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15
제단 위에 앉은 한제의 시선은 우주와 자신의 분신을 지나 마침내 곁에 놓인 엽막의 팔에 이르렀다. 그의 두 눈이 밝게 번득였다.
엽막의 팔에는 극강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하늘이라도 다 찢어버릴 수 있을 법한 힘이었다.
한제는 그 팔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그의 미간과 두 눈에서 총 스물네 개의 반점이 급속도로 회전했고 온몸은 보라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이내 그의 손을 지나 엽막의 팔로 흘러들었다.
엽막의 거대한 팔이 뭔가에 저항하듯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는 도고 엽막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계자였지만 그가 받은 유산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팔과 융합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고맥창궁혈이라는 난관을 뛰어넘은 한제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그에게는 혼혈과 고조의 피 아홉 방울이 응집해낸 순수한 혈맥이 있었다.
“엽막, 이 팔을 내게 넘겨라.”
한제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스물네 개의 반점은 더욱 짙은 보랏빛을 발했다. 동시에 한제의 혼에서는 생전의 엽막이라도 두려워했을 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제는 그 기운이 녹아든 오른손으로 엽막의 팔을 한 번 더 눌렀다.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팔은 떨림을 멈추었고 점차 축소되다가 결국 한 줄기 어스름한 빛이 되어 한제의 오른손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이제 한제의 오른손은 전과 확연히 달라진 상태였다. 왼손과 비교해 매우 거칠어 보였고 복잡한 문양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으며, 푸른빛이 감도는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슥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전방의 허공을 움켜쥐었다.
“시천!”
그 한 마디 외침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허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제의 뒤에서는 거대한 팔의 허상이 나타나 그의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전방에는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고 층층이 와해되면서 그대로 벌어졌다.
이 정도의 시천술이라면 공현기 초기 수련자의 심신조차 단숨에 찢겨나갈 것이고 공현기 중기 수련자라도 겁을 먹고 곧장 내뺄 터였다.
갑자기 생겨난 거대한 균열로 인해 제단은 웅웅 소리와 함께 떨리기 시작했고 그 위로는 한 겹의 파문까지 일어났다. 시천의 여파에 저항하려는 듯했다.
이에 고개를 숙여 제단을 자세히 살피던 한제의 두 눈이 기인하게 번득였다.
“이 제단, 뭔가 이상하군!”
삼명술(三命術)
사실 제단에 오기는 했지만 지금껏 자세히 살필 여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제단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있던 거대한 팔이었다. 타고나기를 신중한 한제답게 신식을 이용해 제단을 훑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별다른 점은 없었다.
‘이 제단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이며 엽막의 오른팔은 왜 이곳에 있었던 거지?’
한제는 신중하게 제단을 살폈다.
제단은 일견 평범했다. 만약 좀 전의 파문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특이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심지어 시천술의 위력이 흩어져 사라짐에 따라 제단에 인 파문마저도 천천히 약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기에 자칫하면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제단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분신도 눈을 번쩍 뜨더니 본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두 명의 한제가 하나로 합쳐졌다.
한제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보더니 아무런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제단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줄기줄기 금제를 그려냈다. 눈 깜짝할 사이 백만 개가 넘는 금제 낙인이 생겨났다.
뒤이어 한제가 전방을 가리키자 이 수많은 금제는 휙 하고 날아가더니 제단을 둘러쌌고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며 하나씩 그 위에 떨어져 내렸다.
금제가 하나하나 떨어질 때마다 제단은 가볍게 진동했고 이 진동은 갈수록 격렬해져 나중에는 곧 무너져 내릴 기미까지 보였다. 심지어 제단 위로 줄기줄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났고 이내 돌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루처럼 부서진 조각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는 신중하게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더 많은 금제를 소환해 계속해서 제단을 뒤덮었다. 그러자 제단은 한층 격렬하게 진동했고 점점 많은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왔다.
1각 뒤, 제단 주위에는 부서진 돌조각이 가득했다. 멀리서 보면 안개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제단은 깎이고 부서져 원래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고 온통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아무래도 내부를 살펴봐야겠군. 한데 모호한 존재의 힘이 막고 있어 신식으로 살필 수가 없어.’
