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2
한제의 얼굴에서 핏줄이 돋아났다. 광기에 휩싸인 듯 분노에 차 고함을 내지른 그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폭발했다.
처음에는 연기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곧 하나로 응집해 허상의 검이 됐다. 이 검은 하늘을 파멸시킬 듯 어마어마한 위력을 뿜어냈다.
그 순간, 현라 대천존은 동부계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한제가 자신 외에 누구도 볼 수 없는 허상의 검을 응집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공멸(空滅)의 기운! 공멸의 기운이다! 저자의 맹세가 공멸의 기운으로 형성된 거야! 저, 저자는 대체⋯⋯?”
사청은 그런 한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더니 땅에 머리를 찧었다.
“제 심신은 이미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스승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내내 망설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후회하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 손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있어요.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입니다. 스승님⋯⋯.”
사청은 미련이 남은 눈으로 눈앞의 난초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의 입가에는 해탈한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이윽고 그 입에서는 마지막 숨이 흘러나왔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 사청의 칠규에서는 보이지 않는 혼이 한 갈래 한 갈래 흘러나왔다. 세 번째 주혼이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주혼의 거듭된 환생에 대한 기억 속에는 사청의 삶에 대한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이 세 번째 주혼은 사청의 봉인으로 인해 환생하지 못했고 기억들은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기억의 소멸은 사청의 소멸과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이 아니야!”
한제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 그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했다. 하늘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한 걸음 성큼 나아가 사청 옆에 앉더니 오른손을 전방으로 휘둘러 사청의 칠규에서 흘러나온 세 번째 주혼을 거두었다.
그 순간, 세 번째 주혼은 완전히 깨어나면서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고 이 수련성에서는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련성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이 순간, 계외 역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계외 태고 성신의 허공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우주는 안개로 뒤덮였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안개 속에는 수많은 흉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계외 전역이 그런 상태였다. 멀리 떨어진 계내의 어딘가에서 발산된 위압감이 동부계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이 위압감 아래, 계외 태고 성신의 모든 수련자는 몸을 떨었다. 그들로서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우주 안에서 울리는, 마치 종말을 알리는 듯한 그 소리에 이들은 숨까지 턱 막혀왔다.
셀 수 없이 많은 흉수 역시 그랬다. 모든 흉수가 덜덜 떨었다. 그리고 전승을 받으며 사라진, 하지만 영혼 깊은 곳에 매장되어 있던 기억이 이 순간 몇몇 흉수들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들의 선조가 남긴 이 기억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원래는 영원히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기억이었으나 이 순간 그들은 그 기억을 떠올렸다.
태고 성신의 격렬한 변화에 따라 안개는 점점 짙어져 결국은 계외를 완전히 뒤덮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나타난 탓에 누구도 미리 대응하지 못했다.
계외 태고 성신의 모처. 진동하는 우주 사방에서 하나하나의 조각이 나타났다. 평범한 돌조각처럼 보이는 이것들은 급속도로 한데 모여들더니 거대한 석판을 형성했다.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불규칙적인 모양새였다.
허공의 먼지가 응집되면서 만들어진 조각들이 합쳐진 거대한 석판에서는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갖춘 석판은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곧장 계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계외 태고 성신의 장존은 대전 안에서 두 눈을 번쩍 떴다.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숨에 안개로 가득 찬 우주로 나왔다.
그곳에서 저 먼 곳을 내다보던 그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 번째 주혼이 깨어났어! 동부계 핵심이 다시 열린 거야!”
장존은 망설임 없이 몸을 훌쩍 날려 계내를 향해 돌진했다.
같은 시각, 한제가 오래된 무덤에서 만난 적 있는 선비를 포함해 계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모든 선비가 퍼뜩 놀라며 좌선에서 깨어났다.
모두 같은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들의 표정은 각기 달랐다. 흥분한 이도 복잡한 표정을 짓는 이도 겁먹은 듯한 이도 있었다.
“동부계의 핵심이 열렸어!”
잠시 후, 이 선비들은 하나같이 계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곤허성역. 주작성 사방에서는 콰쾅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안개가 피어올라 온통 주위를 뒤덮었다.
그 안개 안에서는 어스름한 빛이 번득이면서 주작성 근처의 우주를 왜곡시켰고 이내 한 줄기 거대한 균열이 벌어졌다. 균열 안에서는 역외 전장의 적막한 기운과 함께 수많은 조각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주작성 근처에서 한데 모여든 이 조각들은 거대한 석판을 형성했다.
하나의 작은 대륙 같은 이 석판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나천성역을 향해 날아갔다.
다른 세 개의 성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석판들이 모습을 갖추자마자 나천성역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하나하나의 석판들이 모여드는 사이 나천성역에서 세 번째 주혼을 찾던 칠채도인의 표정이 급변했다.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든 그는 죽일 듯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점차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군가가 세 번째 주혼을 발견하고 동부계 핵심을 열었어! 누구냐! 누가 나보다 먼저 세 번째 주혼을 찾은 거야!”
칠채도인은 미친 듯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했다.
