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81
사실 한제는 이런 구체적인 점들은 알지 못했다. 지금의 그에게는 사실 그런 것들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력한 기세가 느껴지는 그는 마치 하늘을 떠받친 채 계내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봉계의 진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전보다 훨씬 약해진 빛을 번득였다.
침묵하던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발을 굴렀다.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봉계의 진은 빛을 번득이며 경련했고 거미줄 같은 구조가 허상으로 나타나면서 계내 전체를 뒤덮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죽어가고 있던 진의 목숨을 완전히 거둔 셈이다.
나천성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 역시 화들짝 놀라 눈앞에 드러난 봉계의 진을 바라보았다.
“넌 계내와 계외를 수만 년 동안 가르고 있었다. 계외의 침입을 저지하고 계내의 외출을 막아주었지. 계내의 입장에서 수호자인 네게 절을 올리마!”
한제는 포권을 하더니 허상으로 드러난 봉계의 진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너로 인해 우리 계내에서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거의 배출되지 못했고 계내와 계외의 힘에 불균형이 생겼다. 그러니 계내 수련자 입장에서 너의 존재는 감옥과도 같았어!”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봉계의 진을 꾹 눌렀다. 동시에 인과인을 발휘한 그는 주먹을 쥐더니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던 봉계의 진에서는 한 줄기 번개가 그대로 뽑혀 나왔다.
그것은 천둥번개로 이루어진 한 자루의 창으로 무궁무진한 천둥번개의 힘을 품고 있는 섬뇌족의 성물이었다.
오른손을 휘두르자 콰쾅 하고 무너져 내린 천둥번개의 창은 셀 수 없이 많은 번개로 흩어져 반경 수천만 리를 뒤덮었다.
신기원
봉계의 진에 녹아들어 진령으로 존재하던 창이 뽑혀 나오고 소멸됨으로써 이제 봉계의 진에서 진령은 제거됐다.
창이 무너져 내리자 진동하던 봉계 진의 거미줄과 같은 구조에서는 줄기줄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가 널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너를 소멸하고 이 자리에 새로운 진을 배치할 것이다. 우리 계내를 위해 태어나고 존재할 이 진은 오직 우리 계내 수련자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
한제는 다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봉계의 진을 연달아 여섯 번이나 두드렸다.
콰쾅!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인과인이 여섯 번 발휘됐고 이에 따라 봉계의 진은 진정한 붕괴를 맞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나간 채 계내를 둘러싸고 있는 거미줄 구조도 파괴됐다.
붉은 빛이 피처럼 퍼져 나가며 진을 물들였다.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 어린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고 뒤이어 거대한 아홉 개의 유성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허상으로 나타났다. 망치의 머리에 묻어 있는 검은 피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지만 봉계의 진에서 빠져나온 그것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유성으로 이루어진 망치 다음에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거대한 화염 투석차가 나타났다. 무척 거친 모습의 투석차 역시 봉계 진의 진령 중 하나였다. 오랜 세월 그 앞에서 목숨을 잃은 계내와 계외 수련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 대부분은 계내 수련자였다.
투석차 역시 인과인에 의해 봉계의 진에서 뽑혀 나온 뒤 곧장 산산조각이 나 안개처럼 흩어졌다.
다음으로는 금빛을 번득이는 칼이, 그다음으로는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보라색 채찍이 나타났다. 수많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채찍은 짝, 짝 소리를 내며 뱀처럼 구불거렸다.
채찍까지 잃은 봉계의 진은 바르르 진동했고 이어서 오래되고 거친 기운과 함께 거대한 낭아봉이 나타났다. 수많은 가시가 박혀 있는 낭아봉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뒤얽혀 있는 수많은 원혼을 통해 그것이 일전에 얼마나 끔찍한 살육을 자행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진령 역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펑 하고 와해돼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아직 완전히 모습을 갖추지 못한 채 한 덩어리 안개로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진령 역시 봉계의 진 밖으로 나오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총 아홉 개의 진령 중 벌써 일곱 개의 진령이 파괴된 것이다.
한제는 말없이 봉계의 진을 바라보았다. 이미 진에서는 불가역적인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계내 모든 수련자들은 우주를 둘러싼 봉계의 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게 됐다. 이제 더 이상 계내와 계외의 구분은 없었다.