한제는 말없이 제단을 응시하다가 다시 백만 개의 금제를 그려냈다. 수많은 금제에 둘러싸인 제단은 부서지면서 와해되더니 또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때, 제단 안까지 이어진 한 줄기 균열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부채꼴로 넓게 펼쳐졌다. 마치 진흙 아래 숨겨진 보석이 살짝 드러나면서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한제는 붉은 빛을 발산하는 균열을 차분히 바라보다가 두 손을 휘둘러 사방의 금제들을 통제했다. 그러자 금제들이 일제히 그 균열로 달려들었다.
한데 금제들이 균열 근처에 이른 순간, 또 다른 균열에서도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뒤이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순식간에 열 개가 넘는 균열에서 붉은 빛줄기가 나타났다.
콰르릉!
이 빛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붉은 파문을 퍼뜨렸고 금제는 파문에 닿자마자 달아오른 숯에 닿은 눈송이처럼 치직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한제가 소환했던 모든 금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 빛 아래 사라져 버렸다.
그 붉은 빛에 뒤덮인, 전보다 훨씬 작아진 제단을 응시하는 한제의 두 눈에 의혹과 동시에 깨달음의 빛이 어렸다.
‘저 빛은 어딘가 익숙하다. 혹시 저 제단은⋯⋯?’
한제는 심신이 바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붉은 빛이 만들어낸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가까이 다가오자 한제는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도고 엽막의 거대한 팔의 허상이 나타나 앞으로 달려들었다.
“시천!”
한제는 낮게 외치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확 찢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 담긴 엽막의 팔이 가진 모든 힘이 뿜어져 나왔고 8성급 고신과 고요, 고마의 힘도 남김없이 발산됐다. 그야말로 하늘을 찢어버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꽈르릉!
제단에서 발산된 붉은 파문이 격렬하게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에 따라 제단 위의 균열들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붉은 빛은 이 대대적인 붕괴에 저항하려는 듯 몸부림쳤지만 허사였다.
끊임없이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던 중 제단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큼직한 조각과 파편들이 나가떨어진 뒤 마침내 눈앞에 무언가가 드러났다. 눈부신 붉은 빛을 발하는 연못 같은 팔각형의 무언가였다.
동시에 한제에게 왠지 모르게 익숙했던 기운도 강렬하게 발산됐다.
“저것이었군!”
한제의 두 눈에서는 광기 어린 기쁨의 빛이 드러났다.
태고 성신 봉멸족에게는 삼명술이라는 술법이 있다. 삼명술을 수련하려면 봉멸족의 완전한 제단이 있어야 했는데 그 제단은 어째서인지 세 조각으로 나뉘어 아득한 우주에서 사라져 버려 소재를 알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한제가 우연히 곤허성역에서 얻은 혈조의 혈각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이후 한제는 나천성역의 고요로부터 제단의 두 번째 조각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균열에서 익숙한 붉은 빛을 본 순간 그는 세 번째 조각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됐고 이제 확신하게 됐다. 저 연못 같은 것은 혈각 그리고 두 번째 조각과 같은 기운을 풍겼다. 바로 봉멸족의 기운을…
“이렇게 마지막 제단을 손에 넣게 될 줄이야! 삼명술을 익힌다면 나의 힘은 한층 강력해질 터!”
한제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삼명술에 대해 알게 됐을 때부터 큰 관심을 가져왔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곧장 나천성역의 고요로부터 얻은 제단의 조각과 혈각을 꺼냈다.
당시 혈각 안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한제의 옛 친구라고도 할 수 있는 그녀는 그러나 몇 년 전 혈각 안에서 흩어져 사라지고 한 줄기 혼만 남은 상태였다.
세 조각으로 나뉜 제단이 동시에 나타나자 그것들이 내뿜던 붉은 빛은 곧장 서로를 끌어들이더니 하나로 융합됐다.
오래된 무덤에서 봉멸족 여인의 기억을 뒤져 삼명술의 수련 방법을 알아낸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부좌를 틀었다.
“봉멸족의 삼명술… 수련에는 분명 위험이 따르겠지만 성공했을 때 얻을 이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지!”
한제는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안에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는 부족 낙인이 나타났다. 말라붙어 갈색이 된 피가 묻은 이것은 봉멸족의 낙인으로 당시 오래된 무덤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봉멸족 여인의 미간에서 뜯어낸 것이다.
