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5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뒤이어 그가 오른손을 들자 네 개의 금제 문양이 그 위로 떠올랐다. 4대 금제였다.
사실 갑판의 금제를 꿰뚫는 것은 한제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려움은 고혼금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한제는 지난 다섯 시진 동안 하나의 금제만을 연구했지만 그 연구를 마침으로써 고혼금을 완벽하게 깨닫게 된 상태였다. 이전에 타락의 땅에서 접했던 고혼금에는 수많은 결함이 있었으나 이 갑판의 고혼금은 완전했다.
금제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공령기 중기에 이른 수준, 여기에 여섯 개의 본원까지 가진 그는 단 다섯 시진 만에 하나의 금제를 완벽하게 통달할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제가 오른손을 휙 휘두르자 콰쾅 소리와 함께 갑판 위에 남아 있던 금제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고혼금과 한제로서는 이전까지 본 적 없는 기이한 금제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모든 금제를 자세히 살필 여유는 없었다. 그런 금제들은 그저 대충 살펴 기억에 새기기만 해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은 어쩌면 이 갑판을 이룬 금제의 위력을 적지 않게 약화할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그 안으로 들어가 혼마주의 모든 금제를 완벽히 파악하는 데는 좋았다.
갑판의 주인이 된 한제는 기이한 눈빛으로 반산몽을 바라보았다.
“이 배는 총 아홉 층의 금제로 이루어져 있고 갑판은 그 첫 번째 층이었으니 이제 여덟 개 층이 남았군! 도우, 만약 내가 모든 금제를 파악하면 이 배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지?”
반산몽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혼마주의 금제 첫 번째 층을 꿰뚫은 한제에게 이 배의 통제권 일부가 넘어갔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법보는 두 명의 주인을 두고 있는 셈이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반산몽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인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갑판에서 사라지더니 혼마주 안쪽의 두 번째 갑판에서 나타났다.
한제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는 반산몽의 눈에서는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이 배의 금제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어려워지지. 동부계의 미물과도 같은 수련자가 혼마주를 완벽히 장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
시간은 또다시 흘러갔다. 한 시진, 두 시진… 눈 깜짝할 사이 일곱 시진이 흘렀다. 하루가 지난 것이다.
배 밖에서 번득이는 일곱 색채의 빛은 갈수록 밝아졌고 혼마주의 떨림 역시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다.
배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은 칠채도인의 손에 이미 절반 정도가 파괴된 상태였다.
첫 번째 층을 파괴한 뒤 일곱 시진이 지난 순간, 두 번째 갑판에서는 돌연 우렁찬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혼마주는 격렬하게 뒤흔들렸다.
“말도 안 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반산몽은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혼마주에 대한 통제권 일부를 또다시 한제에게 뺏긴 상태였다.
본체로 이곳에 임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애초에 이 배에 대한 통제권을 3할 정도밖에 가지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는 한제가 가진 통제권보다 아주 조금 높을 뿐이었다.
한제가 세 번째 층마저 꿰뚫는다면 이 배의 통제권은 온전히 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터였다.
그야말로 주객전도의 상황이었다.
반산몽은 서늘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들어 배 밖의 보호막을 가리켰다. 그러자 겹겹이 싸인 빛의 장막은 돌연 어두워졌다.
그와 동시에 몸을 휙 날린 그녀는 곧장 첫 번째 갑판에서 아래로 가라앉아 두 번째 층에 이르렀다.
그 순간, 일곱 색채의 빛이 콰쾅 하고 달려들어 혼마주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칠채도인 또한 갑판에 발을 들였다.
그와 동시에 세 번째 층에 이른 한제는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고개를 홱 쳐들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두 눈은 밝게 번득였다.
‘반산몽, 예상대로군.’
한제는 차게 웃었다. 속내를 들킨 반산몽이 칠채도인의 힘을 빌려 자신을 압박해오리라는 것을 한제는 진즉 예측하고 있었다.
칠채도인이 발을 들인 첫 번째 갑판은 이미 한제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제 한제는 첫 번째 갑판의 금제를 통제해 칠채도인의 진입을 막아야 했다.
‘불장난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결인을 그린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혼마주의 첫 번째 갑판에서는 콰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곳의 모든 금제가 멈추었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일곱 색채의 빛이 두 번째 층으로 진입했다.
칠채도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두 번째 층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두 번째 층에 있던 반산몽의 표정이 급변했다. 한제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그녀는 곧장 몸을 날려 세 번째 층 안으로 들어와 한제에게 다가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죽으려고 작정했어? 칠채의 첫 번째 주혼에는 자네와 내가 힘을 합쳐도 대적하기 어렵건만 그런 자를 막지 않고 뭐하는 건가?”
“계속 그리 시끄럽게 군다면 두 번째 층마저 열어버리겠네.”
한제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이봐!”
반산몽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두 눈에는 짙은 살기가 드러났다.
“반 도우야말로 배를 둘러싼 빛의 장막을 거두어 저자가 들어서도록 해주지 않았는가? 더욱이 나와 저자 사이에는 묵은 원한이 없어. 저자가 원하는 것은 이광의 활일 뿐. 난 얼마든지 그것을 넘겨줄 수 있지. 허나 도우는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목숨을 보전하고 싶거든 닥치고 있어!”