“봉계 진의 여덟 번째 진령은 우리 고족의 성물, 개천부지.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진의 붕괴와 함께 개천부 역시 소멸될 것이다.”
한제가 봉계의 진을 향해 오른손을 휘두르자 진은 콰쾅 소리와 함께 진동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여덟 번째 진령을 드러냈다.
이번 진령의 힘은 이전 일곱 개의 진령보다 훨씬 강력했다. 바로 고신족의 강력한 법기, 개천부였다.
허상으로 나타난 거대한 개천부에서는 짙은 고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도끼의 등장과 함께 고신의 기운이 짙게 퍼져 나갔다. 그 기운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봉계의 진을 휩쓸었고 그러자 진의 떨림은 더욱 격해졌다.
이어 콰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눈을 감으면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계속해서 살육을 자행했던 개천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세월 동안 이 개천부에 죽음을 맞은 이는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때 한제는 수많은 허상의 원혼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원혼들은 개천부의 사방을 뒤덮은 채 구슬프게 울부짖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꼭 도끼에 돋아난 작은 혹들 같았다. 마치 도끼가 황천에서 죽은 영혼들을 휘감고 나온 듯한 광경이었다.
개천부는 이전의 진령들처럼 흩어져 사라진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점점 또렷해졌다. 마치 기로에 서서 고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제를 주인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진령으로서의 소멸을 택할 것이냐.
시간은 흐를수록 봉계 진에서는 울려 퍼지는 소리는 점점 요란해졌다.
1각 정도 기다리던 한제는 봉계의 진이 여전히 허공에서 꼼짝도 않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나를 따르지 않겠다면 연기처럼 흩어져 소멸하라!”
뒤이어 그는 개천부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봉계의 진은 전체적으로 다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개천부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한제에게 돌진했다.
순식간에 봉계의 진에서 빠져나온 도끼는 한제 근처에 이른 순간 고개가 홱 들어 올려졌다. 동시에 한제는 어마어마한 힘과 기운이 훅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도끼는 그를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겨우 법기 주제에 왕족 고신인 나를 해하려 하느냐!”
한제의 두 눈이 싸늘하게 번득였다. 동시에 그의 몸은 부풀어 올라 눈 깜짝할 사이 거구의 고신이 됐다.
오른손을 홱 들어 올린 한제는 도끼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온 우주를 진동시켰다. 층층이 무너져 내린 봉계 진은 조각나 깨져버렸고 개천부 역시 바르르 진동하면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한제 역시 뒤로 수천 척을 밀려났고 주먹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심지어 상처 안쪽으로 들여다보이는 뼈도 갈라져 있었다.
허나 그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한제는 곧장 그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붉은 빛이 번쩍이면서 검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길이가 1천 척까지 뻗어 나가면서 전보다 더 강한 붉은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면서 검을 높이 쳐들었다가 곧장 내리쳤다. 쉭 하고 쏘아져 나간 검기가 개천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콰쾅!
강력한 두 법보가 충돌하면서 격렬한 소리가 울렸다. 도끼와 검은 계속해서 부딪쳤는데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개천부가 검보다 살짝 뒤처졌다. 이는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으로 결국 개천부는 이내 밀려나기 시작했다.
또한 개천부에는 줄기줄기 상처도 생겨나면서 그 안에서 발산되는 빛 역시 한층 약해졌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나를 주인으로 모셔라!”
한제는 검을 다시 한번 휘두르면서 낮게 호령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는 나가떨어지면서 허공에 거대한 균열을 냈다.
한제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이 붉은 빛을 번득이며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앞으로 한 발 나선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개천부의 앞에 이르렀다. 균열에 빠져 있던 개천부가 휙 날아올라 고신의 힘을 발산하려는 찰나, 한제는 그 자루를 붙잡았다.
그러자 개천부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한제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도끼의 머리 부분에서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고신의 허상이 빠져나왔다. 그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한 줄기 광풍처럼 튀어나온 그 허상은 한제를 집어 삼키려는 듯 곧장 달려들었다. 흐릿하게 나타난 허상은 바로 개천부의 기령(器靈)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허상을 향해 크게 외쳤다.
