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25
“세 분 선배님들, 저는 수련자의 분신을 새롭게 응집시켜야 하기에 선배님들과 함께 선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먼저 돌아가셔서, 청수 사형에게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해주십시오. 제가 돌아가면 청수 사형의 도움이 필요해질 겁니다.”
세 사람을 향해 포권을 한 한제는 더욱 피로해진 얼굴로 지하마수의 등에 탄 채 멀어져갔다.
지하마수의 두 눈은 무정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연도비를 삼켰을 당시 나타났던 것처럼 무시무시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지하마수가 있는 한, 이 동부계 안에서 한제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제야 세 번째 주혼을 두고 싸울 자격을 얻은 것이다.
한제는 피곤한 몸으로 지하마수의 등에 앉았다. 지하마수는 잔뜩 웅크린 상태라 폭이 1만 척도 채 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가르며 나아가는 녀석의 모습을 목격한 자들은 누구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는 지하마수의 거대한 몸과 냉혹하고도 무정한 두 눈빛 때문이었다. 삶과 죽음, 윤회, 세월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한 무심함에 뿌리를 둔 무정함이 드러난 눈빛이었다.
지하마수에게 이 세상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했다. 녀석은 천도이자 이 동부계 내의 진정한 신이었다. 수련자와 흉수를 포함한 이곳의 모든 것은 녀석으로부터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한제 때문이기도 했다. 한제는 침착하고 덤덤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의 기운은 선신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도고의 혈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광인이 가진 선인의 혈맥에 비견될 만큼 고귀했다. 때문에 한제는 동부계에서 태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선강 대륙 사람들마저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고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
지하마수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이동했다. 어쩌면 녀석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움직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하마수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디라도 단번에 이를 수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은 녀석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본원을 새로 응집하다
한제는 가만히 지하마수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천운자와 마주했던 장면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 녀석이 천도의 일부분일 줄이야. 천운자 역시 천도의 일부분이었고⋯⋯. 과연 그가 천운을 신봉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그가 믿었던 천운은 사실 그 자신이었던 셈이니까.”
한제는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지하마수를 내려다보았다.
“칠채선존이 당시 태고 선경에서 얻었다던 그 파편은 저물대와 같은 것이었어. 그 안에서 천도와⋯⋯ 천역주 역시 그가 발견한 것이겠지. 그러니 그 나침반이 존재하는 걸 테고⋯⋯. 모두가 천도를 찾고 있다. 칠채도인과 전가 노인 등이 세 번째 주혼을 찾는 이유는 그것과 융합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천도에 대한 계획 때문이기도 하겠지. 물론 칠채선존이 얻었던 저물대 파편을 얻기 위함이기도 할 거야.”
한제는 마치 지하마수에게 설명을 하듯 혼잣말을 이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공교롭게도 난 천도의 주인이 됐어. 선강 대륙에서는 어떠할지 몰라도 이 동부계에서는 누구도 나에게서 천도를 빼앗아갈 수 없다. 이 천도는 이제 완전해졌어. 지하마수는 당시 연도비를 삼키기까지 했으니 이제 누구든 나를 건드렸다가는 천도에 삼켜지게 될 것이다!”
한제의 눈이 자신감으로 당당하고도 강렬하게 번득였다.
한제는 신식도 펼치지 않은 채 지하마수를 타고 마음대로 우주를 휘젓고 돌아다녔고 두 눈을 감고 결인을 그리더니 두 손을 양 무릎에 얹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감았던 눈을 번쩍 뜬 그는 혀끝을 물어 한 움큼의 피를 뱉어냈다.
눈앞에 떠오른 붉은 피는 꿈틀거리며 지하마수와 속도를 맞춰 이동했다. 붉은 빛을 번득이는 그것은 마치 끓어오르는 듯했고 짙은 향을 발산했다.
“분신이 흩어져 사라졌으니 새롭게 응집해야겠군. 이 분신은 내 피를 근간으로 하여 대도를 걷게 될 것이다!”
한제는 중얼거리며 전방에 뜬 피를 가리켰다. 그러자 피는 전보다 더 빠르게 꿈틀거리다가 눈 깜짝할 사이 확장되면서 천천히 사람 형태를 갖추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붉은 핏빛이라 마치 혈인 같았다.
“내 피에는 도고의 힘이 깃들어 있다. 분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 도고의 힘을 뽑아내야 하지. 허나 어렵지 않아!”
한제가 눈을 번득이자 미간에서 반점들이 나타나 회전하면서 흡입력을 발산했다. 이 흡입력에 감싸인 혈인은 왜곡되면서 연기처럼 나선으로 피어올라 반점에 흡수됐다.
