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3
한제는 그런 흡혈마수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흡혈마수는 기쁜 듯 쉭 소리를 내며 곧장 균열로 돌진했다. 보아하니 지난 1백 년 동안 수시로 이 균열 안팎을 오갔던 모양이다.
한제도 뒤따라 걸음을 옮겼지만 경계심은 늦추지 않았다. 타고난 신중함은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서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기이함을 깨달아감에 따라 더욱 커져만 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훅 불어 닥쳤다.
한제는 신식을 펼치지 않고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균열 안의 세상은 형광색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빛은 이곳을 빽빽하게 가득 채운 거대한 알들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이는 흡혈마수의 알들로 부화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충 둘러봐도 수백만을 훌쩍 넘는 수였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알은 점점 많아졌고 크기도 커졌다. 심지어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그 안에서 금빛을 발하는 흡혈마수는 금방이라도 알을 깨고 나올 것처럼 거의 형태를 갖춘 상태였다.
한제의 흡혈마수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환호하듯 쉭 소리를 내며 어느 알 근처에 이르더니 거대한 주둥이를 쑥 집어넣고 쪽 빨아먹었다.
그제야 한제는 자신의 흡혈마수가 어떻게 이토록 강력해진 것인지 깨닫게 됐다. 이 공간 덕이었다.
“여긴 대체 뭘까?”
한제는 말없이 신식을 펼쳐 이 공간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충격에 휩싸인 채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홱 쳐들었다.
그리 넓지 않은 이곳은 마치 하나의 통로처럼 가늘고 긴 형태였다.
통로의 사방은 매우 취약했고 곳곳에는 균열이 인 듯 파손된 상태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한제가 있는 곳은 이 통로의 한쪽 끝으로 다른 쪽은 저 멀리 있었다. 허나 그 끝까지 신식을 뻗지는 못했기에 그저 그곳에 놓인 거대한 돌문이 있다는 점만 어렴풋하게 파악하는 데 그쳤다.
그 돌문에는 봉인용 부적이 하나 붙어 있었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통로 끄트머리에 이르렀다. 돌문으로부터 1천 척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서부터 돌문까지는 신식을 뻗을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었고 묵직한 위압감이 발산되고 있어 문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한제는 진중한 눈으로 돌문을 살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돌문에는 복잡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문자였지만 그 문자들로부터 고래(古來)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제는 이 돌문이 이곳에 완벽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오히려 이 통로가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누군가가 억지로 이곳에 쑤셔넣은 것에 가까웠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앞으로 발을 뻗었다. 그러나 문으로부터 1천 척 이내로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위압감이 체내를 압박해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도 못하게 했다.
한제의 눈이 번득이더니 이내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통로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겨 순식간에 문과의 거리를 5백 척으로 줄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체내에서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계속해서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그는 고신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이 압박감을 견뎌낼 수 없었다. 이에 그는 결인을 그리더니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바르르 떨리던 한제의 미간에서 회오리가 나타났고 핏빛을 번득이는 원신이 칠규에서 빠져나왔다. 이 핏빛은 다름 아닌 붉은 검이었다.
검과 융합된 원신은 붉은 검의 보호 아래 곧장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저항력이 계속해서 강타하며 한제의 원신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리고 돌문과의 거리가 1백 척으로 줄어들었을 때, 저항력은 무서울 정도에 이르렀다.
한제의 원신은 바르르 진동하는 붉은 검에서 밀려 나올 것만 같았다.
붉은 검을 붙잡고 있던 원신은 방향을 틀어 검으로 통로의 벽을 찔러 들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붉은 검은 뒤로 밀려났다.
붉은 검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한제의 원신은 오래된 문과 그 문에 붙어 있는 부적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가까이서 확인한 결과 한제는 그 문이 이 통로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가 이곳에 놓아둔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문에 붙은 부적이 이 저항력과 위압감의 근원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부적은 이 문을 봉인함과 동시에 누군가 문을 통해 들어오거나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문은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붉은 검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고 그의 원신은 1백 척을 밀려났다. 이제 문과의 거리는 2백 척이 된 상태였다.
