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3
한제는 처음 듣는 이름에도 당황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나와 칠채선존은 관심도 두지 않았어. 얻을 것도 없었으니까. 허나 공교로운 행운이 찾아왔지. 도일 대천존과 현라 대천존이 깨진 저물조각의 파편 하나가 빠졌다는 사실을 어째서 알아채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어쨌든 그 파편이 칠채의 손에 들어왔어. 파편의 기운을 숨기기 위해 난 나의 모든 수준을 포기하고 전력으로 그 기운을 감춘 채 그와 함께 재빨리 칠도종으로 향했지.”
그 순간, 반산몽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때, 난 그의 진심을 알게 됐지. 돌아오는 도중, 나를 배신하더군. 아무런 방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내 모든 힘을 앗아 저물조각 파편의 기운을 억누르고 나를 소멸시켰어. 입막음을 하려던 게겠지. 게다가 내게서 빼앗은 힘으로 그 파편을 열 생각이었을 게야.”
여인의 목소리에서는 깊은 한이 느껴졌다.
“하지만 난 죽지 않았어. 대혼문의 핵심 제자인 내 명혼은 스승님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스승님은 윤회술을 통해 나를 재빨리 소생시켜주셨지. 칠도종에는 내 명령에 따르는 이도 있었고 내 동생도 있었어. 난 스승님의 법력을 빌려 이 모든 사실을 동생에게 알렸고 그렇게 동부의 전쟁이 발발한 거야.”
반산몽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자는 파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얻었겠지. 또한 그는 도고 엽막을 꾀어내 칠도종을 봉쇄했어. 하지만 그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도록 둘 수는 없었던 나는 이 소식을 시종일관 나를 탐내고 있던 연도비에게 알리면서 칠도종으로 가도록 부추겼지. 그리고 동생과의 연계를 통해 칠채의 선비들이 그를 배반하게 했고 동부계의 칠도종 제자들을 분열시켰어. 그렇게 계내와 계외가 분리됐지.”
여인은 여기까지 말을 잇다 잠시 멈추더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반산몽의 이야기 중에는 그가 이미 추측하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여인의 이야기 중에는 가볍게 넘어간 부분도 많아, 언뜻 완전해 보인다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태고 신경은 어떤 곳이지?”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선강 대륙에는 이런 전설이 있어. 여태까지 태고 신경은 아홉 차례 열렸는데 그곳이 열릴 때마다 마지막 행운을 얻은 자는 대천존이 됐다는 전설이… 지금 선강 대륙에는 아홉 개의 태양이 있지. 태고 신경이 열 번째로 열린다면 열 번째 태양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솔직히 태고 신경이 무엇인지, 어떤 곳인지 나 역시 아는 바가 없어.”
“아까 그랬지. 지금의 칠채는 당시의 칠채와는 다르다고. 그것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제는 계속해서 배의 보호막을 공격하고 있는 노인의 흐릿한 인영을 보았다.
“저자는 불완전해!”
여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자가 어떻게 이광의 도움을 받아 도고 엽막을 죽였는지는 모르나 연도비가 내 말에 따라 이 동부계에 난입했을 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만은 분명해. 엽막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발한 전쟁이지. 칠채는 분명 부상을 입고 폐관수련에 돌입한 상태였을 거야. 저물조각의 파편에서 얻은 물건을 상세히 연구할 시간도 필요했을 테고. 난 후에야 알게 됐어. 그 파편 안에서 얻은 물건 중에는 하나의 천도도 있었다는 걸!”
삼혼칠백(三魂七魄)
“난 그 전쟁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어. 동생의 기억을 통해 보았을 뿐. 어마어마한 수준의 연도비는 홀로 4대 장군과 칠도종의 여러 제자들에 맞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적들에게 중상을 입히기도 했지. 그때, 내 여동생과 선비들 역시 연도비를 공격했어.”
물고 물리는 배신이 판치는 것은 선강 대륙 선인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한제는 왠지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으나, 끝내 웃지는 않았다.