협박에 가까운 한제의 말에 반산몽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곧장 두 번째 층도 열어주지.”
한제가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자 반산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상대가 이토록 교활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 내게서 조금씩 주도권을 앗아갔어. 이제 난 완전히 저자한테 압도당한 거야!’
반산몽은 좀 전까지만 해도 동부계 내의 미물이라 생각했던 상대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저자가 선강 대륙 사람이었다면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떨쳤을 것이 분명해.’
한제는 그런 반산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때, 두 번째 층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갑판 전체가 바들바들 떨리고 수많은 금제가 번득이며 일곱 색채의 빛에 대항했다. 하지만 갑판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전력을 다해 세 번째 층의 금제를 뚫을 때까지의 시간을 벌게. 도우에게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아. 허나 내게 협조하지 않는다면 자네 역시 쉽게 이곳에서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이 배의 통제권은 이제 절반쯤 내게 있을 테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일방적으로 통보한 한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감았다. 도고의 허상으로 뒤덮인 그는 다시 세 번째 층의 금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반산몽은 어두운 표정으로 한제를 한참 응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한제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에게는 분명 최후의 수단이 남아 있었다. 칠채를 빌려 한제를 압박할 생각까지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허나 한제가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혼마주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 두 개 층의 갑판을 뚫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제의 협조가 필요했다.
“계획이 뭐지? 아무리 내가 시간을 끈다 해도 남은 층들을 다 열 때까지는 버티지 못해! 차라리 통제권을 포기해! 그럼 늦지 않게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야.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다가는 우리 둘 다 여기서 죽게 된다!”
반산몽이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콰쾅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두 번째 층의 갑판이 대대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을 이루는 금제의 3할이 파괴된 상태였다.
“세 시진이면 돼!”
한제는 두 눈을 떠 반산몽을 바라보았다.
반산몽은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려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순간 두 번째 층의 갑판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본래 저 자매에게 이렇게 대할 생각은 아니었다. 허나 그녀들이 먼저 수작을 부리려 했으니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혼마주의 금제는 그에게 매우 유용했다. 연속해서 두 개의 층을 꿰뚫은 한제의 4대 금제는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융합시킨다면 본원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터였다.
세 번째 층의 금제 중 절반가량은 처음 보는 것으로 덕분에 금제에 대한 한제의 조예는 더욱 높아졌다.
환각 속의 환각
두 시진이 지났을 때, 두 번째 층의 갑판에는 쩌적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줄기줄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들이 뻗어 나감에 따라 이내 우렁찬 소리와 함께 두 번째 갑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큭!”
한 움큼 피를 토해낸 반산몽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무너져 내린 두 번째 갑판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바로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면서 결인을 그린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번째 층을 이룬 금제가 콰쾅 하고 일어나 거대한 그물이 되더니 상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 순간, 몸을 가라앉힌 한제는 세 번째 층으로부터 네 번째 층으로 진입했고 반산몽이 뒤를 따랐다.
네 번째 갑판에는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신식과 시야 모두 가려져 사방을 살필 수가 없었다.
“저자는 두 번째 층을 뚫었어. 내가 막는다 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진 뿐이야. 자네가 세 번째 층까지 완벽하게 파악한다 한들 저자라면 단언컨대 한 시진 안에 이 층을 뚫고 들어올 거야!”
반산몽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자네를 이용하려 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자네와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었어. 자네가 맹세의 피를 주면 나 역시 자네에게 맹세의 피를 줄 생각이었다고. 절대로 자네를 해할 맹세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맹세의 피를 내놓고 이 배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 나한테 모든 통제권을 넘긴다면 저자에게 대항할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한제는 초조해 보이는 반산몽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속이려 드는군.”
“내가?”
반산몽의 눈에서 애석한 빛이 드러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세 번째 층을 올려다보았다. 끊임없이 울리는 콰쾅 소리와 함께 미세하고 빽빽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는 반산몽이 아니야.”
한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반산몽이 흠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반산로! 내가 이 혼마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너는 나를 속였다. 너는 내가 맹세의 피를 내놓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모종의 방법으로 모습과 기운을 바꾸었어. 내가 너를 반산몽으로 믿게 하기 위함이었지. 반산몽의 신분으로 이야기해준 동부계의 비밀은 신빙성이 있을 테니 난 너를 더욱 반산몽이라 여기게 됐지. 허나 내가 금제를 하나하나 간파할 때 너의 반응 중에는 진실도 있었지만 거짓도 있었어! 이전까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아!”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때 위쪽 세 번째 층에서는 더욱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더 많은 균열이 일면서 일곱 색채의 빛이 나타났다. 세 번째 층 역시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미쳤군! 자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난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여인이 미간을 팩 찌푸렸다.
“알 수가 없다? 이 안의 모든 것은 거짓 아닌가! 두 번째 층도 세 번째 층도 네 번째 층도 전부 거짓이고 너 역시 거짓이야. 일곱 색채의 빛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르나 이 배에 타 있는 저자는 거짓이지. 이건 환각이라고! 너무도 생생한 환각이지. 나 역시 이렇게까지 진실에 가까운 환각은 처음 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