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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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성 귀일종의 탑. 검은 도포의 노인과 중년 여인을 비롯한 네 사람은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거대한 거울 속, 화염으로 뒤덮인 한제의 모습이 보였다.
“오행 중 화령의 힘은 대지토진과 비슷하지. 허나 저 화염에는 수련자의 육신과 원신을 불살라버릴 힘이 있어. 이한제 저자가 토령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해도 화진(火陣)에서는 절대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을 거야!”
한제가 화염의 본원을 가졌음을 꿈에도 몰랐던 검은 도포의 노인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일행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혼잣말 같기도 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오행성 사람들은 일찍이 이 수련성을 봉쇄한 채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으니 한제의 정체와 수준에 대해서도 우연히 이곳에 들어온 계외 수련자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한제의 본원에 대한 정보까지는 듣지 못한 것이다.
“맞아. 화진은 토령보다 맹렬하고 포악하지. 화진에 들어온 이상 저자는 중상을 피할 수 없을 거야!”
중년 여인은 악에 받친 눈빛으로 내뱉었다.
다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깊은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이성을 잃지 않은 그들은 이제 더는 어떤 것도 함부로 단정 짓지 못했다.
화염의 주인
한제가 하늘을 뒤덮을 듯 이글거리는 화염에 들어선 순간, 사방을 뒤덮은 불바다에서는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쾅 소리와 함께 휘몰아친 불바다는 거친 파도를 일으키듯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바다에서는 곧 화염으로 이루어진 아홉 마리의 기린 허상이 나타났다. 키가 수천 척에 달하는 이 기린들은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고 발치에는 여러 개의 화염 공이 떠 있었다.
아홉 마리의 기린은 험악한 얼굴로 포효를 내지르며 돌진해왔다. 아홉 마리 기린 뒤로는 불바다의 거센 파도도 몰아치고 있었다.
오행성 수련자들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이때 탑 밖의 하늘에는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 나타나 있었고 그 안에는 오행진에 진입한 한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한제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한데 그때, 검은 도포의 노인은 또다시 표정이 급변했다. 곁에서 중년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탑 밖, 하늘의 회오리 안에 비친 광경을 지켜보던 귀일종 수련자들 역시 충격 어린 탄성을 질렀다.
화진 안,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다. 그가 냉랭한 눈으로 바라보자 사방에서 달려들던 아홉 마리의 기린들은 1천 척 떨어진 곳에서 일제히 멈춰 섰다. 그러더니 이내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 기린이 아니라 고양이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꿇어앉은 녀석들의 얼굴에서는 주인을 만난 듯 기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심지어 녀석들을 띠라오던 화염 역시 한제의 곁을 휙 하고 지나가며 맴돌았다.
이어서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화진은 콰쾅 하는 우렁찬 소리를 냈다.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화염이 하나로 응집하더니 한제 앞에 모여들어 키가 수만 척에 달하는 거인을 형성했다.
화염 갑주를 입고 화염 외투를 두른 거인의 거대한 몸에서는 강력한 힘이 물씬 풍겼다. 심지어 머리카락도 올올이 화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화염 거인은 곧장 한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가슴팍에 얹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열광적인 숭배심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화, 화령이 저자에게 무릎을 꿇다니!”
검은 도포의 노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중년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이제 거울 속 한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짙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탑 밖으로 나온 모든 귀일종 수련자들 역시 멍하니 회오리 속의 장면을 바라보았다.
한제는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신통술 하나 발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토령을 거두었고 화령을 무릎 꿇렸다. 이 충격적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귀일종 수련자들은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꼈다.
만표와 맞은편의 중년 사내도 침묵했다. 만표의 눈꺼풀은 가볍게 꿈틀거렸고 표정도 약간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각자의 눈에 떠오른 두려움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둘은 아니었다.
“화염의 본원이야!”
만표가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절정에 이르러 있어. 세상 모든 화염의 주인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러니 화령이 인간 형태로 응집하고 무릎까지 꿇은 거야!”
“오행진으로는 저자를 가둘 수 없어.”
“한데 저자 저기서 나올 생각도 없어 보여. 오행의 령을 전부 거두려는 건가!”
만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렇다면 끌어내야지. 그러지 않으면 나머지 세 개의 진도 잃게 될 거야!”
중년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탑 밖을 내다보았다.
“선조의 갑옷!”
탑 꼭대기로부터 아홉 번째 층에서 남색 빛이 번쩍 하고 나타나더니 남색 갑옷이 되어 물결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며 사내의 몸을 감쌌다.
“다음은 수진(水陣)이야. 난 그곳에서 저자를 곧장 구전으로 보낼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중년 사내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물이 소환돼 한 자루 거대한 창으로 변하더니 사내의 손에 단단히 쥐어졌다.
“자네는 나를 도와 진을 압박하게 해. 난 먼저 가보겠네!”
말을 마친 중년 사내는 창을 든 채 연기가 되어 탑 안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한쪽 무릎을 꿇은 화염 거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거인은 두 손을 내려 그 손에 올라선 한제를 조심스레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한제는 거리낌 없이 거인의 머리 위에 서더니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캬오오오!”
거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제가 가리킨 곳을 향해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듯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사방에 꿇어앉아 있던 아홉 마리 기린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험상궂은 표정으로 함께 포효했다.
이 광경에 귀일종 수련자들은 머리가 저릿해지고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의 손끝이 회오리 너머 자신들을 똑바로 가리켰고 거인과 기린들의 포효도 자신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포효에 탑 밖으로 나온 수백 명의 수련자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에서 큰 충격을 읽을 수 있었다. 개중에는 우렁찬 포효에 피를 토하며 먼 곳으로 물러나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는 자들도 있었다.