“엄청난 혼란의 순간, 연도비는 다른 이들은 내버려두고 칠채가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어. 칠채 역시 어쩔 수 없이 그와 싸우게 됐지. 격렬한 전투였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였던 칠채는 연도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동부계에 두었던 천도를 소환해 탄서술(呑噬術)로 연도비에 맞섰어. 그 결과 연도비는 중상을 입은 채 천도에 삼켜지면서 행방불명됐지. 허나 선인의 불멸체를 가진 그가 죽었을 리는 없을 터. 아마 아직도 이동부계에 있을 거야.”
반산몽은 잠시 옛일을 떠올리듯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를 삼킨 천도 역시 심각한 중상을 입고 수많은 천도의 피를 뿌리며 흩어져 사라졌어. 하지만 동부계에서 아직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천도도 죽은 것은 아닐 게야. 아무튼, 온몸이 무너진 칠채는 세 개의 주혼으로 나뉘게 됐는데 그중 하나는 그가 평생 깨우쳤던 신통술과 도술을 가졌지. 그게 바로 지금 배 밖에 있는 자야.”
“그렇다면 다른 두 주혼은?”
“하나는 그가 깨달았던 경지와 본원의 힘을 가졌어. 그 주혼도 당시 전쟁 직후 도망쳤으니 아마 계내에 있겠지. 그리고 마지막 혼은 칠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지. 그 기억에는 천도를 소환하는 방법과 그가 당시 저물조각의 파편에서 얻었던 물건을 숨겼던 장소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
여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득였다.
“마지막 혼에는 본원도 없고 신통술도 없어. 그러나 그 혼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모르지. 어쩌면 평범한 수련자나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고 흉수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윤회를 거듭하면서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잊었을지도 모르고. 따지자면 그의 기억은 지금 잠들어 있는 거지.”
반산몽은 여전히 배에 맹공을 퍼붓고 있는 칠채도인을 힐끗 보았다.
“세 주혼 중 신통술을 물려받은 저 칠채도인이 가장 강력해. 그는 몇몇의 선비를 위협해 자신에게 복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도비의 손바닥 문양을 관리하던 사환을 굴복시켜 계외에서 아주 오랫동안 군림해왔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 번째 혼을 찾고 있어. 그러는 동안 점점 자신만의 의지를 갖게 됐지. 만약 그자가 세 번째 혼을 찾아 삼켜버린다면 본원과 경지를 가진 두 번째 혼까지 삼켜 새로운 칠채로 거듭나려 할 거야.”
어째서인지 한제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커졌다.
“계내에 있는 두 번째 혼 역시 세 번째 혼을 찾고 있어. 둘 중 세 번째 혼을 먼저 찾는 자가 세 혼의 지도자가 되겠지. 허나 칠채선존의 기억을 가진 세 번째 혼이 없다면 나머지 두 혼은 서로 융합할 수도 서로를 삼킬 수도 없어. 칠채도인과 두 번째 혼이 지금까지 서로를 삼키지 못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지. 하긴, 그들만이 아니야. 칠채가 무너져 내렸을 당시 분산됐던 다른 혼백들 역시 서로를 삼키지 못하고 있으니까.”
한제는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됐다.
“한데 칠채는 세 개의 주혼만이 아니라 일곱 개의 혼백으로도 분리됐지. 이 혼백들은 오랜 시간 윤회를 거치면서 각자 다른 신분을 가지게 됐지만 여전히 칠채에 속해 있어! 한데 칠채도인과 두 번째 주혼은 이 일곱 개의 혼백을 아예 무시하고 있지. 그들을 찾더라도 삼키지 않고 오히려 수련할 수 있도록 풀어주고 있어. 그래야 세 번째 혼백을 찾아 삼키면 일곱 개의 혼백이 흡수되면서 완전한 칠채선존으로 거듭나게 될 테니까! 이 모든 것이 동부계의 비밀이야.”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마침내 ‘세 번째’의 의미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배 밖의 칠채도인과 자신이 얻은 조각상이 다르다는 것도 자신의 저물공간에 있는 은색 옷차림의 여인이 말했던 ‘문’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아마도 이 동부의 문일 터!’
더욱이 반산몽의 말대로라면 그 문을 연 것은 광인이었다.
아직 어딘가 미심쩍고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반산몽의 말을 근거로 상상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과 다소 다를 수는 있어도 대체적으로는 맞을 터였다.
