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99
한제는 비릿하게 웃으며 시위를 더 당겼다. 그러자 활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휘어졌다.
다급하게 도망치는 선인들을 향한 한제의 눈에는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듯한 짙은 살기가 드러났다. 그는 칠도종의 선인들을 동부계 안의 수련자를 미물 같은 존재로 여기는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었다.
“너희와 섬뇌족 녀석들이 다를 게 무어냐!”
웅! 웅-!
한제가 오른손을 놓자 온 우주를 진동시킬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시위에 매겨져 있던 화살이 매섭게 쏘아져 나갔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 소리만으로도 천지를 개벽시킬 듯했다. 온 세상을 압박하는 강력한 위엄이 어린 화살이 허공을 무너뜨리며 나아갔다.
선인들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허나 그들에게 도망칠 곳은 없었다.
꽈르릉!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선인의 육신이 무너져 내리면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소멸했다. 그 사이 화살은 급격히 부풀어 올라 수만 척에 이른 상태였고 아직도 커지는 중이었다. 원고 선역의 틈에서 튀어나온 수십 명의 선인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최선을 다해 달아났지만 화살의 속도에 비하면 그들의 속도는 달팽이만큼이나 느려 보였다.
콰르릉!
순식간에 또 다른 세 명의 선인이 죽음을 맞았다.
뒤이어 또 한 번의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는 네 명의 선인이 바들바들 떨면서 와해됐다. 무너진 육신에서 튀어나온 원신은 그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동부계에서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화살에서 발산된 금빛은 이 성역을 밝히면서 널리 확산됐다. 그 금빛 아래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눈 깜짝할 사이 또 다른 여덟 명의 선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숨을 거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역에서 나오게 됐다는 사실에 광기 어린 기쁨을 느꼈던 그들은 이제 코앞으로 닥친 죽음을 마주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쐐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눈앞의 모든 선인을 처리한 화살은 곧장 선인들이 튀어나온 틈으로 달려들었다.
콰르르!
태고 성신에 나타난 원고 선역의 틈이 격렬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서 그 붕괴로 인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충격을 실은 광풍은 수련성의 궤도를 바꿀 정도로 강력했지만 고신의 육신을 가진 한제를 어쩌지는 못했다. 한제의 머리카락은 물론 옷자락도 퍼덕거리며 휘날렸지만 그의 두 눈에서 번득이는 단호함과 결연함은 조금도 스러지지 않았다.
한제는 화살 한 대로 일으킨 살육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원고 선역 안에 칠도종 선인들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한제는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광의 활로 그 모든 이들을 소멸시키지 못하더라도 원고 선역의 문만은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안에 있는 선인들은 다시는 이곳으로 나오지 못하게 될 터였다.
틀릴 리 없어!
첫 번째 화살이 쏘아져 나간 순간, 1천만 리 밖에서 지켜보던 장존은 우뚝 멈춰 전방을 응시했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돌연 놀라움과 기쁨의 빛이 드러났다.
“차라리 잘됐다! 이한제, 남은 한 번의 화살만 써버린다면 그때 네 녀석을 죽여주마! 그때도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난 장존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그리고 네 성을 따르겠다! 으하하하!”
광인의 노예였던 데다가 당시 환각의 진에서 한제 체내 선인 불멸체의 핏방울을 직접 뽑아낸 바 있는 장존은 그 안에 담긴 힘으로 이광의 활을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제가 두 번째 화살을 당기는 순간, 장존은 광기 어린 기쁨에 크게 웃으며 몸을 날렸다. 그의 광소(狂笑)에는 지난 3년간 억눌러온 한이 어려 있었다.
“두 번째 시위를 당기고 있군! 이한제,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태고 성신을 봉쇄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은 뒤 천천히 죽여주마!”
장존은 곧장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발휘돼 성역을 봉인했다.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가지 못하게 하는 봉인이었다.
작업을 마친 장존은 우주에 녹아들었다.
