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79
한제는 고신의 반점 안에서 천황로를 꺼내 확장시켰다. 그러자 사방의 우주를 뒤덮은 천황로 안에 선비와 흑의의 노인까지 전부 담기게 됐다.
천황로는 부드러운 빛을 발산하면서 선비를 뒤쫓아 온 청림을 밀어내더니 흑의의 노인과 선비를 삼킨 채 수축하기 시작했다.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황로는 흑의의 노인과 선비를 삼켰으나 그 둘을 제련하기는 무리인 듯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천황로 위에 가부좌를 튼 한제는 단로에 한 움큼의 피를 뿜어낸 뒤 결인을 그렸고 두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고신의 반점이 미간에서 튀어나와 천황로 위로 떨어졌다. 미간에 숨겨져 있던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금빛 핏방울도 튀어나와 천황로에 녹아들었다. 그러자 천황로에서는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선인의 혈맥과 고신의 혈맥을 천황로에 녹여 너희 둘을 영원토록 제압할 것이다!”
한제는 소매를 휘두르며 자신이 만든 신통술 유월을 발휘해 소환한 거대한 돌문으로 천황로를 제압했다.
돌문이 나타난 순간, 세월은 빠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제로서는 이 술법을 평생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낮게 외쳤다.
“청림 선배님, 홍삼자 그리고 소하성역의 선배님, 세 분은 남은 두 명의 공현기 수련자를 막아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청림을 비롯한 이들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합심하며 마지막 남은 두 명의 공현기 수련자에 대항했다. 덕분에 계외의 수준 높은 두 수련자는 한제를 방해할 수 없게 됐다.
숨통이 트인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이 전장이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의 놀이판이라면 이 전쟁이 그들의 알 수 없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한제는 그 두 사람이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계외 수련자를 죽일 각오도 되어 있었다.
한제의 뒤로는 10만 개에 달하는 머리가 모여 있었다. 그 머리들이 구슬프게 울부짖는 소리가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살육의 소리와 한데 합쳐졌다.
“인과진을 다시 만들어야겠군!”
한제는 천황로 위에 앉은 채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 떠 있던 머리 중 5만 개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거대한 회오리로 변했고 비명과 함께 빙글빙글 돌다가 인과진을 형성했다.
“눈을 뜨면 진실, 눈을 감으면 거짓. 진가진!”
뒤이어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남은 5만여 개의 머리가 그의 앞으로 이동하며 또 하나의 거대한 회오리를 이루었다. 실체와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듯 왜곡되고 흐릿한 회오리는 콰쾅 소리와 함께 회전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본원의 기운을 빠른 속도로 발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 회오리는 진가진이 됐다.
한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생사진을 가리켰다. 순간 세 개의 거대한 바퀴가 급속도로 한데 응집하더니 한제의 앞에서 중첩됐다. 이에 따라 세 개의 허상의 본원으로 형성된 진이 모습을 갖췄다.
“원신을 바칠 1만 명의 계내 수련자가 필요하다. 그 원신은 3대 본원으로 이루어진 진의 영이 되어 그것을 가동하고 세상의 궤도를 바꾸며, 별의 운행을 어지럽히면서 계내 사람이 아닌 그 외의 모든 이를 죽일 것이다!”
한제는 엄숙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가 만들어 낸 진에는 영혼을 구성할 1만 개의 원신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이 진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계내 수련자 중 1만 명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부좌를 틀더니 칠규를 통해 원신을 흘려보냈다. 이렇게 흘러나온 원신들은 곧장 한제 전방의 진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세 개의 바퀴로 이루어진 진에 자리를 잡았고 그 순간 진이 돌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동시에 불어나기 시작한 진은 하늘에 닿을 듯 높고 거대한 바퀴가 됐다.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원인과 결과의 본원을 발산하는 이 바퀴는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세상의 규칙을 바꿀 수 있었고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온 우주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한제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강력한 신통술이자 생애 단 한 번만 응집할 수 있는 바퀴였다. 그가 가진 세 허상의 본원을 융합시켜 만들어낸 것인 만큼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1만 개의 원신은 거대한 바퀴 아래에서 진의 영이 됐다. 그들은 일제히 낮은 고함을 내지르며 수십만 명의 계외 수련자들을 향해 거대한 바퀴를 떠밀었다.