모든 작업은 빠르게 진행돼 1각여 만에 혈인이 품고 있던 도고의 힘은 모조리 추출됐다. 남은 피에는 도고의 기운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도고의 기운이 분리됨에 따라 혈인은 번득이며 왜곡됐고 붉은 빛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한제의 눈앞에 그와 똑같은 모습의 분신이 나타났다.
이 분신은 갓 태어난 생명과도 같았다. 겉모습은 성인이었지만 혼을 가지지 못한 껍데기일 뿐이었다.
“혼, 응집!”
한제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려 자신의 혼을 일부 분리해냈다. 분리된 혼은 칠규를 통해 흘러나와 새로 형성된 분신에 녹아들었다. 분신이 혼과 완벽하게 융합하자 한제는 자신과 분신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아졌음을 느꼈다.
모든 작업을 마친 한제는 한층 피곤한 기색으로 잠들 듯 눈을 감았다.
본체가 눈을 감은 순간, 방금 생겨난 분신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고개를 숙여 새롭게 응집된 자신의 몸을 살핀 분신은 침착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우주를 가리켰다.
“흩어져 사라졌던 화염의 본원이여, 돌아오라!”
그 말에 지하마수를 중심으로 드넓은 우주 사방에서 불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아진 불씨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불바다가 됐다.
고리 형태의 불바다가 주위에서 회전했고 사방에서는 계속해서 불씨들이 모여들었다. 드넓은 바다가 휘몰아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우주에 나타난 불바다는 한제의 왼쪽 눈에 모조리 흡수됐다.
우주를 채운 불바다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 한제의 왼쪽 눈에는 화염의 본원 문양이 번득였다.
“흩어져 사라졌던 천둥번개의 본원이여, 돌아오라!”
이어서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우주가 진동했고 불바다가 사라진 곳에 층층의 파문이 일었다. 이 파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저 멀리서 먹먹한 천둥소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곧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뒤덮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줄기줄기 번개가 마치 천벌이 강림할 때처럼 나타나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모든 번개는 한제의 오른쪽 눈에 응집됐고 줄기줄기 번개가 응집될 때마다 한 차례 천둥도 함께 융합됐다. 한제의 주위에 흐르는 둥근 형태의 전광은 마치 주인을 다시 만난 기쁨에 환호하는 듯했다.
곧 우주를 채운 모든 번개가 스며들자 한제의 오른쪽 눈에는 불멸의 번개의 낙인이 어렴풋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두 개의 본원이 다시 응집됐다.
“1천 년간 몽도에서 깨달은 허상의 본원은 이 이한제가 평생에 걸쳐 얻은 경지와 대도 위에 세워진 본원이 흩어져 사라졌다 해도 다시 응집될 수 있다. 허상의 본원 중 가장 먼저 되찾을 것은 삶과 죽음의 본원이다!”
한제는 중얼거리며 두 팔을 양옆으로 뻗었다.
“왼손은 삶이고 오른손은 죽음이니, 세월이 흘러도 도심은 변하지 않는다.”
한제의 왼손에서는 줄기줄기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주위를 맴돌면서 부드러운 하얀 빛을 발했다. 이는 삶의 기운이자 한제가 2천 년의 수련을 거쳐 깨달은 삶과 죽음의 본원 일부였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오른손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어둑한 빛 덩어리를 형성했다. 그 검은 연기에는 부패와 죽음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마치 지옥과 황천 안에서 망혼이라도 건져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흑백의 기운은 피어오른 순간 한제의 팔을 타고 흐르다가 결국 미간에서 응집됐다. 서로 융합하면서 회전하는 두 갈래의 기운은 마치 음양의 문양 같았다.
이렇게 삶과 죽음의 본원을 다시 응집함에 따라 한제 체내의 기운은 증폭됐다.
“다음으로 되찾을 것은 진실과 거짓의 본원이다. 진실과 거짓은 곧 인생이지.”
한제는 잠시 천운자를 떠올렸다. 뒤이어 그의 몸은 허상이 됐다. 특히 두 눈은 우주와 같아져 누구라도 그 눈을 본다면 혼란스러움을 피할 수 없을 법했다.
“눈을 감으면 거짓, 눈을 뜨면 진실.”
한제는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 모든 것은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동부계도 세 번째 주혼도 지하마수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제가 느끼기에 이 안의 모든 것은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다시 눈을 뜨자 진실과 거짓의 본원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지하마수는 소하성역을 벗어나 나천성역에 이른 상태였다.
