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6
그들은 돌진해오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선룡(仙龍)이 도를 드러냈다! 내 말에 따르면 멸세의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요, 따르지 않는다면 모두 스러질 것이다! 선룡은 곧 힘이다! 선룡은 곧 힘이다! 선룡이 도를 드러냈다. 믿는 자들은 더없이 높은 선계로 올라가 영생불멸을 누리게 되리니!”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백 명의 수련자 뒤로 1천 명에 가까운 수련자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 역시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두 수련자 무리 사이에는 영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대가 하나 있었다. 짙은 영기를 발산하는 이 대는 길이가 1만 척에 달해 거의 산에 가까울 정도였다. 한제에게 영석은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살면서 본 가장 거대한 영석에 그의 눈빛이 한층 진중해졌다.
영석 대 위에는 붉은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용은 수백 명이 옮기는 대에 게으르게 앉아 있었다. 녀석은 수시로 영석을 한 조각씩 떼어내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어 삼키기도 했다. 무척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선룡은 곧 힘이다! 선룡이 도를 드러냈다!”
사방에서 울리는 수련자들의 목소리에 용은 뿌듯해했다.
‘흥! 그 빌어먹을 곳에 갇히지만 않았더라면 바깥에서보다 이 동부 안에서 더 멋진 삶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빌어먹을 주작, 빌어먹을 선존, 빌어먹을 장존! 도망쳐 나왔으니 망정이지⋯⋯. 아무튼 이곳은 좋구나! 고향의 음악이 떠올라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견디기 힘들 정도야!’
의기양양한 표정의 붉은 용은 발톱으로 대를 움켜쥐어 영석 조각을 떼어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비설산(飛雪山) 아래의 두 암용아,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느냐? 가늘고 긴 수염, 낭창한 몸매, 그리고 반짝이는 눈⋯⋯.’
붉은 용은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박자를 맞추듯 꼬리로는 영석을 두드렸다. 쾅쾅 울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 수련자들의 얼굴에는 힘겨운 표정이 드러났다.
용의 노랫소리는 그들이 듣기에는 울부짖는 소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들은 보다 더 소리를 높여 용을 찬양함으로써 그 소리를 상쇄시키곤 했다.
“선룡이 도를 드러냈다! 선룡은 곧 힘이다!”
이 붉은 용은 타락의 땅 2대 주작에 의해 봉인됐던 바로 그 염룡이었다. 2대 주작이 한제에게 넘기기 위해 꺼냈을 때, 녀석은 부리나케 튀어나가 도망쳐버렸고 마침 그때 오래된 무덤이 열리면서 한제는 용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을 거의 잊고 있던 한제 앞에 이 불쌍하고 운수 사나운 염룡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천 명이 넘는 수련자가 용을 짊어진 채 한제 앞에 이르렀을 때, 한제에게 집중하고 있던 태고 성신 내 수준 높은 수련자들의 신식도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 순간, 염룡은 돌연 몸을 바르르 떨더니 우뚝 멈추었다. 영석을 씹는 소리도 노랫소리도 꼬리로 박자를 맞추던 소리도 뚝 끊기고 말았다.
끔뻑이던 염룡의 눈빛은 혼란에서 곧 충격으로 바뀌었고 이내 녀석은 격하게 경련했다.
‘이, 이런 젠장! 어찌 이곳에 이렇게나 많은 신식이… 빌어먹을 다들 할 일이 그렇게도 없단 말이냐?’
녀석은 곧장 포효하듯 외쳤다.
“후퇴, 후퇴! 얼른 물러나!”
그 와중에도 녀석의 심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여태까지 조심스럽게 세력을 키워오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여나 또다시 누군가에게 붙잡힐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덤벙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매우 신중하게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길은 여태 열 번을 넘게 오갔지만 단 한 번도 위험한 존재를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녀석은 기이한 신통술로 스스로의 기운을 숨겼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내려고 기를 쓰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발각될 일이 없었다.
녀석은 평소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수련자를 맞닥뜨리면 강력한 위엄으로 그 지역을 제패했다. 그러면 그 위엄에 굴복한 수련자들은 얌전히 염룡이 창립한 선룡도(仙龍道)의 일원이 되곤 했다.
한데 오늘은 뜻밖에도 이 길에서 여러 개의 신식을 맞닥뜨린 것이다. 게다가 그 신식 대부분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했다.
