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4
한제의 목소리는 다소 침통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습군. 계내와 계외의 모든 생명이 그 안에서 태어난 존재일 뿐이라니⋯⋯. 역수⋯⋯ 천벌은 역수를 징벌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늘에 저항하고 거역하기를 택한 역수는 결국 이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려 할 테니까. 그래서 천벌로 그런 수련자들을 벌하려고 하는 게지. 칠백만천지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군. 이럴 줄 알고는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다만… 믿고 싶지 않았을 뿐. 후… 후훗. 크하하하하!”
한제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광소는 점점 더 크고 거칠게 변해갔다.
“재미있는 인생이군. 재미있어! 허나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 이한제는 오늘 원고 선역을 밟고 천벌을 파괴하고 천벌이 생겨난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동부에 이르고 선강 대륙을 밟고 선강 대륙에 존재하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자들에게 대체 무슨 자격이 있기에 수많은 생명을 가두어 기른단 말인가! 대체 무슨 자격이 있기에 그 수많은 생명의 주인을 자처하는 것인가!”
한제의 눈에 점점 짙은 분노가 들어찼다.
“1대 주작이 그랬지. 이곳을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데리고 갈 수 있는 것은 제한된 몇 명뿐이라고. 그건 그를 제외한 나머지 몇 명이 애초에 선강 대륙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저 이 동부 안에서 나고 자란 수련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고향에는 모완을 되살려 줄 사람이 있지만 자신은 할 수 없다던 것도 그래서였군. 어쩐지⋯⋯.”
한제는 비릿하게 웃었다.
“산령상인이 칠백만천지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간 것처럼 나 역시 그리 할 수 있다. 그때 선강 대륙의 그자들이 대체 얼마나 강한지 봐주마! 내가 이 동부를 나가 선강 대륙을 밟는 순간, 그곳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일 수 있을지, 선강 대륙의 존귀한 분들을 내 앞에 무릎 꿇릴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오늘, 피하고 싶었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상을 마주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용이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여전히 이한제고 여전히 역수며, 여전히 모완을 살리고 싶어 하고 혼자서 이 세상을 마주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진실이야 어떻든 아무런 상관없었다. 불굴의 의지만 있다면 집념만 있다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제는 화염의 천벌을 품고 있는 두 번째 태양 앞에 이르러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면서 두 번째 태양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일곱 빛깔 도포를 입은 사내가 응집해 봉인했던 화염을 드러냈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곧장 세 번째 태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번째 태양 안에는 위압감이 들어 있었다. 세상 모든 생명을 짓누르는 하늘의 위압감이었다.
“크하하하! 당신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고작 동부의 미개한 존재가 당신이 만든 천벌을 파괴하고 있음을 안다면 분통이 터지겠군!”
한제는 광소하며 허공에 손을 휘둘렀고 체내의 수준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네 번째 태양을 향해 돌진했다.
네 번째 태양에는 네 자루 검이 들어 있었다. 그 검들은 강력한 검기를 발산하고 있었지만 한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섯 번째 태양에는 수많은 허상이 담겨 있었다. 하나로 융합되어 끊임없이 그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는 허상은 환각을 이용한 천벌의 근원이었다.
여섯 번째 태양 안에서 나타난 것은 세 가지 법보의 기운이었다. 진선보탑과 봉명환 등의 법보가 한제의 손에 파괴된 지금, 법보의 기운 세 갈래는 한데 뒤얽혀 있었다.
일곱 번째 태양에서는 세 고족의 힘이 발산됐다. 여러 고족들의 영혼을 담고 있는 이것은 천도의 사자가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도 했다.
여덟 번째 태양 앞에 이른 한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자신의 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기운을 분별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연달아 여덟 개의 태양이 파괴되면서 원고 선역에는 우렁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심지어는 대지와 그 위의 수많은 석상들까지 바들바들 진동했다.
하지만 한제는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아홉 번째 태양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천벌의 힘은 한제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그 안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는 한제 자신의 것도 있었고 모완의 것도 있었으며, 부모님을 비롯해 그가 여태껏 만나고 보았던 모든 이의 기운이 함께 섞여 있었다.
한제는 말없이 두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아홉 번째 천벌은 천벌의 본원이로군. 그 안에는 계내와 계외에서 태어나거나 죽어간 모든 생명의 운명이 깃들어 있다. 아홉 번째 천벌은 동부에서 태어난 이들을 총망라한 기록인 거야!”