동시에 붉은 검이 펑 소리와 함께 통로의 벽에서 튀어나왔고 저항력에 나가떨어지면서 한제의 원신은 순식간에 문과 5백 척 떨어진 육신으로 돌아갔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본체로 왔더라면 불멸술을 이용해 문 근처에 이를 수는 있었을 텐데… 허나 지금 돌아가서 본체로 다시 오려면 시간 낭비가 크다.”
한제의 두 눈이 서늘한 빛으로 번득였다. 평생 수련을 해오면서 그 어떤 힘 앞에서도 굴한 적 없는 그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왼쪽 눈에서 천둥번개가 번득이며 천둥번개의 본원을 드러냈다.
동시에 오른쪽 눈에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의 본원이 나타났다.
뒤이어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을 들었다. 왼손은 삶이요, 오른손은 죽음이었고 펼친 손바닥은 원인이요, 오른 주먹은 결과였다. 또한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것을 거짓과 진실로 만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체내에서는 강력한 한 줄기 살육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여섯 번째 본원인 살육의 본원이었다.
여섯 개의 본원은 한데 응집해 한제의 미간에 녹아들었다.
미간의 회오리에서 튀어나온 한제의 원신은 여섯 개의 본원을 이끈 채 다시 붉은 검에 녹아들었다. 번득이는 천둥번개의 본원과 타오르는 화염의 본원, 그리고 세 허상의 본원과 살육의 본원이 붉은 검에 실려 5백 척 너머의 돌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점점 강력한 저항력이 일어났지만 한제가 온 힘을 발휘해 소환한 본원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의 원신은 예리한 검처럼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뚫고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다시 문으로부터 1백 척 떨어진 곳에 이른 원신은 망설임 없이 저항력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리고 붉은 빛을 번득이던 붉은 검은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곧장 돌문에 붙은 부적을 찔렀다.
붉은 검은 돌문 안쪽으로 3척 정도 박혔다.
웅-!
무언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격렬하게 진동했고 부적에서 폭발한 저항력은 한제가 발휘한 여섯 본원과 충돌하며 그의 원신을 깨부수려 했다.
그 순간, 한제의 원신은 일찍이 느낀 적 있던, 매우 익숙하지만 이 동부의 것이 아닌 기운을 감지했다.
‘선강 대륙의 기운!’
외부인
선강 대륙은 까마득히 오랜 시간을 존재해온 곳으로 계내와 계외를 합친 것에 몇 배에 달할 정도로 넓어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라 해도 그것을 가로지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하늘의 가장자리, 땅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선강 대륙은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다.
이 선강 대륙의 동쪽에는 끝없이 길게 이어진 산맥이 있다. 안개로 뒤덮인 그곳은 선기로 충만했고 곳곳에서는 풀과 꽃들이 자랐으며, 새들이 지저귀고 선수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곤허성역 크기의 이 산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선강 대륙 전체에 비하면 드넓은 바다의 좁쌀 한 알에 불과했다.
이 산맥 가운데는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 산에는 거대한 궁전이 여러 채 있다. 선강 대륙 종파 귀일종(歸一宗)의 분종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귀일종은 칠도종처럼 그리 큰 종파는 아니었다.
귀일종의 분종 안 광장. 거대한 종이 상공에 떠 있었다. 높이가 1만 척에 달하는 종은 멀리서 봐도 그 위엄이 여실했다.
한데 그 종이 돌연 바르르 떨리면서 웅 하고 울었다. 그 소리가 분종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곳곳에서 여러 갈래의 빛이 몰려들었다.
그 순간, 거대한 종이 돌연 피처럼 붉은 빛을 번득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멀리 뻗쳐나갔다. 마치 선강 대륙을 아주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돌아온 것 같은 빛이었다.
그리고 그 붉은 빛과 함께 붉은색 칼끝이 종 위로 나타났다. 강력한 빛은 3촌가량 비죽 튀어나온 칼끝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엽막의 검이다!”
한 중년 사내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이한 도포를 입은 그의 두 눈이 밝은 빛으로 번득였고 공현기 절정 수준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운에서는 공겁기 수준의 힘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가 이미 몇 차례의 공겁을 관통했다는 증거였다.
뒤이어 도착한 여러 갈래의 빛에서 여덟 사람이 나타났다. 이들은 종 아래에 서서 기이한 눈으로 종을 뚫고 튀어나온 칼끝을 응시했다.
