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21
‘정말 그토록 강하다면 도나 법술, 본원 따위를 깨달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 신통술 하나만으로도 대천존이나 선족, 고족조차 발아래로 여길 수 있을 터인데. 그러니 이 법술에도 분명 치명적인 흠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본원을 탁본한다 해도 진정으로 가지지는 못하는 것인지도 몰라!’
한제는 방금 전 천운자와의 전투를 떠올렸다.
화염, 천둥번개, 원인과 결과 각각의 본원으로 맞붙은 상황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허나 별다른 단서는 없어.’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선 그의 눈빛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소하성역 또 다른 어딘가. 우주를 표류하는 돌 안에 가부좌를 튼 채 천운자는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늦는군.”
그때, 허공에서 한 줄기 빛이 날아드는가 싶더니 파문이 일었고 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한동안 말없이 천운자를 바라보던 한제가 이내 피식 웃더니 가부좌를 틀었다. 표정은 더없이 침착했다.
“천운자 나의 본원에 만족하나?”
“나쁘지는 않더군. 허나 아직 조금 모자라.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천운자 역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원은 깨닫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말이지. 나도 일곱 개를 겨우 얻었을 뿐이야. 만족하지 못했다면 내게 몇 개 넘겨주지 그러나. 그렇게 얻은 본원을 내가 완벽하게 깨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가져가면 되지 않겠어?”
한제의 말에 천운자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진중한 얼굴로 한참이나 말없이 한제를 응시했다.
“이렇게 빨리 안정을 찾다니, 과연 이 천운자의 제자답군. 내게 본원을 얻어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천운자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미간을 가리켰다가 들어 올렸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나타났다.
“일찍이 다른 이에게서 거둔 물의 본원이다. 안타깝게도 한 가닥뿐이라 이것으로 다른 누구를 세 번째 단계에 들어가게 하기는 힘들었지. 하여 내가 오랫동안 보관해왔다. 이것을 줄 테니 완벽하게 깨달아 진정한 물의 본원을 얻어낸다면 고맙겠구나.”
천운자의 말이 끝나자 물방울은 둥실 떠서 한제의 미간 앞에 이르렀다.
“더 없나?”
한제는 눈앞의 물방울을 바라보는 한편 웃으며 물었다.
천운자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한제의 미소와 반응이 신경 쓰였고 심지어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더 주마!”
천운자는 오른손을 휘둘러 이번에는 한 움큼의 진흙을 소환했다. 진흙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모습을 바꾸었다. 천운자는 그것 역시 한제에게 던졌다.
‘이한제, 계속해서 놀아볼 테냐? 네가 이긴다면 넌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나를 통해 엄청난 이득도 얻게 될 것이다. 네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놀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어.’
천운자는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미간을 꾹 눌렀다. 그의 손가락은 마치 미간과 두개골을 뚫을 듯했다.
그때, 한제가 손을 크게 휘두르자 한 줄기 광풍이 일었다. 한제가 가진 도고 혈맥의 힘이 실린 이 바람은 천운자의 사방을 뒤덮더니 그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돌을 무너뜨렸다.
“음…”
천운자는 바르르 진동했다. 손은 미간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그 끝에 이마가 쓸리면서 가느다란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죽음을 재촉하지 마라. 내가 너를 죽이려 했다면 벌써 몇 번은 죽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 심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내 앞에서 죽을 필요도 그런 기이한 웃음을 지을 필요도 없다. 천운자 그건 너다운 행동이 아니다. 아마도 내게 뭔가를 들킬까 두려워 그리 행동하는 것이겠지.”
한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내뱉었다.
천운자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한제의 행동이 조금씩 자신의 예측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천운자 묻겠다. 넌 내 본원과 신통술을 훔쳐갔다. 내 기억 역시 훔쳐갈 수 있지. 한데 왜 나의 도고 혈맥에는 손대지 않았지?”
한제의 물음에 천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도고 혈맥의 신통술을 발휘한다면 난 패배를 인정하고 네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 애원하겠다. 할 수 있는가?”
한제의 눈에는 어느새 경멸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할 수 있는가!”
천운자는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기만 했다. 물론 도고 혈맥의 신통술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힘은 탁본할 수 없었다. 그게 바로 그가 기이한 죽음을 이어가며 한제를 혼란스럽게 해 감추려던 진실이었다.
“그럴 수 없겠지. 네가 여태 보여준 모습들은 연기에 불과하니까. 나를 그 옛날의 이한제로 생각하는 건가? 천운자 넌 나보다 수준이 낮고 혈맥 역시 고귀하진 못하다. 신분 또한 나에 비할 바가 못 돼.”
한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날카롭게 천운자의 심신을 할퀴었다.
“내가 계내 수련자들을 이끌고 계외에 대항하고 있을 때도 넌 어딘가에 죽은 듯이 틀어박혀 있었지. 내 모습을 본 딴 조각상은 선계의 수많은 이들에게 숭배를 받고 있지만 넌 어떤가? 난 선계를 세우고 수많은 수련자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켰다. 넌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 해도 그저 음모와 수작일 뿐. 그런 네가 감히 나와 대결하겠다는 것이냐? 네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한제의 날카로운 지적에 천운자는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네게 그럴 자격을 줄 수 있다. 이 대결을 이 내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나다. 네가 아니야! 난 음모가 아닌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 네가 몇 차례나 이어진 죽음을 감수하는 것은 그간 죽은 것이 전부 분신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천운자 네 본체는 어디에 있느냐?”
천운자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심신은 마구 떨리고 있었다.
