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34
“마음부터 안정시킬 수 없으니 몸부터 안정시켜나가고 있군. 몸은 형태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시키기 쉽지. 다음으로는 혼, 또 그다음으로는 그 혼을 근원으로 삼는 심신이 차례대로 안정되는 법. 몸과 혼, 심신이 차례로 침착해지면 뒤를 이어 마음도 자연히 안정을 찾게 되지. 이 짧은 시간에 그런 것까지 깨닫다니, 범상치 않군. 어떻게든 녀석을 내 제자로 삼겠다!”
현라 대천존이 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흥분하고 있을 때, 그와 달리 한제는 완전히 침착해진 상태였다. 그의 시야에 비친 오행성은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느려진 상태로 그 모습은 이제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행성은 완전히 정지했다.
이제 한제는 원하기만 한다면 곧장 구전 심륜에서 빠져나가 오행성에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제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껏 수련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큰 것을 얻으려면 큰 고생이 뒤따른다는 것이었다. 방금 큰 위기를 넘긴 그가 이 상황을 그냥 넘길 리 없었다.
“난 이 진의 이름은 모르나 아홉을 셀 때마다 한 번씩 총 아홉 번 변화를 일으켰다. 변화할 때마다 속도는 더욱 빨라졌지. 그렇다면 구변심전(九變心轉)이라 불러도 문제없겠지. 한데 너희 오행성은 어떻게 이 진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멈출 수 있는 건지 알아야겠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손을 들어 오행성을 가리켰고 이어서 원을 하나 그렸다.
“마음이 움직이면 수련성도 움직인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거꾸로 움직일 경우 이 수련성 역시 거꾸로 움직이겠지. 이 진으로 나를 가두려 한 너희들에게 이번에는 내가 한 수 보여주도록 하겠다!”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러 여러 개의 원을 연달아 그렸다. 그러자 회전을 멈췄던 오행성이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방향은 지금까지의 반대였다.
이 모습을 본 현라 대천존은 홀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과연 패기가 대단하군. 좋아, 그 정도는 돼야지!”
하늘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고 구름과 바람이 나가떨어졌다. 더 이상 파랗지도 빛나지도 않는 하늘은 오행성 밖의 우주로 대체된 상태였다.
이렇게 우주로 대체된 하늘에서 귀일종 수련자들은 거대한 하나의 수련성을 보게 됐다. 다름 아닌 오행성이었다. 그러니 이들 입장에서는 오행성에 서서 오행성을 보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이 변화에 귀일종 모든 수련자는 주체할 수 없이 심신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금색 장삼의 노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표정이 급변했다.
“안 돼!”
찰나의 순간, 귀일종 수련자들의 시야에 들어온 우주 속 오행성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행성은 점점 빠르게 회전했다. 이에 방금 전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은 매우 불안해져 있었고 그 때문에 단번에 구전 심륜에 침잠되고 말았다.
“크악!”
수많은 수련자가 피를 토했다. 끔찍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두 번째 전이 곧장 찾아왔다.
만표 역시 피를 토해내며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인해 구겨져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세상 앞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그로서는 그저 이 현기증을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지만 오행성의 회전은 더욱 빨라졌다.
구전 심륜을 경험했을 당시의 두려움이 다시금 그의 심신을 장악했다. 만표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금색 장삼의 노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그는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리며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했지만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끔찍한 비명과 살려달라는 애원에 마음은 진동했다.
그의 눈에 오행성은 이미 회오리가 되어 있었다. 극심한 현기증이 온몸을 휘감았고 초조함과 광기가 피어올랐다. 심신은 통제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마구 소모됐다.
그때 구전 심륜이 네 번째 전에 이르렀다.
