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58
한제는 공의 문의 기이한 힘을 통해 사신차를 고쳐볼 생각이었다.
그는 흡수해둔 공의 문의 힘을 곧장 부서진 사신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사신차가 무너지면서 생겨났던 빛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한제의 두 눈이 희망으로 번득였다. 예상대로 기이한 공의 문의 힘은 분명 법보를 고칠 수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대량의 힘을 흡수한 빛은 점차 고치로 변해가더니 부드러운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동시에 훨씬 더 많은 공의 문의 힘을 흡수했다.
이내 한제가 흡수했던 공의 문의 힘이 거의 다 소진됐을 무렵, 쩌적 소리와 함께 고치에는 균열이 생겼고 그 안에서는 일곱 가지 색채를 띤 나비가 한 마리 나타났다.
나비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일곱 빛깔의 가루가 흩어졌다. 팔랑거리며 한제 주위를 맴도는 나비에게서는 강한 기쁨과 애정이 느껴졌다.
나비는 곧 한제의 어깨 위에 내려앉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하하! 그래, 너도 다시 보게 되니 정말 반갑구나!”
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나비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 나비를 다시 보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나비는 사신차의 영혼이었다.
‘힘들더라도 공의 문의 힘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어! 다른 법보도 수리할 수 있면 난 강력한 구명 신통술을 가지게 될 거야!’
뒤이어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저물공간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깨져버린 청광순의 조각이었다.
청광순에서는 너무도 미약해 언제든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탁한 푸른 빛이 발산됐다.
한제는 남아 있던 공의 문의 힘을 모두 방패로 응집시켰다. 그러자 방패 조각에서 발산되던 탁한 푸른 빛은 생기가 가득 찬 듯 격렬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청광순은 요령의 땅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한 바 있었다. 천운자도 고마도 청광순의 신통술 아래에서는 어쩌지 못했다.
당시 한제의 수준으로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으니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지금이라면 훨씬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청광순의 가장 강력한 부분은 방어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신통술, 몽회원고였다.
끊임없이 기이한 힘을 흡수하던 청광순 조각의 가장자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방패의 형태를 되찾았다. 하지만 공의 문의 힘도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회오리도 금세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본원의 검 여섯 자루를 회오리 안 깊은 곳으로 쏘아 보내 그 안에서 강력한 충격을 가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의 막강한 힘이 실린 충격이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회오리는 억지로 벌어졌다. 한제는 입을 쩍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탄혼이었던 본성을 이용해 공의 문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힘 덕분에 청광순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한제는 뒤이어 고신의 팔뚝 보호대까지 완벽하게 수리했고 오른손으로 회오리 깊은 곳을 강타했다.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회오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순간 한 줄기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의지는 매우 강력했지만 그것을 감지한 사람은 오직 한제뿐이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 의지는 세상이 처음 열리고 처음으로 탄생한 영혼인 듯했다. 계내와 계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 의지로부터 생겨난 것 같았다.
이전이었다면 분명 화들짝 놀라 피했겠지만 대학자의 기질을 풍기며 온 세상을 미물처럼 여기는 그는 겁을 먹지 않았다.
“오늘 네 힘을 빌린 데 대해서는 나중에 반드시 갚도록 하지!”
한제가 덤덤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던 그때, 심신 안의 천역주가 돌연 움직이기 시작했다.
셋째인가
무너져 내린 회오리에서 발산된 그 의지는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한제는 창백해졌지만 조금도 뒤로 밀려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회오리를 응시했다.
회오리에서 발산된 의지는 실질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한 줄기 위압감은 깃들어 있었고 그 위압감 아래 굴복하지 않을 생명은 없을 것 같았다. 굴복하지 않는다면 묵직한 위압감에 그대로 짓눌려 육신과 심신, 도까지 붕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지도 한제를 억누르지는 못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온 세상을 미물처럼 여기며 만물을 평등하게 보는 한제는 회오리 안에서 뿜어져 나온 의지에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찰나의 순간 한제의 심신에 녹아들었던 천역주가 잠에서 깨어난 듯 회전하면서 그 의지를 탐욕스럽게 흡수했다.
이에 한제에게 뻗어왔던 의지는 곧장 뒤로 물러났고 천역주 역시 회전을 멈췄다.
회오리의 의지가 물러난 그때, 한제의 귓가에는 거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세상 만물은 내가 창조한 것이다. 네가 보상해올 날을 기다리마.”
목소리가 흩어져 사라짐과 동시에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짙은 공의 문의 힘이 흘러나와 고신의 팔뚝 보호대에 녹아들었다. 덕분에 조각난 팔뚝 보호대는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한제가 저물공간에서 꺼낸 것은 부러진 깃발이었다. 이 거대한 깃발은 한제가 평생 동안 얻은 것들 중 천역주 다음으로 큰 의미가 있는, 바로 십억존혼번이었다.
둔천으로부터 하사받고 후에 십삼에게 일부 나눠주기도 한 존혼번은 크게 파손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깃발 역시 흘러넘치는 듯한 힘을 흡수하며 극강의 기운을 뿜어냈다.
십억존혼번까지 복구한 공의 문의 힘은 빠른 속도로 수축해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회오리 역시 사라지자 우주 가운데에 남은 것은 한제뿐이었다.
한제의 왼쪽 눈에는 화염이, 오른쪽 눈에는 번개 문양이 깃들어 있었고 미간에는 고신의 반점만이 아니라 세로로 그어진 세 갈래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 세 갈래의 상흔 중 중앙의 것은 원인과 결과 왼쪽은 삶과 죽음, 오른쪽은 진실과 거짓이었다. 살육의 본원은 영혼에 녹아든 상태였다.
