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7
“저⋯⋯ 내 체면 좀 생각해줘라. 내 휘하 수련자들이 날 보고 있어. 내 체면을 챙겨준다면 나 역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뜻밖의 말에 흠칫 놀란 한제가 기이한 표정으로 염룡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염룡은 안도한 듯 남몰래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훌쩍 날려 한제의 아래에서 벗어났다. 뒤이어 두 눈을 번득이며 퍽 위엄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거대한 발톱을 들어 한제를 가리켰다.
“선룡도에 가입하고 싶다고? 좋다. 그렇다면 내 넓은 마음으로 이제까지 네가 보였던 오만방자한 모습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다.”
짐짓 거드름을 피우면서도 한제의 눈치를 살피던 염룡은 상대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흠칫 놀라 덧붙였다.
“허험! 험! 너 같은 강자가 들어오는 것은 우리 선룡도 입장에서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니 너를 부종주로 임명하마.”
그 말에 저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1천여 명의 수련자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 한데 그들이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염룡이 그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좋다.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라. 난 부종주를 수련시켜야 한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돌아갈 터이니 집이나 잘 지키고 있도록!”
선룡도 수련자들은 의혹이 커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염룡을 향해 경외심 어린 표정으로 포권을 하더니 떠나갔다.
그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자 염룡은 위엄 있는 모습을 거두더니 난감한 얼굴로 한제의 눈치를 살폈다. 한제는 불쑥 다가와 염룡의 머리 위에 앉더니 가부좌를 튼 채 계외 태고 성신의 중앙으로 돌아갔다.
“주인님 말씀대로 저는 선강 대륙 출신입니다. 더 묻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모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염룡은 아첨하는 듯한 눈으로 얼른 신식을 통해 말을 전했다.
“선강 대륙에서 이곳에는 왜 왔느냐?”
“저는 이전 주인님과 빌어먹을 녀석을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한데 그 빌어먹을 녀석이 주인님께서 자기보다 저를 더 총애하시는 것을 알고는 불만을 품고 칠도종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으로 그 주인님을 속여 이곳으로 꾀어왔지요. 충성심이 넘치던 저는 당연히 주인님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왔고요.”
염룡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먼 곳을 향한 눈에는 아직도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원고 선역이 열리다
한제가 굳은 눈빛으로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자 염룡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저, 전부 사실입니다! 약간의 거짓이 있었다면 주인님에 대한 충성 때문이 아니라 그저 주인님이 저를 타고 왔기에 오게 됐다는 것 정도입니다.”
염룡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름이 뭐지?”
한제는 어떤 추측을 떠올리고는 떨리는 심신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이름이라기보다는 별명이 있는데 소홍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 광채가 어렸다. 머릿속에서는 광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소홍아, 소홍아, 대체 어디 있는 게냐?”
“이 몸의 물건은 모두 소홍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소홍을 찾아라!”
“소홍, 얼른 내 형님을 찾아와라. 형님께 내가 속았다고 전해라!”
한제의 눈빛이 번득이는 것을 본 염룡은 그가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자신의 말이 어째서 그를 화나게 했는지 알 수 없어 겁에 질렸다.
“연도비는 누구지?”
한제가 신식을 통해 물었다.
그 질문에 염룡은 바르르 떨었다.
“예? 제, 제 주인님을 알고 계십니까? 그분은 제 이전 주인님이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셨지요.”
“그렇군!”
한제의 심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소매를 휘둘러 염룡을 저물공간에 넣었다. 더는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약속한 기한이 끝난다. 그전에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만 나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궁금하긴 하지만 소홍의 이야기를 더 들었다가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을 거야.’
한제는 우주 한가운데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3년의 기한이 끝난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토록 기다려온 3년의 기한이 끝났다. 계내와 계외의 전쟁이 발발한 지 꼭 1백 년이 되던 해였다.
‘계내 원고 선역의 4대 장군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한제에게 집중돼 있던 신식은 장차 계내와 계외에 일어날 엄청난 격변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격변의 조짐이 가장 먼저 타나난 곳은 계내 곤허성역이었다.
곤허성역에서는 오색찬란한 빛이 부드럽게 퍼져 나가며 우주를 밝히고 있었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과도 같았다.