쿠르릉!
이윽고 바퀴가 한 번 회전했다.
하늘과 땅이 흩어지고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도 무너져 내렸다. 우주는 모든 생기를 잃은 듯 어떤 기운도 풍기지 않았고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계외 수련자 중 3할 정도가 그대로 소멸했다.
동시에 그 바퀴를 가동한 1만 개의 원신은 빛을 잃었다. 그들에게 두 번 회전시킬 힘은 없었다.
그때, 계내 수련자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더니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자 그들의 체내에서 튀어나온 원신이 거대한 바퀴로 몰려들어 또 한 번 바퀴를 회전시켰다.
쿠르릉!
거대한 바퀴가 한 번 더 돌았고 또다시 계외 수련자의 3할 정도가 어마어마한 힘에 무너져 내리며 죽음을 맞았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강을 이루어 우주 곳곳으로 흘렀다.
남아 있는 계외 수련자는 충격적인 상황에 넋을 잃고 덜덜 떨다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저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청림을 포함한 세 사람에 막혀 있던 두 명의 공현기 수련자 역시 충격에 휩싸였다. 노파와 마지막 선비 두 사람은 곧장 후퇴해 달아났다.
그때, 청림이 두 눈을 감은 채 원신을 몸 밖으로 뽑아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이자 우계의 선제인 그의 원신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인처럼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그의 원신은 한달음에 바퀴로 다가가 그것을 꾹 눌렀다.
홍삼자와 소하성역의 주인도 동시에 두 눈을 감고 원신을 발산했다. 청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바퀴 앞에 이른 네 사람의 원신이 힘을 가하자 바퀴는 또 한 번 회전했다.
쿠르릉!
바퀴가 세 번째로 회전했을 때, 우주가 무너져 내렸다. 층층이 조각난 우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이 멀리 달아나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그 강력한 힘에 와해됐다.
휴식과 정비
바퀴를 세 번째로 회전시키고도 남은 힘은 그 바퀴를 조금 더 움직였지만 네 번의 완벽한 회전까지는 무리였다.
이때,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원신을 내보내 거대한 바퀴에 힘을 가했다. 그제야 바퀴는 한 번 더 돌면서 마침내 네 번째 회전을 마쳤다.
웅웅!
우주가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이한 힘이 한제와 계내 수련자들 원신에 녹아들면서 사방을 휩쓸었다. 그 힘에 아직까지 살아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나천성역 내 어디에 있든 바르르 떨다가 무너져 내렸다.
당시 한제에게 공격을 퍼부었던 노파 역시 경련하다가 연기로 흩어져 버렸다.
다만 마지막 선비는 계내 모든 수련자가 합심해 만들어낸 힘에 휩쓸리기 직전에 선강 대륙의 구명 신통술을 발휘해 한 줄기 균열을 통해 황급히 도망쳤다.
모든 것이 끝났다.
바퀴 밖의 수많은 원신은 잔뜩 초췌해진 상태로 각자의 육신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원신을 되찾은 그들은 일제히 피를 토하며 중상에 시달렸다.
한제도 마찬가지였다. 세 개의 본원으로 바퀴를 만들어내는 일은 그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고신의 육신이라 해도 그 부담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만약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가 힘을 보태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절대 이 본원의 바퀴를 돌리지 못했을 것이다.
“3년⋯⋯ 마지막 3년!”
한제는 잔뜩 지친 얼굴로 천황로 위에 서더니 천황로와 본원의 바퀴를 가지고 긴 빛을 그리며 먼 곳으로 향했다.
“모두 3년 동안 회복에 전념하도록! 그동안 내가 보호하겠다!”
계외 침입자들은 모두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고 도망쳐 나간 것은 한 명의 선비뿐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허공의 균열을 통해 빠르게 빠져나갔다.
한데 이 엄청난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운락이었다.
운락은 계외 모든 수련자 중 한제의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미래를 예측하며 목격했던 장면들로 그녀의 마음속에는 깊은 두려움이 새겨졌고 이에 그녀는 한제가 장존을 물리친 순간 스승으로부터 받은 구명 옥패를 부수었다.