★ ★ ★
같은 시각, 일곱 번째 선비와 묘음도존, 구천마존 역시 한제가 있는 곳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한제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이들도 장존 못지않았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이한제라도 분명 죽일 수 있을 터!”
묘음도존이 비릿하게 웃었다.
“저자의 혼을 한 줄기 뽑아내 만 년간 타오르는 등으로 만들 것이야! 그렇게 해야만 한을 풀 수 있어!”
구천마존의 두 눈에 광기가 어른거렸다.
★ ★ ★
한편, 한제는 장존이 감지했던 대로 또다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이광의 활을 손에 넣은 이래 시위를 연달아 두 번이나 당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두 눈에서 번득이던 선인 혈맥의 금빛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시위를 완전히 당기자 좀 전에 원고 선역의 틈에 꽂혔던 화살이 일렁이는 파문과 함께 나타나 다시금 시위에 매겨졌다. 피범벅이 된 화살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한제의 시선이 닿은 원고 선역의 틈은 방금 전의 공격으로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원고 선역의 상태도 엉망이었다. 수없이 많은 돌조각이 내부를 떠돌았다. 한제는 이를 통해 이광의 활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새삼스레 실감하게 됐다.
그때, 원고 선역의 틈에서 돌연 두 갈래의 기운이 튀어나오려 했다. 장존에 버금가는 기세가 담긴 기운이었다.
한제는 살기 어린 눈으로 시위를 당긴 손을 놓았다. 거의 동시에 두 번째 화살이 쏘아져 나갔고 한제의 두 눈에서 번득이던 금빛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왼쪽 눈의 금빛은 완전히 흩어져 사라졌다. 오른쪽 눈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금빛마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과연 완전히 사라져버린 걸까?
쐐액!
우주를 가르며 날아간 화살의 둥근 촉에서 어마어마한 흡입력이 발휘되면서 원고 선역의 틈이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화살이 원고 선역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린 순간, 수축하던 틈은 완전히 파괴됨으로써 더 이상 선인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됐다.
쿠르릉!
먹먹한 소리만이 무너진 원고 선역의 틈에서 흘러나왔다. 그 안에서 튀어나오려 했던 두 갈래의 기운도 그 안에 갇혀버린 상태였다. 비록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저 안에서는 계외 원고 선역의 선인들이 이광의 활이 만들어낸 악몽과도 같은 위력에 휩쓸리고 있을 터였다.
★ ★ ★
계외 원고 선역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연결된 계내 원고 선역. 4대 장군의 신중한 표정 위로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기색이 어렸다. 전방의 하늘에는 계외 원고 선역의 충격적인 광경이 흐릿하게 떠올라 있었다.
“가능한 한 그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군.”
한참 뒤에야 청룡 장군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번이 마지막 화살일 리 없지. 그는 바보가 아니야. 오히려 악마처럼 교활한 자라 해야겠지. 그러니 최후의 수를 남겨뒀을 터. 적어도 세 대는 더 쏠 수 있을 게야!”
현무 장군 역시 침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때를 같이해, 태고 성신의 허공에서는 비릿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제 후방 10만 척 거리에서 장존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눈은 짙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교묘하고도 정확한 순간에 나타난 장존에게서는 반드시 한제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미 현겁에 이른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또한 선강 대륙에 있었을 당시 노예에 불과했다 하나 왕의 휘하에 있었으니 사실은 제법 높은 신분인 셈이었다.