그 순간, 만표와 금색 장삼의 노인을 제외한 모든 수련자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더욱이 의식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표정에 드러난 고통의 빛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체내에서는 심신이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려 육신이 급속도로 말라갔다. 심지어 수명까지도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힘겹게 버텨오던 만표도 눈앞이 새카매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제 금색 장삼의 노인만이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푸른 핏줄이 울룩불룩 돋아난 얼굴로 광기 어린 빛이 번득이는 눈을 번득이며 낮게 포효했다. 거꾸로 회전하고 있는 오행성은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다섯 번째 전, 여섯 번째 전을 지나 일곱 번째 전에 진입했을 때, 노인은 또 한 번 피를 토해냈다. 그의 얼굴은 비쩍 말라붙을 조짐을 보였다.
그때였다.
탑의 꼭대기에서부터 일곱 번째, 여섯 번째, 다섯 번째 층에서 낮은 포효가 울리는가 싶더니 동시에 세 갈래의 빛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빛을 그리며 나타난 세 사람은 동시에 소매를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메아리가 이어졌다. 하늘은 무너져 내렸고 반대로 회전하던 허상의 오행성 역시 무너져 내리면서 왜곡된 파편이 되어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 파편 너머로 오행성 상공에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좀 전의 구전 심륜은 탑 밖으로 나와 있던 모든 귀일종 수련자들을 말려 죽게 했을 것이다.
한제는 덤덤하게 대지를 한 번 훑어보았다.
수백 명의 수련자와 만표, 금색 장삼의 노인을 지난 그의 시선이 저 멀리서 어두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중년 사내에게로 향했다. 중년의 겉모습과 달리 온몸으로 풍기는 케케묵은 기운과 기이한 옷차림으로 미루어 이들이 아주 오랜 세월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은 동부계 출신이 아니라 선강 대륙에서 온 이들이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소매를 휘둘러 포권을 했다.
“동부계 이한제, 선강 대륙에서 온 여러 수련자에게 인사 올리겠네! 현지인이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접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다들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불편함은 없었는지 모르겠군!”
한제의 말에 금색 장삼의 노인은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피까지 왈칵 쏟아냈다.
세 중년 수련자는 비록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나 두 눈동자만큼은 바짝 졸아든 상태였다.
한편 한제는 인사를 올리자마자 앞으로 한 발 나서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동시에 미간과 두 눈에서는 고신의 고요, 고마의 반점이 번득였고 등 뒤로는 거대한 허상의 도고가 나타났다. 하늘을 떠받칠 듯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고는 고개를 맹렬히 쳐들더니 우람한 주먹을 쥐어 한제와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도고 일맥!”
중년의 수련자 중 한 명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나타났던 두 수련자와 함께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돌진하던 세 사내 중 한 사람은 아홉 색채를 번득이는 한 마리의 용이 되어 우렁차게 포효했다. 또 한 사람은 온몸으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더니 정수리에 거대한 귀신을 형성시켰다. 마지막 한 사람은 온몸을 오행으로 에워쌌다. 금, 목, 수, 화, 토가 각자 번득였고 오행의 허상이 사내의 주위에서 응집됐다. 이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다.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한편, 주먹을 쥔 채 곧장 탑을 향해 나아가던 한제는 오른팔을 뒤로 크게 당겼다. 그때 한제가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세 사람이 달려들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했고 당황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 사람의 수준은 상당했지만 전혀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다가온 순간 한제는 왼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거대한 도고의 허상이 곧장 왼손을 쳐들며 거대한 몸으로 한제를 감쌌다.
이때, 세 사람이 발휘한 신통술이 달려들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제를 보호하던 도고의 허상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꽈르릉!
도고의 힘이 담긴 충격이 퍼져 나가자 하늘과 땅이 진동했고 세 중년 사내 역시 바르르 떨면서 뒤로 수천 척이나 밀려났다.
허나 한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오히려 이 충격을 이용해 앞으로 돌진한 그는 오행성의 탑 꼭대기에 이르더니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하앗!”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오행성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순간, 오행성에 숨겨진 모든 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천운자 다음의 두 번째 못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대체 얼마나 예리한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제대로 계획을 세우고 세 번째 주혼을 찾으러 나설 수 있을 터였다.
