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53
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위를 맴돌던 붉은 빛이 와해됐고 그 순간 한제는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광인을 거두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와해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이전에 장존에 의해 뽑혀 나왔던 한 방울의 피로 응집됐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금빛을 내뿜었다. 선인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빛을 발하는 피는 선인의 불멸체의 정수라 할 수 있었다.
한제는 그 피를 쥐고 미간에 꾹 눌렀다. 핏방울은 그의 체내에 녹아드는 대신 미간에 금빛 점을 남긴 채 번쩍 반짝이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것은 앞으로 나의 법보가 될 것이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난 70여 년간 잠들어 있던 곳을 둘러보는 눈에는 아쉬움과 동시에 세상의 도리에 대한 깨달음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내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전방에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막 그 회오리로 들어가려던 한제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회오리가 돌연 둘로 나뉜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한제의 눈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인 셈이다.
두 개의 회오리는 서로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주작성이었다.
다른 회오리 안에서는 어렴풋한 금빛이 번득였고 짙은 선기도 느껴졌다. 한제 미간의 금빛 핏방울이 그것에 호응하는 듯했다.
“저곳은⋯⋯.”
한제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오른손을 들어 금빛 회오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회오리의 회전이 느려졌고 한제는 그 안으로 신식을 뻗었다. 그러자 회오리 너머의 놀라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는 아홉 개의 태양이 세상을 발하고 있었다. 곳곳에 솟은 산봉우리는 웅장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졌으며, 호수와 강도 많았다. 한제의 신식으로는 고작 1만 분의 1도 살피지 못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계내와 계외를 몇 곱절 불린 것보다도 넓고 거대할 것 같았다.
그곳은 선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었고 수많은 식물 중 낯익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짐승 중에도 선기를 풍기는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의 녀석들이 있었다.
한제는 그곳에서 강력한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칠채계에서 봤던 칠채도인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이었다.
또한 한제는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남색 빛이 우뚝 멈추더니 남색 옷을 입은 소녀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일고여덟 살 정도의 예쁘장한 소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볼 듯한 눈빛으로 심지어 한제까지 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한제는 혼란한 와중에도 신식으로 그곳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회오리에서 기인한 듯한 한 줄기 힘이 한제의 신식을 가로막고 급기야는 튕겨냈다. 이에 한제가 보고 있던 모든 것은 빠른 속도로 멀어졌으며, 튕겨나간 그의 신식은 두 개의 회오리 앞으로 되돌아왔다.
기이한 세상으로 이어지는 회오리를 한참 말없이 바라보던 한제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가 주작성으로 이어지는 회오리로 발을 들이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호기심에 가득 찬,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가버린 거야? 이곳은 선강 대륙이야. 내 이름은 아가 네 이름은?”
이에 한제는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까마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흐릿한 목소리는 점차 흩어져 사라졌다.
“선강 대륙!”
홱 돌아선 그는 기이한 세상으로 통하는 회오리를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아니었다. 분명 광인은 자신의 고향이 선강 대륙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한제는 어렴풋이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계내와 계외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아낼 것도 같았지만 아직은 막연했다.
“선강 대륙, 칠채도인, 청수, 광인, 장존, 전가 노인, 천도의 양육⋯⋯ 천역주⋯⋯ 원고 선역⋯⋯ 그리고 전가 노인이 장존과의 대화에서 언급했던 내부(內府)⋯⋯. 여기에는 다 연관성이 있어. 분명 계내와 계외에 관련한 어마어마한 비밀일 터! 몽도를 발휘하기 전의 내게는 그것에 대해 알 자격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한제는 서늘한 두 눈을 번득이며 주작성으로 이어진 회오리에 들어섰고 이내 사라졌다.
★ ★ ★
곤허성역.
주작성 근처에 나타난 거대한 공의 문은 본원 여섯 개의 힘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없었다. 그저 형태 없는 강력한 위압감만이 허신천존을 포함한 계외의 수련자들을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섯 개의 본원이라니, 장존도 해내지 못한 일 아닌가! 누군지 몰라도 저 문을 연다면 공열기 초기 수준으로도 공현기 초기를 넘어서고 심지어는 순식간에 공의 경계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계내의 수련자라면 반드시 죽여 버려야 해!’
생각을 정리한 허신천존은 다시 주작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의 그는 분신으로 와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공현기 초기에 이르렀다.
주작성의 진 근처에 이른 그가 들어 올린 오른손은 보라색 안개로 변하면서 꿈틀거리더니 폭풍처럼 주작성 밖의 진을 휩쓸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몇 달이나 주작성을 지켰던 진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고 주작성은 모든 방어막을 잃게 됐다.
“진격하라!”
허신천존은 몸을 휙 날려 무너진 진 위에 선 채 주작성에 세워진 봉계 지존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 조각상의 주위에는 수천 명의 계내 수련자가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마지막 전투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차갑게 웃던 허신천존은 손을 들어 그 조각상을 파괴하려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그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몸을 홱 틀어 공의 문을 바라보았다.
‘문을 열려는 자다!’
세 번째 단계
주작성 밖. 공의 문 옆에 회오리 하나가 나타났다. 회전하고 있는 이 회오리에서는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기운이 어렴풋이 흘러나왔다.
