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0
지금까지 몇 번의 경험으로 혹시라도 또다시 뜻밖의 사건으로 일이 틀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에 한제와 대화조차 섞지 않고 곧장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또한 정말 숨겨둔 수가 있는 건 아닌지 한제를 떠보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장존과 한제 사이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1천 척에 이르렀다. 한제의 역령인에 비하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마치 실체처럼 또렷하고 단단했다.
이 손바닥은 곧장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장존의 등장을 예측했음은 물론,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일이 더 복잡해졌을 터였다.
손바닥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미간과 두 눈의 반점이 전부 번득이며 도고의 힘을 발휘하더니 이 힘을 오른손 검지 끝에 응집시켰다.
한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신통술, 고족 불멸지가 발휘되는 것과 동시에 체내에서는 푸른 빛 한 줄기도 뿜어져 나왔다.
청광순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거대한 빛 덩어리와 같은 광영순도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오색찬란한 빛을 반짝이는 나비 한 마리도 소환됐다.
한제의 어깨에 앉은 나비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날개에서는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아직이다.’
한제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때, 거대한 손바닥과 한제의 오른손 검지가 충돌했다.
콰르릉!
“큭!”
충돌의 순간,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충격에 한제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밀려났다.
한제의 오른손 검지는 단숨에 와해됐지만 순식간에 다시 응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했지만 손가락은 1천 번이나 무너졌다가 응집됐다.
장존과의 수준 차이는 깊은 골짜기와 같아 당장 그 간극을 메울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무너지기 무섭게 다시 응집해 멀쩡해 보이는 검지와 달리 그의 몸에는 줄기줄기 상처가 생겨났고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크윽!”
광영순이 왜곡되면서 무너져 내렸고 청광순은 밝은 빛을 번득이다가 쩌적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오색찬란한 나비 역시 바르르 경련하다가 빛이 되어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화. 옥패 소환
소환했던 모든 방어용 신통술이 소멸되고 파괴되는 가운데 한제는 다시 한번 피를 토해냈고 몸 곳곳에 콰쾅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어났다.
다급하게 물러나던 그는 오른손 검지로 끊임없이 저항하며 왼손으로는 결인을 그려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우주가 진동하면서 거대한 역령인이 나타났다.
콰르릉!
한제의 손짓에 따라 역령인과 장존이 소환한 손바닥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지금껏 한 번도 파괴되지 않았던 역령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서 그 여파로 한제는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건만 벌써 중상을 입은 것이다.
장존의 손바닥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큭!”
한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홱 쳐들며 우주를 가리켰다. 그 순간 일곱 색채의 빛이 창을 형성하더니 장존의 손바닥 문양을 향해 돌진했다.
꽝!
다시금 일어난 충돌에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제는 광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수만 척이나 밀려났다. 그의 두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두 다리는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거대한 손바닥 문양은 건제했다. 약간 흩어졌고 이전처럼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압박하듯 달려들었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장존의 강력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빠드득 이를 간 한제는 왼쪽 눈의 화염과 오른쪽 눈의 천둥 번개, 세 허상의 본원과 살육의 본원까지 모두 발휘했다.
여섯 개의 본원이 그의 주위에 나타나서는 여섯 자루의 검으로 응집되더니 손바닥 문양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했다. 한제 역시 뒤따라 달려들었다.
펑! 펑!
여섯 자루의 검은 순식간에 손바닥 문양을 찌르고 들어가며 줄기줄기 파문을 일으켰다. 뒤이어 달려든 한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시천!”
엽막의 자식에게서 얻은 시천술을 처음으로 발휘한 한제는 허공을 단단히 움켜쥐더니 양손을 바깥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쾅!
굉음과 함께 우주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한 줄기의 균열이 생겨났다. 하늘을 찢어낸 힘은 여섯 자루의 검이 꽂힌 손바닥 문양까지 단숨에 찢어버렸다.
한제의 뒤로 도고의 허상이 나타났다. 한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흐릿한 몸까지 달려 있었다. 여덟 방울의 심혈을 흡수함으로써 자연스레 나타난 도고의 몸이었다. 이 심혈을 제련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위력을 낼지 한제도 알 수 없었다.
흐릿하게 나타난 도고 역시 두 팔을 양옆으로 뻗어 허공을 찢어버렸다.
우주는 바들바들 떨리면서 형용할 수 없는 한 줄기 힘에 휘말려 찢겨 나갔다.
그 순간, 장존이 소환한 거대한 손바닥 문양이 무너져 내렸다.
여섯 자루의 검은 산산조각이 나더니 한제의 체내로 돌아왔다. 이때 한제의 두 손은 살점이 뭉개져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시천술의 영향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고의 허상도 붕괴했다.
“쿨럭!”
한제는 뒤로 밀려나며 연거푸 피를 토해냈다. 그는 극심한 고통에 비틀거렸고 원신도 흐릿해져 있었다. 몸 곳곳에서도 피 안개가 분출됐다. 허나 창백한 안색과 달리 두 눈에는 냉정한 빛이 차올랐다.
