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57
“안 돼!”
허신천존은 또 다시 경련을 일으키며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진실과 거짓.”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 세상 모든 것은 거짓이 됐다. 뒤이어 그가 눈을 뜨자 이 세상 모든 것은 진실이 됐다. 하지만 그 후 다시 눈을 감은 한제는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아래로 힘껏 내리쳤다.
“살육!”
쾅!
그의 손바닥은 마치 칼처럼 살기 가득한 붉은 빛을 발산하면서 허신천존의 정수리를 갈랐다.
펑, 펑!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신천존의 육체는 그렇게 갈라져 버리며 두 덩어리 보라색 안개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한제는 둘로 나뉜 안개가 그저 한 벌의 옷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갈라지면서 허신천존 분신의 본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한 덩어리의 보이지 않는 기운이었다. 형태가 없기 때문에 그 존재조차 감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한제 역시 진가도를 발휘한 상태에서만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형태 없는 기운은 허신천존의 본체가 뿜어낸 숨결이자 분신의 핵심이었다.
허신천존이 허신(虛神)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그의 육신이 아주 오래 전부터 허상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육신이 한 덩어리 기운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합한지도 몰랐다. 허신천존은 태고오존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죽이기에는 가장 어려운 존재였다.
허신천존 분신이 한 덩어리 기운의 형태로 뒤로 물러나던 그때, 청의의 사내가는 막 달려들다가 허신천존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한 방울의 금빛이 미간에서 나와 그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 금빛 액체를 움켜쥔 순간, 한제의 체내에는 한 자루 활이 나타났다. 한제는 스산한 기운이 짙게 풍기는 활을 손에 쥐었다.
한제도 금빛 피 없이는 이광의 활을 사용할 수 없었다. 사실 이 활은 당시 그가 선인의 혈맥을 추출당했을 때 화살과 함께 이미 그 피와 하나로 융합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 피 역시 한제의 것이었다. 그러니 그 피를 가지고 있는 한 한제는 활의 존재를 감지할 수도 그것을 소환해 사용할 수도 있었다.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 이 활을 사용한다면 세상에 두려울 존재는 없었다. 이 활은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왼손으로 활을 쥐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허신천존을 겨냥했다.
시위를 당기자 온 우주가 곧 무너져 내리려는 듯한 소리가 한제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엄청난 위기감 속에서 달아나던 허신천존은 세상에 녹아들며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췄다.
청의의 사내 역시 다급하게 도망치다가 균열을 내더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화살로 곤허성역을 되찾겠다!”
한제가 두 눈을 감은 채 침착한 목소리로 외치자 시위에서는 촉끝이 둥근 화살 하나가 매겨졌다. 처음에는 허상에 불과했으나 조금씩 실체를 갖춰가더니 이내 완전한 화살이 됐다.
그 순간, 한제는 시위를 당기고 있던 손을 놓았다.
쐐애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온 우주가 진동하면서 격렬하게 무너져 내렸고 화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실은 채 쏘아져 나갔다.
이 화살의 위력 아래 우주는 다시금 무너져 내리는 한편 일련의 검은 회오리를 형성했다. 그럴수록 화살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위를 당기다
화살이 가르고 지나가자 우주에는 파동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균열 안으로 숨어들었던 청의의 사내는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에서 달려드는 거대한 고리를 본 순간, 그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지난번 정중로월로 구축된 허상의 세계에서와는 달랐다. 그와 달리 지금 그는 본체였다. 그러니 여기서 죽는다면 그의 삶은 정말로 끝나게 될 터였다.
그러나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사내는 하늘을 향해 애원하듯 포효를 내지르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는 한편 한 움큼 피를 토해내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본원의 힘을 발휘했다. 또한 향불의 세계도 열어 모든 향불의 혼을 남김없이 끄집어내더니 피에 녹여 넣었다. 그러자 그것은 겹겹의 얼음이 되어 그의 온몸을 감쌌고 이에 그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쩌적 소리와 함께 수련성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얼음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화살이 수련성만큼이나 거대한 얼음과 충돌했다.
콰르릉!
순식간에 얼음층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가장 깊은 곳에 몸을 숨겼던 청의의 사내는 놀랄 틈도 없이 미간을 두드려 부족 낙인을 무너뜨렸다. 그 힘으로 마지막 저항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화살은 어느새 얼음층을 뚫고는 사내를 관통했다.
“크으으…”
무너져 내린 얼음 안의 사내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피를 토하더니 육신이 그대로 소멸했고 그 안에서 도망쳐 나오려던 원신 역시 경련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 전쟁에서 공현기 수준 수련자가 죽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계외 수련자들은 이 순간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화살은 직선을 그리며 쏘아져 나가고 있었지만 그것이 발산하는 고리 형태의 위력은 곤허성역 전역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누구든 그 고리 형태의 위력에 닿기만 해도 바르르 진동하다가 죽고 말았다.
곤허성역 전체로 퍼져 나가는 이 화살의 위력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계외 수련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과 전투를 벌이던 또는 그들을 피해 달아나고 있던 계내 수련자들은 한숨을 돌리면서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한편, 곤허성역과 운해성역이 교차하는 지역. 허신천존의 분신은 흐릿한 기운의 형태에서 다시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갔다. 안색이 매우 어두운 그는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가늘게 몸을 떨더니 다시 도망쳤다.