허신천존이 돌아선 순간, 청의의 사내 역시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돌렸다. 주진도 마찬가지였다. 주작성의 진이 붕괴하자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던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도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청의의 사내에게, 허신천존에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주진에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이제 주진은 거의 혼비백산했다.
주작성 봉계 지존의 조각상 주위에 모여 있던 계내 수련자들 또한 그 기운을 느꼈다. 그 안에는 기억 속에 수십 년간 묻혀 있던 익숙함이 어려 있었다.
“죽지 않았을 거라고 했지! 그 녀석은 죽지 않는다고! 내 형제와도 같은 그 녀석이 죽었을 리 없다고! 크하핫!”
사도환은 몸을 바르르 떨며 광기 어린 기쁨의 눈빛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남운자는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여태까지 과연 누가 무려 여섯 개의 본원으로 공의 문을 소환했는지 추측하고 있던 그는 공의 문 근처의 회오리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낀 순간 사도환과 마찬가지로 크게 웃었다.
“그래! 위대한 봉계의 지존이 그렇게 죽었을 리 있나! 하하하!”
십삼과 노부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청룡성황의 눈에서는 감격의 빛이 번득였다. 용반자 역시 미소를 띤 채 회오리를 바라보았다.
특히 십삼은 누구보다도 흥분한 상태였다.
“봉계의 지존이다! 봉계의 지존!”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곤허성역에 영광을!”
조각상 근처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수련자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환호를 내질렀다. 개중에는 회오리에서 발산되고 있는 기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사도환 등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곧장 하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름, 봉계의 지존, 이한제!
계내 수련자들의 외침은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주작성 밖의 우주에까지 퍼져 나갔고 막 돌진하려던 계외 수련자들의 귀에도 닿았다.
그때, 백의에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서늘하고 냉랭한 표정의 사내가 회오리에서 걸어 나왔다. 마치 저승에서 살아온 듯한, 봉계의 지존 이한제였다.
“내가 돌아왔다.”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계외의 수련자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바들바들 떨리며 무의식적으로 물러났다.
특히 주진은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며 다급하게 후퇴했다.
청의의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상대가 죽은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무려 여섯 개의 본원으로 공의 문을 소환한 채 나타났다. 이에 내내 지켜왔던 그의 냉정함은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봉계의 지존이 돌아왔다!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한제가 나타나고 계내의 수련자들이 잔뜩 격앙된 반면 허신천존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졌다. 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한 걸음 나섰다.
“용케도 살아남았군. 허나 오늘은 반드시 죽여주마! 또한 이번에야말로 네 육신을 기필코 손에 넣고 말 것이다!”
당시의 일은 허신천존에게 엄청난 치욕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 화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태고오존의 일인인 그로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냥 도망쳐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엄청난 속도를 발휘해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는 허신천존의 분신이 달려든 순간 냉랭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동시에 그의 미간에서 한 줄기 어마어마한 기운이 발산됐다.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아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학자의 기운이었다.
이 기운은 하늘을 물리치고 귀신을 겁에 질리게 하며 세상의 규칙마저 파괴할 법했다.
수련자 역시 사람이었다. 그게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 해도 본질은 사람이었다.
“물러나라!”
한제는 허신천존을 노려보며 외쳤다. 이때 그에게는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일반인이나 미물, 산, 바위, 한 그루 나무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순간 허신천존 분신은 우뚝 멈추었다. 그는 눈앞의 한제가 마치 이 세상이 된 듯 놀라운 기운을 발산하는 것을 감지했다.
이 기운은 영혼에 그대로 떨어졌고 허신천존은 수련자의 길에 오르지도 않았던 소년 시절,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실감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기운은 그의 수준이나 신분과는 무관하게 영혼을 뚫고 들어왔다. 한제의 말이 곧 세상의 규칙마저 압도할 수 있는 규칙이, 일반인에게 내려진 황제의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신천존은 이 모든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
허신천존은 무의식적으로 수십 척이나 물러났다. 이제 경악은 두려움으로 변해 있었다.
허신천존이 이럴 정도니 다른 계외 수련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제를 향한 그들의 눈에서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제는 그의 호통에 물러나는 허신천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매를 휘둘러 공의 문을 가리켰다.
“천둥번개, 화염, 원인과 결과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살육. 여섯 개의 본원이여, 이한제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공의 문을 열어라!”
그 목소리는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공의 문에 무궁무진한 압박을 가했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수련자의 길에 올랐을 때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으나 마침내 그런 날이 온 것이다.
이전에 공의 문을 마주했을 때에는 끝끝내 여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임을 저 문열 열고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한제가 들어 올린 손에 여섯 갈래의 본원이 허상으로 나타나 다섯 손가락 주위를 맴돌며 빛의 공을 형성했다. 한제는 그 공을 콱 움켜쥐어 체내에 융합시켰다.
다음 순간, 한제는 훌쩍 튀어 올라 수많은 계내외 수련자가 보는 가운데 공의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당시 청수가 살육의 본원으로 공의 문을 소환해 단칼에 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강력한 힘에 공의 문은 한 귀퉁이가 부서지기도 했다.
사실 공의 문을 부술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주진의 경우 온 힘을 다했는데도 공의 문을 겨우 여는 데 그쳤다. 향불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공의 문을 완전히 열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청수처럼 가볍게 문을 열고 그 일부라도 부순 사람은 매우 희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