그 무렵, 한 수련자 무리가 운해성역을 질주하고 있었다. 네 노인을 위수로 수백 명의 무리였는데 이들 주위로 파문이 퍼져 나갔다. 또한 그들에게서는 강력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선두의 네 노인이 내뿜는 기운은 특히 강력했다. 이 네 사람은 알 수 없는 갖가지 신통술을 발휘한 듯 각자의 신식을 하나로 연결한 상태였다.
이때 이 네 사람의 머리 위로 거대한 허상의 호리병이 하나 떠 있었다. 푸른색의 호리병에서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 호리병의 주둥이 안쪽으로는 한 덩어리 푸른 기운이 맴돌았는데 이 기운이 방향을 안내하는 듯했다.
네 명의 노인은 어느 정도 이동할 때마다 멈춰 서서 일제히 호리병을 향해 절을 올리고는 신념을 이용해 그 호리병과 소통을 했다.
이들은 바로 원고 선역에서 나온 4대 장군이었다.
그들이 이끄는 무리 저 뒤로는 도포를 입은 전가 노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그는 이 선인 무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선인들 역시 그의 존재에 대해 조금도 아랑곳 않는 눈치였다.
천운자와 융합한 뒤 천도가 된 지하마수는 자신의 기운과 존재를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다. 이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소하성역에 머물러 있었던 천운자를 그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 동부계 안에서 그의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당시 연도비도 천도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지하마수에게 삼켜졌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하마수가 운해성역에 들어섰음에도 4대 장군은 물론 전가 노인조차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운해성역 전역을 신식으로 뒤덮고 있었음에도 지하마수는 물론 한제도 감지하지 못했다.
한제의 본체는 지하마수의 등 위에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분신은 그 맞은편에서 본원을 새롭게 응집하고 있었다. 본원이 응집됨에 따라 그 흔적을 숨길 수 없었기에 운해성역의 4대 장군과 여러 선인들은 이를 느끼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단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신식에는 애초에 지하마수가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원고 선역 선인들의 뒤를 따르던 전가 노인의 미간이 구겨졌다.
‘뭔가 이상한데⋯⋯.’
노인이 눈을 번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제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다. 본체는 잠든 상태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고 분신은 사라진 본원을 되찾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의 본원을 응집한 한제의 분신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펼쳤다.
“세 번째 허상의 본원은 원인과 결과⋯⋯. 손을 펼치면 원인, 움켜쥐면 결과.”
한제가 펼쳤던 손을 움켜쥔 순간, 원인과 결과의 본원이 응집돼 체내에 녹아들었다.
이어서 살육의 본원과 금제의 본원 역시 다시 응집돼 한제의 체내에서는 다시 일곱 개의 본원이 맴돌았다.
그때, 분신 안에서 곧 한제의 원신이 허상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한제의 분신은 무너져 내리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때 분신의 체내에는 천운자 분신의 혼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한제의 분신이 완벽하게 회복된 순간, 본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서로 마주 보았다. 잠시 후, 한제의 분신은 본체와 하나로 융합했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오행성을 찾아봐야겠군! 그곳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동부계에 남은 마지막 세력 또한 그곳에 숨어 있지.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을 터. 천운자처럼 말이야. 끝내 어두운 곳에 숨어 있겠다면 내가 직접 꺼내주지! 그리고 똑똑히 알려주겠다. 이 동부계는 너희 같은 외부인들의 것이 아님을. 어쨌든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 세 번째 주혼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
한제가 보기에 천운자는 하나의 못이었다. 반드시 뽑아내야 하는, 그러지 않으면 후에 일련의 변수가 생기고 이로 인해 치명적인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못.
천운자라는 변수가 제거된 지금 그에게 두 번째 못이라 할 수 있는 존재는 선강 대륙 귀일종에서 온 외부인들이었다. 한제는 그들을 어두운 곳에서 끌어내 햇빛 아래 드러나게 할 생각이었다.
이것 역시 대결이자 시합이었다. 누가 먼저 세 번째 주혼을 찾느냐 하는…
한제가 고민하는 사이 지하마수는 운해성역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제가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무시무시한 두 눈을 감더니 곤허성역으로 방향을 바꿨다.
한데 바로 그때, 한제는 돌연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저 멀리에서 1백 갈래가 넘는 빛이 어렴풋이 나타나더니 쉭 소리와 함께 한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선두의 네 사람 머리 위로는 마치 폭풍이 된 듯한 푸른 기운으로 뒤덮인 거대한 호리병이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그 빛들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금의 긴장하거나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천도의 진짜 모습
다가오던 빛줄기들이 한제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추었다.
“이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