“이 놀이의 규칙은 네가 아니라 내가 정한다! 이 내기에서 우리가 겨룰 것은 과연 내가 네 본체를 먼저 찾아내 죽이느냐, 아니면 네가 먼저 내 분신을 완전히 빼앗거나 네가 숨겨온 목적을 달성하느냐다!”
자신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한제의 행동에 천운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허나 넌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난 분신을 이용해 너와 이 대결을 이어갈 테니까. 네가 이긴다면 분신 하나를 이기는 셈이지만 진다면 곧 죽음이다! 자 이제 네가 이 대결을 이어가기 싫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허나 계속해서 이 대결을 이어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놀아주마!”
비릿하게 웃고 있는 한제를 응시하는 천운자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내 본체는 네 본체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게야.”
한제가 손을 들어 크게 휘두르자 순간 도고의 힘이 천운자를 덮쳤다.
“이제 죽여주마.”
도고 혈맥의 힘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흩어져 사라지자 주위에는 한제가 밟고 서 있는 돌 이외의 모든 돌이 폭풍에 휩쓸려 소멸했다.
동쪽에서 또 천운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던 한제는 중첩된 허상처럼 점차 흐릿해졌다. 그러더니 그중 하나의 분신이 본체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 순간, 한제의 분신은 허공을 움켜쥐어 귀면기를 소환해 휘둘렀다. 그러자 귀면기는 곧장 부풀어 올라 우주를 뒤덮었다.
함정에 빠진 천운자
환각 속,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았다.
“삼명술 역시 절대 본 딸 수 없겠지. 만약 내가 분신 하나를 파괴해 삼명술로 얻게 된 세 개의 목숨 중 하나를 버린다면 천운자의 모든 계략은 무너져 내릴 터! 대가가 크긴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는 있다. 천운자 나와 내기를 하고 싶다면 잘 봐라.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한제의 분신이 손을 들어 본체의 미간을 가리켰다.
쉭!
날카로운 소리가 순간 울려 퍼졌고 한제의 분신은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손가락 끝은 본체의 미간을 파고들어 혼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귀면기가 휘몰아치면서 안개로 변하더니 거대한 귀신 얼굴을 형성해 한제의 미간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대량의 안개가 응집해 한제의 미간 안으로 절반 이상 스며든 이때, 그 일부는 한제를 뒤덮어 온몸을 완전히 가렸다.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한제의 분신은 본체의 미간에서 손을 거둔 뒤 돌아서 우주를 향해 절을 올렸다.
“남몽도존 선배님, 청림 선배님, 그리고 홍삼자 선배님, 이한제의 본체는 이곳에 있습니다. 부디 세 선배님께서 보호해주셨으면 합니다!”
한제의 말이 떨어지자 우주에서 남색 빛이 번득이며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남몽도존이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청림과 홍삼자도 묵묵히 따랐다.
세 사람은 사실 진즉 이곳에 이르렀고 심지어 한제와 천운자가 몇 차례 맞붙는 것까지 목격했다.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 만약 네가 그의 본체를 찾아낸다면 그자의 본체가 제아무리 수준이 높다한들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남몽도존은 한제의 본체 앞에 가부좌를 틀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몽도존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 포권을 한 뒤 천운자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한제의 손에는 아까 천운자에게서 받았던 물방울과 한 줌의 진흙 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손을 꽉 쥐어 그 두 가지 본원을 거두었다.
‘본체로 천운자의 본체를 찾고 있기는 하지만 분신으로도 다른 준비를 해야 해. 게다가 위기에 몰리면 천운자는 모든 분신을 동시에 사용할지도 몰라. 그렇게라도 내가 자신의 본체를 찾기 전에 나를 이기려 하겠지. 그렇게 나와 주면 좋겠군.’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인을 그린 손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분신의 혼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때 탄혼이었던 그의 혼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삼켰다. 또한 분신의 혼에는 그의 모든 본원이 응집되어 있었다. 원신도 혼과 깊게 연계되어 있어 분신의 혼이 죽는다면 모든 것은 연기처럼 흩어질 터였다.
‘본체는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본원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본원을 잃어버린다 해도 다시 깨달을 수 있지. 본원은 깨달음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고 깨달음은 본체의 혼에도 남아 있으니까! 천운자 이 대결에서 넌 지게 되어 있어!’
한제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다시 가슴팍을 두드렸다. 망설임 없는 동작이었다. 심지어 체내에서 자라난 천운자 분신의 혼과 심신을 통해 완벽하게 융합한 상태였다.
★ ★ ★
소하성역 동쪽. 우주 가운데에 천운자의 모습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기이한 미소를 찾을 수 없었고 침착함을 잃은 표정은 깊은 물처럼 착 가라앉은 상태였다.
먼 곳을 향한 그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한제, 내 본체를 죽이려면 일단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나 역시 본체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데 네가 어찌 그곳을 찾겠느냐? 그렇다고는 해도 워낙 교활한 놈이니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짧은 시간에 저런 수준에 오른 것만 보더라도 무시할 수는 없지. 유비무환이라지 않던가. 좋아, 더는 시간을 끌 것 없이 계획을 완성해야겠군. 흠이 좀 생기더라도…”
천운자의 눈빛이 결연한 의지로 번득였다.
“계획을 완성하기만 하면 난 곧장 잠들어 아흔아홉 번째 각성을 기다리고 그 각성으로 원하는 바를 달성할 것이다. 이한제 정도의 수준이라면 충분하겠지.”
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 손을 들어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소하성역 곳곳에서 수백 명의 천운자가 나타났다.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천운자들은 곧장 어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 저 멀리에서는 한제가 우주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순간 곤허성역의 수많은 수련성을 비롯한 곳곳에서 줄기줄기 파문이 일더니 그 안에서 천운자의 허상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저 멀리 떨어진 소하성역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