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73
공열기 수련자는 도령을 삼키고 응고시켜 향불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대량의 향불의 혼을 필요로 한다. 허나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외부에 불과하다. 공령기 수준에 이르러 향불의 세계와 스스로를 하나로 융합시키고 스스로를 향불의 세계로 만들면서 향불의 혼이 자신을 숭배하게 해야만 자신의 세계에서 강력한 신통술을 가질 수 있다.
공의 경지에서는 수준을 승급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공령기 절정에서 공현기로 넘어가는 시점은 더욱 그렇다. 이 시점에서는 향불의 세계가 아니라 허상의 본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원은 실체의 본원과 허상의 본원으로 나뉜다. 실체의 본원인 천둥번개나 화염을 비롯한 오행의 본원은 상대적으로 얻기도 쉽고 큰 깨달음도 필요치 않다. 그저 비슷한 원소를 많이 모으기만 한다면 늦더라도 본원을 완성할 수 있다.
한제 역시 화염의 본원과 천둥번개의 본원은 그렇게 완성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등 허상의 본원은 볼 수 없는 것이라 오로지 깨달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당연히 완성하기도 어렵다. 무작정 많이 모아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공현기 수련자는 많지 않다. 계내와 계외를 모두 따져봐야 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할 당시 허상의 본원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공현기에 오르기 쉽다. 허나 그런 사람은 매우 적었기에 대부분은 공현기에 이르려면 타인에게서 뺏든 스스로 깨닫든 허상의 본원을 얻어내야만 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뒤 본원을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천재가 나타나 수련자들은 점차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대체로 매우 이상한 방법들이었지만 이는 수련자들의 생각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들이 생각해낸 방법이란 바로 향불의 세계에서 향불의 혼들로 하여금 수련하게 하는 것이었다.
향불의 혼들은 수준 높은 수련자의 도움 아래 빠른 속도로 수준을 높이면서 그 세계에 산과 강 따위를 허상으로 만들어냈고 자신들의 세상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를 통해 향불의 혼들은 허상의 힘을 갖게 됐고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면 허상의 본원을 깨닫는 이들도 나타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허상의 본원은 그들을 양육한 수준 높은 수련자에게 그대로 집어 삼켜졌다. 향불의 세계의 모든 일은 허상이고 향불의 혼들은 그 수준 높은 수련자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완벽하고 말끔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향불의 혼이 가진 수준 역시 허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향불의 세계에서 나간다면 그동안 가졌던 모든 힘을 잃고 일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어느 강력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가 아닐까 의심하는 향불의 혼도 더러 있지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그들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이 추측을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세상을 나가는 것인데 만약 추측이 옳다면 자신은 모든 수준을 잃고 일반인이 되어버린다. 만약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도 수준에 변화가 없다면 이는 추측이 틀렸다는 뜻이다. 그러니 단지 의문을 풀기 위해 그토록 큰 도박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한제는 소하성역을 가로지르는 동안 중년 사내의 머리를 손에 쥐고는 수혼술을 펼쳐 많은 기억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는 쥐고 있던 머리를 뒤로 던져버렸다.
이제 만여 개의 머리에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머리가 추가됐지만 이 또한 시작일 뿐 마지막은 아닐 터였다. 어쨌든 소하성역에는 더 이상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한제는 계속해서 소하성역을 가로지르며 수많은 수련성을 짙은 피비린내로 뒤덮었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수많은 머리가 나뒹굴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제의 뒤로 길게 늘어선 머리는 5만 개에 달했다.
이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머리들로부터 풍기는 짙은 피비린내는 저 멀리서도 충분히 맡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사도환 등이 도착했을 때, 소하성역에 있던 계외 수련자는 이미 몰살당한 상태였다. 그들의 피로 물든 수련성을 지나치는 동안 소하성역 수련자들도 하나둘 나타나 한제를 따랐다.
한제는 그 수많은 머리와 계내 수련자들을 이끌고 운해성역에 진입했다.
운해성역은 전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수련자가 죽어 나갔다.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제는 당시 죽은 이들의 혼이 울부짖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5만 개의 머리라면 생사진을 구축하기에 충분하지!”
한제의 눈에 당시에는 대륙이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리거나 산산이 부서져 있는 조각들이 들어왔다. 그 대륙들 역시 대부분 계외 수련자들에게 점거된 상태였다. 당시의 전쟁으로 이 구역의 계내 수련자는 거의 다 죽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운해성역은 완전히 계외의 땅이 된 상태였다.