한 마리의 뱀
염룡은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후퇴하려 했다. 허나 자신을 떠받드는 수련자들의 눈에 떠오른 의혹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애써 두려움을 억누른 채 영석으로 이루어진 대 위에 다시 앉았다.
“제련 중인 단약을 깜빡했군. 어서 돌아가야겠다!”
그 말에 수련자들의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용의 명령에 따라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영석은 이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석이 너무나 크고 무거운 탓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고 강력한 존재들의 신식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것을 느낀 염룡은 초조해졌다. 더욱이 그 신식들은 영석을 따라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좀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계속 굼벵이처럼 군다면 전부 잡아먹을 것이다!”
말을 마친 염룡은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듯 얼른 한 마디 덧붙였다.
“그 단약은 매우 진귀한 것이란 말이다!”
염룡은 불안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심장은 점점 세차게 뛰었다. 그렇다고 곧장 도망치려 한다면 이 강력한 신식들은 자신을 의심하고는 오히려 더욱 끈질기게 달라붙을 터였다. 그러니 급하더라도 침착해야 했다.
‘난 선룡이다. 침착하자. 생각해보면 그리 심각한 일도 아니야. 그냥 무시하면⋯⋯.’
염룡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덜덜 떨었고 그럼에도 덤덤해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연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지 녀석의 심경은 표정과 몸짓에 그대로 드러났다.
선룡은 천천히 이동한 끝에 어느새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수십만 척 떨어진 곳에 이르렀다. 그제야 강력한 신식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자 선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면 10년 정도는 나오지 말고 처박혀 있어야겠군. 그리고 이 길은 내 다시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 순간에도 영문을 모르는 1천여 명의 수련자들은 그저 떨떠름한 얼굴로 염룡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낮게 외치기 시작했다.
“선룡이 도를 드러냈다! 내 말에 따르면 멸세의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선룡은 곧 힘이다!”
“선룡이 도를 드러냈다! 믿는 자들은 더없이 높은 선계로 올라갈 것이다! 선룡은 곧 힘이다!”
한데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한 줄기 강력한 신식이 돌연 후방에서 나타났다. 이 극강의 위엄을 품은 신식에 염룡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닥쳐! 닥쳐라, 이놈들아!”
좀 전까지 그토록 듣기 좋았던, 그것도 자신이 만들어낸 찬양에도 염룡은 버럭 화를 냈고 급기야 눈물까지 글썽였다.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건만 이 망할 놈들이 외치는 바람에 다시금 강력한 신식이 자신을 쫓았기 때문이다.
염룡은 곧장 몸을 홱 돌리더니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뒤에서 나타난 신식을 향해 구구절절 변명을 해댔다.
“하하⋯⋯ 하. 시, 실례가 많았습니다. 당장 떠날 겁니다. 이 망할 것들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저는 기껏해야 선룡은커녕 한 마리 뱀에 불과한 걸요. 그저 좀 클 뿐이지요. 하하⋯⋯.”
염룡은 덜덜 떨며 주절댔다.
“서, 선배님들의 모임에 방해가 되었다면 저는 얼른 떠나겠습니다. 그러니 마저 일을 보십시오. 저는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배웅해주실 필요까지는⋯⋯.”
경련하던 염룡은 영석으로 이루어진 대마저 내팽개쳐두고 몸을 훌쩍 날려 다급하게 도망치려 했다.
허나 녀석의 몸은 이번에도 우뚝 멈추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어느새 그 강력한 신식의 주인공인 백의백발의 한 사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한제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염룡을 바라보았다.
“너, 너는!”
한제의 모습을 확인한 염룡은 흠칫 놀랐다.
허나 2대 주작이 이 용을 바보라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대를 확인한 순간 녀석은 이전의 한제만을 떠올렸을 뿐, 방금 전 살 떨리게 했던 그 강력한 신식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기 때문이다.
“젠장할, 네깟 놈까지 이제 감히 내 앞을 가로 막으려 하느냐? 당시 내 피를 마신 죗값까지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눈을 부릅뜬 염룡은 포효하며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벌어진 입에서는 어마어마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멀리서 볼 때는 거대한 화염의 공처럼 보이는 그것은 순식간에 한제를 포함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대한 화염의 공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해버렸고 흩어진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헉!”
