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69
도고의 힘을 품은 고족의 불멸지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고 붕괴와 회복을 반복했다. 청룡 장군의 손가락은 분명 강력했지만 선존의 봉인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수백 번 붕괴한 뒤에도 한제의 불멸지는 소멸되지 않았다. 청룡 장군을 상대로 한 깔끔한 승리였지만 그렇다고 한제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육신은 청룡 장군과의 충돌로 진탕을 일으켰고 그 역시 피를 울컥 토해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고통을 억지로 참아낸 한제는 두 눈으로 살기를 번득이며 곧장 돌아섰다. 그의 미간에서는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금빛 핏방울이 나타나 4대 장군이 두려워하는 금빛을 발산했다. 눈부신 빛에는 순수한 선인의 혈맥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한제의 지척까지 와 있던 현무 장군은 이 금빛에 완전히 뒤덮이더니 짙은 검은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 안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한제의 미간에서 나타난 금빛 핏방울이 돌진하더니 현무 장군의 주먹을 관통했다. 그러자 현무 장군의 근처에 나타났던 현무의 영혼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현무 장군 역시 피를 토해내며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검은 연기로 뒤덮인 그의 오른손은 피범벅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서, 선인의 혈맥! 말도 안 돼! 이토록 순수한 혈맥의 힘이라면⋯⋯ 선인의 불멸체 아닌가!”
현무 장군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금빛 핏방울이 돌아와 한제의 미간에 녹아들었다.
두 장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백호 장군이 금빛 칼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눈부신 빛을 번득이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번쩍 쳐든 한제는 체내에 밀려드는 고통을 참으며 칼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 손짓에 아홉 가지 색채의 화염의 폭풍이 일어났고 뒤이어 천둥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의 손에서는 손바닥 문양의 화염이 나타나 금빛 칼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둥번개 역시 손바닥 모양을 이루더니 화염의 손바닥 문양을 바짝 뒤따랐다.
다음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본원이 혼돈의 기운으로 응집되어 세 번째 손바닥을 이루었다.
뒤얽힌 흑백의 기운으로 나타난 삶과 죽음의 본원이 네 번째 손바닥을 형성했다.
진실과 거짓의 본원은 허상과 실체 사이를 오가는 다섯 번째 손바닥으로 응집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된 강력한 살육의 기운이 여섯 번째 손바닥이 되었다. 여러 개로 나타난 여섯 번째 손바닥은 잔상을 그리듯 하나로 엮인 채 백호 장군이 휘두르는 칼을 향해 휙 하고 돌진했다.
콰쾅! 쾅!
계속해서 이어지는 굉음이 하나의 폭풍을 이루자 백호 장군의 손에 들려 있던 칼이 바르르 진동하다가 결국 붕괴했다. 동시에 여섯 개의 손바닥 문양이 곧장 백호 장군의 가슴팍에 꽂혔다.
“크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대량의 피 안개를 터뜨린 백호 장군은 막강한 선력에 밀려나다가 양옆에서 다가온 청룡 장군과 현무 장군에게 부축을 받았다.
“나를 도와 상처를 막아둔 봉인을 풀어주게! 본원을 방출해서라도 저자를 죽여야겠어!”
백호 장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 두 눈에서 번득이는 거친 빛은 전보다 더 짙어진 상태였다. 그는 자신을 부축한 두 장군을 뿌리치더니 머리가 산발이 된 상태에서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발산되던 기운은 증폭됐고 미간에는 금빛 문양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청룡, 현무! 나를 도와 봉인을 열어주게! 수준만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였다면 우리가 저런 자 하나 당해내지 못할 리 있겠는가! 내가 저 녀석을 죽이겠네! 저자는 그저 하찮은 하계 수련자일 뿐이라고!”
한제는 덤덤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또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방금 전 세 사람의 합공은 그로서도 쉽게 여길 수 없는 위력이었다.
거래
광기 어린 모습의 백호를 지켜보던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곧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활이 됐다.
왼손에는 활을 쥔 채 한제는 오른손으로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웅 하는 소리를 내던 시위가 끝까지 당겨지자 까마득한 세월을 뛰어넘은 듯한 허상의 화살 한 자루가 나타났다.
그 순간, 사방이 고요해졌다. 포효하던 백호조차 자신의 상처를 막아놓은 봉인을 풀려던 것도 멈춘 채 멍하니 한제의 손에 들린 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충격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광의 활이다!”
