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5
계내 수련자들은 남은 보름 동안 4대 성역 곳곳에서 수련성들의 혼을 뽑았고 또 다른 수련성의 혼을 뽑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제가 선인들과 약속한 3년의 마지막 사흘이 남았을 때, 계내 수련자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모든 수련성의 혼을 바쳐 새로운 선계와 융합시켰다.
마지막 수련자까지 돌아왔을 때, 새로운 선계는 4대 성역 모든 수련성의 혼과 융합됐다. 이제부터 계내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련자는 화신기에 이른 뒤 혈맥의 이끌림에 따라 이곳 새로운 선계에 진입하게 될 터였다.
모든 작업을 마친 한제는 갈라냈던 원신을 하나로 합쳐 육신과 결합시킨 후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만 명의 계내 수련자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난 이제 여정을 떠날 것이며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을 터. 또한 이 순간부터 나는 봉계의 지존이 아니다. 3년 동안 계내를 지켰고 새로운 선계를 응집했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이제 나는⋯⋯ 선인에 저항하러 간다! 성공한다면 선인은 타파될 것이요, 실패한다면 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사도환, 제가 죽는다면 제가 말씀드린 비밀을 온 세상에 알려주십시오. 모든 생명이 스러지고 파괴된다 해도 진실이 후대에게 알려지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한제는 몸을 돌려 먼 곳으로 한 발 나아갔다. 그 뒷모습은 지독히도 고독해 보였다.
청림과 홍삼자 사도환 등을 포함한 수련자들은 떠나는 한제를 향해 일제히 포권을 올렸다.
강자란 무엇인가?
어렸을 때, 한제는 강자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이웃집 아이가 자신보다 더 강하면 그 아이를 강자로 여겼을 뿐이다.
책임감이란 무엇인가?
한제는 2천 년이 넘도록 수련을 해온 끝에야 겨우 책임감의 무게를 깨달았다.
봉계의 지존은 강자였고 책임감도 있었다. 한제가 그 칭호를 이어간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덕분에 진정한 의미로 성숙해진 상태였다.
이러한 영혼적인 성숙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다.
책임감을 깨달은 강자야말로 진정한 강자였다.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강자에 가장 근접한 사람으로 한제가 떠올린 것은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반인이었지만 어린 시절 한제에게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 아래 태산처럼 버티고 선 그는 한제와 한제의 어머니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었다.
아버지가 있기에 가정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야말로 강자였다.
2천여 년간 수련을 해온 한제는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많은 감정을 느꼈다.
3년 동안 계내를 수호하고 새로운 선계를 응집했으며 수많은 살육을 자행해왔지만 한제는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나아가다 죽거나, 앞에 놓인 장애물을 부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는 그렇게 걸음걸음 나아갔다.
하얀 옷을 입은 그의 인영은 마치 우주를 맴도는 버드나무 씨앗 같았다. 뿌리는 없었지만 혼란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를 찾듯 나아가던 그 모습은 결국 어두운 우주에 삼켜지며 사라졌다.
선룡(仙龍)이 도를 드러냈다
운해성역 삼원륜의 진 밖.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본체는 3년의 기한을 사흘 앞둔 순간 서늘한 두 눈을 떴다.
뒤쪽의 계내를 향한 그의 시선은 걸음걸음 다가오는 분신에 닿았다.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않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걸음이었지만 매우 묵직해 보였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분신은 본체와 함께 계내를 바라보았다. 우주를 배경으로 진 안의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고개를 돌린 분신은 부드러운 눈으로 본체를 바라보다가 이내 융합했다.
펑 소리와 함께 하얀 머리를 마구 휘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는 계내로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는 서늘한 두 눈으로 계외 태고 성신을 바라보았다.
‘사흘만 지나면 원고 선역의 4대 장군이 강림할 것이다. 그러면 계내와 계외를 아우르는 이 동부의 마지막 비밀이 드러나게 되겠지. 허나 아직까지도 난 세 번째가 대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어!’
한제가 침묵한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 마지막 전투는 매우 흥미로울 거야. 칠채도인, 전가 노인, 선존의 소생을 원하는 4대 장군, 그리고 풍의 선계 안 통로를 통해 들어온 선강 대륙의 수련자까지⋯⋯. 허나 그전에 이 마지막 전쟁을 위해 혼란의 서막을 열어야겠군!’
두 눈을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삼원륜의 진 밖으로 나와 계외 태고 성신으로 향했다.
