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0
오두막 사방에는 대나무가 담장처럼 둘러 있었고 뜰에는 닭과 오리가 울면서 배가 불러온 여인 주위를 오가며 모이를 쪼아 먹는 중이었다.
여인의 옷차림은 소박했지만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았다. 손에 바구니를 든 여인은 웃음을 머금은 채 바구니 안의 모이를 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힘에 부치는지 이따금씩 한 손으로는 바구니를 들고는 다른 한손으로 허리를 받친 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고개를 빼 문밖을 내다보았다. 남편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때는 오후에 접어들어 햇빛은 더 이상 따갑지 않았다.
이내 대나무 숲 저쪽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오자 여인의 얼굴에는 해사한 미소가 걸렸다.
“소영, 내가 물고기를 한 마리 낚아왔어.”
대나무 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질항아리를 든 사내가 웃으며 들어왔다.
“물고기가 먹고 싶긴 했지만 좀 지나면 괜찮아졌을 텐데⋯⋯.”
여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드러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껄껄 웃더니 아내를 부축해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정겹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제는 대나무 숲속에서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째 주혼의 마지막 환생일 것이라는 예감을 어렴풋이 느꼈다.
변수
다음 날 깊은 밤,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구름과 바람이 몰아치는가 싶더니 천둥번개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대나무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빗속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로 연결된 듯했고 그 사이로 내리 떨어지는 번개가 대나무 숲을 환히 밝혔다.
그 무렵, 오두막 안의 침상에 누운 여인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두 손으로 이불을 힘껏 움켜쥔 그녀의 곁에는 산파가 있었다.
문 밖에서는 어두운 표정의 사내가 두 주먹을 꼭 쥔 채 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과 몸짓에서 초조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여인의 비명은 점차 잦아들었다. 여인의 남편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밝게 번득이는 눈으로 끊임없이 비를 뿌려대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이다.
“이 사동명, 독학을 통해 도리를 깨닫고 만물을 알게 되어 관원으로 지냈을 당시 백성의 행복을 도모했고 관직에서 물러나서도 다른 이와 척을 진 적 없습니다. 지난 33년,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단 말입니다! 한데 하늘이시여, 어찌하여 제 아내에게 이리 큰 고통을 주시는 겁니까!”
사내는 주먹으로 대나무 벽을 후려쳤다. 손가락 사이에서 흐른 피가 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빗물로 이루어진 웅덩이에 퍼져 나갔다.
한데 그 피가 빗물에 녹아든 순간, 하늘에서는 콰쾅 하는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방 안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내는 온몸을 바르르 떨며 격앙된 표정으로 곧장 몸을 돌렸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은 산파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 갓난아이를 안고 걸어 나왔다.
“축하하네,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해!”
사내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아이를 보더니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보다는 아내가 더 걱정됐던 것이다.
아내는 침상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으며 남편을 보았다.
“사내아이예요.”
여인의 조용한 목소리에 사내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소영,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 푹 쉬어. 아이의 이름은 내 이미 생각해놨어. 장차 커서 푸른 대나무처럼 곧고 강직한 대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사청이라 부르겠어!”
사내의 웃음소리에 산파에게 안겨 있던 갓난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어느새 번쩍 뜬 아이의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어렴풋이 번득였다.
방 안은 따뜻했고 밖에서는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빗소리에 섞인 사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심신에 녹아듦에 따라 몸을 바르르 떤 한제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한제에게는 더 이상 천둥소리도 사내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졌던 모든 것마저 흐려진 이때, 그의 귓가에는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맴돌 뿐이었다.
“사청⋯⋯. 세 번째 주혼은 사청이었어!”
한제는 입을 열어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사청이라니… 어떻게…?”
사청은 그의 제자가 아닌가!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세 번째 주혼의 정체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챘지만 어려운 선택을 앞두게 됐다.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콰르릉!
한층 격렬해진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빗방울도 더 굵어졌다.
한제는 당시 이 청령성에서 혼란에 빠진 채 도를 찾던 자신이 이곳의 대학자들에게 도가 무엇인지 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그 질문을 한 상대가 바로 사청이었다. 사청 덕분에 한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한제는 청령성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자신이 가부좌를 튼 채 좌선하고 있을 때, 이미 연로한 사청이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도에 대한 가르침을 요구했던 것도 잊지 않았다.
“난 평생 세상의 인륜에 대해 공부했고 학술적으로도 그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나이가 지천명에 이른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그저 강 속의 물고기 한 마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당시 사청이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산봉우리에 오르면서 했던 말이었다. 당시 한제는 그 말의 앞부분은 이해했지만 뒷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히 생각해본 적도 고민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아마 고민을 했다 하더라도 어떠한 답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주혼을 따라 그것의 수많은 환생을 지켜보고 청령성에 이른 이때, 그리고 물고기로 환생한 세 번째 주혼이 마지막으로 사청으로 환생했다는 것을 확인한 이때, 한제는 비로소 그 말을 완벽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강 속의 물고기 한 마리에 불과하다⋯⋯.”