화염 거인이 한 걸음 내딛는 동안 한제가 전방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화진 안의 세상이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다.
붕괴의 순간, 회오리 안의 화면이 홱 변했다. 뒤를 이어 화면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끝없는 바다였다.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바다에서는 성난 파도가 요란하게 철썩였다. 하늘은 매우 어두웠고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으며, 끝없는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이 드넓은 바다 위, 남색 갑옷을 입고 같은 색의 창을 쥔 채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준수한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바닷물에서 솟아오른 그의 발아래로 겹겹의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오선수장(五仙水將)이다! 폐관수련 중인 우리 귀일종의 수장님이야!”
“완전한 오행수령체(五行水靈體)인 수장님이 수진에 자리하시면 그 자체로 수진의 령이 되시지. 저분이 있는 한 수진의 위력은 배가 될 터! 저 비천한 침입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중년 사내의 등장에 귀일종 수련자들은 힘을 얻은 듯 격앙됐다.
“귀일종 동문들이여, 우리에게 도전하려는 자가 있네. 우리는 예를 갖춰 대했건만 은혜도 모르고 억지로 쳐들어오려 했을 뿐만 아니라 오행 중 두 개의 령을 앗아가기까지 했지! 저런 침입자를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는가!”
한 정열기 중기 노인이 우렁차게 외쳤다.
“저자의 이름은 이한제! 소문에 따르면 오행종에서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저자의 발이 닿는 곳마다 생명은 도탄에 빠지고 살아남은 이가 없다더군!”
그때 다른 한 수련자가 그 말을 받았다.
“심지어 자신의 고향 수련성에서는 한 수련자 가문을 모두 죽여 피의 강이 흐르게 했다지?”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섰다.
“또한 우리 귀일종의 존경스런 만표 장로께서는 당시 저자가 일반인들을 학살하고 여인들을 희롱하던 것을 저지하셨다고 하네. 장로님이 아량을 베풀어 목숨만은 살려줬건만 저자는 감사히 여기기는커녕 감히 우리 오행성에 쳐들어오려 드는군! 만표 장로님을 찾아왔다는 건 핑계일 뿐, 우리 귀일종을 파멸하려는 수작 아니겠나!”
“저런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자를 우리 오행성에 들일 수는 없지! 저자를 죽여 악행을 멈추게 해야 해! 비록 우리 수준은 저자에 비할 바 못 되나 힘을 합친다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걸세!”
한 번 선동당한 수련자들은 점점 들끓기 시작했고 결국 한제를 모르던 이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게 됐다. 이에 그들은 회오리 너머로 비친 한제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물론 한제는 이들의 말을 듣지 못했고 들었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화염 거인의 머리 위에 선 채 화진에서 나온 한제의 눈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화염과 물은 오행 중 상극으로 공존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비를 뒤집어쓴 아홉 기린은 낮게 울부짖었다.
한제는 저 앞에서 포효하며 몰아치는 파도 위에 서서 한 손에는 창을 꼬나들고 자신을 냉랭하게 노려보는 검은 머리의 중년 사내를 마주보았다.
“이한제!”
눈이 마주친 순간, 중년 사내가 돌연 버럭 외치며 훌쩍 솟구쳐 올랐다. 그의 발아래에서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높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파도의 벽이 생겨나 사방에서 한제를 가둬버렸다. 동시에 흑발의 중년 사내는 고함을 내지르며 파도에 갇힌 한제를 향해 창을 힘껏 내던졌다.
쐐액!
이어서 그는 남색 빛줄기가 되어 맹렬하게 돌진하는 창을 뒤따랐다. 뒤에서는 밀집된 먹구름이 폭우를 뿌려댔다. 수많은 빗방울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다가 한 자루 창이 되어 사내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제 뒤쪽의 아홉 마리 기린은 낮게 울부짖으며 훌쩍 날아올라 창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순식간에 파도의 벽에 잠겨 버렸다. 심지어 한제와 화염 거인 역시 파도의 벽이 중년 사내의 창에 관통되어 무너져 내림에 따라 함께 침몰했다.
한제의 몸이 바닷물에 완전히 잠긴 순간, 중년 사내의 뒤편에서 빗물로 응집된 창이 바닷물에 박혔다.
콰쾅!
거센 파도가 마구 몰아쳤고 이제 한제와 화염 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그토록 오만하게 군 것이냐? 이곳에서는 내가 곧 수령이다. 오행진 안에서는 내가 곧 선신이야! 네 화염의 본원으로도 어쩔 수 없다!”
중년 사내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오행성 탑 밖의 귀일종 수련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수장의 공격에 어느 누가 대항할 수 있겠는가! 주제를 모르는 저 오만한 자의 화염도 수장 앞에서는 꺼질 수밖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사이 하늘의 회오리 안에 비친 중년 사내는 고고한 표정으로 손에 쥔 창을 뻗어 바다를 가리키며 낮게 호령했다.
“이한제,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안다. 자비는 한 번뿐이다. 썩 꺼져라!”
그의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 바다 깊은 곳에서 돌연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바닷물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장벽을 이루어 수장의 시선을 가렸다.
수장은 곧장 몸을 날려 아래쪽으로 향하려 했다.
허나 바로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날 찾지 않았던가? 나는 여기 있건만 어디를 가려는 게냐?”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든 순간, 수장은 표정이 급변해 몸을 홱 돌렸다.
바닷물의 장벽에서 걸어 나온 한제는 오른손으로 수장의 몸을 가볍게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본원의 힘과 도고의 파멸적인 기운이 수장의 체내로 파고들어 오장을 무너뜨리고 온몸의 뼈를 분질렀다.
“크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