‘이것이 바로 현겁에 이른 수련자의 실력인가? 이광의 활이 없었다면 저항해내지 못했을 터!’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성역은 이미 봉쇄됐다. 이번에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어! 크하하!”
3년간 이날만을 기다려온 장존은 크게 웃으며 성큼 다가왔다. 이제는 한제가 이광의 활을 쏠 수 없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휙 소리가 들려오면서 층층이 파문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일곱 번째 선비가 어두운 얼굴로 나타났다. 뒤이어 다른 방향에서 묘음도존과 구천마존이 달려들었다.
태고 오존 중 세 명의 강자와 원고 선존의 일곱 번째 비. 계내와 계외 모두를 뒤흔들 정도의 힘을 가진 이들이 하나같이 한제를 죽이고자 찾아온 것이다.
네 사람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이 싸늘하게 번득였다. 사실 한제는 이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차였다.
‘그래, 다들 모여야 한꺼번에 처리하고 계획의 첫 단계를 마무리할 수 있지.’
계외 원고 선역을 어지럽히고 동부계에 혼란을 야기해 세력의 평형을 깨뜨리는 것. 이것이 한제가 세운 계획의 첫 단계였다. 게다가 신중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한제답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둔 상태였다.
장존이 비릿하게 웃으며 달려들던 순간,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이광의 활이 나타났다.
“헛!”
장존은 표정이 급변하더니 우뚝 멈춰 섰다. 심지어 뒤로 수천 척을 물러나기까지 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더 이상 활을 쏠 힘은 없을 텐데…? 허장성세로군! 어차피 시위를 당기지는 못할 거야!”
장존은 자신의 계획에 또 한 번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일들로 인해 그는 치명적인 상해를 입었고 자신감이 깎였으며, 장존으로서의 도심이 뒤흔들렸다. 이제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장존뿐만 아니라 일곱 번째 비와 묘음도존, 구천마존 역시 흠칫 놀라 우뚝 멈춰 섰다.
“허세 부리지 마라!”
장존은 호통 치듯 외쳤으나 시위를 쥔 한제의 오른손이 뒤로 당겨지는 것을 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경련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느낌이 끓어올랐다.
“마, 말도 안 돼!”
장존은 하얗게 질린 채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시위에서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더니 화살이 나타났다. 화살은 물론 장존을 비롯한 이들을 겨냥한 채였다.
“쿨럭!”
장존은 심신에 큰 타격을 입은 채 피를 토했다. 심혈을 기울인 계획이 번번이 한제로 인해 실패하자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허상의 화살일 뿐, 절대로 쏠 수는 없을 것이다!”
광기에 휩싸인 장존은 돌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그는 결인을 그려 거대한 손바닥 문양을 다시 소환했다. 동시에 손바닥 문양 뒤로 거대한 허상의 우물이 나타나 우주 전체를 담으려는 듯 사방으로 뻗어 갔다.
뒤이어 우물 안에서 붉은 태양이 떠올랐고 그 안에 담긴 태초의 규칙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장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뼈로 만들어진 듯한 주먹만 한 구슬이 나타났다. 회색의 빛을 발하는 구슬에서는 음산한 백골의 기운이 솟아나와 장존의 수준과 신통술을 몇 배로 증폭시키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믿지 못하겠다면 믿게 해주마.”
한제는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아 자신의 눈에서 발산되는 금빛을 장존이 보지 못하게 했다. 이어서 시위를 조금 더 당기더니 어느 순간 손을 놓았다.
핑!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은 긴 빛을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콰르릉!
거대한 손바닥 문양이 화살에 관통당하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온 우주를 담아낸 듯한 우물 역시 파문을 일으키며 소멸해 버렸다. 심지어 우물에서 떠오른 붉은 태양도 순식간에 꿰뚫렸다.
파멸적인 힘을 품은 화살은 절망에 휩싸인 장존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말도 안 돼⋯⋯.”
쾅!
화살에 그대로 관통당한 장존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버렸다. 붕괴된 피와 살점은 화살의 기세에 수만 리나 밀려났다.
“크윽!”
“컥!”
피를 토해내던 묘음도존과 구천마존의 육신 또한 폭발했고 원신조차 도망치지 못한 채 한제에게 붙잡혔다.
일곱 번째 선비도 중상을 입었지만 선존의 호신용 법보 덕분에 목숨만은 건진 상태였다.
한편, 수만 리를 밀려나갔던 장존의 육신 조각들이 급속도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생한 장존의 얼굴은 더없이 창백했고 두 눈에는 거의 원초적인 두려움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년 전의 그때처럼 곧장 달아났다.
그때였다. 돌연 일곱 색채의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이 성역을 밝게 비췄다.
허겁지겁 달아나던 장존은 우뚝 멈춰 섰고 복잡한 표정으로 일곱 색채의 빛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