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86
한데 심신으로 한제와 연결된 지하마수는 그의 명령에 결코 불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녀석은 입을 쩍 벌린 채 한층 격렬하게 포효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순간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발산됐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고 있던 원고 시대 흉수들은 자석에 끌리듯 지하마수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 역시 순식간에 코앞까지 끌려왔다.
그때, 한제가 얼른 손으로 지하마수의 등을 두드려 그 흡입력을 중지시켰다.
한제는 지하마수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수만 명의 수련자를 흡수한다면 지하마수는 또 아주 긴 잠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나천성역의 전장에서도 지하마수를 소환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마수는 든든한 존재였기에 깨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원고 흉수들의 혼을 좀 삼킨다고 해서 잠이 들지는 않을 터였다.
지하마수의 거대한 입은 잠시 다물어졌다가 곧 다시 벌어졌다. 그러더니 요란하게 트림을 하고는 다소 억울한 듯한 표정으로 요상한 소리를 냈다. 원고 시대 흉수들을 모두 삼킨 후로도 여전히 두려운 모양이었다. 맛도 없고 무섭기만 한 녀석들이었나 보다.
계외 수련자들이 반쯤 넋이 나가 있는 동안 한제는 신식을 이용해 지하마수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지하마수는 티끌만 해지더니 즉시 한제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너무 놀라고 두려워 몸마저 물러진 녀석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한제의 미간으로 사라진 후에도 녀석의 심장은 요란하게 펄떡였다.
이렇게 10만 개의 원신으로 소환된 원고 시대의 빛과 장존회의 강력한 전차들은 모두 파괴됐지만 계외 수련자들에게는 아직 마지막 무기가 남아 있었다. 쇠사슬에 감긴 거대한 비석이었다.
비석에 감긴 쇠사슬 끝에는 아홉 개의 거대한 관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비석에서 돌연 아홉 개의 문양이 빠르게 번득이기 시작했고 이 문양에서 흘러나온 아홉 갈래의 기운이 사슬을 따라 아홉 개의 관으로 흘러들었다.
그 기운들이 녹아든 순간, 펑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아홉 개의 관 뚜껑이 산산 조각나 버렸다.
뚜껑이 사라진 관 안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잡초처럼 올올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온 우주는 그 길고 검은 머리카락으로 가득 찼다.
“계외 태고 성신을 수호하시는 태고 황신(皇神)이시여, 아홉 조각으로 나뉜 육신을 하나로 합치고 그 혼을 소환하려 하니, 부디 저 진을 부수고 저자를 죽여주십시오!”
다섯 명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는 꿇어앉아 절을 올리더니 혀끝을 깨물어 원신의 정혈을 토해냈다. 그들이 뱉어낸 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아홉 개의 관으로 흡수됐다. 동시에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자 역시 피를 토해냈고 그 피 역시 아홉 개의 관에 스며들었다.
콰쾅!
피를 흡수한 아홉 개의 관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나둘 폭발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고신과 고요, 고마의 기운이 한데 뒤얽히면서 형성된 도고의 힘 한 자락이 아홉 개의 관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도고 엽막의 기운!’
한제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진 위에 서서 아홉 개의 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계외에 이렇게 순수한 도고의 기운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엽막의 왼쪽 눈이 아니야! 왼쪽 눈이라면 이보다 더 강한 기운이었을 거야. 허나 왼쪽 눈이 아니라면⋯⋯ 이건 대체?”
가장 먼저 폭발한 첫 번째 관에서는 수많은 파편 사이로 붉은색의 팔 한쪽이 나타났다. 그것이 나타난 순간 온 하늘을 다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발산됐다. 도고의 기운이었다. 붉은 털이 잔뜩 난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팔 같았고 흉측한 다섯 손가락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나 있었다.
또 다른 관에서는 다른쪽 팔이 나타났다. 붉은 털이 북슬북슬한 팔의 피부에 불룩 돋아난 핏줄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뒤이어 도고의 기운을 풍기는 두 개의 다리도 두 개의 관에서 나타났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한제의 두 눈은 더욱 진중해졌다.