아홉 번째 태양을 향한 한제의 두 눈은 싸늘했다. 그는 당장 이 천벌을 파괴하고 싶었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 세상이 곧장 혼란에 빠질 터였다. 이 세상은 자연히 생겨난 곳이 아니라 일곱 빛깔 도포의 사내가 동부 안에 만들어 놓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아홉 번째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 신식을 발산했다. 신식은 형태 없는 폭풍이 되어 아홉 번째 태양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한제의 신식은 잠시 후 그 안쪽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곳은 혼란스러웠고 한제는 신식을 통해 매우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수많은 일반인의 일생을 수많은 수련자의 삶을 보았다. 그로서는 여태 본 적도 없는 얼굴들도 보았다. 고대의 복식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은 이미 죽은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아홉 번째 태양은 동부의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여태까지 그곳에서 태어났던 모든 생명의 운명을 담고 있었다. 윤회 같기도 하고 법칙 같기도 한 이것은 세상 모든 것을 멋대로 바꾸면서 갖가지 기회와 행운을 운명이라는 두 글자로 못 박았다.
계속해서 신식을 뻗어 나가던 한제는 자신의 운명을 발견했다. 매우 짙은 기운을 띤 그의 운명은 아홉 번째 태양에서 본 수많은 사람의 운명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치료 중인 잔선(殘仙)
자신의 운명을 바라보던 한제는 한참이나 말없이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신식으로 그것을 감싸서 삼켰고 자신의 신식에 녹여 넣었다.
그 순간, 한제의 신식은 곧장 격렬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태양 밖에 눈 감은 채 선 그의 육신 역시 격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 그의 몸은 완전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순간 이후로 한제는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이제는 세상 어떤 힘도 그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심지어는 천벌도 심지어 일곱 빛깔의 도포를 입은 그 사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한제는 자신의 운명을 손에 넣음으로써 이제야 자유로워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직접 주관하기를 갈망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운명은 변화무쌍했고 사람의 힘에는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운명 아래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손바닥 안의 개미가 아무리 날뛰어도 그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듯이.
죽는다 해도 그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시체 역시 그 손바닥이 원하는 곳에 옮겨져 영원히 잠들었으며, 그 영원한 잠 또한 운명에 의해 관장됐다.
세상 사람들은 염라대왕의 부름을 받은 이상 그날 아침 해를 볼 수는 없는 법이라고 했다. 그들이 지옥과 황천 따위의 사후 세계를 만들어낸 것은 그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운명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과 저항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끝끝내 답을 찾거나 그 운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운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러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스스로를 속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제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손에 넣음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한제는 신식을 곧바로 거두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이들을 찾아냈다.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사람의 운명을 전부 되찾을 생각이었다. 이미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영혼이라도 운명에 구속된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이윽고 한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냈다. 부모님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지만 두 갈래의 혼은 수많은 영혼 중에서도 여전히 단단히 엮여 있었다. 평범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엮인 두 사람은 죽은 후에도 서로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식으로 부모님의 운명을 조심스레 감싼 한제는 계속해서 십삼을 대두를 주일을 청상을 청림을 찾아냈다.
남운자와 홍삼자 이산,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선대 주작성황과 둔천의 운명도 찾았다. 자신의 아들인 이평과 주은혜의 운명도 찾아냈다.
그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알아서 개척할 수 있는 운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후로는 아무리 탐색을 해도 청수와 사도환, 그리고 실종된 천운자의 운명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모완의 운명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뭔가 달랐다. 사도환과 청수 등의 운명은 애초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이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던 반면 모완의 운명은 이곳에 존재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한제보다 한발 앞서 그녀의 운명을 가져가 버린 것만 같았다.
결국 한제는 청수, 사도환,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여인의 운명은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신식을 거두고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하염없이 멍했다.
“사도환과 청수 사형의 운명은 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거지? 설마… 그들은 이 동부에 속하지 않는 존재인 걸까?”
생각할수록 더 어려운 문제였다.
그는 소하성역의 칠채계에서 본 청수와 칠채도인을 떠올렸다. 청수의 일생에 동행하며 언제 어디서나 그를 지켜보던 칠채도인의 기이한 눈빛은 여태까지도 한제의 기억에 생생했다.
‘그 노인의 눈빛으로 미루어 청수 사형의 운명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사도환은⋯⋯ 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설마… 그의 천부적인 자질도 그의 운명이 아홉 번째 태양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가?’
