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4
반산몽의 말투는 완곡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그녀는 한제가 이 배를 연구해봐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한제의 말이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동부계 안의 버러지 같은 수련자 주제에 우리 대혼문의 법보를 연구해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 제 분수도 모르고!’
그때 한제가 피식 웃더니 불쑥 물었다.
“설마 내가 이 배의 금제를 모두 파악하고 배의 통제권을 손에 넣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건가?”
반산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제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껏 천운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심사는 훤히 들여다보듯 파악하곤 했다.
칠채도인이 추격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반산몽과 반산로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상대가 쫓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한제를 혼마주로 유인한 것이 분명했다.
이 배는 숨겨진 위협이었고 밖에는 칠채도인이 있다. 이 자매는 직접적으로 한제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꽤나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제는 상대의 말에 따라 맹세의 피를 교환할 수밖에 없을 터. 한데 그랬다가는 반 자매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게 된다.
한제의 추측은 모두 사실이었다. 반산몽 자매는 그럴 계획이었다.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이 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이들 자매의 말에 따라 일단 눈앞의 위험을 피하려 했을 터였다.
허나 한제는 절대로 남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통제권을 자신이 쥐려 했다.
혼마주는 반산몽이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단에 간다 해도 모든 행동은 반산몽의 감시를 받게 될 터였다. 사실 한제는 상대의 법보인 이 배에 올라탄 상황에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 한제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이 혼마주를 완벽히 파악해 통제권을 장악한다면 칠채도인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객전도가 되어 상대와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끌어갈 수 있다.
얼굴이 살짝 굳어졌던 반산몽은 곧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이 도우는 참으로 재미있군. 어디 한번 이 배를 연구해보게. 난 기다릴 테니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냉소하고 있었다.
“조금 불쾌해 보이는데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정말로 이 배에 드리운 금제를 완벽히 파악한다 해도 이 배는 도우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하지.”
한제는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산몽은 덤덤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렇게나 자신감이 있단 말인가? 좋아, 만약 도우가 정말로 혼마주의 금제들을 완벽하게 파악한다면 내 도우에게 이 배를 선물하도록 하지! 허나 그러지 못한다면 더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피의 맹세를 하는 거야. 그런 뒤에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좋아. 그럼 일단 한번 볼까? 성공하지 못하면 알아서 포기하도록 하지.”
상대로부터 원하던 말이 나오자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더니 신식을 펼쳐 발아래의 갑판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반산몽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녀로서는 한제와의 피의 맹세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 피가 있어야 스승의 도움을 받아 기이한 법술을 발휘해 상대를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꼭두각시가 된 한제는 그녀가 칠채를 죽이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터였다.
‘우습군.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네가 어떻게 연구하는지 지켜보지. 실패하고도 피의 맹세를 나누지 않으려 든다면 그때는 또 방법이 있으니까.’
반산몽의 눈에 드러난 서늘한 빛이 흩어져 사라졌고 이내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편, 한제가 신식을 펼치자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회오리를 형성해 회전했다.
그러자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서도 고요와 고마의 반점이 차례로 나타났다.
세 고족의 반점이 모두 회전하면서 융합해 도고의 힘 한 줄기를 이룬 순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위로 도고의 흐릿한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고의 허상은 곧장 한제를 완전히 뒤덮은 채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도고의 허상은 그 크기가 전과는 달라진 상태로 지금 그 크기는 수백 척 정도에 불과했으나 작은 산처럼 한제를 감싸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이 광경에 반산몽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나치게 경계심이 강하군!’
도고의 힘으로 온몸을 보호한 뒤에야 한제는 안심하고 여유롭게 신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갑판을 향해 신식을 천천히 뻗자 형태 없는 한 줄기 힘이 곧장 튀어나와 저지했다.
보이지 않는 힘은 갑판의 금제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제는 그 표면만 볼 수 있을 뿐, 갑판 금제의 구조를 볼 수는 없었다.
반산몽은 속으로 냉소했다. 대혼문의 법보인 이 혼마주에 대해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금제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다면 이 금제의 저지력만으로도 충분…’
허나 그녀는 생각조차 마무리하기 전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고의 허상으로 감싸인 한제가 손을 휘두르며 줄기줄기 금제를 소환했다. 열 개, 백 개, 천 개⋯⋯ 눈 깜짝할 사이 백만 개에 달하는 금제가 나타났다.
이 금제들은 서로 중첩되며 눈부신 빛을 발산하더니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한제는 그 금제를 손에 쥐더니 갑판에 찍었다.
콰쾅!
그 순간, 갑판이 진동하면서 혼마주가 함께 떨리기 시작했다. 한제의 손이 닿은 곳에서부터 일어난 파문이 사방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곧장 반산몽을 관통하더니 곧 이 배의 3할에 달하는 갑판을 가득 채웠다.
한제의 눈에 비친 갑판은 마치 파문에 휩쓸린 듯했고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치 겹겹의 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낸 것 같았다.
이제 혼마주에는 더 이상 갑판이 없는 것과 같았다. 지금 한제와 반산몽이 있는 곳은 하나하나 응집되고 펼쳐진 금제일 뿐이었다.
서로 완전히 다른 금제의 문양들이 빽빽하게 사방을 뒤덮은 채 어두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금제의 보호막을 열어버리다니! 금제에 대한 조예가 어지간히 깊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반산몽이 찬 숨을 헉 들이마셨다. 한제를 향한 그녀의 눈빛도 이전과 달라졌다.
‘자신감이 넘친 이유가 있었구나. 허나 단 사흘 동안 이 배에 드리운 모든 금제를 파악할 수는 없을 터!’
반산몽은 다시 입가에 냉소를 드러냈다.