이어서 네 개의 관이 속속 터지더니 그 안에서 나타난 것들이 합쳐져 거대한 몸통을 이루었다. 그 몸통에서도 역시 고신의 기운이 풍겼다.
먼저 나타난 두 팔과 두 다리가 휙 날아들어 몸통에 붙더니 머리를 제외한 완전한 몸을 이루었다.
이 기이한 존재의 키는 머리가 없는데도 1만 척에 달했고 강력하고 거센 도고 엽막의 기운을 발산했다.
이때 마지막 아홉 번째 관도 쾅 하고 터져나가면서 거대한 머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사방으로 뻗어 있던 수많은 머리카락이 일제히 꿈틀거리면서 머리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나타난 머리는 중년 사내의 것이었다. 두 눈을 감은 머리에서는 강력한 위압감이 발산돼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한제의 두 눈은 그 머리의 미간에 꽂혔다.
‘고신의 반점!’
두 개뿐이었지만 한제가 지금껏 보았던 고신의 반점들과는 전혀 다른 이 반점은 마치 두 방울의 피가 낙인으로 새겨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머리가 거대한 몸통과 연결되면서 완전한 도고의 모습을 갖추었고 동시에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발산돼 온 우주를 무너뜨릴 듯 격렬하게 진동시켰다. 동시에 사내의 체내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위압감이 발산됐고 왼쪽 눈에서는 고요의 반점 세 개, 오른쪽 눈에서는 고마의 반점 세 개가 번득였다.
“저자는 누구지?”
한제는 사내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가 가진 도고의 기억 속에는 저 사내에 대한 단서가 없었다. 일단 저 사내가 도고의 왼쪽 눈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강력한 기운을 뿜어냈지만 도고의 왼쪽 눈에서 풍기는 것처럼 완벽한 기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내가 풍기는 기운은 분명 순수하고 진정한 도고의 기운이었다.
한제 또한 도고의 기운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는 물려받은 것이라 도고의 기운이라고는 해도 엽막의 기운은 아니었다. 반면 저 거대한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엽막의 것이었다.
★ ★ ★
태고 성신. 시종일관 신식으로 전장을 살피던 장존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조각난 채 아홉 개의 관에 봉인되어 있던 자는 장존회의 보물 중 하나였다.
오랜 세월 그와 칠채도인이 곳곳에서 수집해 모은 끝에 응집해낸 결과로 저것을 얻기 위해 저지른 살육은 끔찍할 정도였다.
그런 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절대 내놓지 않았을 보물이었다. 장래에 매우 유용한 존재가 될 터였기 때문이다.
허나 한제가 두 개의 화살을 소모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한 방울이 모자란 탓에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도고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의 싸움이라면 저 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몰라!”
장존의 눈이 번득였다.
엽막의 아들
나천성역 깊은 곳, 수련성 하나 없어 생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어느곳.
이곳을 채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무궁무진한 먼지 중 하나에는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했다. 그저 먼지 한개에 있는 세계임에도 매우 드넓은 이곳은 온통 얼음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구름과 대지도 모두 얼음으로 뒤덮인 채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동림성이 있던 이곳, 나천성역 내 원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일한 수련자 가문이 거주하는 이곳에는 여자 고신이 하나 있었다.
4대 성역 곳곳에 여파를 미친 계내와 계외의 전쟁도 이곳까지 불사르지는 못했다. 이들 가문은 원고 시대부터 오랜 세월 동안 각종 재난과 재해를 피해왔던 만큼 이 끔찍한 전쟁에서도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방도가 있었던 것이다.
얼음으로 봉인된 이 세상의 산꼭대기에는 제단인 듯한 장소가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마구 불어오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인이 그 제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순간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 일곱 개가 회전하고 있는 그녀가 눈을 번쩍 떠 먼 곳을 내다보았다.
“아버지의 혈맥이 느껴지는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미간의 반점들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면서 흐릿해졌다. 그러는 사이 일곱 개의 반점은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핏방울과 같은 낙인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형성된 핏방울 낙인은 여인의 미간에서 기이한 붉은 빛을 번득였다.