한제는 말없이 아래쪽의 대지를 바라보았다. 대략적인 갈피는 잡을 수 있었으나 그 모두가 안개로 뒤덮인 것처럼 또렷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천운자! 그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처음부터 파악할 수가 없었지. 그의 생각을 아는 건 그 자신뿐일 거야. 아무리 내가 공령기 중기에 이르렀다고는 해도 천운자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그자는 비밀이 너무 많아!’
아홉 번째 태양을 바라보는 한제의 두 눈이 점차 싸늘하게 번득였다.
‘모완의 운명은 분명 이곳에 존재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대체 누가 모완의 운명을 앗아갔단 말인가!’
한제의 눈은 점점 싸늘해지더니 이내 살기로 번들거렸다.
“모완은 그저 평범한 여인일 뿐이다. 그녀의 운명이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한데 지금 누군가가 그녀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다. 그게 누구든 나는 반드시 모완의 운명을 되찾는다. 그녀의 운명을 가져간 자가 선강 대륙 사람이라면 선강 대륙을 피로 물들여서라도 되찾고야 말겠다!”
다른 사람도 아닌 모완의 운명을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사실은 한제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과도 같았다.
많은 것을 파악할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고통은 더욱 깊어지는 법인가. 한제는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때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미 알아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길도 하나였다. 상대가 누가 됐건 그는 모완의 운명을 되찾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모완을 되살리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이 될 터였다.
그는 짙은 살기를 깊은 곳으로 갈무리하더니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갔다.
고족의 석상들이 우뚝 솟은 지면에는 서늘한 북풍이 불어와 수많은 모래알을 이리저리 날렸다.
대지에는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석상들과 그 석상들 사이사이 깊은 고랑과 구멍이 전부였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서 있었던 전쟁으로 생겨난 고랑과 구멍들은 꼭 대지에 난 깊은 상처 같았다.
한제는 어느 고신 석상 위에 내려서서는 그 석상을 내려다보았다.
석상이 된 고신은 이미 죽어 있었으나 그 안에는 한 줄기 기이한 힘이 남아 있었다. 그 힘은 이 석상을 언제든지 깨워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게 하는, 천도의 사자로 부릴 수 있게 하는 근간이었다.
“세 고족이 이 동부를 지키는 호위병이 되어 있다니, 슬프고도 한스럽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한제는 석상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그러자 석상에서는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줄기줄기 균열이 일더니 이내 석상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내 격렬한 소리와 함께 석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이미 전사했으니 이제 편히 쉬어라.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말로 우리 같은 자들에게는 축복 아닌가!”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며 지나간 곳마다 고신과 고마, 고요의 석상이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내가 오늘 너희들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언젠가 깨어나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꼭두각시가 될 터!”
한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고마 석상 하나가 무너져 내리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고족의 석상들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줄기줄기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 기운들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올라 하나하나의 흐릿한 허상을 형성했다.
허상은 생전 그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들이 입었던 상처까지도 볼 수 있었다. 허상으로 나타난 이들은 처음에는 멍한 모습이었다가 곧 모든 것을 깨달은 듯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얼굴로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이어서 연기로 이루어졌던 몸은 다시 연기로 흩어져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광활한 대지, 석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키가 수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이 나타났다. 이 석상의 미간에는 아홉 개의 반점이 있었다. 아홉 번째 반점은 약간 흐릿하기는 했지만 분명 자리는 잡혀 있었다.
“9성급 고신…”
가벼운 갑옷 차림의 석상은 오른팔에 팔뚝 보호대가 있었고 주먹을 휘두르는 표정에서는 고통과 분노가 역력했다. 마치 석상으로 굳어지는 순간의 감정이 드러난 것처럼.
이 고신이 생전에 내뿜었을 어마어마한 위엄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두 눈에는 불굴의 담겨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분노의 포효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제는 조용히 포권을 하더니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석상의 온몸에 수많은 균열이 일더니 전체가 균열로 뒤덮였고 이내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한데 그 순간, 미간에서 아홉 개의 반점이 돌연 빠르게 회전하며 회오리를 일으켰다. 또한 석상의 미간에서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것이 울려 퍼졌다.
한제는 뭔가 표정이 급변했다.
반점의 회오리 안에서 비쩍 마른 손 하나가 알 수 없는 점액으로 뒤범벅이 된 채 쑤욱 뻗어 나왔다. 그 손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그 손은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위엄과 함께 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끼야아앗!”
날카로운 비명은 갈수록 격렬해졌고 미간에서 빠져나온 손은 계속해서 기어 나오려는 듯 허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럴 때마다 비명은 더욱 또렷해져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