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23
“일단은 수련자가 되는 방법부터 배워야겠군. 칠채선존의 삼혼육백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내 정체를 들켜서는 안 돼. 난 윤회에 대한 통제권을 새롭게 손에 넣을 것이다!”
그 청년을 본 순간 한제의 표정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충격이 드러났다. 이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천도!”
한제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지금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여태까지 찾고 있던 천도가 다름 아닌 천운자였다니!
얼굴 가죽을 움직여 미소를 지으려 하는 청년을 본 한제의 마음에는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이 파도는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아 한제는 마치 성난 바다 한가운데의 조각배처럼 그 안에서 끊임없이 휩쓸렸다.
그의 시선 아래 청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적막한 우주를 향해 돌아서더니 점차 멀어져갔다. 그 모습이 시야 속에서 완전히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도 한제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그 무렵, 한제 분신의 창백한 얼굴에는 푸른 핏줄이 보일 듯 말 듯 언뜻언뜻 나타났다. 그런 그의 주위로 수많은 천운자 분신의 혼들이 마치 연기처럼 달려들어 체내로 뚫고 들어가 한제 분신의 몸을 점령하려 했다.
줄기줄기 혼과의 융합이 이어지는 와중, 천운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한제 분신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대체 뭘 믿고 나와 대결을 하겠다고 한 것이냐? 나는 이제 너의 몸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다. 한데 네 본체는 내 본체를 찾았느냐?”
소하와 곤허, 두 성역의 1천 개가 넘는 천운자의 혼은 이미 한제의 체내로 들어선 상태였다.
저 멀리 나천과 운해성역의 혼들 또한 끊임없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같은 시각, 천운자의 윤회에 잠긴 한제 본체의 시야가 흔들리더니 다음 순간 천운자가 첫 번째 각성을 맞은 화면이 떠올랐다.
흐릿해졌던 우주가 붕괴해 끝내 사라지고 새롭게 나타난 것은 거대한 문이었다. 우주를 채울 듯 거대한 문 앞에 선 한제는 마치 자신이 한 마리 개미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천역주에서 나타났던 문과는 달리 이 거대한 문에서는 어떠한 위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우주와 한 몸이 된 것처럼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 한제는 알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는 콰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뒤이어 문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력한 한 줄기 힘이 안쪽에서부터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르 진동했다.
콰쾅!
진동하던 문에 곧 한 줄기 균열이 나타났다. 이어서 쩌적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균열은 금방이라도 그 문을 두 동강으로 갈라버릴 것처럼 끝도 없이 뻗어 나갔다.
요란한 소리가 점점 격렬해지던 중, 문은 순식간에 몇 조각으로 완전히 갈라져 흩어졌다.
그렇게 갈라진 조각들은 폭발의 충격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하나는 우주를 관통해 후에 곤허라 불리게 된 성역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폭발해 더 작고 미세한 조각으로 흩어지면서 우주에 녹아들었다.
흩어진 문 조각들은 그렇게 이 성역에 녹아든 채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계외 사성종의 수련자 한 무리가 특수한 방법을 이용해 이곳에 이르렀다.
이들은 어느 수련성 하나를 찾아 이곳으로 가져온 뒤 이 성역의 불안정함과 수많은 균열을 가리고 그것들과 수련성을 하나로 연결했다.
허나 이 수련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 떠나갔고 이 수련성과 연결된 공간의 균열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수련성 안에서 머물던, 천부적 자질이 뛰어난 수련자들이 이것들을 발견하고는 그 안쪽 공간을 역외 전장이라 이름 붙였다.
한편, 거대한 문이 붕괴한 순간, 문 안쪽에서는 거대한 충격이 폭발했다. 그리고 공처럼 뭉친 안개가 꿈틀거리면서 부서진 문 안에서 튀어나왔다.
안개 안으로 흐릿한 사람의 인영이 있었다. 비록 그 인영의 모습을 또렷하게 살필 수는 없었지만 그가 안개 안에서 외치는 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천도! 네가 천도를 하나 얻었구나! 젠장할! 이 몸은 인정할 수 없다!”
고함은 끝으로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뒤이어 안개 속에서 하늘을 뒤흔들 듯 요란한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안개는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어마어마한 힘을 발산했고 그로 인해 뭉쳐 있던 안개는 마구 흔들리다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안개는 크고 작은 두 덩이로 분리됐다. 고함을 내지르던 인영을 감싼 큰 덩어리는 저 멀리 사라져 버렸고 작은 덩어리는 반대편으로 휙 날아갔다.