★ ★ ★
“쿠오오오!”
삼원륜 밖, 하나로 융합된 중년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낮은 포효를 내질렀고 손을 들어 진 안의 한제를 가리켰다.
한제를 향한 사내의 손가락 끝에서 기이한 낙인이 형성됐다. 아무런 공격력도 가지지 않은 낙인이 응집된 순간, 사내는 뻗었던 손을 거둬 자신의 가슴팍을 눌렀다. 동시에 사내의 두 눈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전의가 피어올랐다.
“고족의 전인(戰印)!”
낙인을 본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도 같은 전의가 뿜어져 나왔다.
도고의 기억 속에 저것과 같은 낙인이 있었다. 전인이라 불리는 이 낙인은 세 고족 사이에 또는 도고가 살았던 고국에 존재했던 강력한 낙인으로 고족 간의 싸움에 앞서 필수적으로 바쳐야 하는 것이었다. 만약 어느 고인이 이 낙인을 소환할 경우, 그 낙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반드시 그 전투를 받아들여야 했다.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고족이라 불릴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을 건 전투가 이어지고 고족의 법칙에 따라 전투에서 죽은 자의모든 것은 승자의 것이 됐다.
만약 양쪽의 수준 차가 너무 크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그는 거절의 대가로 고족 안에서 약자로 취급받을 터인데 그곳은 약자가 생존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전인을 소환한 중년 사내는 한제의 선택을 기다리듯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잠시 그 낙인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에서 이내 전의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이어서 그는 진 밖의 중년 사내를 가리키면서 고족의 전인을 소환해 자신의 가슴팍을 눌렀다.
그 순간, 거대한 중년 사내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우렁차게 포효하더니 곧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쿵! 쿵! 쿠어!
거대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제 체내에서도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몸이 부풀어 올라 눈 깜짝할 사이 1만 척에 달하는 거인이 됐다.
진 밖으로 나온 한제는 태고 성신의 우주에 이르렀다. 중년 사내가 포효하며 달려든 순간, 한제의 입에서도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싸워주마!”
평생 수많은 살육과 전투를 해온 한제가 이런 도전을 거절할 리 없었다. 그는 사내를 꺾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또한 상대의 몸에 흐르는 도고의 기운은 자신이 8성급 고신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한제가 진 밖으로 나온 순간, 키가 1만 척에 달하는 중년 사내가 코앞으로 달려들며 주먹을 뻗었다.
고족의 전투는 육탄전 위주였다. 신통술은 거들 뿐이었고 실제로 서로의 힘을 판가름하는 것은 육체의 힘이었다.
사내의 주먹이 1천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른 순간, 한제는 두 눈 가득 하늘을 뒤흔들 듯 강력한 전의를 번득이며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꽈르릉!
두 사람의 주먹이 충돌한 순간, 계내와 계외가 진동하며 한 줄기 광풍이 확산되면서 두 사람의 머리가 마구 휘날렸다.
허나 마구 나풀거리는 머리카락도 두 사람의 눈빛을 가리지는 못했다. 주먹이 맞부딪친 순간, 그들 눈에서는 강렬한 전의가 뿜어져 나왔다.
한편, 서자봉은 진 안에서 창백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외의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이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한제를 위해 술을 데웠다. 그리고 그녀는 한제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쾅!
한제의 기혈이 마구 들끓었다. 피가 한 움큼 울컥 솟구쳤고 그는 몇 걸음 밀려났다. 한제에게 일격으로 이런 부상을 입히려면 수준이 매우 높아야만 했다. 허나 고족은 강력한 육신으르 서로에게 충분히 강력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이는 수련자와 고족의 차이이기도 했다.
한편, 중년 사내의 오른팔에서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파문이 줄기줄기 발산됐다. 그도 역시 피를 토하며 뒤로 밀려났다.
한제는 오른발을 뒤로 뻗어 몸을 멈추고는 곧장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이어서 두 눈이 한층 더 짙어진 전의로 물든 채 낮은 기합과 함께 돌진했다.
중년 사내 역시 뒤로 밀려나던 몸을 멈추더니 포효를 내질렀다.
콰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