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83
굉음과 함께 진이 계속해서 확장되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계외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반응이 늦은 몇몇은 불어나는 진에 뒤덮인 순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짝 말라버렸고 그 원신과 영혼은 진에 흡수되어 바퀴를 회전시키는 노예가 되어 버렸다.
진이 확장됨에 따라 계내의 우주도 끝없이 넓어졌다. 진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전부 계내의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침략이자 침입이었다.
“당시 설치된 봉계의 진은 공평하지 않았다. 무엇을 근거로 계내와 계외를 그렇게 나눈 것인가! 오늘 나는 이 무명전륜진으로 새로운 경계를 세울 것이다!”
한제가 외쳤다.
이제 계내의 범위는 이전보다 2할 정도 넓어져 있었다. 이는 곧 계외의 영역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 늘어난 공간에는 수많은 수련성이 있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반인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미간에 낙인이 찍혀 있는 계외 수련자들은 달랐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이들은 결국 육신을 잃고 원신과 혼이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지난 오랜 세월, 수련자들 간의 전쟁으로 인해 무고하게 죽은 일반인이 너무도 많다. 비록 수련자들의 혼만큼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직 남은 혼들이 분명 존재할 터! 무고한 죽음을 맞은 이가 있다면 이 진을 통해 윤회의 굴레로 돌려보내주마!”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자 바르르 진동하는 계내의 우주에서 모습을 채 갖추지 못한 연기 같은 기운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계내 우주에서 나타난 이것들은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몰려들어 회오리를 형성했다. 이 회오리에는 수련자보다 훨씬 많은 일반인의 혼이 담겨 있었다.
혼으로 이루어진 회오리는 한제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확장되고 있는 진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수많은 일반인들의 혼이 진에 녹아들면서 윤회로 돌아갔다.
그 순간, 그들이 윤회로 돌아가는 힘을 이용해 진은 한 번 더 확장해 이전보다 3할이 넓어졌다.
“나 이한제는 3년간 이 진의 수장 진령이 되어 머물며 계내를 지킬 것이다!”
한제는 침착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진에 스며들었고 진 안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 무렵 계내의 영역은 이전보다 4할이 더 확장되어 있었다. 그제야 한계에 맞닥뜨린 것인지 진은 확장을 멈추었다. 동시에 진에서 발산된 강력한 빛은 위로 곧게 솟구쳐 올라 계내를 둘러싼 빛기둥을 형성했다.
한제는 이전에 봉계의 진에 생겨난 균열이 있던 그 위치에 융합되어 있었다. 가부좌를 튼 그의 아래로 천황로가 소환되었다. 그러자 한제는 그 위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새로 계내에 속하게 된 수련성은 무척 많았다. 계내에 생기가 주입된 셈이다.
이는 계외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한 번 도망쳤던 장존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또 다른 궁전 안에 가부좌를 튼 채 허공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이 닿은 곳은 한제가 있는 곳이었다.
“그 녀석에게 남은 화살은 두 대뿐이야. 틀림없어! 허나 나의 세 개의 목숨 중 남은 것은 이제 하나. 반드시 저놈이 3년 안에 남은 두 대의 화살을 써버리게 만들어야 해! 화살을 쏠 수 없으면 저 녀석은 별것 아니지!”
장존의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한제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당시 계내에서 그를 고함으로 내쫓았던 사람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을 초월해 있었다.
“묘음도존, 구천마존, 그리고 대황상인. 그들은 오래된 무덤에 갇혀 있다. 네 번째 선비도 그곳에 있지. 그들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이한제의 선력을 소모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장존이 막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그는 우뚝 멈춰 서더니 두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들어 옥패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그 옥패에 한 줄기 신식을 주입하더니 휙 내던졌다. 옥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존회는 들어라. 모든 병력을 모아 계내를 공격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3년 안에 새로운 진을 파괴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은 본체로 장존회로 모여 내 명령에 따라 진을 파괴하라! 각 부족의 부족원 중 다섯 번째 천쇠에 이른 수련자들 역시 속히 장존회로 가 공괴(空傀) 제련을 받도록. 만약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장존회의 보물창고를 열고 원고 시대의 비밀 소환을 취하라. 수련자 10만 명의 피를 취해 원고 시대의 소환을 발동하라!”
어두운 표정의 장존은 두 눈으로 여러 명령을 내린 뒤 몸을 훌쩍 날렸다.
“그리고 남몽도존, 다섯 번째 비의 육신은 그의 아내지. 게다가 그 아내의 혼도 아직 남아 있어. 다섯 번째 비와 함께⋯⋯.”
장존은 생각을 정리하며 우주로 몸을 날렸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눈으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태고 성신의 남사족이 있는 남산이었다. 슬픈 칠현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남산 상공에 나타난 장존은 그 소리를 한참이나 듣고 있다가 소매를 휘두르며 남산 꼭대기 오두막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남몽도존, 계내 나천성역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알고 있나?”
이어지던 칠현금 소리가 점차 줄어들다가 이내 멎어버렸고 뒤이어 오두막 안에서 남몽도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안다.”
“자네가 나서서 녀석이 화살을 한 발 쏘게 만든다면 내 선인 혈맥의 힘으로 다섯 번째 선비의 혼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해주겠네!”
오두막 안은 잠잠했다.