염룡은 그제야 다시금 두려움을 느끼며 비명을 내지르고는 뒤로 밀려났다.
그때, 사방으로 흩어졌던 불똥이 우뚝 멈추더니 일제히 한제의 오른손에 모여들어 타오르는 한 덩어리 불꽃이 됐다.
“염룡.”
한제는 여전히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염룡을 바라보았다.
“나, 나는 정말로 그냥 뱀일 뿐인데⋯⋯.”
염룡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그제야 방금 전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기운이 상대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염룡은 울부짖으며 온 힘을 다해 대량의 화염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화염에 뒤덮인 채 몸을 날려 엄청난 속도로 달아났다.
그는 자신이 쏘아 보낸 화염을 대수롭지 않게 파괴하고 다시 응집시킨 한제의 모습에 기겁한 상태였다. 또한 한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강력한 화염의 본원 역시 감지했다. 자신도 화염의 본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한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져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염룡을 보고도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가볍게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응집돼 있던 불덩어리가 그대로 뭉개지면서 한줄기 화염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이어서 한제는 슬쩍 오른손을 휘둘러 하나의 낙인을 소환했다. 2대 주작에게서 받은, 염룡을 통제하는 낙인이었다.
“끄아악!”
낙인이 소환되자 저 멀리 달아나 있던 염룡이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의 미간에는 어느새 한제가 소환한 것과 똑같은 낙인이 나타난 상태였다. 이 낙인은 녀석의 두개골 너머 영혼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아프다! 아프단 말이다! 너희 주작들은 전부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로군! 놓아준다고 했으면서 빌어먹을 낙인을 찍어두었다니!”
염룡의 몸을 뒤덮은 화염이 무너져 내리더니 녀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훌쩍 몸을 날린 녀석은 어느새 10만 척 길이로 불어나 있었다.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허나 이 위압감도 한제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몸을 마구 비틀고 있는 염룡은 미간의 극심한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아프다! 도 도망치지 않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손을 휘둘러 낙인을 거둔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염룡의 머리 위에 이르렀다. 염룡은 반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려다가 방금 미간에 찍힌 채 엄청난 고통을 주었던 낙인을 떠올리고는 덜덜 떨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선룡도의 수련자들에게 고개를 돌린 염룡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퍽 불쌍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잘 가라, 나의 선룡도여. 내가 와서는 안 될 곳에 와 이런 사단이 났구나.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사이 한제는 염룡의 정수리에 가부좌를 틀었다. 염룡의 체내에서 발산된 작열하는 듯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이내 시야까지 그 열기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한편, 한제를 예의 주시하던 여러 신식의 주인들은 그가 염룡을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염룡은 세 번째 단계 공열기 초기 수준에 비견할 만했지만 자신들에게도 그다지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염룡은 한제가 지금껏 봐왔던 흉수들과는 전혀 달랐다. 녀석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능도 높았다. 지하마수도 갖추지 못한 능력이다. 게다가 녀석은 스스로를 선룡이라 일컬으며 선룡도라는 종파까지 만들어 적지 않은 수련자를 노예로 삼았다. 염룡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용의 체내에 선인 혈맥의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미약해 자세히 살피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한제는 미간에 녹아든 선인의 불멸체를 통해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3년의 기한을 채우기까지 아직 세 시진이 남아 있었다. 한제가 이 염룡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고향은 선강 대륙이겠지?”
염룡을 뒤덮은 신식을 통해 말을 건네자 염룡은 흠칫 놀라더니 거대한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한제는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수혼술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알겠지? 다시 한번 묻겠다. 네 고향은 선강 대륙인가?”
염룡의 눈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허나 녀석은 어째서인지 저 멀리 선룡도의 수련자들을 힐끗 보더니 이를 악물고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한제는 미간을 팩 찌푸렸다. 사실 지금 여기서 수혼술을 발휘하기는 곤란했다. 이곳은 태고 성신이고 사방에는 수준 높은 계외 수련자들의 신식이 모여 있었다. 그러니 지금 수혼술을 발휘하는 것은 그들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았다. 그랬다가는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터였다.
한제는 더욱 차가워진 얼굴로 수혼술을 흩어버리더니 염룡을 저물공간에 집어넣으려 했다. 원고 선역의 일을 마무리한 뒤 다시 심문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심신을 통해 염룡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