“계외 원고 선역을 파괴해야 한다!”
한제는 미간에 살기를 응집한 채 긴 빛을 그리며 돌진했다. 자신의 기운과 존재조차 숨기지 않았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간 그의 신식에 태고 성신 각 부족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고개를 쳐들어 우주를 내다보았다.
한 줄기 무시무시한 살기가 계내로부터 달려들고 있었다.
계외 원고 선역이 어디에 있는지 한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찾을 방법은 있었다.
그는 태고 성신 깊은 곳으로 질주했다.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사흘 뒤 계내 원고 선역이 열리면서 4대 장군이 강림할 때, 그와 동시에 계외 원고 선역 역시 열릴 것이고 그 기운을 통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한제의 신식이 태고 성신 전역을 뒤덮은 순간, 장존은 한 궁전에서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비쩍 마른 손은 꽉 움켜쥐어진 채 한참 동안 풀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침묵하고 있던 그는 결국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광의 활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태고 성신에는 대체 왜 들어온 걸까? 나를 도발해 꾀어내서 죽이려는 건가?’
장존의 두 눈에 의심의 빛이 어렸다. 그로서는 한제가 왜 이렇게 요란하게 태고 성신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달려들기보다는 일단 무슨 수작인지 확인해야겠어!’
장존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한편, 태고 성신 내 여러 개의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회오리 안의 검은 구멍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피어나더니 칠채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덤덤한 눈으로 저 먼 곳을 훑어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이광의 활과 화살이 저자에게 있군. 한데 대체 왜 이곳에 들어온 걸까? 전가 노인과 비슷한 저자가 세 번째가 아니라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나저나 저자가 세 번째가 아니라면 죽여버리기에는 퍽 아까운걸? 물론 흠은 있지만. 아무튼 끝끝내 살아남는다면 적당히 이용할 수 있겠군.”
칠채도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시선을 거두었다.
“혈진(血陣)은 이미 완성됐어. 그러니 수차례 윤회를 거듭했을 세 번째가 어디에 있을지도 곧 알게 되겠지! 수만 년을 찾아온 만큼 그 녀석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 죽겠군!”
★ ★ ★
태고 성신, 어느 수련성. 백의를 입은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무척 아름다웠지만 서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는 그녀는 마치 영원토록 녹지 않을 눈 같았다.
산봉우리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녀의 눈이 돌연 번쩍 뜨였다.
“그자다!”
여인은 여덟 선비 중 세 번째 선비였다.
계내와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는 그녀는 당시 오래된 무덤에서 빠져나온 뒤 줄곧 이곳에 머무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고 이곳에⋯⋯?”
★ ★ ★
태고 성신, 또 다른 수련성. 거대한 균열 안으로 새들이 지저귀고 꽃향기가 가득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가부좌를 튼 것은 일곱 번째 선비였다.
그녀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무슨 꿍꿍이일까?”
한제의 거동에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묘음도존과 구천마존을 비롯한 이들 역시 상처 치료에 전념하다가 깨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잔뜩 긴장했다.
이광의 활을 가진 한제의 등장은 그들에게 더없이 큰 압박이었다.
거의 모든 세 번째 단계 수련자들은 한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신식을 고정했다. 한제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그들의 신식이 집중된 것도 무시한 채 돌진하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추었다. 지금 그는 거의 태고 성신의 중앙에 이른 상태였다.
그곳에서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더니 묵묵히 호흡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행동에 태고 성신 수련자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이제 3년의 시간 중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하루가 지나면 동부 안의 세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터였으나 한제 외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찾아본다면 딱 한 사람, 지금의 상황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긴 했다. 소하성역 어딘가 한제조차 발견하지 못한 어느 조각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천운자였다.
천운자는 기이한 눈으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려대고 있었다. 앞날을 예측할수록 두 눈은 밝아졌고 급기야 흥분에 가까운 기색이 드러나기도 했다.
“거의 다 됐군. 마지막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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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앉아 호흡하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했고 미간에서 선인의 불멸체로 이루어진 핏방울을 가동했다.
열한 시진, 열 시진, 아홉 시진⋯⋯.
3년의 기한까지 단 네 시진이 남은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태고 성신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던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저것은⋯⋯?”
한제는 고개를 홱 돌려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 점차 기이한 빛이 드러났다.
그의 눈이 향한 저 먼 곳에서는 수백 명의 태고 성신 수련자가 달려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머리가 산발이 된 그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발라져 있어 굉장히 특이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