다른 두 장군도 삽시간에 창백해져 경악한 듯 외쳤다.
그때였다. 마지막 조각상의 미간을 맴돌던 회오리로부터 붉은 도포를 입은 사람이 걸어 나왔다.
“이한제 선우(仙友), 진정하게. 내 체면을 봐서라도 그만 멈추고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다.
한제 역시 계속해서 4대 장군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가 이들을 만나러 온 것도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다만 그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고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상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제는 당겼던 오른손에 천천히 힘을 풀었다. 그러자 시위에 매겨졌던 화살과 활은 금빛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나 한제가 원하기만 한다면 활과 화살 모두 순식간에 다시 소환될 터였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주작을 바라보며해 마주 포권을 했다. 노인은 타락의 땅에서 보았던 1대 주작과 매우 닮은 모습이었다.
“선우라는 칭호는 과분하군. 1대 주작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네.”
한제는 침착하게 인사를 받았다.
주작은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타락의 땅에 있는 1대 주작과는 대체 무슨 관계지?”
한제의 물음에 노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나의 본체다. 당시의 전투로 4대 장군 중 나의 본체만은 밖에 남게 됐지. 분리된 채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본체와 분신이 달라졌으니 둘은 같은 사람이면서 또 다른 사람이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를 통제할 수 없어. 그저 서로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공유할 뿐,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는 없지. 타락의 땅에 있는 그는 매우 지쳐 있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하지만 나는 선존을 찾고 싶다.”
주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광의 활이 어찌 네게 있는 것이냐?”
백호가 두려움을 숨기며 불쑥 물었다.
“알 것 없다.”
한제는 백호 장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짧게 대꾸했다. 백호 장군은 표정이 있는 대로 구겨졌지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1대 주작과 당신이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타락의 땅에서 받은 도움을 잊을 수는 없다. 오늘 이곳에 온 것은 거래를 하기 위함이지.”
한제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원고 선역, 즉 칠채선존 동부의 핵심인 이곳에는 당시 중상을 입은 수많은 칠도종의 제자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선인이며, 원고 선역의 수련자들이지.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모두 죽이고 이곳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살기와 한기가 가득했기에 4대 장군의 표정은 차게 굳었다. 만약 이광의 활을 보지 못했더라면 모를까, 한제가 이광의 활을 가지고 있음을 안 이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광의 활은 선강 대륙에서도 유명한 극강의 법보다. 네가 어디서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피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광의 활을 쓸 때마다 피에 담긴 힘은 소모된다. 넌 선인이 아니라 혈맥의 힘을 보충할 수도 없는데 과연 몇 발의 화살이나 쏠 수 있을 것 같으냐?”
따지듯 물은 것은 청룡이었다. 한제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분노로 번득였다.
“이곳을 파멸시키는 데는 단 세 발이면 충분하다. 저 깊은 곳에 기이한 사당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 사당은 이 동부를 떠나는 통로로 철저히 봉쇄되어 있겠지. 기이한 생령도 수없이 존재하는, 원고 선역에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곳일 터. 허나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건 너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제는 4대 장군을 훑어본 뒤 그들 뒤의 저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는 이곳 원고 선역에 들어온 순간부터 신식으로 4대 장군의 존재는 물론이고 가장 깊은 곳에서 기이한 사당의 존재까지 어렴풋이 감지했다. 그 사당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매우 강력했다.
“무슨 거래를 하고 싶다는 거냐?”
시종일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검은 도포 차림의 현무 장군이 침묵을 깨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있던 세상이 동부 안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너희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상관없다. 어쨌든 지금 계외 태고 성신 수련자들의 침입에 계내로서는 대항하기 힘들다. 이광의 활이 있다 한들 나 혼자 그들 모두를 처리할 수는 없지. 난 너희가 계외로 가서 분쟁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기를 원한다!”
잠시 침묵하던 주작이 말했다.
“계외에도 원고 선역이 있고 그곳에도 칠도종 사람들이 있다. 선비의 명을 따르는 그들은 당시 입었던 부상도 그리 심하지 않아. 지금까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원고 선역이 둘로 나뉘어 있긴 해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만약 우리가 원고 선역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면 그들 역시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럼 너희들이 살고 있는 계내와 계외의 전쟁은 지금보다 더 격렬해질지도 몰라. 심지어는 이 동부가 아예 파멸될 수도 있지!”