한제는 낙인을 자신의 미간에 대고 꾹 눌렀다. 순간 한 줄기 작열감이 미간에서부터 밀려들었다. 봉멸족 부족 낙인은 수많은 촉수를 뻗어 한제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하지만 이 고통은 한제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봉멸족의 부족 낙인으로 봉멸족 선조의 영혼을 소환하여 봉명도(封冥刀)로 삼아 세 개의 영혼과 세 개의 원신, 세 개의 육신을 참한다!”
한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그가 뱉어낸 피가 기이하게 융합되기 시작하더니 허공에 떠오른 채 빠른 속도로 꿈틀거렸다. 동시에 세 조각으로 나뉜 봉멸족의 제단은 붉은 빛을 발산하며 꿈틀거리는 한제의 피에 흡수됐다.
점차 이 피는 한 자루의 긴 칼 모양을 갖추었다. 10척 정도 길이의 칼은 흐릿하고 모호했으며 그 안에는 허상이 중첩되어 있어 육안으로 살피기 힘들었다. 그러나 신식을 통해 본다면 이 칼은 한 자루가 아니라 세 자루가 중첩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세 자루의 칼은 중첩된 채 기이한 기운을 발산했다.
“세 개의 영혼을 참한다!”
한제가 낮게 외치자 칼은 곧장 솟아오르더니 한제의 머리 위에서 크게 허공을 갈랐다. 이어서 한제의 정수리를 관통한 칼은 곧장 그의 온몸을 관통하며 완벽하게 꿰뚫었다.
“크윽!”
한제는 격렬한 경련을 일으켰고 창백하게 질렸다. 한제의 영혼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으나 그는 애써 참아냈다.
이내 한제의 정수리로부터 두 줄기의 혼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칼은 한제의 강력한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칼은 두 자루뿐이었다.
고조의 혼혈과 융합된 한제의 영혼은 도고의 혼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봉멸도 정도로 자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한제의 정혈로 이루어진 칼이 아니었다면 한제의 혼 하나조차 자르지 못했을 터였다. 또한 이 칼이 한제의 세 영혼을 모두 베었다 해도 그 반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두 번 다시 소환되지 못했으리라.
“세 개의 원신을 참한다!”
한제가 고통을 참으며 포효한 순간, 겹쳐진 두 자루의 칼이 휙 솟구쳐 올랐다가 내리 떨어졌다. 한제의 체내에서는 강렬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원신은 봉멸족의 기이한 힘에 의해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두 자루의 칼 중 하나가 무너져 내리며 흩어져 사라졌다.
“세 개의 육신을 참한다!”
한제가 다시 외치자 마지막 남은 한 자루의 칼이 내리 떨어졌다.
콰쾅!
굉음과 함께 칼은 한제의 몸을 관통하더니 곧장 붕괴했고 한제의 육신은 셋으로 나뉘었다.
세 개의 육신은 세 개의 영혼과 세 개의 원신에 녹아들면서 세 조각으로 나뉜 봉멸족의 제단으로 향했다.
제단들은 셋으로 나뉜 한제를 흡수한 뒤 더욱 짙은 빛을 발산하면서 서로를 에워싸고는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7일이 지났다.
그동안 세 조각 난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은 점차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번득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7일이 지난 후에야 이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붉은 빛이 흩어진 순간, 강력한 한 줄기 기운이 하나의 제단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거센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제단은 결국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렇게 부서진 제단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제단도 급속도로 진동하다가 무너져 내렸고 파편들 사이에서 두 번째 한제가 나타났다.
뒤이어 마지막 조각의 제단인 혈각이 무너져 내리면서 도고의 기운을 발산하다가 파괴됐고 그 안에서 세 번째 한제가 걸어 나왔다.
“삼명술⋯⋯.”
첫 번째 한제가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얻게 될 줄은 몰랐군.”
두 번째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합체!”
세 번째 한제가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나섰고 찰나의 순간 서로 중첩되더니 이내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
두 눈을 감은 한제의 백발이 휘날렸다. 허공에 떠 있는 그는 체내에서 솟구치는 생기를 느꼈다. 이 생기는 셋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각각은 본래 한제가 가지고 있었던 온전한 생기보다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