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38
잠시 후, 녀석은 고개를 홱 쳐들더니 두 눈을 매섭게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렸다.
콰르릉!
요란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4대 장군은 다급하게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전가 노인 역시 두 눈을 번득이며 기대가 담긴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끊임없이 냄새를 맡으며 나아가던 안개 흉수는 폐허가 된 듯한 어느 대륙 근처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그 대륙을 향해 연거푸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을 뒤따라 온 4대 장군은 곧장 그 대륙에 진입해 신식을 펼쳐 온 대륙을 완전히 감싸고는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전가 노인 역시 뒤를 이어 신식으로 주위를 훑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미간을 팩 구겼다. 이 대륙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 생명체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적막했다. 몇몇 흉수들만이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4대 장군은 눈을 번득이며 서로를 돌아보다가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한 줄기 파멸적인 기운을 품은 파문을 일으켜 사방으로 퍼뜨렸다.
파문은 폭풍이 되어 이 대륙을 휩쓸었고 그 순간 비참한 비명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폭풍이 확산되면서 이 대륙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생명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잠시 후, 연기 같은 기운들이 대륙 안에서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흉수의 입으로 몰려들었다. 그것을 흡수한 흉수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전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휴, 이곳도 아닌가 보군.”
“허나 선존과 연결된 안개 흉수가 이곳의 냄새를 맡고 혼을 흡수한 것을 보면 세 번째 주혼이 이곳에 잠시라도 머물렀다는 뜻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몇 차례나 세 번째 주혼의 기운을 흡수했으니 곧 진짜 세 번째 주혼을 찾아낼 수 있을 걸세!”
4대 장군은 아쉬움에 혀를 차다가 네 갈래의 긴 빛이 되어 이 죽어버린 대륙을 빠져나가 안개 흉수를 따라 점차 운해성역 가장자리로 향했다. 나천성역으로 향하는 통로 쪽이었다.
전가 노인은 안개 흉수를 바라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세 번째 주혼은 나천성역에 있는 건가! 난 나천성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세 번째 주혼은 지금 사람의 모습일까 아니면 흉수의 모습일까?’
★ ★ ★
나천성역 반대편의 곤허성역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마치 안개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앞에서는 칠채도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손바닥 위의 피 결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오행성을 제외한 곤허성역 안을 거의 다 살핀 상태였다. 허나 이 곤허성역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운해성역의 균열 안에서 발휘한 환각 속의 환각을 통해 곤허성역 쪽으로 날아가는 세 번째 주혼을 보았다.
다만 세 번째 주혼이 곤허성역에 멈췄는지, 아니면 이곳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갔을지는 알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이한제가 환술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칠채도인은 한제에 대한 원한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각의 도움이 없어도 수차례 이어진 계내와 계외의 전쟁으로 응집한 중생의 혈맥만으로도 난 세 번째 주혼을 찾을 수 있다. 곤허성역에는 없으니 소하성역으로 가봐야겠군. 4대 성역 전체를 샅샅이 뒤질 것이다!”
칠채도인은 소하성역 쪽으로 돌진하면서도 시선만큼은 손에 든 피 결정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많은 중생의 혈맥을 품은 이 결정은 동부계 출신이 아닌 존재를 맞닥뜨리면 눈부신 빛을 발할 것이다.
다만 그 영향 범위가 넓지 않은 데다가 딱 한 방울뿐이라 이것을 이용해 찾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했다. 허나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그에게 이 정도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하성역에 이른 칠채도인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탐색을 시작했다. 아마 오래지 않아 이 동부계에 존재하는 가장 큰 비밀이 밝혀질 것이었다.
칠백의 소재
한제 역시 세 번째 주혼을 찾고 있었다.
선계의 산봉우리 위에 가부좌를 튼 그는 신식을 펼쳐 선계를 뒤덮더니 서북쪽 어느 산골짜기 안, 나무 누각에서 청수를 찾았다.
홍접 역시 그곳에 있었다. 두 부녀는 그곳에서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중이었다.
청수는 자신의 딸이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지도하는 중이었다. 똑똑한 홍접은 이미 그 도움으로 적지 않은 것들을 배운 상태였다.
“수련자는 뜻과 마음을 중시해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으며⋯⋯.”
말을 잇던 청수가 문득 눈빛을 굳히더니 고개를 들어 지붕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하고 있거라. 내 잠시 일이 있어 가봐야겠구나.”
말을 마친 그는 곧장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한 줄기 허상이 되어 사라졌다.
홍접은 아버지가 사라진 쪽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고 좌선했다.
그 무렵, 청수는 한제를 만나고 있었다.
“청수 사형, 혼을 하나 찾으려 합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수에게 포권을 했다.
말없이 한제 곁으로 다가온 청수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내 정체를 알고 있지?”
한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칠채계에서 너는 내게 답을 찾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사실 난 이미 답을 찾은 상태였어. 내가 하나의 혼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금껏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을 용서해다오. 난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어!”