한제의 신식이 순식간에 운해성역을 뒤덮었다. 그의 신식에 운해성역의 광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익숙했던 운해성역을 잃은 한제의 마음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한제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신식을 펼쳤다. 운해성역 내의 계외 수련자들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거친 행태였다.
여러 대륙에 머물러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심신에서는 짙은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운해성역 깊은 곳의 어느 수련성. 파천종이 있던 이곳은 이미 폐허가 된 채 푸른색과 보라색 해초로 잔뜩 뒤덮여 있었다.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해초는 마치 이 수련성에서 자라난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이 수련성의 중심부에는 굵기가 1백 척 정도 되는 거대한 보라색 꽃이 한 송이 있었다. 높이가 1만 척에 달하는 이 꽃은 수많은 해초 가운데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마치 길게 자라난 해초가 이 꽃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는 듯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의 꼭대기에는 1백 척 정도 길이의 봉오리만 맺혀 있었다.
둥근 봉오리는 약간 투명했는데 그 안에 가부좌를 튼 여인이 있었다. 청의를 입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또한 꽃봉오리에서는 세 번째 단계 공열기 중기의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한데 한제의 신식이 이 수련성을 훑은 순간, 꽃봉오리 안의 여인이 번쩍 두 눈을 떴다. 동시에 이 수련성을 뒤덮은 해초들이 일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수련성으로부터 매우 먼, 당시 계외 근처의 전장이었던 곳을 뒤덮은 안개 속에도 대륙이 하나 떠 있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계외 수련자가 바위들을 옮겨 거대한 사찰을 짓는 중이었다.
거의 형태를 갖춘 사찰 위에는 조각상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조각상 뒤로는 두 개의 거대하고 검은 날개가 달려 있어 거칠고 위엄 있어 보였다.
이 조각상의 정수리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의 미간에는 검은 박쥐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한제의 신식이 이곳을 훑은 순간, 이 노인 또한 화들짝 놀란 듯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수련성
같은 시각. 나천성역에는 수십만 명의 계외 수련자가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당시 한제를 죽이려고 했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나천성역을 층층이 포위한 상태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험악한 기세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들이 둘러싼 것은 999개의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진이었다. 이 진을 구성하는 각 수련성에는 계내의 수련자들이 자리한 채 긴 시간을 버텨왔다.
그 진의 중앙에는 원형 제단이 하나 있었는데 짙은 안개로 뒤덮인 제단에 가부좌를 튼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수련성에는 분홍색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는 서늘한 얼굴의 여인도 있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의 눈은 점차 절망으로 물들고 있었다.
다른 수련성에는 모은미가 있었다. 머리를 틀어 올린 백의의 이 여인은 다소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제는 아직 나천성역으로 가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이 전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광의 활을 사용한다 해도 아주 잠시 정세를 바꾸는 데 그칠 터였다. 그러니 3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려면 계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3년 후 원고 선역의 사람들이 나올 때 계외의 원고 선역도 파멸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이광의 화살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전까지 선력을 마구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천이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곧장 찾아갈 수 없었다. 일단 다른 성역의 계외 수련자들을 모두 처리한 다음 그들의 머리와 원신으로 진을 완성할 생각이었다.
한제는 두 손을 휘두르더니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왼손은 삶!”
그의 외침에 일제히 움직이던 5만 개 머리의 절반은 왼쪽으로 치우치더니 뒤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오른손은 죽음!”
뒤이어 한제가 오른손으로 가리키자 나머지 절반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며 죽음의 회오리를 이루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리며 하나하나의 금제 낙인을 소환했다. 낙인들은 두 개의 회오리에 녹아들었다.
“하앗!”
한제의 짧은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삶과 죽음을 나타내는 두 개의 거대한 회오리가 곧장 하나로 합쳐졌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에 온 우주가 진동했다. 하나로 합쳐진 회오리는 회전하면서 끊임없이 확장됐다. 1천 척, 1만 척, 10만 척… 1백만 척!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오리는 온 우주를 다 뒤섞어버릴 것만 같았다.
“생사진!”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세 번째 단계 수준에 이른 심신의 피를 한 움큼 내뿜었다. 이 피는 곧장 붉은 안개가 되어 거대한 회오리와 융합했다.
쩌적!