이내 칼끝은 천천히 뽑혀나갔고 동시에 붉은 빛도 사라졌다. 한 줄기 희미한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말없이 차가운 눈으로 거대한 종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적막했다.
“장문 사형, 동단종(東丹鐘)을 열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마 사형이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기 전, 절대로 이 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형은 곧 돌아오실 겁니다!”
“엽막의 혈검이라니! 엽막이 칠도종에 의해 동부 안으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칠채선존이 아내를 버리고 칠도종을 봉쇄한 것을 보면 분명 귀중한 보물을 얻었다는 건데⋯⋯ 마 사형은 오랫동안 연구하신 끝에 귀일종의 보물인 이것으로 그 동부로 통하는 통로를 열었습니다. 마 사형의 수준과 실력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 ★ ★
기이한 통로 안. 혈검은 튕겨나갔고 그 안에 녹아든 한제의 원신은 큰 충격을 안은 채 육신으로 되돌아왔다. 붉은 검을 손에 쥐고 다급하게 물러나 눈 깜짝할 사이 돌문에서 1천 척 떨어진 곳에 이른 한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심장이 요란하게 두방망이질 쳤다. 온몸의 수준 역시 빠르게 가동되고 있었다. 경계심이 극에 달한 탓이다.
한제는 한참 뒤에도 돌문이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깊은 숨을 내쉬었다.
“선강 대륙이다! 저 돌문 밖에는 선강 대륙이 있어!”
다시 통로를 둘러보는 한제의 눈에 깨달음의 빛이 어렸다.
“이제 알겠군! 칠도종 선존이 만든 동부의 대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이건 대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뚫어놓은 또 하나의 통로인 거야!”
한제는 몸을 물린 채 어두운 안색으로 돌문을 응시했다.
통로 사방에서는 흡혈마수의 알들이 형광색 빛을 번득여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누가 칠도종 선존의 동부로 통하는 또 다른 길을 뚫은 걸까?”
한제는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단서를 찾아갔다. 그리고 점차 아주 오래전에 있었을 어떤 일을 추측하게 됐다.
“누굴까? 광인?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한제는 알을 빨아먹고 있는 흡혈마수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한제의 심신이 진동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알들을 흡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몸에서는 금빛이 번득였다.
곧장 균열 밖으로 나가려던 한제가 돌연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머릿속에서는 번개가 내리치듯 뭔가가 번쩍 떠올랐다. 태고 성신 섬뇌족에게서 얻어낸 정보였다.
“그들의 기억에 따르면 그 옛날 한 무리의 신비로운 사람들이 나타났었다. 복장도 기이했고 전에 없던 법보와 신통술을 사용했다고 했지. 섬뇌족 불멸의 천둥번개에 담긴 기억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보기도 했다. 곤극 채찍은 그들의 법보였지. 분명 그들의 우두머리는 오행성의 만표와 똑같이 생겼었다! 섬뇌족은 그자들이 태고 외부 우주에 속한 존재라 여겼지만 세상에 태고 외부 우주라는 건 없어. 그들은 동부 밖, 선강 대륙의 수련자들일 거야!”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칠도종 칠채선존, 당시 천도를 얻은 그는 아내를 버리고 칠도종을 봉쇄한 뒤 자신의 동부 안에서 천도를 깨닫고 그 동부 역시 철저히 봉쇄했어. 허나 그의 그런 행동은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샀겠지. 그래서 선강 대륙 다른 종파의 강력한 누군가가 특수한 방법으로 칠채선존 동부로 통하는 이 통로를 뚫은 거야!”
한제의 추측은 점차 대담해지면서도 뚜렷해져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 통로를 통해 이곳에 들어왔을 게다. 바로 섬뇌족이 말한 신비의 수련자들이겠지. 그들이 가장 먼저 이른 곳은 계외 태고 성신이 아니라 이곳, 풍의 선계였다! 허나 풍의 선계에서는 그들의 출현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고… 그들은 다시 이 통로를 봉쇄하고 풍의 선계를 떠났다. 어쩌면 계내를 둘러봤을지도 모르지만 최종 목적지는 봉계의 진 너머 계외였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