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3
그가 고신의 육체를 가지고 있듯 백발 청년 역시 그랬고 그가 세 번째 단계의 공령기 중기에 이르러 있듯 백발 청년 역시 그랬다. 심지어 한제가 법보를 꺼내 들자 백발 청년 역시 똑같은 법보를 사용했다.
“소용없다. 나는 너야.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한다!”
뒤로 물러나다 잠시 멈춰 선 백발 청년은 입가의 피를 문질러 닦으며 거칠게 외쳤다.
한제는 말없이 살기 어린 눈으로 청년을 살피다가 다시 돌진했다.
백발 청년은 비웃는 듯한 눈으로 마주 달려왔다.
쾅!
같은 신통술이 맞부딪히며 충격이 퍼져 나갔고 한제와 청년은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한제는 굴하지 곧장 다시 몸을 날렸으나, 백발 청년 역시 똑같이 달려들었다.
같은 상황이 열 번도 넘게 반복됐다. 이제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광기 어린 살기 외에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한제와 백발 청년은 똑같이 외치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천둥번개의 본원을 소환했고 허공에서는 무궁무진한 번개의 충돌이 일어났다. 무려 열아홉 번째 충돌이었다.
콰쾅!
둘의 천둥이 충돌한 순간, 두 사람의 오른쪽 눈은 거의 무너져 내리려 했다.
뒤쪽으로 밀려나던 한제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두 눈을 감고 진가도를 발휘했다. 순간, 세상 모든 것은 거짓이 됐다.
물론 백발 청년 또한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청년이 눈을 감는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은 한없이 냉정하기만 했다. 마치 방금 보였던 광기 어린 모습이 잠꼬대였다는 듯이.
한제가 눈을 떴음을 감지한 백발 청년은 심신이 진동했고 표정이 급변했다. 처음으로 한제와 다른 행동을 한 그는 다급히 눈을 뜨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제가 그렇게 하도록 둘 리 없었다. 그는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오른손으로 청년의 가슴팍을 꾹 눌렀고 그 상태에서 손을 움켜쥐고는 홱 잡아당겼다.
“인과인!”
“끄아악!”
그 손짓에 본원이 끌려 나오면서 백발 청년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고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지만 그 순간 삶의 기운을 품은 한제의 왼손이 그의 미간에 떨어졌다. 뒤이어 한제는 오른손으로 백발 청년의 미간을 후려쳤다. 그 손에는 죽음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생사인!”
“아, 안 돼!”
백발 청년은 경악하며 또다시 피를 토해냈고 거의 무너져가는 육신으로 끊임없이 밀려났다.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인과인과 생사인으로 청년에게 중상을 입힌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상대를 추격했다.
그 눈빛에 백발 청년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중이었다. 만약 눈을 감았다가 상대가 또다시 감응에서 벗어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을 감지 않으면 상대는 진가도를 발휘해 자신에게 또 한 번 중상을 입힐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심신에 자리한 세상의 모든 것이 거짓이 되자 한제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크아악!”
백발 청년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의 온몸에서는 끊임없이 쾅,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뿜어졌다. 백의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청년의 몸은 진가도 아래 흐릿해져 언제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애써 버텨내며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 난 네 모든 것을 베껴낼 수 있어! 네 기억과 네 생각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 앞에서는 숨길 수 없단 말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없어!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고! 넌 나를 속일 수 없어! 나는 너다! 네가⋯⋯ 네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이상⋯⋯ 아! 이건⋯⋯ 기만책! 빌어먹을! 이건 유금표의 기만책이었어!”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백발 청년은 고래고래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면서 더욱 빠르게 장막을 향해 다가갔다. 장막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한제를 피할 수 있고 상대는 자신을 죽이기 전까지 절대 장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백발 청년의 말대로 한제가 지금껏 해온 모든 것은 기만책이었다. 처음에는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상대가 의심하지 않을 정신술을 발휘하고 그 신통술로 번 찰나의 시간을 통해 빠른 속도로 그 모든 상황을 바꾸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 틈을 타 몰래 몽도를 발휘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기만책을 펼쳐 스스로를 잠들게 한 뒤 정신술이 해제된 뒤의 자기 자신을 속였다.