콰르릉! 쾅!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우주를 문에 비유한다면 이 소리는 문 뒤에서 전해져오는 듯했다. 마치 어떤 거인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여오려는 것처럼.
같은 시각, 소하성역과 운해성역, 나천성역에서도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3년의 기한이 끝난 순간 나타난 이 소리는 금세 절정에 이르러 계내 수련성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귀에 꽂혔다. 이에 계내의 일반인과 흉수,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수련성에서 대를 이어 살아오던 흉수들 역시 초원과 우림에서 먹잇감을 쫓다가 모든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용케 죽음을 면한 먹잇감 역시 발버둥치는 것마저 잊은 채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콰콰쾅!
우렁찬 소리는 잠시 후 거의 광증을 일으키듯 온 우주를 뒤흔들었고 수많은 파문이 4대 성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이 순간 원고 선역의 수많은 생명이 포효를 내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 ★
소하성역의 어느 수련성. 수십 명의 수련자가 새로운 선계로 가는 대신 이곳에 남아 수련자로 거듭날 수 있는, 그래서 미래를 위한 계내의 씨앗이 될 만한 일반인을 찾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이들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분분히 피를 토하며 겁에 질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이들은 귓가에 울리는 우렁찬 소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설마… 계외에서 또다시 침입해 온 건가?”
크게 놀란 이들은 곧장 날아오르려 했지만 콰쾅 하는 격렬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나타난 강력한 위압감이 짓눌러왔다.
4대 성역 안에 울려 퍼지던 굉음은 엄청난 위압감을 생성했다.
이는 원고 선역의 힘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운을 품은 채 계내를 뒤덮은 이 힘은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복귀를 알리는 듯했다.
★ ★ ★
나천성역의 어느 수련성. 오로지 일반인들만이 있는 곳이었다. 한데 이 수련성에서 가장 시끌벅적해야 할 시장과 각 도시는 갑작스러운 적막에 잠겨 있었다.
도시 가장자리에서 술을 팔던 노인과 좌판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십여 명의 일반인은 방금까지 밝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넋을 잃었다. 이내 콰쾅 소리와 함께 이들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곧 정신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혼수상태에 빠진 이들은 하늘의 변화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하늘은 끊임없이 어두워지다가 깊은 밤처럼 모든 빛을 잃은 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 ★ ★
계내 4대 성역이 빛을 잃어 모든 수련성과 대륙은 완전한 어둠에 뒤덮였다.
열일곱 정도 셌을 만한 시간이 흘렀을 때, 가장 먼저 격변의 조짐을 보였던 곤허성역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왔다.
꽝!
문이 부서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곤허성역에는 돌연 균열이 한 줄기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뒤 끝없이 퍼져 나가던 균열은 거대한 골짜기를 형성했다.
골짜기에서는 흥분과 광기가 어린 낮은 고함이 흘러나왔다. 함께 흘러나온 원고 선역의 기운은 골짜기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방을 휩쓸었다. 동시에 줄기줄기 험악한 눈빛이 골짜기 밖으로 발산됐고 쌍쌍의 비쩍 마른 손들도 불쑥 빠져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골짜기 너머에서 곤허성역을 찢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하, 나천, 운해성역에서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각 성역에 나타난 네 개의 골짜기는 우주를 찢고 원고 선역의 기운을 뿜어냈다.
원고가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 ★ ★
나천성역 뇌의 선계. 전가 노인은 벌떡 일어나 급변한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그는 뇌의 선계를 나와 나천성역에 이르더니 기이한 눈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원고 선역!”
4대 성역에 나타난 골짜기들은 일제히 움직이면서 콰쾅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뻗어 나갔다. 우주를 가로지르던 네 개의 골짜기는 4대 성역 교차점의 새로운 선계 상공에서 만났다.
쾅!
한곳에서 충돌하면서 중첩된 네 개의 골짜기는 거대한 십(十)자를 형성했다. 원고의 기운과 함께 잔뜩 흥분한 소리가 발산되던 네 개의 골짜기가 중첩된 순간, 계내의 모든 빛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계내에는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궁무진한 빛은 남김없이 흡수돼 일종의 기이한 변화를 거쳐 네 갈래 골짜기에 응집하더니 눈부시게 번득였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새로운 선계 밖의 은하수가 진동했고 그 안쪽의 선계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선계 안에 모여 있던 수많은 계내 수련자들은 급변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