게다가 동부계 계외 태고 오존의 수장으로써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자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해왔다. 장존회마저 장악한 그에게는 선비들 역시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신분을 떠나서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두려운 자였다. 그는 여러 강자를 모아 봉계 지존을 포위해 죽였고 부문족을 이용해 청림을 처리했으며, 4대 선계를 파괴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계내에 여러 첩자를 남겨 운해성역 파천종의 대제자인 전성야와 수도자 등의 배후이기도 했다. 계내와 계외의 전쟁을 수차례 일으킨 주동자로 그의 손에 죽은 수련자만 해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제를 만나기 전까지 그 평생 허겁지겁 도망을 친 상대는 단 셋뿐이었다. 첫 번째는 칠채도존으로 패배한 그는 상대를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그러나 칠채도존의 적이 됐다는 것은 오히려 장존의 강력함과 재능의 반증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향불을 훔치기 위해 태고 성신에 가장 먼저 난입했던 전가 노인이었다. 이때 싸움에서 패배한 장존의 머릿속에는 전가 노인의 존재가 깊게 각인됐다.
세 번째는 이광의 활을 찾기 위해 계내에 침입했을 때 들려 온 우렁찬 고함의 주인이었다. 단지 그 고함만으로도 장존은 중상을 입고 급히 도망쳐 나왔다.
그 세 번 외에 장존은 단 한 번도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한데 한제 앞에서는 어떠한 계획과 수작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한제에게 이를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더욱이 한제가 장존의 계획을 틀어지게 한 것이 한 번이 아니라 수 차례였으니 말이다.
한제가 처음 태고 성신에 들어왔을 때, 장존은 정중로월을 통해 그의 혼을 취하려 했으나 남몽도존의 방해에 이어 오래된 무덤이 열리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만 해도 뜻밖의 사건이자 우연의 일치라 여겨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한제가 오래된 무덤에 봉인한 계외의 강자들을 풀어주려 했다. 한데 그때 한제는 오래된 무덤 가장 아래층의 힘을 빌려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이 고함은 예리한 한 자루 검처럼 달려들었고 이에 장존은 피를 토하며 다급하게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씁쓸하고 화도 났지만 이런 사고가 일어난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고로 치부했다.
이후 운해성역 전장에서 이루어진 세 번째 만남도 장존에게는 굴욕적이었다. 당시 그는 제자를 시켜 이광의 활을 계내로 가지고 들어가게 함으로써 전가 노인을 꾀어내려 했다. 한데 그 둘이 싸우는 동안 어이없게도 이광의 활은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게다가 한제는 이후 화살까지 손에 넣었다.
얼마 후, 네 번째 만남이 찾아왔다. 장존과 계외의 강자들은 정중로월을 이용한 환각의 진을 만들어내 한제를 꾀어내 죽이려 했다. 빈틈없는 계획이었기에 장존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계획이 완전한 성공으로 끝났음을 자신했다.
이때 광인이 등장하면서 장존의 도심은 어마어마한 풍랑을 마주친 듯 흔들렸다. 한제를 죽이기 위해 설치된 진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상대의 수준만 대폭 높여준 셈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한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한제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다섯 번째 만남에서 한제는 화살을 쏘았다. 그로 인해 장존은 세 개의 목숨 중 하나를 잃었고 그제야 한제의 실력을 철저히 깨닫고는 자신의 천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번만은 절대 틀릴 리 없다!”
10만 척 떨어진 곳에 나타나 한제를 노려보던 장존은 소매를 휘두르며 한 줄기 빛이 되어 달려들었다.
세 번째 현겁을 넘긴 수준의 위력이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와 우주를 진동시키면서 무시무시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제는 끊임없이 뒤로 물러났다. 장존의 강대함은 그가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발한 장존의 위력에 온 우주는 분노한 바다가 된 듯했고 한제는 그 위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조각배가 됐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서는 굳건한 침착함이 느껴졌다.
‘저자는 더 이상 화살을 쓸 수 없어! 이제 저놈의 몸에서는 더 이상 선인 혈맥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광의 활은 이미 무용지물이 됐어! 심지어 저 녀석이 주인님을 소환한다 해도 이번에는 반드시 저자를 죽이겠다!’
두 눈에 살기가 가득한 장존이 한 걸음 내딛자 콰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우주가 뒤흔들렸고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파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순식간에 한제 앞에 이른 그는 오른손을 들어 상대를 향해 뻗었다.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