‘세 개의 주혼과 일곱 개의 혼백⋯⋯ 삼혼칠백! 장존은 당시 전가 노인이 죽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운해성역에서 전가 노인을 봤을 때는 충격에 휩싸이기까지 했지. 그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허나 곤허성역 칠채계에서 마주친 칠채도인은 전가 노인을 퍽 마음에 들어하는 듯 이야기했다. 그는 전가 노인을 하나의 변수라고도 했어. 혹시 전가 노인이 두 번째 주혼인 건가? 어쩌면 그래서 칠채도인에 대항할 수 있는 건지도… 아니면 몸에 선존의 두 번째 주혼이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한제의 머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틀림없이 그럴 거야. 계내와 계외의 전쟁은 사실 전가 노인과 칠채도인의 전쟁이었어. 그들의 목적은 어마어마한 살육을 통해 세 번째 주혼을 찾는 것! 한데 그렇다면… 세 번째 주혼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제의 심신이 진동했다. 반산몽의 이야기가 거대한 충격이 되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안개를 흩어버렸고 덕분에 한제는 본질을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곱 개의 혼백⋯⋯. 난 당시 곤허성역의 칠채계에서 청수를 향한 칠채도인의 눈빛을 봤어.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청수 사형은 선존의 일곱 혼백 중 하나인 거야!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것도 살육의 본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 이르자마자 그렇게 강력해진 것도 그 때문! 그렇다면 나머지 여섯 혼백은 또 누굴까? 혹시 나도 그중 하나인 걸까?’
한제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반산몽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목적은 칠채를 죽이고 당시의 원한을 푸는 거야. 자네의 목적도 나와 같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스승님께 부탁해 네가 선강 대륙에 들어가면 받게 될 벌을 줄여보겠네. 더욱이 나는 칠도종은 필요 없으니 칠채가 죽으면 칠도종은 자네 것이 돼! 단…”
잠시 말을 멈춘 반산몽은 한제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단, 동부 안의 다른 수련자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어. 그들은 선강 대륙에 발을 들인 벌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 내 스승님도 그것까지 도울 수는 없어. 하지만 방법은 있어. 전세윤회법(轉世輪回法)을 이용한다면 육신은 불가능해도 혼만은 도우와 함께 선강 대륙에 들어갈 수 있어. 그리 하면 윤회를 통해 선강 대륙에서 다시 태어난 그들이 전생의 기억을 깨닫는 대로 도우를 찾을 수 있겠지. 이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가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며 아까부터 의문이었던 것을 물었다.
“한데 도우와 내가 힘을 합친다 해도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을 당해낼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그들을 죽일 생각이지?”
한제의 말에 여인은 웃기 시작했다. 여인의 미소는 만개한 꽃처럼 보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칠채를 죽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 우선, 내가 직접 이곳으로 와서 죽이는 것. 동부계는 오래된 봉인으로 뒤덮인 데다가 당시의 전쟁으로 많은 곳이 파괴되어 있어 내가 직접 이곳에 들어올 수는 없어. 그저 동생의 몸을 빌려 한 줄기 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그러나 칠채도인이나 두 번째 주혼을 동부의 핵심, 즉 동부의 문으로 끌어들인다면 그곳에서 난 더 많은 원신을 응집할 수 있게 될 거야.”
여전히 의혹을 걷어내지 못한 듯한 한제의 모습에 반산몽은 빙긋 웃었다.
“물론 완벽한 방법은 아니야.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준비했지. 여기서 중점은 세 번째 주혼이야. 도우에게 신통술을 하나 가르쳐줄 테니 그 신통술로 세 번째 주혼을 찾아 삼켜버려. 그렇게 세 번째 주혼이 된 자네를 도와 칠채도인과 두 번째 주혼을 삼킬 수 있도록 해주지. 그리고 나머지 일곱 개의 혼백마저 삼키면 자네가 바로 칠채가 될 터.”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에 한제의 눈빛이 흠칫 굳었으나 여인의 말은 이어졌다.