한제는 고개를 홱 쳐들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오두막을 바라보았다.
몽도를 통해 소도영을 만난 것도 소도영을 통해 조나라, 나아가 주작성의 대학자가 됐던 것도 전부 원인과 결과였다. 그러나 한제는 자신의 인과가 완성됐다고 생각했을 때도 원인과 결과가 그저 볼 수 있을 뿐 만질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난 당시 무의식적으로 사청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한데 그가 칠채선존의 세 번째 주혼이었다니. 이를 통해 그와 나 사이의 인과관계가 맺어졌구나. 그것이 원인이었어! 그리고 그 원인으로 인해 난 몽도를 통해 소도영을 만나게 된 거야. 현실에서 그는 나의 제자였지만 꿈속에서는 내가 그의 제자였지. 이 원인과 결과는 순환을 이루며 하나의 윤회가 됐어! 진즉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한제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그 순간, 콰쾅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조각나 무너져 내렸다. 대나무 숲도 쏟아지는 빗방울도 요란한 천둥번개도… 남은 것이라고는 따뜻한 불빛이 일렁이는 오두막뿐이었다.
한제가 한 번 더 뒷걸음질을 치자 오두막 역시 왜곡되기 시작했다. 일렁이면서 천천히 흐려지던 오두막은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의 모습 역시 흐릿해졌다.
다시 또렷해졌을 때 그는 청수의 첫 번째 환각 안에 나타나 있었다.
청수는 두 눈을 번쩍 떠 한제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씁쓸한 빛이 어려 있었다. 한제는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세 번째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 순간 첫 번째 환각에 나타났던 청수국의 황궁과 피로 물든 세상까지 모두 와해됐다.
황궁과 대지, 하늘까지 무너져 내려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점점 빠르게 회전하던 회오리는 거대한 귀신 얼굴이 되더니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지르며 청수와 한제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두 사람은 환각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동부계의 선계.
산봉우리 꼭대기에 마주 앉은 청수와 한제는 동시에 두 눈을 떴다. 방금 보았던 모든 것은 실제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한바탕 꿈만 같았다.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한제의 두 눈에는 갈등의 빛이 드러났다.
“세 번째 주혼은 사청이었어.”
★ ★ ★
마음에까지 파고드는 듯한 선기가 어린 선계의 바람이 얼굴에 불어닥쳤다. 즐거운 때라면 기분 좋았을 이 바람도 심경이 복잡한 때라 그런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청수는 잠시 한제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떠나갔다. 그 역시 세 번째 주혼의 정체를 알게 됐고 한제와 연이 닿은 누군가라는 것도 그로 인해 한제가 갈등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청수가 떠나간 뒤에도 한제는 산봉우리 꼭대기에 앉아 선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세 번째 주혼을 봉인하거나 소멸시켜 칠백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허나…”
세 번째 주혼은 그의 제자였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신의 제자를 죽여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한제는 가슴이 아파왔다.
한참 뒤, 긴 한숨을 내쉰 한제는 밤의 장막이 내려앉고 나서야 하늘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지만 답은 어렴풋이 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주혼의 정체 외에도 문제가 두 개나 더 있었다.
“천운자는 천도의 일부분이야. 이전에 천운자와 싸우면서 그의 윤회에 들어갔을 때 일찍이 그가 칠채선존의 일곱 번째 혼백을 삼키는 것을 봤지. 허나 칠채선존이 무너져 내리면서 삼혼칠백으로 분리됐을 때에도 일곱 번째 혼백은 존재했어.”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칠백은 환생을 거치면서 흩어져 사라졌지. 어쩌면 일곱 번째 혼백도 여러 차례 환생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환생을 준비하던 중 천도로부터 분열된 천운자에게 삼켜진 것인지도 몰라. 일곱 번째 혼백은 보라색이었고 칠채선존의 분노와 광기의 화신이었지. 천운자가 그것을 삼켰으니 원래대로라면 그와 하나로 합쳐졌어야 한다. 허나 천운자를 삼킨 지하마수의 몸에서 칠채선존의 일곱 번째 혼백은 느껴지지 않았어!”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천도 안에 일곱 번째 혼백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그리고 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제의 미간이 팩 구겨졌다.
“이전에 천도가 4대 장군과 전가 노인을 삼키지 못했을 때, 난 천도가 아직도 불완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불완전한 한 부분이 바로 일곱 번째 혼백일지도 몰라! 설마 천운자에게 아직 죽지 않은 분신이 남아 있는…?”
그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회색 옷의 천운자를 잊고 있었군!”
뒤이어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두 번째 문제야말로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곱 개의 혼백 중 여섯 개는 모두 파악했다. 청수 사형, 사도환, 탐랑, 청림, 모은미, 산령상인⋯⋯. 그중 청수와 사도환이 칠채선존의 혼백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두 사람의 운명이 천벌의 윤회 속에 없었으니까. 허나 나머지 네 사람의 운명은 그 속에 있었어. 이 방법으로 칠채선존의 혼백을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었군!”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