의 시체를 끌어안고 하늘을 향해 목이 터져라 원망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이 널 데려간다면 나는 너를 되찾아올 거야!”
언제나 머릿속에 맴돌던 그 말은 이 꿈속에서 한제의 힘으로 녹아들었다.
“이 꿈속에서는 내가 오라버니의 마지막까지 함께할게.”
한제를 꼭 끌어안은 모완은 이별이 두려운 듯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신조차 이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제는 비쩍 마른 두 손을 들어 모완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여인은 심지어 죽은 뒤에도 외로운 한제의 마음속에 점점 더 깊이 새겨지면서 그의 모든 것이 된 존재였다. 류미도 이천매도 여태껏 한제가 봐왔던 수많은 미녀들도 그녀를 대체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