무언가 얼어붙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회오리가 돌연 회전을 멈추더니 심지어 응고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완전히 굳어버린 채 떠 있는 거대한 회오리에서는 붉은 빛이 번득였고 강력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회전을 멈춘 회오리는 멀리서 보면 꼭 한 줄 한 줄의 나이테 같기도 했고 거대한 바퀴 같기도 했다. 삶과 죽음을 나타내는 이 바퀴가 멈추면 세상 모든 것은 살고 회전하면 세상 모든 것이 죽을 터였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이 거대한 바퀴 위에 섰다. 바퀴는 회전하지 않고도 앞으로 나아갔다. 한제는 기이한 빛을 번득이는 눈으로 바퀴와 함께 전방의 거대한 대륙으로 돌진했다. 더 많은 머리와 원신을 모아 두 번째 진인 인과진을 형성해야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마주친 대륙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의 계외 수련자들은 하나하나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는 남김없이 한제 뒤로 모여들었다.
두 눈이 붉게 물든 한제는 살기 그 자체로 화해 대륙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계외 수련자들을 죽이고는 곧장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살육이 일어났고 그의 뒤로는 점점 많은 머리가 생겨났다.
잠시 후, 거대한 수련성 하나가 나타났다. 해초로 뒤덮인 그 수련성 근처에 이른 순간, 한제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기운을 느꼈다.
그 수련성의 꽃봉오리 안에 있던 여인은 한제의 신식을 감지하고는 먼저 공격하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수련성은 이미 그녀에게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다. 그 위를 뒤덮은 수많은 해초도 그녀의 향불의 혼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여인은 이곳에서라도 상대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자신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한제가 가까이 이르자 귀를 찌를 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수련성을 뒤덮은 수많은 해초가 순식간에 1백만 척 길이로 뻗어 나갔다.
잠시 후 이 수련성에서는 아주 기이한, 한제로서는 평생 본 적이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수많은 해초로 뒤덮인 수련성이 하나의 머리로 변한 것이다. 수련성에서 폭발적으로 자라난 해초들은 하나하나가 머리카락이었다.
중심부의 꽃봉오리 역시 만개했고 그 안의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이 수련성의 땅과 산, 강을 또 한 번 변화시켰다.
산봉우리가 무너지고 강이 말라붙은 후, 수련성은 완전한 여인의 머리가 되어 있었다. 꽃봉오리 안에 있던 여인의 얼굴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산봉우리로 코를 산맥으로 눈썹을 협곡으로 입술을 바다로 눈을 이룬 여인의 신통술은 결코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제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때, 수련성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콰쾅 소리와 함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무정한 눈빛이 한제를 응시했다.
“캬아아아!”
수련성의 입에서는 온 우주를 무너뜨릴 듯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으나 한제는 덤덤하게 앞으로 손을 뻗었다.
“신통술은 훌륭하나 수준은 한참 약하군!”
그는 가볍게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붉은 빛으로 이루어진 검의 허상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뒤이어 한제는 왼쪽 눈에서는 화염을 오른쪽 눈에서는 번개를 번득였고 미간에서는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의 본원을 일으켜 공령기의 위력 전부를 검에 응집시켰다.
붉은 검은 잔뜩 흥분한 듯 웅웅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굶주려 있다가 마침내 그간의 욕망을 폭발시킬 순간을 맞았다는 듯이.
수련성의 무정한 두 눈을 응시하던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검을 내리쳤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와 함께 예리한 검광이 나타났다. 앞을 가로막은 어떤 것이라도 갈라버릴 듯한 검광은 눈 깜짝할 사이 거대한 머리의 미간에 떨어졌다. 이에 여인의 무정한 눈빛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대신 두려움과 절망의 빛이 드러났다. 그녀가 발휘했던 신통술 역시 중단되어 버리고 말았다.
검광은 그 뒤로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해 수련성의 얼굴에 한 줄기 균열과 같은 상처를 냈다. 거대한 머리는 절반으로 갈라졌고 꽃봉오리에 앉아 있던 여인의 머리 역시 순식간에 몸통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한제는 검광을 흩어버린 뒤 수련성을 향해 손을 뻗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잘려나간 여인의 머리가 그의 손으로 딸려왔다. 한제는 그 머리를 뒤쪽으로 던져 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갔다.
잠시 후, 반으로 쪼개졌던 수련성은 아예 무너져 내리며 흩어져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가 혼과 원신을 봉인해 놓은 계외 수련자들의 머리는 다시금 5만 개에 이르렀다. 안개로 뒤덮인 운해성역 전장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계외 수련자의 머리를 거둔 상태였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안개로 뒤덮인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운해성역의 전장이 있었다. 계외와 맞닿은 곳이자 봉계 진의 균열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