청수는 눈을 감고 한제의 앞쪽에 가부좌를 틀었다.
“네가 어떤 방법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너를 돕겠다.”
청수가 말했다.
“제가 아는 것은 그저 사형이 칠백 중 하나라는 것뿐입니다. 다른 여섯이 누구인지는 짐작도 못 하고 있지요. 허나 사형, 걱정 마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세 개의 혼이 칠백을 삼키지는 못할 겁니다! 세 번째 혼을 찾으면 곧장 죽이고 혼을 취해 봉인할 테니까요.”
한제는 자신의 미간을 두드린 뒤 이어서 청수의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귀면기가 나타나 빠르게 확장되더니 거대한 귀신 얼굴로 변해 두 사람의 머리위에 떠올랐다.
흉악하게 생긴 귀신 얼굴은 소리 없이 포효하며 한제와 청수를 향해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한제와 청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쾅 소리를 들었다. 천둥 같은 그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식은 아주 오래 전, 칠채선존이 삼혼칠백으로 갈라지던 그 순간에 이르게 됐다.
당시 칠채도인의 환각 속 환각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이번 안내자는 청수였다.
한제는 귀면기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그 안에 녹여 넣은 뒤 오랜 세월 속에 숨겨진 진상을 쫓기 시작했다.
이 환각 속 하늘은 피처럼 붉었고 대지는 피에 젖은 듯 짙은 갈색이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풍겼다.
한제는 이곳에 이르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눈길 닿는 곳에는 갈가리 찢어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온 대지가 시체로 뒤덮인 상태였다. 시체들의 눈에는 최후의 순간 느낀 두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곳은 일반인 세상의 황궁이었다. 원래는 황금과 옥으로 장식되어 번쩍번쩍했을 공간은 온통 피에 물든 상태였다.
쾅!
멀리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먼지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한제는 저 멀리서 궁전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궁전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오른손으로 황포를 입은 노인을 움켜쥔 채 튀어나왔는데 그의 두 눈에서는 광기 어린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 너희 가문이 우리 가문을 파국에 이르게 했지. 오늘은 이 청수가 그때의 수모를 되갚아 주겠다!”
사내가 손을 휘두르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황포 노인의 온몸은 그대로 터져버렸다. 붉은 옷을 입은 사내의 몸과 얼굴에도 피가 튀었다.
그때, 하늘 끄트머리에서 돌연 수백 갈래의 검광이 나타났다. 각각의 검광을 타고 있는 수백 명의 상고 시대 수련자는 쉭 소리와 함께 황궁 상공에 이르렀다.
붉은 옷의 사내가 고개를 홱 쳐들며 두 눈을 기이한 붉은색으로 번득였다. 그러자 사내의 두 눈에서 붉은 번개가 튀어나와 상공을 휩쓸고 그곳에 이른 수련자들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눈 깜짝할 사이 수백 명의 수련자는 하나같이 몸을 바르르 떨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극의 경계⋯⋯.”
한제가 중얼거렸다. 사방을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사내를 바라보던 그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이건 이중 환각 중 첫 번째 환각이구나. 당시 청수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제는 피에 흠뻑 젖어 진득진득한 땅을 밟으며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피에 젖은 대지와 짙은 피비린내에서 청수의 깊은 원한이 느껴졌다.
“하늘이 날 막고자 한다면 하늘을 파괴할 것이고 선인이 날 막고자 한다면 선인이라도 죽일 것이다!”
청수는 살기 가득한 얼굴로 이미 시체가 된 수백 명의 수련자를 노려보았다. 그의 몸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육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도록 할 것이다. 살육을 통해 온 세상이 내게 진 빚을 갚게 할 거야!”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청수의 목소리에서 짙은 광기가 느껴졌다.
붉은 옷을 입은 청수의 뒷모습에서 한제는 당시 등씨 가문을 학살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또 외로워 보였으며 고독해 보였다. 오래 기다려온 복수를 하는데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슬픔과 애달픔, 하늘과 땅에 대한, 온 생명에 대한 혐오와 원한만이 느껴졌다.
“사형⋯⋯.”
한제가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몸을 홱 돌린 청수는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만약 한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 터였다.
하지만 한제는 그러지 않았다. 청수가 그러하듯 한제 역시 살육에는 익숙했다. 말하자면 둘은 동류였다. 그들이 그토록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상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제는 청수의 두 눈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그 눈에서 느껴지는 것은 고통과 슬픔, 그리움이었다.
“이것은 환각입니다. 진실이기도 거짓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저희의 목적지는 아니지요. 사형, 앉아보십시오. 우리는 두 번째 환각에 들어가야 합니다.”
한제는 조용히 말하며 청수를 향해 다가갔다.
말없이 한제를 노려보던 청수는 이내 두 눈을 감았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은 결국 피에 젖은 땅으로 녹아들었다.
“앉아보십시오.”
한제는 두 손을 청수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
한참 뒤에야 청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가부좌를 틀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았던 눈을 떴다.
“한제야. 이건 첫 번째 환각인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