한제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묵묵히 관찰했다. 그리고 한참 뒤 다시 눈을 떠 자신의 오른손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 손바닥에는 기이한 도안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낯설지 않은 도안은 방금 전 그가 파괴한 여섯 번째 공의 문, 만공골문이었다.
만공골문 문양은 천천히 응집돼 깊숙이 새겨졌다.
그 무렵,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주작성에서 남운자와 사도환을 비롯한 수준 높은 수련자를 위수로 수천 명의 계내 수련자들이 다가왔다.
남운자는 약간 걱정하는 기색이 어린 얼굴로 저 멀리 떨어진 우주를 살폈다.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먹먹하고 음울한 소리에 그는 자꾸 뭔가를 떠올리게 됐다.
바로 그때, 멀리서 들려오던 먹먹한 소리가 순식간에 더 빠르고 격렬하게 다가왔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며 짙은 전의를 드러냈다. 그는 코앞으로 닥쳐온 천벌에 맞서야 했다. 그것도 이전보다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모를 천벌이었다.
“형님, 해후는 잠시 미룹시다. 천벌이 강림할 거예요. 녀석을 처리한 뒤에 술이나 한잔하시죠!”
한제는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사도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남운자는 ‘천벌’이라는 말에 자신의 예측이 맞았음을 실감하고는 뒤에서 따라오던 이들에게 명했다.
“봉계 지존이 천벌을 맞이하려 하니 밖에서 보호하도록!”
그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계내 수련자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도환은 염려하는 기색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천벌이라니⋯⋯. 내가 공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사도환은 곁에 선 남운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남운자 역시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봉계 지존은 평생에 걸쳐 하늘에 대한 저항심과 거역을 수련해왔네. 그런 이들을 역수(逆修)라 부르는데 나 역시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 보지 못했지. 어쨌든 역수가 도를 깨우치며 하늘에서는 천벌을 내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일이지. 한데 봉계의 지존도 역수였다니⋯⋯.”
그 무렵 저 멀리에서는 한 덩어리 안개가 먹먹하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안개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계내 수련자들이 물러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많은 천둥이 내리치는 듯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 깜짝할 사이, 안개가 한제를 뒤덮었다. 동시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보이지 않는 수만 개의 거대한 손이라도 된 것처럼 주위의 수련자들을 밀어냈다.
남운자와 사도환 같은 수준 높은 수련자들까지도 예외 없이 밀려났다.
심지어 주작성마저 밀려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반경 1백만 리는 짙은 안개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안개 안에는 한제 이외의 어떤 수련자도 어떤 수련성도 없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계내 수련자들은 초조해졌다. 특히 사도환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제를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천벌은 배척력을 품고 있으며 그 배척력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오롯이 한제 홀로 짊어지고 감당해야만 했다.
“역수인 봉계 지존이 이 천벌을 무사히 넘긴다면 그 수준은 공고해질 것이며 계내의 모든 이를 뛰어넘는 존재가 될 걸세!”
남운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편, 이때 안개로 뒤덮인 공간 너머의 우주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보라색 도포를 입은 노인은 매우 진중한 표정으로 짙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강력한 화살의 기운이야! 녀석이 정말 그 화살을 찾았단 말인가! 처음에 봤을 때만 해도 아직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였던 터라 무려 여섯 개의 본원을 가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는 전가 노인이었다.
‘만공골문⋯⋯.’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바닥에는 흐릿한 문양이 하나 있었다. 한제의 손바닥에 있는 것과 같은 만공골문 문양이었다.
‘설마 저 녀석이 셋째인가?’
전가 노인이 미간을 구겼다.
★ ★ ★
태고 성신. 칠흑처럼 어두운 우주에는 거대한 궁전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검은색을 띤 이 궁전은 어두운 우주 속에 마치 녹아든 듯 표류했다.
궁전에는 촛대가 몇 개 놓여 있었다. 허나 그 위의 어스름한 촛불만으로는 어두운 궁전을 환하게 밝히지는 못했고 그저 어렴풋하고 흐릿한 빛만 낼 뿐이었다.
대전의 중앙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고 그 우물가의 촛대 옆에는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한제에게도 익숙한 장존이었다.
한참이나 고개를 숙여 우물을 들여다보던 그가 비쩍 마른 손을 촛불에 가져다 대자 촛불은 그 즉시 픽 꺼지며 한 줄기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러자 장존은 완전한 어둠에 숨겨졌다.
“어찌 이리 죽이기 어려운 것인가? 처음에는 남몽이 막았고⋯⋯ 두 번째는 친히 덫까지 마련했건만 결국 주인님이 나타나다니! 주인님은 미쳤다! 그런 괴팍한 분이 이한제 그 녀석을 살리다니⋯⋯.”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던 거친 목소리는 점차 왜곡되기 시작했다. 장존의 당황한 기색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이한제가 아무런 거부 반응도 없이 이광의 화살과 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주인님이 그자에게 혈맥을 넘겼기 때문일 터. 주인님은 죽지 않았어. 정신이 나가긴 했지만… 만약 모든 기억이 돌아오면⋯⋯ 반드시 나를 벌할 거야. 하지만 그때 그분은 천도를 삼켜 중상을 입고 실종됐는데 내가 뭘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칠채에 굴복하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장존의 몸이 덜덜 떨렸다. 이내 고개를 번쩍 쳐든 그는 아무도 없는 대전 안에서 낮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 ★ ★
소하성역.
이미 계외 수련자들에게 완벽하게 점거된 이 성역의 남쪽은 완전히 파괴되어 수많은 돌조각이 부유하고 있었다. 서로 크기가 다른 돌조각 중에는 그 길이가 무려 1백 척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