그녀의 스승이 죽기 직전 제련한 이 옥패는 우주와 융합되면서 그녀를 어디로든지 이동시켜주었다. 덕분에 그녀는 찰나의 순간 태고 성신 내 그녀가 속한 부족의 제단에 도착했다.
분신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 옥패 덕에 그녀는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 ★ ★
한제의 상태는 불안정했다.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방금 전의 격렬한 전투에서 중상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선비를 죽이면서 입은 부상은 천황로로 흑의의 노인과 또 다른 선비를 억누르느라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세 개의 본원을 융합해 만든 바퀴였다. 그것을 응집시키기 위해 한제는 가진 힘을 전부 쏟아부었고 네 번째 회전을 시키기 위해 힘을 쓴 후로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지금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 수준 높고 강력한 수련자로는 보이지 않았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허나 눈빛은 여전히 강인하고 서늘했다.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계내 수련자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사도환을 비롯한 수천 명의 수련자가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한제와 함께 부상을 입은 계내 수련자들이 회복하는 동안 그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맡았다.
한제는 청수나 가까운 지인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은 채 그대로 전장을 떠났다.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의 계내는 오랜만에 평화로웠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시작, 첫걸음일 뿐이었다.
이러한 재난은 앞으로 3년 동안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계내와 계외 모두를 말끔히 밀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밀려들 것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했다.
선강 대륙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부 안에서 태어난 수련자들이 전부 죽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천도가 있는 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명은 계속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제는 절대로 그렇게 둘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한제는 세 본원으로 이루어진 바퀴를 떠밀며 멀리 날아갔다.
뒤에서는 모은미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깨문 그녀의 두 눈에는 매우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빛이 드러났다. 한참 뒤, 고개를 숙인 그녀의 귓가에는 아까 전 한제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내 여인은 아니나 내 아들 이평의 어미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혼란한 빛은 없었다. 그녀는 굳건한 눈빛으로 몸을 훌쩍 날려 한 마리의 남색 봉황과 함께 한제를 쫓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청수가 원신을 되찾은 뒤 한제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고 있는 분홍 옷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넌 일찍이 저자를 알고 있었구나.”
분홍 옷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외롭게 살아온 자다. 저자와 함께하고 싶다면 망설여서는 안 돼. 세상일이란 망설이는 순간 기회를 잃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당시의 나처럼 망설여서는 안 된다.”
청수가 다소 침통한 눈빛으로 말했다.
“왜⋯⋯ 저를 구해주신 겁니까?”
분홍 옷의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청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에는 할 수 없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청수는 상대에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분홍 옷의 여인은 청수에게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청수의 복잡한 눈빛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제가 사라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저 멀리서는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청림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눈을 감았다.
“어쩌면 한제는 진상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스승님이 해주셨던 이야기 같은 진상을 당시의 나로서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나보다 그는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 진상과 마주하기를 선택한 걸지도 몰라.”
그때, 모은미와 분홍 옷의 여인에 이어 아직 무너져 내리지 않은 수련성에서 훌쩍 튀어나온 세 번째 빛이 한제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그 빛 안에는 서자봉이 있었다.
거의 동시에 네 번째 빛줄기가 한제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소하성역에서 온 공현기 수준 수련자 보라색 옷차림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본래 과묵했고 여동생이 전사한 30년 전부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몇 명뿐이었지만 전쟁에서의 활약만으로도 모든 계내 수련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지금 계내 수련자의 수는 5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백여 년 전, 운해성역에서 첫 번째 전투가 치러졌을 때 50만 명에 달했으니 전쟁으로 9할 이상의 수련자가 죽은 셈이다. 애초에 몇 없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도 여럿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 또한 대부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더욱이 향불도 충분치 않아 회복도 어려웠다. 심지어 다시는 본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나천성역에 배치된 진 안의 수련성도 전쟁 이후 겨우 열아홉 개만 남아 있었다. 이 수련성들은 수련자들이 상처를 치료하는 장소이자 계내의 새로운 수련계가 됐다.
사도환을 비롯한 이들의 보호 아래 열아홉 개의 수련성에서는 수련자들이 좌선을 했다. 연단에 뛰어난 자들은 몇몇 강자와 함께 비어 있는 나머지 3대 성역에서 약초를 찾아 단약을 제련했다.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으나 누구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 않았다.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내는 침묵 속에 묵묵히 남은 3년을 지내게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