“숨어 있지 말고 나타나라!”
저 멀리 나가떨어졌던 세 명의 중년 사내는 표정이 급변했지만 도고 허상의 파괴로 인한 충격 탓에 다가오지는 못했다.
한제의 계획대로였다.
그때, 돌연 탑의 꼭대기로부터 네 번째 층에서 강력한 기운이 한 줄기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흑의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일견 평범해 보였지만 두 눈은 기이한 빛으로 번득였다.
그는 놀랍게도 당시 한제가 마주한 천벌의 균열에서 걸어 나왔던 청년이었다. 내내 소하성역에서 무언가를 찾던 그는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채 오행성으로 돌아와 폐관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한제를 알고 있었고 한제 역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너구나!”
청년이 탑 밖으로 걸어 나온 순간 한제는 단박에 상대를 알아보았다. 그는 또한 상대가 원고 선역 안의 어느 고신 조각상 위에서 오래된 거울 하나를 쥐고 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청년은 말없이 한제에게 다가가더니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청년의 뒤로 거대하고 검은 여섯 개의 꽃송이 허상이 나타났다.
이 꽃송이는 요사스럽게 만개한 채 청년의 손짓에 따라 어스름한 빛을 번득였다. 이어서 꽃술 안에서 각각 하얗고 깨끗한 팔이 하나씩 빠져나와 한제의 주먹을 가리켰다.
그 팔들과 한제의 주먹이 닿은 순간…
꽈릉!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의 주먹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상대의 결인에서 발산된 파멸적인 힘을 똑똑히 느꼈다. 이 힘은 체내로 밀려들었고 이에 한제는 뒤로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허나 청년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창백하게 질린 그 역시 체내에서 울리는 펑, 펑 소리를 들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여섯 송이의 꽃도 무너져 내렸다.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한제가 뒤로 밀려나는 와중 그의 오른팔에는 여섯 개의 검은 꽃송이가 나타나 마치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러더니 썩어 들어가면서 진물이 줄줄 흘렀다.
극심한 고통이 심신을 파고들자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뒤로 물러나던 청년의 미간과 두 눈에는 각각 하나씩 반점이 나타나 있었다. 도고의 힘을 모두 발휘해 자신의 힘과 융합한 한제로 인해 생겨난 변화였다.
반점은 곧장 고신과 고요, 고마의 허상으로 변해 청년의 원신과 혼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허나 청년의 표정은 침착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한제의 경계심이 커졌다.
한제는 이 청년의 이름이 운일봉이라는 것, 당시 선강 대륙 귀일종에서도 이름깨나 날리던 사람이라는 것, 핵심제자 중 세 번째로 손꼽히는 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운일봉은 사숙을 따라 동부계에 들어온 사람으로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행운을 경험한 바 있었다.
선강 대륙에 돌아가면 후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한 그는 첫 번째 핵심제자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귀일종의 첫 번째 핵심제자가 되면 선강 대륙 9종 13문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을 터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한제가 오른팔을 흔들자 그의 팔에 새겨진 여섯 송이의 검은 꽃 중 세 송이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이어서 도고 불멸체의 회복력을 발휘해 팔을 무너뜨렸다가 다시 회복시키자 나머지 세 송이도 사라지며 팔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청년도 만만치 않았다.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가슴팍을 몇 번 두드리고는 씨앗처럼 생긴 단약을 하나 삼켰다.
이 검은색 단약은 그의 체내에서 기이한 힘을 폭발시키며 심신에 나타난 세 고족의 허상을 지웠다. 다만 완전히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은 한제보다 다소 길었다.
이 잠깐의 차이는 한제에게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회복된 오른손을 말아 쥐더니 다시 한번 탑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꽈릉!
주먹이 꽂히자 탑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아래층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 층층이 와해됐다.
부연 먼지가 일어나면서 탑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꼭대기의 세 개 층만은 미동도 없었다. 그저 허공에서 밝게 번득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