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18
한제는 곧 은하수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홍삼자 등이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이들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멀리서 다가오는 백의백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들 외에도 수많은 수련자가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한제 역시 익숙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수 곁에 홍접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서로가 부녀임을 알게 된 듯했다.
청림 뒤로는 청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저 먼 곳에 모인 여러 사람 사이에서 우울해 보이는 사내도 하나 있었다. 묵묵히 청상을 바라보는 사내의 표정은 복잡했고 그 안에 슬픔도 어려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만족감이었다.
사내는 주일이었다.
주은혜와 그 곁의 호랑이도 보였다. 일찍이 성인이 됐지만 한제의 눈에 그녀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았다.
모든 사람을 한 번 쭉 훑어본 뒤에야 한제는 입을 열었다.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선계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본래는 텅 비어 있던 서쪽 지역은 태고 성신의 남사족 사람들이 일궈놓은 상태였다.
남몽도존은 자신이 만든 오두막 앞에 앉아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천매는 폐관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이는 남몽도존의 뜻이었다. 이천매는 현재 수준이 한참 부족한 상태였기에 폐관수련을 통해 자신의 본원을 깨닫도록 한 것이다.
지인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한제는 곧장 자리를 떴다. 사도환과 주은혜, 대두(大頭)와 십삼 등이 뒤를 따랐다.
한제는 선계 북쪽 지역,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맥의 산봉우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 남몽도존을 찾아갔다. 이천매가 폐관수련 중이라는 소식에 어째서인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천매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그저 은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인지 아니면 남녀간의 사랑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선계는 무릉도원처럼 외부의 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계내와 계외에서 여러 강자가 세 번째 주혼을 찾는 중이었지만 이들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이들은 한제가 돌아오면서부터 안정과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제가 머무는 산봉우리에는 그가 기거하는 간단한 오두막이 있었다.
주은혜는 어째서인지 떠나지 않고 한제 곁에 남았다. 딸과 같은 주은혜를 향한 한제의 눈빛은 한없이 자애로웠으나, 어른이 된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기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모완과의 나날이 떠오른 탓이다.
모완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커지고 괴로웠으나, 그의 고통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2천여 년의 삶은 모든 것을 숨기고도 남을 만큼 두껍고 단단했다.
십삼도 떠나지 않고 한제 곁에서 수련을 이어갔고 이따금 이어지는 한제의 가르침에 큰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한제는 진즉 대두의 혼혈을 돌려주고 노예 낙인도 거두었다. 그러니 대두는 자유의 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이곳에 남았다. 다만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고통조차 추억으로 남는다. 대두는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했다.
반면 십삼은 단순했다. 그는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수련에만 매진했다. 한제의 가장 뛰어난 제자가 되어 스승이 필요로 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제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을 터였다.
한편 사도환은 온종일 한제와 술을 마시며 박장대소를 하는가 하면 한제의 몸을 토닥이기도 했다. 한제와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기쁜지 모든 고민이 사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끔 취할 때면 한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기도 했다. 한제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왕 노릇을 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한번은 우울한 표정의 주일도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나 술을 마실수록 그의 우울함은 더욱 짙어졌고 결국 한 마디도 없이 술병을 다 비우고는 한참이나 한제를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떠났다.
그 뒷모습은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
청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을 떠올리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허사였다. 그럼에도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끝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한제가 새로운 선계로 돌아온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당시 뇌의 선계에서 얻은 선품각을 꺼내 모든 선술을 취하고 청림 등에게 넘겼다.
그들은 선술을 나눠 가지고는 다른 이들에게 전수해 선계의 힘을 강화했다.
그 무렵 선계 너머에서는 서서히 난리가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원고 선역 4대 장군은 세 번째 주혼을 찾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고 여러 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기이한 선인 혈맥의 진을 설치했다. 그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심지어 한제도 알지 못하는 특수한 수단도 사용하는 중이었다.
전가 노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4대 장군에게 신식을 고정해둔 채 그들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도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고 4대 장군 역시 그의 목적과 의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암묵의 협약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런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편, 칠채도인은 운해성역에서 빠져나온 뒤 장존과 계외 선비들을 소집해 계내로 들어와 곤허성역을 꼼꼼히 탐색했다. 또한 이들은 모종의 신통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계내와 계외의 전쟁으로 수많은 수련자가 죽은 것을 계기로 발휘할 수 있게 된 신통술이었다.
물론 한제도 세 번째 주혼을 찾고 있었다.
그는 지난 한 달간 귀면기(鬼面旗)를 연구한 덕에 그 안의 환술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한제에게는 세 번째 주혼을 찾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언제 어떻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알아내야만 하는 자 바로 천운자였다.
사실 천운자에 대한 책략을 세우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천운자 어디에 숨어 있느냐!’
그는 오두막 안에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심신 안에서 천운자의 혼을 찾았다. 이 혼을 통해 천운자 본체의 소재를 찾아 죽일 생각이었다.
천운자를 제거하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칠채선존의 세 번째 주혼 외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한제는 심신 속에서 자신이 가두고 융합한 천운자의 분신을 보았다.
지난 세월, 한제는 천운자의 분신을 이용해 수차례 위기 속에서 살길을 찾아낸 바 있다. 그만큼 천운자의 분신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더욱이 천운자만큼 신비롭고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를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버려두는 것은 더욱 큰 위험이 될 터였다.