“나와 내 여동생은 자네 곁에 머물 거야. 내 동생은 도우의 비로 나는 도우의 아내로…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셈이지. 만약 도우에게 다른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을 비로 들여도 좋아. 선강 대륙에서 마음에 드는 여인이 생긴다면 내가 잡아다 주지. 칠채에게도 그랬어. 그를 위해 적지 않은 여인을 잡아다 줬지. 여덟 비 중 내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그렇게 데려왔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했다.
“스승님의 도움을 받으면 도우와 나는 영혼을 융합함으로써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어. 태고 신경의 저물조각에서 얻은 물건으로 우리는 선강 대륙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을 거야. 이 답답한 동부계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반산몽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침착함을 되찾은 한제는 여인을 슥 훑어보았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 전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일로 1천 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았다.
요령의 땅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한제는 장존의 딸이자 부문족의 신성한 선조를 만난 적이 있다. 두 눈이 뽑혀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던 여인은 청림의 동굴에 짓눌린 채 짙은 원한으로 가득했다.
반산몽이 칠채에게 품은 한은 청림에 대한 여인의 원한과 매우 비슷했다.
심지어 당시 부문족 선조가 했던 말과 그 목소리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했는데 한제는 후에 청림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은 순간 큰 혼란에 빠졌다. 같은 일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지금 중요한 건 저 밖에 있는 칠채도인을 피하는 거니까.”
여인의 말을 들은 한제는 속으로 냉소를 하면서도 곧장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 여인과 당분간 힘을 합쳐 칠채를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어. 맹세의 피를 교환하면 난 곧장 이 배를 통제해 자네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줄 수 있거든.”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맹세의 피?”
한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제야 지금까지의 상황이 상대의 의지에 따라 진행됐음을 깨달았다. 이곳으로 오게 된 것에도 방금과 같은 이야기를 한 것에도 반산몽의 저의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그렇게 급할 건 없지. 한데 당시 말했던 그 제단은 어디에 있나?”
주객전도
한제의 말에 반산몽의 눈은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살짝 번득였다.
한데 그녀가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혼마주가 돌연 격렬하게 진동했다.
콰르릉!
진동이 광기 어린 바람처럼 휘몰아치자 혼마주는 덜덜 떨리며 수천 척을 밀려났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안색이 급변한 반산몽은 고개를 홱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몸을 날려 갑판으로부터 3촌 정도 떠올랐다. 그리고는 배와 함께 뒤로 물러나면서 밝은 빛이 번득이는 눈을 돌렸다.
혼마주 밖, 일곱 색채의 빛으로 휘감긴 칠채도인은 두 손을 끊임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소매가 펄럭일 때마다 광풍이 일어나 혼마주를 둘러싼 수많은 빛의 장막을 강타했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배의 보호막을 한겹 한겹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 반 정도가 깨져나갔다.
“괜찮아. 며칠 정도의 여유는 있으니까.”
서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한제에게 시선을 돌린 반산몽이 말을 이었다.
“그 제단은 내 동생이 이곳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야. 그 안에는 도고의 힘이 한 줄기 깃들어 있더군. 내 동생의 수준으로는 그것을 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도우는 다르지. 도우가 그 제단의 보호막을 깨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얻는다면 수준이 더 높아질 거야. 제단은 이 혼마주의 가장 안쪽 층에 있어. 지금 가보고 싶은가? 나는 배를 통제해 달아나면서 칠채도인을 상대할 생각이지만 그렇게 해서 벌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사흘뿐이야.”
“사흘이라⋯⋯ 좀 부족하군.”
한제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 혼마주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도 들려왔다. 칠채도인이 더욱 강력한 신통술로 혼마주를 금방이라도 무너뜨릴 것만 같았다.
“맹세의 피에 관해서는 일단은 급하지 않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한데 이 혼마주, 무척 흥미롭군. 사흘 동안 연구해봐야겠어.”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 배의 금제를 연구해보겠다고?”
반산몽은 흠칫 놀란 모습이었다.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금제에 대한 한제의 조예가 얼마나 깊은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마주는 우리 대혼문의 법보야. 상급은 아니지만 중급 정도는 되는 보물이지. 이런 법보라면 나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어. 도우, 그냥 사흘 동안 제단을 열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도라도 해보라고. 만약 그 안의 힘을 흡수한다면 자네가 가진 고국의 육신으로 수준을 높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