“어딜 감히! 난 왕족 고신이며 도고의 후계자다! 그런 나를 삼키려 들다니, 죽으려고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그 외침에 뒤에서 도고의 머리가 허상으로 나타나 음산하고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함께 소리쳤다.
고함과 함께 뿜어져 나온 회오리가 개천부에서 튀어나온 허상을 강타했다. 이에 그 허상은 비명을 내지르며 두려움에 질린 듯 바들바들 떨더니 뒤로 밀려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가 곧 다시 응집됐다.
다시 응집된 허상은 덜덜 떨다가 이내 한제를 향해 포권을 했고 동시에 급속도로 수축해 개천부 안으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개천부도 이내 잠잠해졌다.
한제는 그 도끼에 혀끝을 물어서 낸 피를 뿌렸다. 그 피는 붉은 낙인이 되어 번득이다가 완전히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다.
이에 한제는 굴복한 개천부를 바라보았다. 문득 당시 선대 봉계 지존의 도움 아래 힘겹게 이 개천부를 통제했던 때가 떠올랐다.
거대한 도끼를 든 채 백발을 휘날리고 있는 지금의 한제는 주작성에 세워진 그의 조각상과 거의 똑같았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개천부는 빛으로 흩어져 미간에 녹아들었다.
이내 고개를 숙여 무너지고 있는 봉계의 진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이 진에는 총 아홉 개의 진령이 있고 마지막 진령은 특히 강력할 터였다. 당시 봉계의 지존은 직접 이 진에 녹아들어 그것을 통제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 진에 균열이 벌어지고 여러 일들이 발생해 봉계 지존의 혼은 완전히 소멸해버렸고 마지막 진령도 생기를 잃은 듯했다. 봉계의 진이 죽어가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일과 연관이 있을 터였다.
봉계의 진을 향해 손을 뻗은 한제는 마지막 인과인을 발휘했다.
꽈르릉!
봉계의 진에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울렸다. 마치 최후의 저항을 하려는 것처럼.
이윽고 격렬한 떨림 아래 부서진 옥패 하나가 뽑혀 나왔다.
이 옥패에는 깊은 균열이 잔뜩 있었다. 그중 하나는 1백 년쯤 전에 생겨난 듯 나머지 균열에 비해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많은 균열 사이로도 하나의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仙)!
옥패가 뽑혀 나옴에 따라 봉계의 진에서는 마지막 붕괴가 일어났다. 콰쾅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계내 4대 성역을 뒤덮은 거미줄은 층층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 붕괴는 완전하고 철저했으며, 비가역적이었다.
이에 따라 4대 성역의 모든 수련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됐다. 그들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우주가 휩쓸리면서 수만 년 동안 봉계의 진을 봉인하고 있던 진이 가루처럼 흩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모은미와 분홍 옷의 여인, 그리고 서자봉은 세 갈래의 빛을 그리며 나아가다가 서로 한데 모인 채 우주 한가운데 멈춰 섰다. 한제가 있는 곳에 이르려면 아직 더 가야 했으나 봉계의 진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 더 나아가기는 무리였다. 한데 모여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는 말없이 옥패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옥패는 봉계의 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고 그 순간 그것은 뿌리를 잃은 나무처럼, 물에서 나온 물고기처럼 기운을 잃어갔다.
옥패가 부서지자 봉계의 진은 한층 더 격렬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 순간 곤허성역은 봉계의 진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됐고 소하성역도 계외 태고 성신에 완전히 노출됐다. 뿐만 아니라 나천성역과 운해성역도 자유로워졌다.
계내와 계외 사이에 더 이상의 간극은 없었다.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았던 봉계의 진은 연기처럼 흩어진 상태였다.
동시에 계내에서 향불을 응집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기이한 힘 역시 사라졌다. 이에 나천성역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의 표정이 격앙됐다.
진을 파괴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이는 새로운 진을 다시 세우기 위한 포석이었고 새로운 진은 그가 세운 계획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봉계의 진이 무너져 내리자 계외 태고 성신의 기운이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 기운은 4대 성역을 맴돌았다. 계내에 존재하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기운은 아니었지만 힘겹게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계내 수련자들은 이 기운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개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