‘대체 어디에서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한제는 심신 속 천운자의 분신과 융합하여 천천히 예측해나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미동도 없었다. 온 정신을 천운자의 분신에 집중하다 보니 점차 자신이 천운자가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으나, 이 또한 처음 맛보는 느낌은 아니었다. 과거 수도자와 대적했을 때에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천운자의 분신과 융합한 한제의 마음은 점차 평안해졌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이 선계의 대륙과 만물이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어떤 것도 그의 예측을 벗어날 수 없는, 말하자면 자신이 끝도 없이 확장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제는 자신의 이름마저 잊고 천운자의 일부가 된 것처럼 점점 그의 분신과 밀접하게 융합되어갔다. 그리고 신식을 사방으로 확산시켰다.
천운자 본체와 분신의 연계를 통해 천운자를 찾아내려면 자신이 먼저 천운자의 분신과 완벽하게 융합해 그 분신 자체가 되어야 했다.
예전에도 사용해본 적이 있는 방법으로 꼼꼼히 살펴본 결과 위험이 따르는 방법은 아니었다.
강탈
소하성역, 폭이 수십 척에 달하는 어느 운석.
우주를 표류하는 그 운석에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던 천운자는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백발이 기묘하게 흔들려 선인의 느낌을 물씬 풍겼으나 그 미소는 어딘가 음산했다.
이내 두 눈을 번쩍 뜬 그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은 운석을 관통하고 우주를 가로질러 저 끄트머리 선계의 누군가에게 닿아 있는 듯했다.
“과연 내 제자답구나! 수준이 매우 높아졌어! 허나 그럴수록 내게 더 큰 도움이 될 뿐, 너는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곱 개의 본원이라⋯⋯. 좋군!”
천운자는 미소를 지르며 중얼거리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한 줄기 본원이 주먹에서부터 확산됐다.
그것은 분명한 원인과 결과의 본원이었다.
“삶을 장악하는 왼손과 죽음을 관장하는 오른손⋯⋯ 나 역시 할 수 있다.”
천운자는 왼손을 무릎에 얹어두고 있었는데 그의 두 손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본원뿐만 아니라 두 번째 본원인 삶과 죽음의 본원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의 두 눈에서는 진실과 거짓의 본원도 응집된 상태였다.
“눈을 감으면 거짓, 눈을 뜨면 진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천운자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화염이 이글거리고 오른쪽 눈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 살육의 본원도 가지고 있다.”
천운자의 미간에서 흐릿한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회색 옷을 입은 또 한 명의 천운자가 나타났다.
“아주 좋아! 이것들은 이미 모두 거두어들였어. 이제 일곱 번째 본원을 거두어들일 차례군.”
천운자가 두 눈을 번득이자 두 눈에서 수많은 실핏줄이 나타났다. 이 실핏줄들은 짧은 시간에 눈동자 전체를 뒤덮었고 뒤이어 그 안에서 금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디 금제들이 실핏줄에 완전히 융합되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했으나, 천운자는 곧 금제의 본원을 깨달을 것만 같았다.
“실핏줄로 세상의 규칙을 만들고 자신의 의지를 세상의 법칙으로 삼다니⋯⋯. 제자야, 이 스승은 정말 놀랍구나. 여태 그 누구도 이런 방법을 생각해내지는 못했거늘⋯⋯. 좋아, 과연 내가 수많은 세월을 들여 예측해낸 역수다워! 내 계획은 네 몸에서 완성될 것이다. 반드시 완성될 것이야!”
천운자는 흥분된 얼굴로 입술을 핥았다. 그가 이토록 흥분하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2천 년 전에 심은 나무가 꽃을 피웠구나. 허나 아직 열매를 딸 때는 아니지. 아직 양분을 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천운자는 두 눈을 번득였다. 그 눈을 가득 채운 실핏줄과 대량의 금제는 짧은 시간에 이미 3할 정도 융합된 상태였고 계속해서 융합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천운자의 표정이 차게 굳어버렸다. 웃음기는 삽시간에 사라졌고 심지어 두 눈에서 빠르게 융합되고 있던 금제 역시 융합을 멈추었다.
★ ★ ★
새로운 선계, 가장 높은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5일 동안 꼼짝 않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면서 천운자의 분신에 융합되어 있던 자신을 억지로 분리해냈다.
그는 다소 의심이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팩 구겼다.
‘이상하군. 왜 천운자의 분신과 융합했을 때 본원이 흘러나가는 느낌이 들었을까?’
한제는 자신의 일곱 가지 본원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본원은 감소되지 않았다. 이에 다소 안심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의혹은 커져만 갔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지? 단순히 착각이었나?’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다시금 천운자의 분신에 심신을 녹여내어 천천히 융합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천운자의 분신과 완벽하게 융합하려는 순간, 그는 돌연 융합을 중단시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 역시 서늘했다.
‘착각일 리 없다! 천운자의 분신에 뭔가 문제가 있어!’
그는 손을 들어 미간을 두드린 뒤 홱 잡아당겼다. 그러자 연기 같은 한 줄기 혼이 미간으로부터 뽑혀 나왔다. 천운자의 분신이었다.
허나 천운자 분신의 혼은 가부좌를 튼 채 꼼짝하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한제는 신식으로 덮어 천운자의 혼을 자세히 살폈지만 어떤 문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럴수록 의혹은 더욱 깊어졌다.
‘단서도 없고 본원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 진정 착각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천운자의 분신과 본체 사이의 연계를 이용해 그자의 소재를 찾으려고 했으나… 이제 보니 그 연계도 심지어 내가 그의 분신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천운자의 계획의 일부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