작은 안개 덩어리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꿈틀대며 수축했다. 덕분에 한제는 그 안개 안에 오래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반원의 조각 하나가 있음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 안개 덩어리의 핵심인 것 같았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갈수록 작아지던 작은 안개 덩어리는 결국 완전히 흩어져 사라지면서 반원의 조각에 완전히 응집됐다. 그리고 무색의 빛줄기가 되어 어느 수련성으로 날아들었다.
생명체 하나 없이 그저 민둥산 하나만 덩그러니 있던 수련성에 유성처럼 날아든 반원의 조각이 쾅 하고 떨어지자 민둥산은 크게 진동하다가 무너져 내렸다.
반원 모양의 조각은 무너져 내린 산을 관통해 수련성 깊은 곳에 박힌 뒤에야 겨우 멈추었다.
‘저 반원은…? 분명 반 토막 난 나침반의 일부야!’
천운자의 본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수련성에는 여전히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생겨나지 않았지만 깊숙이 박힌 반 토막 난 나침반에서 안개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줄기줄기 발산된 안개는 한데 응집해 흐릿한 인영을 형성했다. 점차 또렷해져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두 눈을 감은 채 나침반 위에 둥둥 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지능을 얻었다. 주인님에 의해 소환되어 그 선인을 삼킨 것이 기억난다. 그 선인은 신식을 자폭시켜 흡수를 중단시키고는 나와 분리됐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청년의 눈이 점점 멍하게 변해가다가 감겼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잠시 후, 돌연 번쩍 뜨인 그의 두 눈이 기이한 빛으로 반짝였다.
“나는 천도다. 난 본디 지능을 가질 수 없지만 그 선인이 신식을 자폭시켰을 때 무언가를 흡수했어. 그자의 신식 일부를 흡수하면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거야!”
청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중얼거렸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살핀 한제 역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연도비가 왜 광인이 됐는지, 칠채도인의 환각 속에서 보았던 연도비가 왜 그렇게 거만하게 굴었는지, 게다가 그가 왜 수련자의 부인을 마음에 들어 했는지, 한제가 알고 있는 광인과 연도비가 왜 그리 다른지 알 것 같았다.
“연도비는 본디 선강 대륙에서 제멋대로 굴던 방자한 사람이었다. 정말로 형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신분이 매우 높았을지도 모르지. 내가 만났던, 정신이 나간 그의 언사에 따르면 평생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고야 말았던 사람이었어. 그게 법보든, 사람이든 상관치 않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심지어는 상대의 모든 것을 파괴해서라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한제의 추측은 계속됐다.
“그가 칠채선존의 동부에서 난리를 피운 것도 그 탐욕과 거만함 때문이었을 거야! 허나 결국 그는 천도에 삼켜진 뒤 신식을 자폭시켰다. 그러는 중 그의 탐욕스럽고 방자한 성격 일부가 천도에게 흡수된 거지. 그래서 광인이 연도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거야! 어쨌든 난 당시의 연도비보다 지금의 광인이 훨씬 마음에 드는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반 토막 난 나침반 위에 떠 있는 청년을 응시했다.
청년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 나침반을 바라보았다.
“내 본체는 이 반 토막 난 나침반이구나. 이것의 기운은 누구도 감지할 수 없을 테니 이곳에 두는 편이 가장 안전할 터.”
청년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그 수련성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제는 이 수련성과 그 기운을 머릿속에 단단히 새긴 후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아흔 번이 넘는 천운자의 윤회는 이렇게 끝이 났다.
다시 눈을 뜬 한제의 시야에 남몽도존과 청림, 홍삼자가 들어왔다. 동시에 한제는 소하성역의 분신이 천운자 분신의 혼에 거의 점령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본체를 찾았습니다. 제 분신을 도와 최대한 시간만 벌어주십시오!”
한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 사람에게 포권을 하고는 우주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내딛었다.
“천운자 이 대결은 곧 끝이다!”
한제의 본체는 분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전방의 우주를 찢으며 나아갔다. 두 발을 앞으로 내딛기 직전에 손으로 전방을 갈랐고 그럴 때마다 우주는 콰쾅 소리를 내며 줄기줄기 거대한 균열을 드러냈다.
그 균열로 파고들었다가 나왔을 때는 이미 소하성역을 빠져나온 상태였다.
동부계 전역을 통틀어 이런 방법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제뿐이었다. 공간의 균열 안쪽에는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폭풍과 난기류가 가득해 이를 견뎌낼 수련자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요와 고마조차 그러기는 힘들었다. 강력한 고신은 되어야 몇 차례 겨우 견뎌낼 수 있을 뿐.