‘저 화살이 있는 한 누가 저자를 죽일 수 있으랴! 빌어먹을 저 화살만 없었다면 부상을 입더라도 죽을 걱정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한데 대체 왜 저자가 저 화살과 활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녀석에게 활을 준 장존의 잘못이다! 이제 누구도 저자를 어쩔 수는 없어! 난 더 이상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 어쨌든 도망쳐서 당장 본체와 융합하는 게 우선이다!’
운해성역에 다다른 그는 계외로 돌아가 다시는 계내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데 바로 그때, 그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몸을 홱 돌렸다. 화살 하나가 그의 뒤로 펼쳐진 우주를 무너뜨리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도망치거나 저항할 틈도 없이 곧장 그의 몸을 꿰뚫었다.
쾅!
허무할 정도로 짧은 굉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허신천존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고 기운도 연기처럼 와해됐다.
★ ★ ★
계외 태고 성신의 안개로 가득한 어느 성역 안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그 성역 안에 퍼져 있던 안개가 빠른 속도로 응집되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허신천존의 본체였다.
“크으윽!”
그는 한 움큼 피를 토하며 다급하게 뒷걸음질을 치더니 고개를 들어 깊은 두려움이 어린 눈빛으로 계내 쪽을 바라보았다.
★ ★ ★
곤허성역, 주작성 밖.
한제는 감았던 눈을 떴다. 손에 들고 있던 활은 흩어져 사라졌고 쏘아져 나갔던 화살은 다시 돌아와 금빛 핏방울 안에 녹아들었다.
그 핏방울을 미간에 스며들게 한 한제는 고개를 들어 아직도 흩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회오리를 바라보았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상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아직 한 가지의 절차가 더 필요했다.
그 무렵, 수천 명의 계내 수련자들은 사이에서 남운자가 중얼거렸다.
“봉계의 지존⋯⋯ 그야말로 우리 계내의 희망이야!”
그는 흥분에 가슴이 뛰었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수련을 해온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방금 본 한제의 모습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한편, 사도환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저 멀리 떨어진 회오리 속의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도 격앙된 빛이 어려 있었다.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봉계의 지존에 영광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수많은 계내 수련자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뒤로 보이는 한제의 조각상은 고고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세 번째 천벌이 곧 강림할 것이라는 사실을…
한제는 회오리 안에서 끊임없이 공의 문의 힘을 흡수했다. 이에 따라 그의 체내에 존재하는 여섯 번째 본원, 살육의 본원이 융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융합이 완성된 순간, 한제의 수준은 공령기 중기에 이르렀다.
한제는 손을 들어 회오리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공의 문의 힘이 그 손에 응집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우렁찬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한 자루의 검을 형성했다.
길이는 7촌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것은 한제가 공의 문을 파괴한 뒤 그 회오리 안에서 얻은 기이한 힘으로 응집해낸 본원의 법보였다. 청수가 당시 얻었던 살육의 검처럼 이 검은 한제의 첫 번째 본원, 천둥번개의 본원이 응집하여 형성된 결과였다. 즉, 이것 자체가 천둥번개의 본원이라 할 수 있었다.
뇌전검(雷電劍)에 이어 화염검(火焰劍), 인과검(因果劍), 생사검(生死劍)이 한제의 앞에 떠올랐다.
하지만 다섯 번째 검인 진가검(眞假劍)을 형성하려 했을 때는 회오리 안의 기이한 힘이 대부분 소진된 상태였고 사라질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저 멀리 우주 끄트머리에서 먹먹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천벌의 기운이었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는 공의 문을 파괴한 후 천벌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천벌은 아마 그가 여태 마주했던 모든 천벌 중 가장 강하고 거칠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는 덤덤하게 한 발 나아가며 흩어져 사라지려 하는 회오리를 확 찢어버렸다.
찢어진 회오리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더 많은 공의 문의 힘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진가검도 응집됐다.
뒤이어 나타난 것은 살육검(殺戮劍)이었다. 청수가 준 검이 아니라 한제 자신이 직접 응집해낸 것이었다. 살육검까지 응집되자 회오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의 문의 힘은 매우 현묘했다. 그것은 수련자로 하여금 본원을 융합하게 해 육신을 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본원을 응집시켜 법보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제는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리고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기이한 힘이 매우 얻기 어렵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평생 한 번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 힘이었다.
심지어 이 기운은 법보를 복구할 수도 있을 터였다. 본원으로 법보를 응집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든 것인지 사라져가는 회오리를 보던 한제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정!”
세 번째 단계에 이름에 따라 본질을 명확하게 깨달은 한제의 정신술은 이제 육신만이 아니라 세상 만물을 나아가 모든 작용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이는 몽도를 발휘하기 전이었다면 한제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몽도 이후 대학자의 기질을 갖게 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에게 세상은, 그리고 그 안의 만물은 모두 미물과도 같았다. 이는 그가 거만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차이와 차별을 두지 않게 됐다는 의미였다.
사라져가던 거대한 회오리가 그대로 멎어버렸다. 하지만 정신술도 만능은 아닌 탓에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한제는 회오리 깊은 곳으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오른손을 휘둘러 맹렬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원래는 그의 것이 아닌, 원래는 흩어져 사라져야 할 무궁무진한 공의 힘을 빨아들였다. 뒤이어 저물공간을 열더니 이미 파괴되어 빛으로 변해버린 사신차를 꺼냈다.
수도자와의 첫 번째 싸움에서 파괴된 사신차는 당시 마지막 봉인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도 수도자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그만큼 강력한 법보였다. 사신차 덕분에 넘긴 위기도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