하지만 남몽도존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다고 확신한 장존은 곧장 몸을 돌려 사라졌다.
다음으로 그가 나타난 곳은 태고 성신 내 우주의 어느 균열이었다. 그는 균열 밖에서 흘러넘칠 듯 강력한 신식을 밀어 넣었다.
“일곱 번째 선비, 지금까지의 폐관수련으로 상처는 이미 회복했을 줄 아네. 만약 이번에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일전의 약속은 없는 것으로 치겠네!”
한참 뒤에야 균열 안에서 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서도록 하지.”
장존은 균열을 한 번 더 훑어본 다음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계외에 남은 최후의 힘을 모은 그는 마침내 태고 성신의 가장 깊은 곳, 둥글게 모여 있는 아홉 개의 대륙에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한 층의 진으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선인의 혈맥을 가지지 않은 자는 들어올 수 없었다.
대륙을 이룬 아홉 개의 조각 중 하나에 이른 장존은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원형으로 모여 대륙을 형성한 아홉 개의 조각은 기이한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외부를 둘러싼 진 때문에 선인의 혈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바로 옆을 지나간다 해도 이 대륙을 볼 수 없었고 신식으로도 진의 존재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장존이 그중 하나의 조각에 서서 인사를 올리자 일곱 개의 조각에서는 각기 다른 색의 빛이 번득이며 일곱 빛깔 무지개를 이루었다. 나머지 두 개의 조각은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고 다른 대륙에서 발산된 빛에 뒤덮였다.
이 일곱 색채의 빛에서 이내 하나의 인영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흐릿하고 모호했던 인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렷해지더니 빛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한제가 칠채계에서 청수를 구할 때 나타났던 칠채도인이었다.
서자봉과의 1년
“스승님을 뵙습니다.”
전방에 나타난 상대를 바라보는 장존의 눈에는 복잡한 빛이 숨겨져 있었다.
“계내와의 전쟁에서 저희 계외 태고 성신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계내에 보내놓았던 이광의 활을 이한제가 그자가 가지고 있어 저로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일곱 개의 빛으로 응집된 칠채도인은 말없이 장존을 훑어보았다.
“정말 미친 것인가?”
칠채도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에 몸을 바르르 떤 장존은 질끈 감았던 눈을 한참 뒤에야 다시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칠채도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기이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오래된 무덤을 열어 그 안에 갇힌 자들을 빼낼 수 있도록 도와주마. 그 후의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이 놀이는 거의 끝났다. 세 번째는 아주 오랫동안 숨어 있었어. 이번에는 반드시 나올 거야.”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는 칠채도인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났다.
“이한제 그자가 세 번째입니까?”
장존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너와 나, 그리고 전가 노인과 몇몇을 제외한다면 세 번째가 될 가능성은 모두에게 있다. 허나 너무 깊이 숨어 있어. 어쩌면 자신조차 자신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한제 그자는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
칠채도인의 목소리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장존은 공손히 포권을 하더니 몸을 돌려 떠나가려 했다. 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우뚝 멈춰서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저는 명에 따라 스승님을 스승님으로 모셨습니다. 당시에 했던 약속에 대해서는⋯⋯?”
“네 주인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세 번째 녀석을 삼키고 나면 전가 노인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해! 그때가 되면 네 주인이었던 그자도 내게 흡수될 것이다.”
칠채도인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일곱 색채의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장존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 뒤에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한제는 삼원륜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천황로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흑의의 노인과 다섯 번째 선비, 총 두 명의 공현기 수련자가 담긴 상태였다. 워낙 강력한 존재들이라 가둬놓기만 했을 뿐, 현재 한제의 수준과 천황로만으로는 그들을 제련할 수는 없었다.
한제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두 공현기 수련자를 제압했다.
그에게는 그 어떤 때보다 힘든 3년이 될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 뒤로 넓어진 운해성역에 세 갈래 빛이 어렴풋이 나타나더니 세 명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들은 1만 척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바퀴 안에 녹아든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쓸쓸하고 고독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거대한 산봉우리와 같은 듬직함도 느껴졌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아간 것은 서자봉이었다. 그녀는 한제 옆에 이르더니 부드러운 눈으로 활짝 웃었다.
“이제 알겠어요.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같은 수련자의 생명은 아주 길지요. 우리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긴 삶에서 1년이에요! 딱 1년⋯⋯. 당신이 계내를 지키는 동안 제가 이곳에서 1년을 함께하겠습니다.”
서자봉이 조용히 읊조렸다.
한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눈도 뜨지 않았다.
“1년 후에 바로 떠날게요. 죽는다면 연기처럼 흩어질 것이고 산다면 조용히 수련에 전념할 거예요. 답을 하지 않으셔도 저를 보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그저… 내쫓지만 말아요.”
서자봉은 상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가부좌를 튼 채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남은 상태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마치 1천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제는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한제의 마음속에 자신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한제와 함께 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어쩌면 그녀는 한제의 인생에 스쳐간 수많은 과객 중 한 명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서자봉이 원하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한제와 단 1년 만이라도 함께하면서 연모하는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 말을 꺼낸 그녀는 침착해 보이는 것과 달리 마음속으로는 거절 당할까봐 잔뜩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제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거라.”
한제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서자봉은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안색도 대번에 창백해졌다.
“1년이면 돼요. 딱 1년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