“그들은 나오지 못한다!”
한제의 짧고 확신에 찬 대답에 4대 장군은 굳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그에게 선인의 법보를 내주며 계내와 계외를 가르는 진에 그것을 녹여 넣으라고 했지. 그럼 그 진은 1백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동안 우리는 부상 회복에 집중하려 한 게지. 이제 남은 시간은 3년뿐이다. 이 3년은 우리에게더 매우 중요한 시기다. 3년만 지나면 우리는 당시 입었던 부상을 완벽히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청룡 장군이 말했다. 한제가 이 거래를 제안하지 않았다 해도 3년 후에는 이곳을 나가 계외의 원고 선역에 있는 동료와 함께 선존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의 눈에 하계의 수련자는 미물과 다를 바 없으므로 이곳을 나간다 한들 계내와 계외의 전쟁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을 터였다. 선존을 찾을 수만 있다면 선존의 수준을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오히려 동부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라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천도를 가동해 다시금 번성하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누리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제가 원고 선역을 파괴해버리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거래를 제안해오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3년 정도는 벌 수 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누구도 이곳에 들어와 너희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한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4대 장군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계외의 원고 선역 선인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3년 동안 이곳을 지켜주겠다는 한제의 약속에 뭔가 다른 계획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허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점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이 거래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주작이 한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계외 수련자들의 전멸! 또한 계내 수련자들이 더는 한 명도 죽지 않기를 원한다! 너희가 칠채선존을 찾은 뒤 계내의 모든 생명이 동부에서 나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진정한 하늘을 보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끝난 뒤 내가 선강 대륙에 가기를 원한다. 선강 대륙에서 필요한 자원을 내게 줘야 한다.”
한제는 말을 마친 뒤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려 신식을 뻗었다. 뻗어 나온 신식은 그의 손에서 버드나무 씨앗처럼 응집되어 둥실 떠올랐다.
“동의한다면 신식으로 맹세하라. 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대로 죽게 될 것이다!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면 난 이광의 활로 이곳 원고 선열을 소멸시키겠다!”
한제는 고민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강경하게 말했다.
4대 장군은 말없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한제의 요구에 대해 당장 답할 수는 없었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조건에 대해서는 더욱 곤란했다.
“하루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말을 마친 한제는 곧장 1만 척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더니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았다.
그는 4대 장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에게는 또 다른, 진정한 목적이 있었다. 그가 3년의 시간을 벌어주겠다고 한 것은, 그리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기를 원한 것은, 그들을 통해 계내와 계외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통해 원고 선존을 찾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선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해왔지만 아직도 그 정체를 특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도 칠채계에서 나타났던 칠채도인과 선존의 관계도 확신하지 못했다. 또한 전가 노인의 정체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는데 이 수수께끼는 원고 선존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계내와 계외의 전쟁에 실마리가 있다. 장존과 선비를 중심으로 한 무리는 계외에 선대 봉계 지존을 중심으로 한 무리는 계내에서 살고 있다. 칠채도인은 계외의 우두머리고 전가 노인은⋯⋯ 본래 계내 사람. 그들은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싸워왔다. 마치 서로 뭔가를 증명해내려는 듯, 공통된 뭔가를 찾으려 하는 듯. 허나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고 그래서 번번이 전쟁이 일어났을 터. 내 추측이 옳다면 그들이 찾으려 하는 것은⋯⋯ 천도인가?’
한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4대 장군과 칠도종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가야만 밝혀질 게야. 이미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혼란을 더 가중한다면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 ★ ★
다음 날, 4대 장군과 약속을 한 한제는 원고 선역을 떠났다.
원고 선역은 오직 천벌이 강림할 때만 열리는 곳이라 이곳으로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천벌이 일으킨 균열을 통해야만 했다. 한데 이 균열은 원고 선역의 봉인에 있기 때문에 선인의 혈맥을 가진 선강 대륙 사람이라도 이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기란 매우 힘들었다. 당시 봉계의 지존을 내보냈듯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야 했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는 천역주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도 몰랐다.
원고 선역으로 들어오기 전 한제는 이 세상의 구조에 대해 여러 추측을 했다. 그리고 원고 선역에서 다시 나가려는 지금, 그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균열에 발을 들인 한제는 뒤쪽의 원고 선역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다가 그 세상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