그때, 한제가 덤덤한 얼굴로 하나의 금제를 가리켰다. 두 눈은 예리하게 번득였다.
‘갑판은 혼마주에 드리운 금제의 겉면에 지나지 않아. 허나 갑판을 이루고 있는 금제만 해도 만 개가 넘는다. 사흘이라… 촉박하긴 하군.’
한제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온 정신을 금제 연구에 집중시켰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기이하게 일어나 혼마주의 돛대에 불었다. 그러자 기둥에 달려 있던 깃발이 휘날리면서 음산한 귀신의 얼굴이 두 눈으로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였다. 이 귀신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어렴풋하게 괴이한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응시했다.
한제는 미간을 팩 구겼다. 마음속에서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든 그의 시선이 깃발의 귀신과 마주쳤다.
잠시 후, 한제는 점차 심신의 평안을 찾아갔다. 고개를 숙인 그는 다시 금제에 집중했다.
갑판의 금제는 빛을 번득이며 층층이 파문을 일으켜 더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4대 금제 중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파멸금이야. 생사금과 세월금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고혼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어. 그저 타락의 땅에서 거대한 거북이 흉수를 보았을 뿐이니까. 한데 이 갑판을 이루는 금제에는 고혼금이 꽤 많단 말이지.’
고민에 빠진 채 한제는 오른손으로 하나의 금제 문양을 가리켰다. 다름 아닌 축소된 고혼금이었다. 그 안에서는 어렴풋한 쉿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한제는 그 안에서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를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흉악하고 잔인한 구렁이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한제를 삼킬 것처럼 끊임없이 그를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세 시진이 지났다. 그동안 배를 보호하는 빛의 장막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격렬하게 번득였으며, 그것을 때리고 있는 일곱 색채의 빛이 갑판 위를 비추었다.
한편, 반산몽의 눈빛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가 보기에 교착 상태에 이른 듯한 한제는 지난 세 시진 동안 거의 꼼짝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혼마주를 어찌 그렇게 쉽게 연구할 수 있겠어? 갑판의 금제를 드러낸 것이 한계인 모양이군. 이한제, 거만하고도 오만하구나!’
반산몽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도우, 이미 세 시진이 지났어. 지금 당장 제단을 살피지 않는다면 시간이 더 부족할지도 몰라.”
한제는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계속해서 오른손으로 가리킨 금제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한층 예리하게 빛났다.
‘고혼금은 혼을 핵심으로 삼고 금제를 그 안에 녹여낸 것이다. 덕분에 금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수만 가지 형태로 변할 수 있어. 그 안에 봉인된 혼이 강할수록 금제의 위력도 강해지지. 이 금제, 그리 어렵지 않아!’
깃발의 귀신 얼굴
다섯 시진이 지났을 때,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오른손으로 그 금제를 강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금제의 문양이 바르르 떨리면서 펑 하고 무너져 내리더니 허상의 구렁이 한 마리가 한 줄기 검은 연기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연기는 멀리 달아나기도 전에 한제의 손에 붙잡혔다. 한제는 연기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어 검은 연기를 그대로 와해시켰다. 하지만 와해된 연기는 흩어져 사라진 게 아니라 한제의 오른손이 그린 결인 아래 다시금 금제가 되어 원래의 자리에 떨어졌다.
“첫 번째⋯⋯.”
한제는 감았던 눈을 떠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게 된 금제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서는 반산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급하게 굴지 말게. 시간은 충분하니까.”
반산몽의 표정이 굳어갔다. 허나 이 갑판을 이루고 있는 금제의 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더욱이 이 갑판은 혼마주의 겉면에 불과해 안에는 더 많은 금제들이 있었다.
“다섯 시진 만에 겨우 하나를 파악하지 않았는가? 이 정도 속도라면 사흘 동안 열 개나 파악할 수 있겠어? 자네⋯⋯.”
반산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제의 사방에서 돌연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갑판을 이루고 있는 금제 중 아홉 개가 일제히 무너져 내리면서 검은 연기로 피어올랐다가 새로운 금제로 응집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게⋯⋯?”
반산몽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와 동시에 두 눈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빛이 드러났다.
한제가 오른손을 다시 휘두르자 콰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갑판을 이루고 있는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의 문양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나온 검은 연기는 폭풍이 되어 갑판 위에 피어올라 사방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한제를 중심으로 반경 1천 척에 금제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오직 검은 폭풍만이 휘몰아칠 뿐.
이 폭풍은 이내 산산조각이 나면서 하나하나의 새로운 문양을 형성하더니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도우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려니 부끄럽군.”
한제가 빙그레 웃었다.
반산몽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군. 하지만 갑판을 이루고 있는 금제는 총 수천만 개에 달하지만 도우가 파악한 것은 모든 금제의 1백 분의 1도 되지 않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파멸금을 소환했다. 파멸금은 어두운 빛이 되어 갑판 전체로 퍼져 나갔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지면서 갑판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금제가 일제히 덜덜 진동하다가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수천만 개의 금제 중 수백 개에 달하는 파멸금이 모두 붕괴하면서 혼마주는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생사금과 세월금 역시 소환되어 갑판을 뒤덮었고 줄기줄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1각도 안 되는 사이에 수많은 금제가 무너져 내려 검은 연기로 변한 상태였다.
배 밖의 칠채도인도 이렇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를 자세히 살폈다.
한편, 반산몽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다섯 시진⋯⋯ 갑판뿐이라고는 해도 고작 다섯 시진 만에 완전히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 통제권까지 장악했어. 이, 이건⋯⋯?’
그 무렵, 점차 흩어지기 시작한 검은 연기는 모두 새로운 금제가 되어 갑판에 안착했다. 눈 깜짝할 사이 갑판을 이룬 수천수만 개의 금제는 한제의 것이 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