공간의 균열을 통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는 고신보다도 강력한 육신을 가진 도고뿐이었다. 그렇기에 도고의 혈맥을 가진 한제만이 가능한 방법이었다.
곤허성역의 우주 한가운데 돌연 거대한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한제가 걸어 나왔다.
한제는 곧장 두 눈을 감고는 도고의 신식으로 사방을 휩쓸었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그는 어딘가로 돌진했다.
소하성역에서 천운자의 윤회 속에 침잠되어 있던 그가 깨어나 지금 이곳에 이르기까지는 단 넷을 세는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편 그 무렵, 소하성역 내 한제의 분신은 천운자 분신의 혼에 거의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혼이 뚫고 들어온 순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의 분신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는 갈등과 고통의 빛이 어려 있었다. 체내로 파고든 천운자 분신의 혼이 심신을 빼앗으려 들었고 윤회일체술 때문에 누구도 한제를 도울 수가 없었다.
한제의 분신은 남색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남몽도존은 침착한 얼굴로 묵묵히 한제의 분신을 바라보았고 청림과 홍삼자는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남몽도존과 달리 두 사람은 무척 긴장한 기색이었다.
“이한제, 네가 나보다 빠를 것 같으냐!”
한제의 분신은 조금 전보다 더욱 힘겨운 듯 바르르 떨렸고 얼굴에서는 푸른 핏줄이 돋아났다. 음산한 목소리까지 흘러나왔고 동시에 썩은 내가 풍겼다.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한제 분신의 오른쪽 눈이 흩어져 사라지더니 어스름한 빛으로 대체됐다. 고개를 돌린 한제는 그 눈으로 남몽도존 등을 바라보며 경멸의 웃음을 흘렸다.
“너희 셋은 너무도 약하구나. 그 정도 수준으로 나를 막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하다. 잘들 봐둬라. 나의 아흔아홉 번째 각성을!”
동시에 한제 분신의 왼쪽 눈동자가 서서히 어스름한 빛으로 번득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한제의 본체는 분신에 일어난 변화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곤허성역 내 한제의 전방으로 수련성이 하나 나타났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생명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사막뿐인, 황량한 수련성이었다. 강이 흐른 흔적은 있으나 진즉 말라 모래로 뒤덮여 있었고 바다 또한 검게 변해 있었다. 또한 수련성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안개로 덮인 상태였다. 독을 품은 안개라 일반인이 흡수한다면 곧장 온몸이 썩어 죽게 될 것이다.
영기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어떤 수련자도 찾지 않았다. 심지어 독을 수련하는 수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련자들에게는 안개의 독성이 별것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안개에서 풍기는 시체 썩는 냄새는 너무도 지독했다.
이곳의 모든 것은 방금 전 한제가 천운자의 윤회 속에서 보았던 수련성들과 달랐지만 기운만큼은 공통점이 있었다.
이 기운은 수련성의 혼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당시의 혼은 갓 태어난 상태였고 지금 이 수련성의 혼은 죽음 직전에 이르러 있었지만 한제는 저 수련성이 바로 자신이 찾던 곳임을 확신했다.
한제는 눈 깜짝할 사이 사막이 된 그 수련성 대지 위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황량한 수련성의 안개가 광풍에 사방으로 휩쓸려 나갔다. 그 사이로 면사가 벌어지듯 수련성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검은 바다의 상공으로 향했다. 바다는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곳에서는 악취가 더욱 짙어졌다.
한제는 그 냄새에도 아랑곳 않고 곧장 검은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콰쾅!
검은 안개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이 회오리는 안쪽으로 끊임없이 뻗어 나가면서 눈 깜짝할 사이 해저에 닿았다. 그러자 해저 깊은 곳의 두껍고 검은 진흙이 드러났다. 단 한 번도 하늘 아래 드러난 적 없는 것만 같은 진흙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 아래 꽁꽁 숨겨져 있던 대지를 내보였다.
그 대지는 평탄하지 않았다. 곳곳에 야트막한 민둥산이 가득했다.
“여기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고 그는 그대로 해저 대지를 향해 돌진했다.
바다 밑 저 멀리, 오래 전 나타난 동굴이 하나 보였다. 동굴 안의 지면은 온통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오랜 세월 쌓여온 이 갈색 먼지 아래로는 반 토막 난 나침반이 묻혀 있었다.
휘익!
가벼운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흩어버리자 그 나침반의 한 귀퉁이가 드러났다. 동시에 강력해 보이는 손바닥 하나가 나침반의 귀퉁이를 움켜쥐어 들어 올렸다.
나침반을 바라보는 한제의 눈이 밝게 번득였다.
“누가 더 빨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