이후 상대와의 모든 충돌은 기만책의 일부일 뿐이었다. 한제는 마치 심신이 둘로 갈라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하나는 기만책에 속은 채 백발 청년과 미친 듯한 전투를 벌였고 다른 하나는 냉정하게 상대를 죽일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바로 한제가 진가도를 발휘할 거라고 예측한 백발 청년이 눈을 감은 그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정신술로 움직임이 잠시 멈췄을 때 생각해낸 것으로 원하던 상황이 찾아오자 한제는 곧장 행동에 나섰고 지금의 상황은 그 결과였다.
이 방법이 아니었더라면 이 천벌을 넘어서기란 매우 힘들었을 터였다. 한제는 자신과의 전투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 한제는 장막을 향해 물러나는 청년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만약 상대가 다시 장막 안으로 숨어버린다면 최후의 수단이었던 기만책마저 파악 당한 상태에서 더욱 힘든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같은 방법에 또 속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정신술을 발휘한다 해도 불가능할 터였다.
백발 청년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한제는 결단한 듯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내리쳤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고 뼈까지 부러졌다. 동시에 백발 청년의 표정 또한 크게 일그러졌고 오른쪽 다리 역시 한제와 마찬가지로 뭉그러졌다.
“어, 어떻게 이리 빨리 알아챈 것이냐?”
백발 청년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에 그의 속도는 확연히 느려진 상태였다.
그 순간, 한제는 번개처럼 강렬한 기세를 내뿜으며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백발 청년의 육체는 그대로 무너져 내려 완전히 흩어져 버렸고 앞을 가로막던 장막 역시 꿀렁거리며 소멸됐다.
하지만 한제는 곧장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잠시 멈춰서 두 눈을 감고는 체내의 수준과 고신의 힘을 오른 다리에 집중시켰다. 세 번째 단계 공령기 중기라는 강력한 수준과 고신의 놀라운 회복력 덕분에 그의 상처는 빠르게 치유됐다.
잠시 후, 두 눈을 뜬 한제는 방금 전 사라진 장막 안으로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 순간 한제는 또다시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그곳은 분명 원고 선역이었다.
계내와 계외 사이에 존재하는 원고 선역!
4대 선계보다 훨씬 더 오래된 이곳은 계내와 계외가 처음 열렸을 때부터 이미 존재했고 그 오랜 시간 오직 원고 선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렸다.
봉계의 지존도 선비들도 이곳 출신이고 원고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이곳에서 난 것이었다.
장막이 걷히면서 드넓은 대지가 더욱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하늘은 수많은 폭풍에 휩쓸리고 있었고 안개에 가려진 아홉 개의 태양이 희미했다.
“여기에도 아홉 개의 태양이⋯⋯?”
한제의 두 눈동자가 졸아들었다. 그는 선강 대륙에서도 분명 하늘에 걸린 아홉 개의 태양을 본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이곳은 선강 대륙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해도 선강 대륙과 큰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해.”
한제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월 속에 겹겹이 감춰져 있던 비밀이 점차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그는 계내와 계외, 그리고 이 모든 세상과 관련한 궁극적인 비밀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이 비밀은 어쩌면 잔혹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하나의 끝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2천여 년의 수련과 수많은 시련은, 한제가 오늘날 뭇 수련자들이 비할 데 없이 높은 성지로 여기는 원고 선역에 발을 들이게했다.
이곳은 매우 고요했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돌로 굳어진 것처럼 각기 다른 동작을 취한 수많은 석상이 대지를 채우고 있었다. 더러는 곧게 서 있었고 더러는 꿇은 채였으며, 더러는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고 있기도 했다. 마치 천군만마 같은 석상들은 이 대지 위에서 오랜 시간 침묵해온 듯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아홉 개의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앞으로 한 발 나섰고 긴 빛을 그리며 첫 번째 태양을 향해 나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 높은 하늘의 안개 속에 숨은 첫 번째 태양 옆에 이르자 강렬한 바람이 머리와 옷자락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묵직한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고 두 눈은 밝게 번득였다.
동부(洞府)
태양 앞에 선 한제는 마치 한 알의 모래알처럼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 모래알은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이 태양조차 그 모래알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고 약할 정도였다.