★ ★ ★
나천성역을 탐색하고 있던 4대 장군 전방의 거대한 안개 흉수가 울부짖으며 몸을 덜덜 떨더니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뒤이어 우주에서는 콰쾅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안개가 나타났고 동부계의 핵심이 열릴 때 풍기는 기운이 동부계 곳곳을 채워갔다.
“동부계가 열린다!”
“누가 세 번째 주혼을 찾은 거지? 칠채도인은 아니겠지?”
4대 장군의 표정이 급변했다. 자신들보다 먼저 세 번째 주혼을 찾아낸 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곧장 전방을 향해 질주했다.
허나 그때, 누군가가 그들을 추월해 나아갔다. 바로 전가 노인이었다. 이 노인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고 그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만약 그가 먼저 세 번째 주혼을 찾지 못한다면 그리고 칠채도인이 그보다 앞서서 세 번째 주혼을 찾아낸다면 자신은 상대에게 비참하게 흡수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그 역시 신식을 멀리까지 뻗을 수는 없었기에 세 번째 주혼을 찾은 것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한제일 수도 칠채도인일 수도 있으나 어느 쪽으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불확실성은 더욱 큰 두려움을 낳았고 이에 그는 최대한의 속도로 날아갔다. 만약 칠채도인이라면 그가 세 번째 주혼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때를 틈타 죽여야만 했다.
전가 노인이 나아가는 동안 거대한 허상이 나타났다. 안개로 이루어진 소매 없는 외투를 두르고 음산한 두 눈을 살짝 가린 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듯한 이 허상은 온 우주를 다 채울 정도로 거대했다. 바로 삼혼 중 하나, 칠채선존의 깨달음의 화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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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계 전역은 진동했고 모든 생명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또한 이 충격은 한제가 이광의 활로 만들어낸 계외 원고 선역의 봉인마저 찢어버렸다. 이로 인해 계외 원고 선역은 절반 이상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머지 절반에 자리해 있던 칠도종 제자들은 살아남았다.
봉인이 찢어진 순간, 그 안에서 튀어나온 칠도종 제자들은 큰 충격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나천성역으로 달려들었다.
그런가 하면 계내에는 소하성역 어느 수련성에 머물고 있는 선존의 선비가 있었다. 이 여인, 자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는 우주로 날아올랐다.
그 무렵, 곤허성역 오행성에 숨어 있던, 마씨 노인을 위수로 한 이들 역시 나천성역으로 향했다. 마씨 노인의 뒤를 따르던 운일봉은 기이한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나천성역 쪽을 응시했다.
‘이한제, 너와 나의 싸움은 아직 승부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저 동부계의 중심에서 결판을 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동부계는 격렬하게 떨리면서 안개로 뒤덮였으나 오직 한제가 있는 지역만큼은 횃불로 밝힌 것처럼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때, 청수는 오두막 앞에 서서 갑자기 혼탁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그를 부르는 듯한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그는 짜증이 치밀었다.
같은 시각, 사도환 역시 좌선을 하다가 깨어나 어두운 얼굴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엄숙한 목소리가 청수와 사도환 두 사람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남몽도존의 목소리였다.
“난 이한제에게 그를 돕겠다고 약속한 바 있네. 기이한 장소가 열렸으나 선강 대륙의 혈맥이 없는 나로서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군. 자네 두 사람의 혼을 좀 빌려야겠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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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성역 어느 수련성의 난초가 가득한 골짜기. 한제는 마지막으로 스승님을 부르며 미소를 머금은 채 숨을 거둔 사청을 슬픔과 분노가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의 인생을 멋대로 희롱하는 하늘에 대한 분노였다.
“하늘이 내 뜻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난 하늘을 파괴하고야 말겠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손에는 칠채선존의 세 번째 주혼이 들려 있었다.
사청의 시체에서 주혼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그것과 연계가 된 상태였다. 덕분에 그는 동부계 핵심이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손에 들린 세 번째 혼을 노리고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제에게 이 혼은 칠채선존의 세 번째 주혼이 아니라 제자 사청의 혼이었다.
“방금 그 말이 네 마지막 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야! 절대로… 이 스승이 있는 한 네 혼이 새롭게 응집될 날이, 네가 모든 기억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온다. 깨어난 후의 너 역시 이 이한제의 제자가 될 것이다!”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손에 들고 있던 세 번째 주혼을 체내에 녹여 넣었다.
그 순간, 어두운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주를 뒤덮은 안개가 짙어지면서 마치 성난 바다처럼 몰아치는 사이, 한제는 작은 대륙 같은 석판 하나가 안개에서 튀어나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연이어 석판들이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모여들다
한제가 있는 수련성 근처로 몰려든 석판들은 순식간에 마치 조립되듯 하나하나 더해져 윤곽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 오래된 듯한 기운과 어마어마한 위압감에 한제의 심신이 울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허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한제는 그저 그렇게 석판들이 합쳐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점차 더 많은 석판들이 모여들면서 윤곽도 조금씩 완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한제의 눈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이 문은 선강 대륙으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동부계 핵심으로 통하는 문이었다.