한제는 안개에 휩싸인 태양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꽈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안개는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고 그제야 첫 번째 태양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어 한제가 다시 한번 손을 휘두르자 태양은 순간 어두워지면서 몇 차례 진동했다. 마치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가 드넓은 세상에 울려 퍼지더니 무너져 내리면서 강렬했던 빛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줄어들었음에도 태양은 여전히 거대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건 태양이 아니라 누군가가 신통술로 만든 것에 불과해. 천벌의 힘을 품고 있는 것을 보니 이것이 바로 천벌을 일으킨 근원인 모양이군!”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수차례 휘둘렀다. 그때마다 태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안쪽에서부터 우렁찬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더니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그 순간, 한 줄기 왜곡된 번개가 나타났다. 여태 태양 안에 봉인되어 있었던 듯한 이 번개는 아홉 가지의 색을 띠고 있었는데 천벌이 강림할 때 가장 먼저 천둥번개가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 세상만사 이유 없이 나타나는 것은 없다. 생명을 비롯한 만물의 탄생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천벌도 마찬가지.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어떤 기이한 힘 또는 모종의 강대한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거야!”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봉인되어 있던 아홉 색채의 번개를 움켜쥐었다. 번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끌려오더니 한제의 손에 쥐어졌다.
번개는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쉽게 굴복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한제의 두 눈에 망설임이 묻어났다.
“난 이제 천벌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볼 수 있다. 추측한 바도 있지. 하지만⋯⋯ 과연 그걸 확인하는 게 옳은 일일까?”
한참 뒤, 그는 결심이 선 듯 강력한 신식으로 손에 쥔 번개를 뒤덮었다. 천벌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만들어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신식이 번개에 주입된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앞은 수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부옇게 흐려졌다.
뒤이어 그의 시야에는 하나의 세상이 나타났다. 무궁무진한 일곱 색채의 빛으로 뒤덮인, 꿈속처럼 몽환적인 곳이었다. 또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일곱 색채의 빛 속에는 일곱 색채의 도포를 입은 고고한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났고 엄청난 위압감이 발산됐다. 마치 온 세상이 그의 발밑에 엎드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온 세상을 파멸시켜 버릴 수 있기라도 한 듯한 그의 오만하고 고고한 표정에는 짙은 한기도 어려 있었다. 허나 얇은 입술이 그를 엄숙하면서도 각박하게 보이게 했다.
그 사내를 본 순간, 한제의 심신은 쾅 하고 울렸다. 사내의 외모가 자신의 저물공간에 들어 있는 조각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당시 칠채계에서 청수를 구했을 때 일곱 색채의 빛으로 이루어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에 비하면 그는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밝은 달과 미약한 별빛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게다가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닮기는 했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나의 이 동부(洞府)는 하나의 세상이다. 모든 것은 내 뜻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삼도대존의 삼라계(森羅界)에 비할 바는 못 되나 비슷한 정도는 된다. 천도가 없어 세월을 흐르게 할 수 없고 생명을 탄생시키지 못해 향불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허나 이제는 다르다. 마침내 천도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이곳에 수많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수련자들도 생겨나겠지. 그렇다면 천벌도 필요할 터! 첫 번째 천벌은 천둥번개로⋯⋯.”
일곱 빛깔 도포를 입은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늘을 향해 뻗은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하늘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줄기줄기 번개가 내리쳐 사내의 손에 모여들었다.
이내 그의 오른손은 결인을 그렸고 끊임없이 모여든 번개는 한데 응집해 한 줄기 천벌을 형성했다.
“앞으로 너는 나를 위해 이 동부를 지킬 천둥번개의 천벌이 되어 저항심과 거역을 품은 수련자를 벌하게 될 것이다!”
화면은 흩어져 사라졌다.
신식을 거둔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복잡한 눈으로 손에 쥔 번개를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동부라⋯⋯. 전가 노인이 계내를 내부라 칭했지. 그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저 믿고 싶지 않았을 뿐. 모든 비밀을 알아내고는 거의 미쳐버린 칠백만천지의 산령상인처럼⋯⋯. 동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세상은, 이 계내와 계외는 그저 선강 대륙의 한 사람이 만들어낸 동부 속 존재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